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5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 곽광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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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 9권'을 읽다가 이 책 제목을 보았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등극할 때 벌어진 정적에 대한 살해 사건을 다루는 부분에서였다.

 

소설이라고 하는데,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사실적이라는 이 작품에 대해서, 작가가 조사를 많이 하고, 사실(史實)에 기반해서 소설을 썼다고 하는, 시오노 나나미가 극찬하는 작품이었다.

 

어찌 읽어보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좋은 책이란 그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책을 읽게 만들지 않는가. 책들의 연쇄. 이 책에서 저 책을 소개하고, 다시 다른 책으로 건너가게 하는 책들이 좋은 책이다.

 

로마인 이야기 다음 권으로 넘어가기 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에 대략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지식은 있는 셈. 그렇다고 많이 알지는 못하니, 회상록이라는 형식으로 쓴 소설인데, 진짜 회상록을 읽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손자뻘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쓰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생각과 일생을 표현하고 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황제가 되어 평화를 유지할 때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는 것이 1권이다. 2권에서는 황제가 되어 로마를 다스리게 되는 중후반 이야기가 나오게 될 것인데, 1권에서는 황제가 되기까지 그가 겪었던 마음 고생, 그리고 황제가 되자마자 벌였던 살해가 정당화되고 있다.

 

그는 방어를 중심으로 로마를 다스리고자 했다. 정복으로 영토를 확장하기보다는, 이미 확보한 영토를 확고하게 지키는 방향으로 로마를 이끌어가고자 했던 황제.

 

그러니 방대한 영토를 지닌 로마를 수도에서만 머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재위 기간 중 많은 기간을 영토 순방에 나서는데, 순방에 나서서 그 지역에 맞는 해결책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들을 총독이나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이렇게 그는 제도로써 로마를 안정시키려고 한다. 그가 지속적으로 지방 순방을 다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자신의 선대인 트라야누스 황제와는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트라야누스는 장군으로서의 황제라면, 하드리아누스는 황제로서의 장군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로마가 안정이 되지 않았을 때 군사력으로 로마의 힘을 과시한 것이 트라야누스라면, 그런 정복 전쟁 다음에 로마를 안정시키는 황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하드리아누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그의 모습, 황제로 등극하기 전까지 트라야누스와 반대되는 사고를 했던 하드리아누스의 모습이 전반부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전임자를 딛고, 전임자를 넘어서야만 자신의 존재 위치를 각인시킬 수 있는 하드리아누스.

 

다른 길을 가되, 로마를 안정시키는데는 목표가 같았던 두 황제. 그리고 황제가 된 이후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계속 설명하고 있는 소설.

 

사실에 기반해서 썼기 때문에, 어쩌면 이 소설을 통해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대해서 더 잘 알아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작품은 회상록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것.

 

회상록도 철저하게 자신의 처지에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으니, 이 소설을 통해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대해서 다 알았다고 하면 그건 잘못된 읽기일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다만, 회상록이라는 형식을 통해 제정이 안정기에 접어드는 로마, 그 나라를 다스리는 황제의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은 좋다.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문구... 이 작품 1권에서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고백하거니와 나는 법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 법이 너무 엄격하면 인간은 법을 거기에 되고, 또 그것은 당연하다. 법이 너무 복잡하면, 인간의 간지(奸智)는 그 약하고 축 늘어진 그물 틈으로 빠져나갈 방도를 쉽사리 발견한다. ... 너무 자주 위반되는 법은 어떤 것이나 나쁜 법이며, 그러한 사리에 어긋나는 법령이 당하는 무시가 더 타당한 다른 법들에 확산되지 않도록, 입법자는 그것을 폐기하거나 개정해야 한다. 나는, 불필요한 법은 신중하게 검토하여 없애버리고 확고하게 공포할 적은 일군의 현명한 법규들은 제정할 것을 목적으로 하기로 작정했다. 모든 오래된 법들을 인류의 이익을 위해 재평가할 때가 온 것처럼 보였다.' (197-198쪽)

 

이랬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다. 그러니 그가 오현제 중의 한 사람으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가 이런 자세를 끝까지 견지했을까?

 

이제 2권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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