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슬픔이 묻어 나온다.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이라니. 꽃이 피기도 전에 이미 왔다 스러져 간 사람들. 우리 역사에서 이런 슬픔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렇게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지녀야 하는데...

 

  이종형 시집을 읽다. 처음부터 4.3이다. 제주도. 관광의 섬으로 다가오지 않고 비극의 섬으로 다가온다. 처연하다.

 

  이 아름다운 자연에서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살육이 있었다니, 아니 이 살육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4.3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주도에 간 적이 있다. 최근에.. 강정 부근을 지나면서 차마 들르지 못했다.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할 제주가 여전히 전쟁의 섬으로 남아 있는 듯한 느낌에 발길을 그곳으로 향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참에 이종형의 시집을 읽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다. 다시 4.3을 떠올리고, 강정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읽어야 한다.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그렇게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지금 우리가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첫 시 산전(山田)을 읽으며 다시 강정을 떠올린다. 이렇게 강정이 산전이 되게 하지 않아야 하는데... 하면서.

 

山田

 

깨진 솥 하나 있었네

누군가는 버렸다고 하고, 누군가는

떠나며 남겨두었다고 하네

 

어느 겨울

솥을 가득 채운 눈雪을 보았네, 문득

갓 지은 보리밥이 수북한 외할머니 부엌의 저녁이 떠올랐네

山田의 깨진 솥은, 그해

뜨거운 김을 몇 번 내뿜었을까

달그락거리며 솥바닥을 긁던 숟가락은 몇이었을까

 

겨울이 수십 번 다녀가고

수천 번 눈이 내리고, 얼고, 녹아 흘렀어도

그날의 허기가 가시지 않았네

 

아직 식지 않았네

 

* 山田: 제주 4.3항쟁 당시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가 지휘하던 무장대 최후의 은거지. 이덕구 산전이라고도 한다.

 

이종형,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삶창. 2018년 초판 2쇄. 12쪽.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던 사람들이 꽃보다 먼저 다녀간 세월. 그런 아픔을 딛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된 것.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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