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에서 49호까지 시집을 낸 다음 50호는 그 동안을 기념하여 시인들이 각자 자신의 한 편씩을 뽑고 그에 대해 쓴 글을 모아놓은 자선 시집이다.

 

 49편의 시를 읽는 재미도 있고, 시인들이 시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엿볼 수 있어서도 좋다.

 

  시에 대한 시인들의 처절한 마음. 어쩌면 시는 시인 내부에도 존재하지만 시인 바깥에도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조각가가 바위에서 어떤 형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끄집어내듯이 시인 역시 자신의 마음 속에 숨어 있던 시를 자신 바깥에서 발견하고는 언어로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는 시인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런 시를 발견하기 위해 시인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는가.

 

가령 김병호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시에는 못 한, 못 할 말들이 화강암을 이루는 얼룩으로 박혀 있었다. (96쪽)

 

단단한 화강암에서 시를 찾아서 언어로 표현해내는 일.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남다른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장대송 시인은 '시를 쓴다는 일이 자기 살을 물어뜯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저 난감한 일' (129쪽)이라고 했다.

 

또한 박연준 시인은 이 시집의 제목이 된 말을 하고 있다.

 

쓴다는 것은 '영원한 귓속말'이다. 없는 귀에 대고 귀가 뭉그러질 때까지 손목의 리듬으로 속삭이는 일이다. 완성은 없다. 가장 마음에 드는 높이까지 시와 함께 오르다, 아래로 떨어뜨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144쪽)

 

이렇게 시에 대한 다양한 말, 시인들이 시를 대하는 자세를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이런 점보다 우선 다양한 시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지만.

 

첫시집 최승호 시인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49호는 박태일 시인이다. 이렇게 49명의 시인들이 각자 자신의 시를 뽑아 우리를 시세계로 안내해 준다.

 

최승호 시인의 시를 보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

 

  아직 태어나지 않은 책은 물렁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반죽덩어리, 그 물렁물렁한 책을 베개 삼아 나는 또 시상(詩想)에 잠긴다.

 

문학동네 시인선 050 기념 자선 시집, 영원한 귓속말, 문학동네. 2014년 초판. 14쪽.

 

시는 시인이 언어로 표현한 순간 태어났다고 할 수 없다. 시가 태어나는 순간은 독자를 만나 독자의 마음 속에 들어박힐 때이다. 그렇게 독자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시가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는 태어나기 전에는 물렁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반죽덩어리'다. 시인에 의해, 독자에 의해 무언가로 태어나게 된다. 그렇게 태어난 시는 우리에게 영원한 귓속말을 속삭이게 된다.

 

그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귀, 속삭임을 마음에 담아 둘 수 있는 마음. 그런 것이 필요할 때다. 이 시집에서 속삭이는 49편의 울림, 즐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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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5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5 1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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