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품격 - 삶이 있는 공간이 되려면 학교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임정훈 지음 / 우리교육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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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이 발표가 되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늘 있는 일이다. 대학에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입시제도가 바뀌어도 그게 그거인 셈이다. 그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으니까.

 

이렇게 우리나라 교육은 최종목표를 행복한 삶, 더불어 사는 삶, 민주적인 삶 등등을 말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으로 삼고 있다. 그게 다다. 학교 교육을 어떤 형태로 개혁한다고 해도, 대학에 목매달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 되고 만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교육내용에 관해서는 참 많은 논의가 있고, 모든 학부모들이 관심을 가지고 전문가인양 이야기들을 하는데... 교육을 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별 말이 없다.

 

관심을 가질 때는 학교 천장에 있는 석면이 발암물질이라는 것이 알려졌을 때, 운동장에 깔려 있는 인조잔디가 인체에 해롭다고 알려졌을 때 정도다. 건강에 아주 안 좋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잠깐 학교 공간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뿐이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 아이들이 대부분을 생활해야 하는 학교 공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자기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데도. 그래서 학교 공간은 늘 제자리다.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퇴보한다. 낡아가니까. 

 

다른 공간 분야는 앞서 나가는데, 학교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다. 다른 공간과 격차가 점차 벌어진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볼 일을 보지 못한다고 하는 학생도 많아지고 있다.

 

학교 화장실, 집에 있는 화장실보다 못해도 너무 못하다. 무슨 재래식 화장실도 아닌데 냄새가 지독하다. 거기다 휴지도 없다. 비데는 말할 것도 없고. 늘 퀘퀘한 냄새를 풍기는 화장실을 교실 바로 앞에 두고 있는 학급도 있다.

 

여름이면 냄새가 솔솔 교실로 들어온다. 그런 상황인데, 교실 책상과 의자는 어떤가. 몸에 맞지도 않는다. 왜 이리 재질이 좋지 않은지. 집에 있는 책상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어야 하는데, 몇 년 전, 아니 몇 십 년 전 선배들이 쓰던 책상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다.

 

비좁은 교실에서 아무 것도 없이 낡은 책상과 의자를 가구로 삼아 생활해야 하는 학생들. 한여름과 한겨울에 복도에 나가 보라. 복도는 실내로 취급되지만 학교에서는 실외에 해당한다. 냉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곳이다.

 

오로지 통로로만 사용되는 곳, 그렇다고 낭만이 있는 길도 아니다. 주변에 볼거리가 하나도 없고, 앉아서 쉴곳도 없는 그냥 직진만 가능한 공간이다.

 

그렇다고 운동장에 나가보면 앉아서 쉴 그늘이 없다. 휑한 운동장 뿐이다. 모든 학생들이 구기 종목을 해야 한다는 듯이 운동장에 기껏 있는 것은 축구 골대와 농구 골대뿐이다. 나무 그늘 밑에서 오손도손 이야기할 공간은 전혀 없다. 조용히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 또한 없다. 그렇게 넓은 운동장에 있어봤자 스탠드와 스탠드를 덮고 있는 등나무뿐이다.

 

화단은 있는데 학생들은 들어갈 수가 없다. 그냥 눈으로만 보는 공간이다. 복도에서 운동장에도 함께 할 장소는 없다. 그러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가? 없다. 전혀 없다.

 

학교는 한번 들어오면 특별한 허락없이는 나가지 못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교를 감옥이라고 한다. 교문은 굳게 닫혀 있고, 끝나는 종이 쳐야만 활짝 열린다. 하지만 이 교문을 아침에 통과할 때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감시의 눈이 여기저기서 번뜩이기 때문이다. 교문 양 옆에 서 있는 선도부 - 요즘은 거의 없다고 하지만 아직도 원시적인 이런 선도부를 두고 학생들을 지적하는 학교가 있다 - 학생들과 교사들... 이들은 학생이 어떤 얼굴로 오는지, 어떤 마음으로 오는지 관심이 업다. 오로지 교복을 제대로 입었는지, 염색을 하지 않았는지, 신발은 규정에 맞는 것을 신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학교라는 공간에 교복이라는 또하나의 규율이 덧씌어진다.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 행태다.

 

어느 마을에 가더라도 학교 건물은 눈에 확 띤다. 세상에 이렇게 개성이 없을 수가. 이렇게 획일적일 수가. 겉모습만 그런 게 아니라 속에 들어가보면 건물 배치도 천편일률적이다.

 

중앙현관을 중심으로 교장실, 행정실, 교무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어느 곳이나 그렇다. 또 교장실은 학교에서 가장 넓게 혼자 쓰는 공간이 된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개방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하다못해 같은 학년 학생이라도 다른 반이라면 아무 교실에나 들어갈 수 없다. 자기 반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급이다. 이렇게 너무도 폐쇄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곳이 바로 학교다.

 

이런 학교. 혁신학교니, 교육 혁신이니 말들을 많이 했지만 학교 공간에 대한 고민, 교복에 대한 고민, 교실 배치에 대한 고민, 복도에 대한 고민, 교장실에 대한 고민, 학교 화장실에 대한 고민 - 최근엔 아름다운 화장실 만들기 운동이 있긴 했지만  지속적이지 않았다. 한때 와 하고 학교 화장실에 관심을 가졌다가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관심이 또 사그라들었다- 운동장에 대한 고민, 책상과 의자에 대한 고민 등등은 없다.

 

그냥 교과 내용, 교육 활동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정작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는, 학생들이 또 교사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중요함에도 그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책은 이런 안타까움에서 씌었다고 할 수 있다. 공간을 바꾸지 않고 교육 내용만을 바꾸려고 하면 형식이 내용을 억압할 수밖에 없음을...

 

지극히 폐쇄적인 공간, 억압적인 교복, 강압적인 규율, 자치권이 없는 교실 생활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교육 내용만을 바꾸면 개방적이고 창조적이고 민주적이고 자치적인 학생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학교가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면 공간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공간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나라 학교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학교 공간이 얼마나 권위적이고 배타적인지, 비인간적인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학교는 사회 다른 공간에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보다 앞서가지는 못하더라도 비슷하게는 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과거에서 옴짝달짝 못하게 옭아매는 일이 될 것이다.

 

학교 공간이 좀더 좋아지기 위해서, 우선 학교에 색을 들여오자. 학교는 철저한 무채색이다. 색채를 조금 화려하게 칠해도 건물의 외벽만 그럴 뿐이다. 그것도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건물 내부는 철저한 무채색이다. 학생들 역시 무채색이다.

 

단조로운 색깔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면 학교 공간이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모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색채의 다양함은 우선 권위를 많이 벗어던지게 할 테니까 말이다.

 

하나하나 읽으며 생각할거리다 많다. 아주 오래 전 다닌 학교와 지금 학교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 정말 비극이다. 이 비극이 지속된다면 학교 교육이 성공할 수가 없다. 이제 교육 내용도 중요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학교 공간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여기서부터 교육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이 시작점은 누구에게나 만족감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교육관료들, 교사들, 학부모들, 학생들 모두 읽어야 할 책이다. 특히 학교에서 왕 노릇하고 있는교장부터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교장이 학교라는 공간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하니까. 그만큼 공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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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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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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