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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ㅣ 페미니스트 크리틱 1
김은실.권김현영.김신현경 외 지음, 김은실 엮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6월
평점 :
무엇이든지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좋지 않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페미니즘은 방어 논리가 더 강했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의 절반(이 말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말이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처음에 여성 권리를 주장할 때는 이 말을 사용했다. 남성과 동등한 존재인데, 그렇지 못하다는 인식에서 세상의 절반이라는 말을 썼다)이 여성임에도 남성들의 부속품 같은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시작하자,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했고, 페미니즘은 방어를 넘어 공격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과격한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남성들뿐만이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서도 페미니즘에 관한 여러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논쟁은 좋다. 자꾸 논쟁해야 한다. 그래야 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쟁점, 즉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알게 된다면 그 다음은 해결책으로 넘어가게 된다.
인간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 제기한다고 했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이라는 얘기는 이미 문제가 제기되었다면 해결책이 있다는 말이다.
하여 많은 문제들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해결되어 가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이 책은 이런 페미니즘의 발달과정에서 여전히 논쟁이 되어야 할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성폭력 이후'라는 논점으로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여전히 당당한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제기하고 있으며...
가령 여성이 성폭력을 유발했다는 식으로 몰아간다든지, 또는 피해자화라고 하여 너는 큰 고통을 겪었으니, 그에 합당한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든지, 가해자는 미래를 바라보면서 용서 담론이 형성이 되지만, 피해 여성에게는 이미 씻을 수 없는 과거 담론을 제시한다든지 하는 등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피해자화라는 말... 너는 당했으니 괴로울테니, 괴롭게 지내야 한다는 말... 이 말이 지닌 폭력은 여성을 대상으로만 치부하게 된다. 무서운 말이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입대' 문제가 있다. 평등 시대에,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 또 여자도 군대 가야한다는 여성주의 진영의 말이 있다.
그러나 군대가 무엇인가. 군대는 철저하게 남성성이 관철되는 집단 아닌가. 그곳에는 평등이 없고 위계와 명령, 그리고 폭력만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여자도 군대 가야 한다가 아니라 남자도 군대 가지 않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다양한 주제들... '성매매 여성 되기 / 10대 가출 여성 / 걸 그룹과 샤덴프로이데 / 소녀의 디지털 노동 / 저출산 담론 / 이주 여성의 이름' 이 논쟁 거리로 나와 있다.
하나같이 고민해야 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이런 논점들임에도 이 책은 한 쪽으로 논쟁을 몰아가지 않는다.
세상이 단 하나만의 답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측면에서 살펴보면서 해결책을 찾아가야 한다는 점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주제는 마지막 장에서 유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다문화라고 통칭되는 이주민들, 특히 이주 여성들이 지닌 문제.
이들을 우리는 이방인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반대로 우리에게 동화되어야 할 타자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장에서 말하고 있는 '노동자를 불렀더니 인간이 왔다' (204쪽)는 말과 '며느리를 불렀더니 여성이 왔다' (204쪽)는 말이 바로 페미니즘이 지닌 주장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 나오는 말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바로 뒤에 나오는 '인간(사람)'이라는 말. 여성이니 남성이니 또는 성소주자니를 따지기 전에 모두 사람이라는 사실. 또 동양인, 서양인 따지기 전에 인간이라는 인식이 먼저 작동되어야 한다.
이런 인식에서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사회는 다양성이 살아있는 조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그것이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사회일테고, 그런 사회를 위해서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를 우리는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