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메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0
존 바스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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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환상적인, 신화에 버금가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기존에 알고 있는 신화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을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형식을 취해야 할까?

 

'키메라'  양, 사자, 뱀의 모습을 모두 지니고 있는 신화속 괴물. 벨레로폰에게 퇴치된다고 신화에는 나와 있는데... 이런 키메라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어쩌면 문학 아닐까? 작가는 이런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신화를 빌려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목은 "키메라"인데, 이 소설집에는 '두냐자디아드, 페르세이드, 벨레로포니아드'라는 세 소설이 있다. 제목에 키메라는 나오지 않는다. 키메라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괴물이라면 이 소설 역시 세 신화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키메라처럼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쉽게 접근하려고 해도 불을 내뿜어 사람들을 물리치는 키메라처럼 소설은 신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한다. 신화처럼 단순 명쾌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낭패를 당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키메라는 하늘 위에서 화살을 쏘아 물리칠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너무 가까이 들어가서는 숲 속에서 길을 잃듯이, 나무들은 보지만 숲은 보지 못하듯이 헤맬 수밖에 없다.

 

멀리서 봐야 한다. 신화의 자리에 서서 이 소설을 읽으려고 한다. 그래도 희미하긴 하지만... 숲 속에서 그냥 헤매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두냐자디아드'는 아라비안나이트를 차용한 작품이다. 세헤라자드가 여인들을 구하기 위해 이야기로 왕을 변화시키는 내용.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천일야화다. 하지만 소설은 세헤라자드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동생인 두냐자데가 서술자이다.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들은 여성을 죽인 남성을 처벌하려고 한다.

 

여성주의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소설은 하지만 남성의 관용으로 자신들의 행위가 계속 이어져 왔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일어난 행위와 그 행위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의 차이. 그 차이를 찾아내야 하는 이야기꾼.

 

소설은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겉보다는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숨어 있는 의미를 찾는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야기꾼인 세헤라자데를 서술자로 삼지 않고 동생인 두냐자데를 서술자로 삼은 까닭은 세헤라자데의 이야기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이미 아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기법, 이 소설은 첫번째 소설에서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

 

두번째 소설과 세번째 소설은 이야기 속 이야기로 계속 관계를 맺는다. 서로가 연결되어 있지만, 실제로 영웅과 영웅이 되고자 하는 인물이 행하는 차이가 서술되고 있다.

 

영웅인 페르세우는 40이 되어 이미 늙어버린 자신에게 환멸을 갖는다. 신화 속에서 머무를 때는 영웅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영웅성을 찾아가는, 그러나 결코 그것이 완결되지 못하는 과정을 '페르세이드'에서 펼쳐보이고 있다면, '벨레로포니아드'에서는 페르세우스와 다른 길을 가는 영웅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웅이 되고 싶은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벨레로폰 이야기를 비틀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 속 영웅을 추종하는 사람이 진정한 영웅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어쩌면 인간으로서 살아가려고 하는 행동 속에서 영웅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미 알고 있는 신화를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다양한 이야기가 중첩되게 만들고 있는 작품이다. 여전히 숲을 발견하지는 못하고, 나무 사이에서 헤매고 있지만, 그래도 읽는 재미는 있다. 더 고민하면서 생각하면서 다시 읽는다면 숲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을런지...

 

이 소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보르헤스의 소설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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