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뒤에 실려 있는 해설을 인용한다. 이것이다. 무언가 중심 의미를 파악하려 하지 말자. 제목이 '사춘기'다. 질풍노도의 시기.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시기. 논리보다는 좌충우돌, 자신이 무슨 말을, 무슨 행위를 했는지도 잘 생각하지 않는 시기.

 

  시집 제목이 '사춘기'인데, 시집을 읽으면서 무슨 의미를 발견하려고 애쓴다. 시인은 시인이고 나는 나다. 시인이 무슨 이야기를 분명 전달하려 했을 것이다.

 

  언어는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다. 이 생각에 매여 있다. 그렇게 시집을 읽어간다. 그러다 문득 길을 잃었음을, 도무지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런 사춘기 시기에 있는 사람에게 자기를 명확하게 설명하라고 하는 꼴이라니... 이건 아니다. 그렇게 시집을 덮는다. 마침 해설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라는, 아니 의미가 아니라 일목요연한, 한마디로 이 시의 주제는? 과 같은 그런 의미는 찾지 말라는 말을 읽고, 안도한다. 그래, 뭐 있겠어. 그냥 시집을 읽으면 되는 거야. 무의미 시도 있는데 뭐... 이렇게 스스로 위로를 한다.

 

이 책은 당신의 편집증을 피해 가고 싶어한다. 모든 언어가 하나의 완고한 의미로 환원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이미 중심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자이다. (141쪽)

 

사춘기를 대하듯 이 시집을 대한다. 하나의 완고한 의미, 그것 포기한다. 그냥 읽는다. 그렇게 여럿이 한 시에 중첩되어 있다고 느끼고 만다. 그래 명료하지 않은 그 무엇들이 이렇게 겹겹 쌓여 시를 이룰 수도 있지 뭐... 그렇게...

 

그럼에도 한 시... '문은 안에서 잠근다'는 시. 문은 안과 밖을 이어주는 존재다. 문을 밖에서 잠글 때는 주로 사춘기 이전이다. 사춘기 이전에 문은 밖에서 부모들이 잠근다. 이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의존하는 시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춘기가 되면 문은 안에서 잠근다. 밖에서는 열려고 하지만 안에서 기를 쓰고 잠든다. 나만의 것에 대한 인식이 싹트고, 나만의 세계에 있고 싶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완전히 잠그지는 않는다. 밖과 연결고리를 남겨 놓는다. 언제든지 밖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하나에 매여 있지 않는다.  

 

문은 안에서 잠근다

 

  후려갈기듯이 그가 문을 닫았다고 생각했을 때, 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문은 반발하여 조금 열린 채 떨리고 있었다. 그가 부르르 떨고 있는가? 오래 참으셨군, 나는 빈정거렸지만

 

  나는 바닥을 드러낸 채 그의 침대에서 너무 오래 기생했다 두께 없는 얄팍한 사랑을 원고지 구기듯이 했네 나는 썼지만

  구겨진 그를 펴서 다시 읽고 싶지 않았네 나는

  썼지만 그는 때때로 아, 벌어져 있었네 그의 침대에서

  나를 핥고 지나가는 문장들을 나는 너무 쉽게 받아들였네 그가 없는 그의 침대에서

  나는 뜨거워지지, 그러니 그가 없는 그의 침대에서 참을 수 없었네 오래 참으셨군,

  나는 빈정거렸지만 내가 나쁘지 않은가?

  문을 닫았다고 그는 믿지만 문의 반동은 그의 행위에서 비롯하니, 이것이 내가 받은 교훈의 전부다

 

  이제 내 낙서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다시 바람이 나침반인가? 문이 자꾸 펄럭이니 문 밖의 풍경은 빠르게 늘어났다가 줄어들고 늘어……나는 중얼거린다.

  문은 안에서 잠근다.

 

김행숙, 사춘기. 문학과지성사. 2016년 초판 9쇄. 57-58쪽.

 

안과 밖, 나와 그, 글과 그, 글과 나... 여럿이 하나로 섞여 있다. 하나라고만 생각했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것들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하나에서 분화되기 시작한다. 나는 나, 그는 그, 글은 글. 이렇게 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를 인식하기 시작할 때 문을 잠그는 주체, 문을 여는 주체는 바로 나다. 나는 그렇게 세상의 중심이 된다. '사춘기'는 이렇게 내가 안에서 문을 잠그기 시작할 때 시작한다.

 

이것도 중심 의미를 파악하려는 언어는 표현의 전달이라는, 소통이라는 생각을 깔고 있는 행위다. 에고... 여전히 말은 소통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랴. 무의미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인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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