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서 나를 본다. 나는 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바로 수많은 너들 덕분이다.

 

  그런데 가끔 그런 너를 잊을 때가 있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잊는다. 그냥 나만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다.

 

  그러다 너란 존재가 없으면 과연 나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 그때서야 너란 존재는 바로 나임을 깨닫게 된다. 너와 내가 함께 해야 함을 인정하게 된다.

 

  너는 나를 이루는 존재다. 모든 존재다. 내 곁에 있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존재가 바로 너가 된다.

 

시인은 이런 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주로 나무나 새들과 같은 자연에서 너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사람에게서도 너를 발견한다. 너를 발견하는 일은 바로 나를 찾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나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너를 보는 일이다.

 

제목이 된 시 '상처 있는 나무는 다 아름답다'에서 시인은 나무가 피는 꽃을 상처에서 발견한다.

 

'(중략) 나무는 자신의 몸에서 / 그 꽃이 아름답게 필 수 있도록 / 상처를 내 / 꽃길을 반든다 / 그 처연한 아픔 속에서 / 꽃의 한 생을 위해/ 기꺼이 상처마저 / 넉넉히 받아들이는 걸 보면은 / 상처 있는 나무는 다 아름답다 (생략)' (이 시집 12쪽)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시에서 시인은 결국 나무만이 아닌 사람을 발견한다.

 

'(중략) 상처 하나 없는 사람보다는 / 상처 속에 살아온 그대가 / 아름답습니다 (생략)' (13쪽)

 

이 시에서 상처에 주목할 수도 있지만, '살아온'이라는 말에 더 마음이 간다. 누구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상처 속에 주저앉는 사람도 많다. 상처를 애써 가리는 사람도 있다. 상처를 부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상처 속에 살아온 그대'가 아름다운 것이다.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사람, 그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상처를 감싸안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렇게 시인은 너를 통해 나를 이야기한다. 상처 속에 살아온 그대가 아름답다는 얘기는 자신도 상처를 받아들이고 살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 '동거'에서는 나이들어가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병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겠다는 시인의 다딤이 나온다. 그렇게 상처를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모습, 상처까지도 또다른 너,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시인은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 갇혀 '너'를 보지 못하고, '너'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적이 많다. 수많은 '너들'이 바로 '나'임을 잊으면 안 되는데... 그렇게 이 시집을 읽으며 다시 수많은 너들이 나임을 생각한다.

 

'공상'이란 시를 소개한다. 이것이 단지 공상일까? 아니. 너가 바로 나임을 이 시를 통해서 더 생각하게 된다. 이를 상동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공상

 

밤나무에

밤꽃이 익어

밤꽃 냄새가 피는 것을 보면은

가끔은

내 은밀한 몸도 익어

밤꽃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은

어쩌면

나와 밤나무의

조상은 같은 것이 아닐까

 

김산, 상처 있는 나무는 다 아름답다. 책만드는집. 2013년.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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