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어떤 일관성을 지니고 있는 시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첫시부터 마지막시까지 그냥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나 사건들에 대한 옴니버스식 진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무언가 시적이라기보다는 산문적인 그런 시들. 그러나 읽고 나면 마음에 울림을 주는 그런 시들.
시인은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우리 앞에 다시 불러내고 있다. 시집 제목도 "껌"이다.
우리가 "껌"을 얼마나 천대하고 있는가. 사실 자신의 외로움, 두려움을 가장 잘 달래주는 존재가 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껌을 무시하거나 홀대하고 있다.
"껌 값밖에 안 돼." 별것 아니라고 하는 말에도 이렇듯 껌이 달라붙는다. 달달하기에 씹기 시작하는 껌, 그러나 씹다보면 단물이 다 빠지고 질기고 질긴 고무만 남는 그런 껌. 이 껌을 시로 불러내다니.
껌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고기를 찢고 열매를 부수던 힘이
아무리 짓이기도 짓이겨도
다 짓이겨지지 않고
조금도 찢어지거나 부서지지도 않은 껌.
살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고기처럼 쫄깃한 질감으로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뻘들이 잊고 있던 먼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지구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준 껌.
김기택, 껌. 창비. 2011년 초판 6쇄. 28-29쪽.
"껌"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들어 있었다니, 시를 읽으며 미켈란젤로를 떠올렸다. 조각을 할 때 자신이 형상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돌 속에 들어 있는 형상을 끄집어낼 뿐이라고 했다는 그를.
김기택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있다. 단순히 스쳐지나가듯이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내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응시는 곧 자신을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가 돌 속에 있는 형상을 끄집어냈을 뿐이라고 한 것은 결국 돌 속에서 자신을 보았다는 얘기와 다름 없을 테니까...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시집의 시들은 결국 나와야 할 내 몫의 말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유전자지도에 그려진 내 얼굴 모양·본능 모양·성격 모양처럼 정확한 내 '꼴', 더하고 뺄 것도 없이 그 꼴값이다. 의식적으로 변화하려 하기보다는 그 '꼴'이 불러주는 그대로 받아적으려고 했다. (126쪽)
시인은 세상 모든 것에서 자신을 보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한다. 존재들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의미들이 시인의 마음에 상응하여 언어로 나오게 된다.
그렇게 나오게 된 언어를 독자인 나는 또다른 언어로 만나고, 그 언어를 통해서 존재의 마음에 또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
세상은 이렇게 시를 통해서 거대한 공감의 장으로 변하게 된다. 하여 시를 읽는 내내 마음에 어떤 큰 울림이 일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