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겨울로 가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면 추위를 걱정해야 하는데, 이제는 추위보다는 미세먼지를 또 봄에만 잠시 시달리곤 하던 황사를 걱정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인류가 기술과학의 발달로 인해 봄에서 여름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열매를 수확한 가을을 넘어 겨울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것인지...

 

  겨울이 올 줄 뻔히 알면서도 막 살아왔던 인류가 겨울이 눈 앞에 닥치자 그제서야 허둥지둥 대책을 논의하는데...

 

  겨울이 되어도 먹을것, 땔것, 지낼 곳이 충분한 사람들은 겨울 걱정을 하지 않듯이 이미 가질 것 다 가진 나라들은 자기 일이 아닌 양 뒷짐지고 있는 모양새.

 

겨울이 없는 사람에게만 오나? 없는 사람은 더 힘들겠지만, 그 사람들이 힘들면 힘들수록 있는 사람에게도 부담이 될텐데. 그래서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문제가 될텐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박남준이 낸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라는 시집. 이 시집 제목이 된 시는 봄에서 여름을 거쳐 겨울로 가고 있는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시집에 실려 있는 시 제목은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그 여자의 반짝이는 옷 가게'(54-55쪽)이다.

 

강 따라 가는 길 전망 좋은 곳에 있는 간이트럭 휴게실. 사람들이 오다가다 모여 쉬다 가는 곳. 이제 살 만하다 싶었을 때 찾아온 아내의 암 소식. 아내가 바랐던 반짝 반짝이는 옷들... 그런 내용의 시.

 

처음 부분을 읽어가면서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섬진강물처럼 잔잔해 지는데, 2연에 가면서 그 잔잔함 속에 애잔함이 묻어나오게 된다. 이런 애잔함이 그렇게 만든 외부 요인으로 옮겨 가면 분노로 바뀌게 되는데...

 

시집은 1부에서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말 그대로 '노래'다.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죽음과 삶은 그야말로 평화 자체다. 자연의 일부다. 그렇기 때문에 애잔함보다는 평온함이 묻어나온다. 그렇게 마음 편하게 잔잔한 미소를 띠며 읽다가 2부로 가면 시인 자신에 관한 이야기들과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노래에서 이야기로 넘어간다. 우리네 생활에서는 죽고 산다는 문제가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과는 차이가 있기에 아무래도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늙어감에 대해서 두려운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렇게 사람에게 다가온 이야기들이 사회로 넘어가면 분노로 넘치게 된다. 몇몇 정치인들이 저지른 어마어마한 잘못들로 자연이 파괴되고, 우리들 삶이 무너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시인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렇게 3부에서는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제주도, 또 전쟁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자연을 노래하는 것에서 그런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 현실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막기 위해서 행동으로 나아간다. 그런 행동들이 시로 다시 표현되고 있고.

 

세월이 흘러 막혔던 4대강들이 다시 열리고 있고, 동남아 국경의 거리를 자유롭게 걷고 있던 시인이 그보다 우리나라 장벽을 자유롭게 걷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했었는데,('국경의 거리를 걷고 싶다' 72-73쪽) 이제 그렇게 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으니...

 

시집은 봄에서 겨울로 가고 있었다. 겨울... 2010년대 초반... 우리에게는 정말 '겨울'이었다. 이 시집에 있는 다음 시들을 보라.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 운하 이후, 낙동강 바로 분단의 장벽, 해창 바다에서 광화문까지, 일순 깨어지고 남김없이 씻겨져서, 다시 또 여강에 몸을 던져 등등

 

하지만 자연은 순환한다. 어디 겨울만 존재하겠는가. 지구 역사를 살펴보면 빙하시대가 있었지만, 그 시대로 끝맺을 때가 있었으니...

 

우리는 이제 겨울에서 봄으로 가고 있다. 자연적 계절은 이제 겨울이지만, 우리 마음에서는 봄이 움트고 있다. 박남준의 이 시집, 그런 겨울에서 끝나고 있지만은 않다. 마지막에 실린 시가 바로 그렇다.

 

'지리산에 가면 있다'라는 시. 그렇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을 소개한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 길이 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 그런 사람들이.

 

퐁퐁퐁 샘물에 목을 축이며 가는 길이 있다

막걸리 한두 잔의 인심이 낯선 걸음을 붙드는 길이 있다

높은 산을 돌아 개울을 따라 산과 들을 잇고

너와 나, 비로소 푸른 강물로 흐르고 흐르는

아직 눈매 선한 논과 밭, 사람의 마을을 건너는 길이 있다

 

 

박남준,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실천문학사. 2010년.

'지리산에 가면 있다 - 4연'. 130쪽.

 

시집은 다시 봄을 이야기하면서 끝난다. 그렇게 순환한다. 그런 순환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겨울 역시 마냥 부정해서는 안 된다. 겨울은 봄을 더 봄답게 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겨울에 봄을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거지로 겨울을 만들지 않도록.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단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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