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시집 뒷편에 쓴 후기를 인용한다. 이 후기에 박영근 시인이 시를 대하는 태도가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민중, 혹은 문학은 여전히 하나의 가능성이며, 가야할 미래로서의 새로움이다.
  이 시집의 끝에 나의 스승 한분이 당신의 첫시집에 쓰신 말씀 한구절을 적어놓는다.
  나 자신이나 남을 속이지 말자
  분수를 알자.
  어둠과 절망을 제대로 살아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새삼스럽게 가슴이 뜨거워온다. 
 
1997년 10월, 인천에서 박 영 근
 
이 시집이 나온 것이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막 처했을 때일 것이다. 한창 성장을 구가하던 나라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던 때.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 시대로, 불안정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박영근 시인은 노동현장의 치열함을 시로 쓰기도 했다. 본인이 노동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동현장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노동시라고 하는 것이 꼭 노동현장을 표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왔다. 1958년생이면 전쟁 직후에 태어나 우리나라가 발전할 때, 경제적으로는 농촌이 파괴되면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고, 저임금 저곡가 정책으로 일반 민중들은 살기 힘들어지던 때. 정치적으로는 독재가 판치던 시대.
 
이 시대에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터. 시인은 이런 시대에 시를 통해 진실되게 살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나 자신이나 남을 속이지 않는 일, 분수를 아는 일. 우리 모두가 이렇게만 살면 어찌 차별이 있고, 억압이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특히 점점 더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남이 아니라 자신마저도 속이는 그런 특기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시인 약력을 찾아보니 2006년에 돌아가셨다. 채 50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것. 이 세상이 그리도 살기 힘들었던가. 아니면 시인처럼 자신도 남도 속이지 못하고 분수를 알며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에겐 견디기 힘든 세상이었던가.
 
시인이 저 세상에서 내려다보는 지금 이 세상이 그때보다는 더 좋아졌어야 하는데... 
 
시집 제목이 된 시를 인용한다.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낡은 흑백 필름 속 같은 곳에서
쓸쓸히 늙어가는 내가 보인다
 
한편의 시를 쓰려면
몇밤을 불면으로 때우는 나를
바겐세일도 하지 못해
백화점 문턱도 넘지 못하는 나의 상품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베스띠 벨리 막 화장을 끝낸 마네킹의 얼굴도 보인다
 
TV 뉴스 속에선 한총련 아이들 최루탄처럼 구호를 터트리고
내 귀엔 환청처럼 들리고
대낮 뜨겁게 타오르던 해가
페퍼포그 연기 속에서 복면을 한다
 
꽃들이 일제히 모가지를 꺾고 파업을 했는가
 
부러진 뼈와 두개골 사이로 새파란
억새를 키우고 있는 공장 위로
기억이 모가지를 부러뜨린 채
하늘을 향해 굴뚝을 세우고
나를 부르는 소리도 들린다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그래 가자
가자
저 유월의 싱싱한 은행나무들이
시뻘겋게 녹슨 고철덩어리로 보일 때까지
 
박영근,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창작과비평사. 1997년. 92-93쪽. 
 
어둡다. 이상하게 과거 속에 자신을 가두어버린 듯한 느낌. 미래로 가려 하는데, 그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 세상에 은행나무들이 녹슨 고철덩어리로 보일 때까지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노동의 시대, 노동으로 세상을 바꾸려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뜻인가? 그럼에도 노동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인가. 
 
'시뻘겋게 녹슨 고철덩어리'는 가동이 멈춘 공장이 아니던가. 그런데 '유월의 싱싱한 은행나무'는 또 무엇인가. 87년 유월 항쟁을 이야기하는가? 유월 항쟁으로 인해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루었지만 노동자들의 현실, 민중의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뜻인가. 
 
그래서 한총련은 여전히 시위를 하고 있으며, 노동자이자 시인인 나는 백화점 문턱을 넘을 수 없고, 공장에선 여전히 나를 부르고 있는데...
 
공장을 멈춰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노동자들의 삶만 피폐해졌지 않은가. 그런 시대를 겪어 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 시의 마지막 구절이 맘에 걸린다. 탁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다. 시인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시뻘겋게 녹슨 고철덩어리로 보일 때까지'라는 말은 결국 그 녹슨 고철덩어리들을 노동의 힘으로 다시 가공해 내야 한다는 것 아닐까?
 
노동자들의 삶이 유월 항쟁으로 이룬 것처럼 이렇게 녹슨 고철들을 새로운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것,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노동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노동자들이 계속 해야할 일이라는 말 아닌가 하는 생각.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말을 시인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내 멋대로 읽기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01-14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