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제일 앞부분에 실려 있는 시인의 말이 곧 시다. 시인의 자세다.
시를 쓰면서 늘 생각하는 비유란 / 결국 결합이다. / 이것과 저것, 여기와 저기를 접붙여 / 새로운 의미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 / 그런 게 시라고 배웠다./ (중략) /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 내가 앞으로 계속 시를 쓴다면 / 결합이 아니라 분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 그동안 너무 많이 붙어먹었다는 것부터 고백해야 한다고 (5쪽)
시는 서로 다른 것을 연결시켜 준다. 연결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데, 시인의 말에서는 이제는 분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왜? 그렇다. 분리가 그냥 잘라내는 것,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뭉뚱그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우리를 한계짓고,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언어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쉽게 어떤 말로 뭉뚱그려지지 않았던가. 또 뭉뚱그리려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개인이 지닌 개개인의 특성은 그 뭉뚱그림 속에 파묻혀 버리지 않았던가.
비유가 서로 다른 대상에서 비슷한 점을 찾아내거나 비슷하게 만드는 표현이라면 비유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분리가 되어야 한다. 한 대상을 뭉텅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이 모여 있는, 융합되어 있는 부분들의 결합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분리를 통해서 다시 결합을 할 수 있다. 즉 분리와 결합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동전의 영면과도 같은 것.
그러나 앞에서 인용한 시인의 말은 우리 사회가 결합에만 너무 치중하지 않았나, 하다못해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고 있지 않느냐고...개개인의 특성을 생각하기 보다는 먼저 전체를 보고, 전체 속에 개인을 위치시켜 버리는 사고 습관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이 없는 전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자꾸 전체란 이름으로 또는 '우리'란 이름으로 부분을, '나'를 가두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시작되는 자리'란 시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앞부분 생략)
나와 애인의 얼굴을 하나로 뭉뚱그리려는 체제와 이데올로기는 사랑을 모른다 / 체제와 이데올로기가 쳐놓은 막을 찢어버린 자리에서 사랑은 시작되고 / 그 길 끝에서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뒷부분 생략) - 33쪽
이런 시인이니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는 말에도 다른 생각을 한다. '어떤 수업'이라는 시다.
(앞부분 생략)
꼭 숲을 이루어야 할까? / 숲 밖에 서 있고 싶은 나무도 있지 않을까? / 벌판에 키 작은 나무로 서서 / 더불어 숲이 아닌 / 지나가는 바람이며 길 잃은 새들에게 어깨를 내주는 ' 더불어 홀로의 삶도 괜찮지 않을까? (뒷부분 생략) - 158쪽.
뭉뚱그림. 결합만을 앞세웠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뭉뚱그림에서 부분을 찾아내는 것, 그 부분을 인정해 주는 것. 부분이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함임을, 그래서 전체는 완전한 부분들의 결합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뭉뚱그림 속에서 지내다가는 어떤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지, 뭉뚱그림을 인식하지 못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을 '자두맛사탕'이란 시에서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자두를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오로지 자두맛만을 기억하고 그것만을 인정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뭉뚱그림의 사회다.
이런 뭉뚱그림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모습이 시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군상'이란 시가 그렇다. 2016년 촛불 시위에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이응노 화백의 그림 '군상'과 연결시키는 것, 그렇다고 무작정 결합이 아니다.
독립된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루듯, 우리 사회를 바꿀 힘을 보여주었던 것, 시인은 이렇게 뭉뚱그림에서 벗어나 다른 연결을 한다.
무엇보다 제목이 된 시 '등 뒤의 시간'
등 뒤의 시간
봄이 와도
껶여 나간 나뭇가지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봄이 왔다고 부산한 이들 가운데
지난겨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하는 이 드물고
유난히 푸짐하게 내렸던
하얀 눈발을 은총이라 착각하며
껶여 나간 나뭇가지 같은 건
진작 잊어버렷을 게다
눈도 쌓이면 죄업의 무게를 이루듯
아름다움은 곧잘 배반을 동반하는 법
그러므로 새순이 돋는 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기도 하지만
그 앞에 무수한 죽음이 있었다는 걸
슬쩍 밀쳐내기도 한다
박일환, 등 뒤의 시간. 삶창. 2019년. 40쪽.
이 시에서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우리는 자주 우리 등 뒤의 시간을 밀쳐내고 살지 않는가. 마치 앞만 존재한다는 듯이. 이것 역시 시간들의, 삶들의 뭉뚱그림 아니겠는가. 이렇게 뭉뚱그려진 존재들을 시인은 하나하나 완전한 존재로 다시 불러내고 있다.
전체는 이러한 개별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음을, 쉽게 하나로 뭉뚱그려서는 안 됨을 이 시집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