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121호를 읽다.
여러 주제의 글이 실려 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호칭 문제가 기획되었고, 가족, 양육, ADHD, 발도르프, 페미니즘 등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실려 있다.
다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호칭 문제로 많이 갈등을 하니 민들레에서도 이에 대해서 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기획으로 잡은 것을 보니.
공자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이름을 바로 잡는 것이라고 했다. 즉, 정확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를 잘못 썼을 때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런 것들을 떠나서 언어 중에 다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은 더 문제가 된다. 호칭에는 관계가 들어있기 때문인데, 따라서 이 호칭에 따라서 위계가 결정이 되기도 한다.
'너의 성별을 불러주겠다(이라영)'는 글에서 '부력의 법칙과 중력의 법칙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39쪽)고 했는데, 어찌 성별뿐이겠는가. 학력, 경제력, 지위, 나이에 따라서도 부력의 법칙과 중력의 법칙은 작용한다.
누구나 자기보다 낮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말을 놓는다. 중력의 법칙이다. 말이 자꾸 내려간다. 그만큼 상대를 자기보다 못한 존재, 낮은 존재로 파악하게 된다. 아무리 말로는 평등하다고 해도 이미 호칭 속에 불평등이 들어 있으니, 그 말을 쓰지 않는 한 이런 위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반대로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위라고 생각하면 말을 높인다. 부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다.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말은 이미 높여서 나간다. 그러면 자연스레 위계가 작동한다.
이렇듯 호칭은 사회적 위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것이 친척간에도 작용을 하니, 주로 '시-'자가 들어가는 집안의 사람들에게 쓰는 호칭과 '처-'자가 들어가는 집안의 사람들에게 쓰는 호칭이 차이가 난다.
'시-'자가 들어가는 집안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도 부력의 법칙이 작용한다. 말을 높이게 된다.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남편의 동생에게도 '도련님, 아가씨'라는 높임말을 사용한다. 반대로 '처-'자가 들어가는 집안 사람들에겐 중력의 법칙이 작용한다. 아내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아내의 남자 형제는 모두 '처남'이다. 그뿐이다. 손위 여자 형제는 '처형'이니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어린 여자 형제는 '처제'다. 그냥 위아래를 구분하는 한자어를 썼을 뿐이다. '-님'이나 '아가씨' 또는 '서방님'과 같은 말을 쓰지는 않는다.
호칭의 불평등... 관계의 불평등으로 나아간다. 그러니 여성가족부에서도 이런 불평등한 호칭을 어떻게 고칠지 의견도 모으고 있지 않나.
이런 친척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실 가장 평등해야 할 부부간에도 호칭에서는 불평등이 일어나고 있다. 이 글에도 지적하고 있듯이 (33-34쪽) '연상연하' 커플이라고 하면 어떤 관계를 떠올리는가? 많은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보다 나이가 많은 관계를 떠올린다. 이상하지 않은가?
또한 연상연하에서도 남자가 나이가 많을 경우는 '오빠'라고 여자들이 부른다. 여자가 나이 많을 경우에는 처음에는 '누나' 그러다가 곧 '너'가 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예전에 꽤 인기를 끌었던 노래, '내 여자라니까'에 나오는 가사. 호칭 문제의 문제, 성별의 문제를 잘 드러낸 가사 아닌가 싶다.
'... 누난 내 여자니까 너는 내 여자니까 / 너라고 부를께 뭐라고 하든지 / 남자로 느끼도록 꽉 안아줄께 / 너라고 부를께 / 뭐라고 하든 상관 없어요 / 놀라지 말아요 / 알고보면 어린 여자라니까 ...' (이승기, 내 여자라니까 부분)
예전엔 별 생각없이 흥얼거렸던 노래, 많이 부르고 즐겼던 노래, 그러나 지금 호칭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는 이 노래 가사 역시 이 글에서 제시하고 있는 문제제기, 호칭에서의 남녀 불평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가사가 아닌가 싶다.
그만큼 호칭에 대해서 가정이든, 직장이든, 기타 다른 곳이든 많이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수평문화를 추구한다면 우선 호칭에 관해서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서로를 동등하게 대할 수 있는 호칭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서 한때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 교사와 교육청 관료들 사이의 호칭을 '-쌤'이나 '-님'으로 하자고 제안한 것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선생님'과 '쌤' 사이 -한희정)
문제제기는 좋았으나 환경을 바꾸려 하지 않고, 구조를 바꾸려 하지 않고 호칭을 문제삼고, 그것도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위에서 지시한 모습으로 제시한 것은 수평 문화를 만들겠다는 취지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중론이었다. 결국 서울시교육청에서 그 문제를 없던 것으로 했지만...
그렇지만 문제제기는 옳다. 그렇게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가장 평등한 관계를 보여줘야 하는 교육기관에서 불평등한 호칭이 난무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칭에 대한 문제제기... 바람직하다. 사회에서 계속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해야 한다. 그런 논의과정 속에서 감춰져 있었던 불평등한 모습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말해졌다는 것, 언어로 등장했다는 것,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을 '민들레 121호'에서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좋은 기획이었다.
그밖에 다른 것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아이들과 관련해서.. 좀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문제가 바로 ADHD문제 아닌가 한다.
이 점에 대해서 '"얘 혹시 ADHD 아냐?"라는 말의 무게 -김경림'의 글을 참조할 만하다. 우리가 너무 쉽게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았나, 어쩌면 그것은 책임 회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글이다. 좀더 많은 연구, 논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