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질문을 하는 사람. 세상에서 질문을 찾아내는 사람. 즉 당연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 그래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주는 사람.
시집의 맨 뒤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너무 늦게 알았지만 / 비로소 알게 된 일들이 새로이 발생되는 것. / 그것만이 지금 내게는 유일무이한 / 시의 목적이 되어 가고 있다.'
'늦게'와 '비로소'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있는데, 시인은 늦게 알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비로소 알게 된 일이다. 시인 덕에 비로소 알게 되는 일이 있고, 그렇게 알게 된 일들은 우리에게 발생한 일이 된다.
시인은 그렇게 우리에게 비로소 알게 된 일들을 새로 발생하게 해주고 있다. 시집에서 '누군가 곁에서 자꾸 질문을 던진다'는 시가 있다. 이 시에서 한 구절.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너무 많은 질문들이 / 도착해 있다' (82쪽)
어디 시인만이랴? 우리들이 서 있는 자리에도 수많은 질문들이 도착해 있다. 다만 그것을 우리가 발견하느냐 마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질문을 발견하는 일, '비로소'라는 말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결코 질문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위를 관심 있는 눈으로 볼 때, 마음을 열고 볼 때 비로소 질문들은 우리 눈에 띄게 된다.
시집 제목이 된 시 '수학자의 아침'도 그렇다. 수학자 하면 명징함을 떠올린다. 계산 가능한, 설명이 가능한, 증명이 되어야 하는, 그런 명징한 세계를 대변하는 사람, 수학자. 시에서 수학자의 아침, 즉 새롭게 시작하는 이 아침에 시인은 죽음을 이야기한다.
'나 잠깐만 죽을게' (14-15쪽)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삼각형, 선분, 원주율을 등장시킨다. 아침인데... 죽음을 이야기한다. 아침이라면 인생으로 치면 이제 시작인데, 죽음과 같은 저녁이 나오고 있다.
반대편을 보여주고 있다. 직선의 세계에서 곡선의 세계로. 끊임없이 내달리는 세계에서 살짝 휘어진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오는 원의 세계로.
이 시를 읽으며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계에 얼마나 더 많은 질문들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 하는 시가 많은데... (주동자, 평택, 여행자, 반대말, 연두가 되는 고통, 누군가 곁에서 자꾸 질문을 던진다, 이불의 불면증, 막차의 시간, 현관문 등)
이 중에 이 시... '정말 정말 좋았다'를 인용한다.
정말 정말 좋았다
갑자기 우렁차게 노래를 불렀다
연료가 떨어진 낡은 자동차처럼
너는 다음 소절을 우렁차게 이어갔다
행군하듯 씩씩하게 걸었을 거다
같은 노래를 하면
같은 입 모양을 갖는다
같은 시간에
같은 길에서
모퉁이를 돌면서
같은 말을 동시에 할 수도 있다
"와, 보름달이다!"
같은
모퉁이를 돌아도
꿈이 휘지 않는다는 착각을
나누어 가진다
땀을 뻘뻘 흘리는 눈사람에게
장갑을 끼워줄 수도 있다
장갑차에게 꽃을 꽂아주듯이
가로등이 소등된다
우리의 그림자가 사라진다
저 모퉁이만 돌면 우리, 유령이 되자
담벼락에 기댄 쓰레기봉투에서
도마뱀이 꽃을 물고 기어 나오듯이
숨어 있는 것들만 믿기로 한다
병풍 뒤에 숨겨진 시신처럼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이 된다
정말 정말 좋았다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사. 2018년 초판 12쇄. 120-1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