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시들이다. 그냥 땅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록 도시에 대한 시들일지라도 이상하게 땅을 연상시키는, 마치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그런 시들이 많다.
시를 읽으며 마음은 어린 시절로, 시골로 돌아가고 있다.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서 또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찾아서 또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서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시편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사회 문제를 비껴가지는 않는다. 아니 비껴갈 수가 없다. 고향을, 사람을 노래하는데 어떻게 사회를 비껴갈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과 고향이 모두 사회와 얽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참 오래 된 시집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 모씨, 이 모씨, 지 모씨 등등... 분통터지게 하는 이들을 생각나게 하는 시가 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그 인간들은 지금까지도 우리 눈에 보일까? 진짜 별종이다. 이렇게 살기도 힘든데...
별종
오월 어느날
등꽃 향기 독하던 날
어린 조카놈의 코피를 터쳐놓고
얻어들은 말
집안이 망할라고 별종이 나타났구나!
커서 세상을 살면서
더욱 잊을 수 없다
나라가 망할라고 그맘때면 나타나
동족의 봄을 짓밟던 무리
일그러진 얼굴들 떠오를 때
심호택, 최대의 풍경. 창작과비평사. 1995년. 98쪽.
도대체 그 '일그러진 얼굴'은 언어에 대한 감각도 별종인지, 무슨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말을 하지 않나, '알츠하이머'에 걸려 법원에 출석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골프를 치러 가지 않나 - 몸은 기억한단다- 그를 추종하는 이상한 무리들은 아직도 광주에는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망발을 하고 있으니...
'나라가 망할라고' 그런 '일그러진 얼굴들이 떠오'르고 있으니... 이건 아니다 싶다. 세상에 고향을 떠올려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일그러진 얼굴들이 여전히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으니... 그들은 정말 별종은 '별종'인가 보다.
이 시집을 읽으며 이런 얼굴들 떠올리는 기분 나쁜 체험은 이제 그만두고, 시집에 나오는 또 다른 시. 우리가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성장 성장, 개발 개발 하면서 놓친 것들이 무엇인지, 바로 이런 즐거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 기쁨의 순간들은
도대체 어디로 날아갔나
그 기쁨의 순간들은
살구철이 지난 어느날
우거진 잎새 사이에서
얼핏! 샛노란 살구 하나 찾아냈을 때
고구마 캐낸 빈 밭에서
무심코 쟁기질 뒤따르는데
덜렁! 고구마 한 덩이 뒤집혀 나올 때
사정없이 가슴이 콩당거리던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심호택, 최대의 풍경. 창작과비평사. 1995년. 113쪽.
이것이야 말로 흙'을 노래하는 땅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상기시켜주고 있는 시 아닌가. 우리가 잃은 것이 바로 이런 것들, 땅과 자연... 온통 인공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아니던가.
시인은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대로 나가다간 '일그러진 얼굴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자연에, 지구에 '일그러진 얼굴'이 될 수 있는, 그렇게 '별종'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시집 끝부분 '발문'에서 김종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음 속에 새겨두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사람다운 소박하고 위엄있는 삶의 사회적 기초라 할 수 있는 '흙의 문화'는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지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사람다운 삶에 대한 근원적인 충동을 제거할 수 없는 한,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순환적 농업문화의 복원을 꿈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참다운 인간적 삶을 옹호하려는 모든 인문적, 예술적 노력은 '흙의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그 창조적인 열정을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의 인간다움의 마지막 근거는 결국 '흙'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 심호택의 성공적인 시편은 우리에게 이러한 문제를 다시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129쪽. 발문, 김종철, '기억의 뿌리를 향하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