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떡하니 벽이 나타나면 절망에 빠진다. 눈 앞에 갑자기 절벽이 나타나면 절망에 빠진다. 눈 앞에 너무도 많은 갈림길이 나타난다. 어라? 어디로 가야 하지? 길을 잃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 더이상 갈 길이 없다.

 

  길이 어딜까? 다시 되돌아 가야 하나,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나 망설이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게 될 때 두려움에 빠진다. 더이상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되돌아 갈 수 없다. 다시 앞으로 가아야 한다. 가기 싫어도 가야 할 길이 바로 삶이다. 그래 길은 어디에도 있다. 단지 보이지 않는다고, 잠시 끊겼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길은 나만이 가는 길은 아니다.

 

도종환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을 읽으며 길에 대해서 생각한다. 아니 '길'로 대표되는'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에게 처음인 삶. 다른 사람에게도 처음인 삶이다. 하지만 누군가 이미 살아본 삶이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내게는 늘 처음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늘 처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미 겪은 일이다.

 

그것에 대해서 말해주든, 말해줄 수 없든, 인간이 이미 겪은 일이다. 이미 겪은 삶이다. 그것이 바로 길이다. 도종환 시집에서 이런 '길'에 관한, 아니 '삶'에 관한 시 두 편을 발견했다.

 

여러 번 읽으며 내 삶을 생각한다.

 

  처음으로 가는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도종환, 해인으로 가는 길, 2006년 1판 5쇄. 61쪽

 

내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처음이지만 인간으로 확장하면 처음인 길은 아니다. 이미 누군가가 간 길이다. 그런 길, 내겐 처음이라고 두려움에 떨며 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 비록 그 길이 '순탄하기만 한 길은' 아닐지라도 내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가야 한다. 그렇게 가다보면 아, 내가 참으로 많은 길들을 지나왔구나 하는 때가 온다.

 

피반령

 

돌아보니 산은 무릎까지 눈발에 잠겨 있다

담채처럼 지워져 희미한 능선

내려와서 보니 지난 몇십 년

저런 산들을 어찌 넘었나 싶다

회인 지나면 수리티재 또 한 고개

그러나 아무리 가파른 산도

길을 지니지 않은 산은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멀리 서서 보면 길보다

두려움이 먼저 안개처럼 앞을 가리지만

아무리 험한 산도

길을 품지 않은 산은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길은 언제나 바로 그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다는 걸

 

도종환, 해인으로 가는 길, 2006년 1판 5쇄. 113쪽.

그래 길은 도처에 있다. 나는 그 길을 가야 한다. 앞에 벽이 있어도, 앞에 절벽이 있어도, 앞에 수많은 갈림길이 있어도 내가 갈 길은 있다. 내가 가야만 할 길이 있다. 그 길을 가야만 한다. 그게 바로 삶이다. 그렇게,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도종환의 이 시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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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6 1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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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6 1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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