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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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그 절망에서 건져줄 수 있는 것은?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아주 작은 것,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절망의 나락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해진 소설집 "빛의 호위"를 읽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빅터 프랭클이 말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 그러면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것.

 

나치 박해를 피해 숨어 있는 유대인 여성에게 삶을 지탱하도록 해 준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동료 작곡가가 건네준 악보였다. 그 악보를 속으로 연주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뎠고, 살아낼 힘을 얻게 되었다.

 

부모가 없는 골방에 갇혀 있던 아이에게 삶으로 나아가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반장이 건네준 카메라였다. 사진을 찍으면서 빛을 발견하고 점점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게 된다. 사진을 찍을 때 빛이 모여드는 것을 경험하는 인물.

 

그렇다. 삶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는 것이 거창한 무엇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삶으로 인도할 수 있다.

 

'빛의 호위'라는 소설,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 없지만, 세상이 여전히 어둠에 쌓여 있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빛을 모으고, 빛을 잃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빛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인데... 다른 소설들은 사회, 역사적 사건들이 사람들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살아가면서 사회에서 벗어날 수도, 역사의 흐름을 거부할 수도 없는데, 그런 거대한 역사나 사회문제를 다루기보다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짧은 소설로 다루고 있다.

 

재일교포간첩단 사건이라든지, 동백림 사건 등을 소재로 다룬 소설(사물과의 작별, 동쪽 伯의 숲)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굴절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록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들어와 그 사람 평생을 따라다니게 되는 그런 상흔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건이 아니더라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배경으로, 그런 일들이 사람의 삶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는지를 섬세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입양아 문제, 인종차별 문제, 인문학의 쇠퇴 문제 등등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들이 지금 우리 삶에 들어와 우리들을 힘들게 하고 있기도 하다.

 

소설이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면, 조해진의 이 소설집은 여러 사건들이 한 사람의 삶으로 어떻게 들어왔고, 그 사람의 삶을 어떤 식으로 끌고 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들 역시 사회문제,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사회, 역사 등이 내 삶에 들어오고 있음을, 그것들로 인해 내 삶의 궤적들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결국 삶이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거기서 빛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 그 빛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일, 내가 줄 수 있는 조그마한 물건이라도 삶의 빛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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