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겨울이 온다.

 

 낙엽비가 그치고 나면 그 자리에 함박눈이 펄펄 오다가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겨울비가 눈을 대신해 내린다.

 

 겨울비는 주연이 될 수 없다. 반가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눈을 대신하거나,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비... 마음을 더 춥게 만드는 비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한다.

 

 하여 겨울비 하면 현진건이 쓴 소설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난다. 그 소설 첫부분의 그토록 어두운 분위기라니... 소설은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로 시작한다.

 

인력거꾼 김첨지에게 운이 좋았던 날이 바로 가장 운이 없는 날이 됨을 알려주는 구절이다. 이렇게 겨울비는 안 좋은 상황을 이야기할 때 많이 언급한다.

 

김종서가 부른 '겨울비'라는 노래가 있다. '겨울비처럼 슬픈 노래를'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 2절에 가면 '겨울비 내린 저 길 위에는 회색빛 미소만 내 가슴 속에 스미는 이 슬픔'이라는 구절도 나온다.  

 

비극, 슬픔, 겨울비는 이것을 연상시킨다. 낙엽비도 아니고 함박눈도 아니고 우리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는 생각을 하게 존재가 바로 겨울비다.

 

그런데 강희근 시인이 쓴 '겨울비'를 읽다가 아, 겨울비를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있는 존재를 시인의 눈은 다르게 볼 수 있다.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 그 존재를 하나로만 규정하지 않고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차가움, 슬픔, 고난으로 대변될 수 있는 겨울비에게 '해갈'이라는 말을 쓴다. 해갈, 단비가 주는 기쁨 아니던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과 같은 것이 바로 해갈 아니던가.

 

이런 해갈의 역할을 겨울비가 한다니... 시를 읽으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찬바람이 씽씽 부는 이 때, 꽁꽁 얼어붙어버린 땅 위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땅을 더욱 얼리기 위한 비가 아니라 땅에 수분을 주어 곧 다가올 봄을 예비하게 하는 비로.

 

그렇다면 겨울비처럼 어둡고 슬프고 차가운 존재를 다음을 생각하게 하는 밝고 기쁘고 따스한 존재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겨울비 속성이 변하지는 않는다. 계절학기가 무엇인가? 학점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이 어쩔 수 없이 이수해야 하는 시간 아니던가.

 

어쩔 수 없이 이수해야 하지만, 이수하고 나면 도움이 되는 그런 존재가 계절학기 아니던가. 겨울비도 마찬가지리라. 이 겨울비를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어려움이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존재로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겨울비는 즐거움만을 주지는 않지만, 다음을 생각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바로 우리들에게 '해갈'의 기쁨을 주기 위해서.

 

시를 보자.

 

         겨울비

 

겨울비는 계절학기와 같다

낭만으로 내리는 것 아니라 해갈을 위해 내린다

 

해갈도 참으면 지나가고 마는

지나가도 상처의 흔적 크게 만들어지지 않는 겨울비는 무덤덤

맛없는 시간 적시며 내린다

 

좋은 학점은 다 딸 수 없는 것

그리하여 계절학기 듣는 이들에게 중용의 비 내린다

 

폭우로 쏟아지지 않고 가랑비로 옷의 풀 죽이지도 않는

비의 무채색

비의 비무장

하염없이 시간을 데리고 시간이 되어

 

해갈의 밭머리 겨울비가 내린다

 

강희근, 바다, 한 시간쯤. 한국문연. 2006년 재판 1쇄. 56쪽.

 

'겨울비'에 대해 이렇게 다른 시각을 보여준 시... 이런 시 덕분에 한쪽으로만 치우치려는 내 시각이 다른 방향을 볼 수 있게 된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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