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임 없이 노동해야만 하는 노동자.

  그들을 시시포스라 할 수 있으리라.

  아주 잠깐 쉬고는 다시 일터로 가야만 하는 노동자.

  휴일은 노동을 위한 잠깐 쉼.

  그러한 휴일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대양을 향하여 뜨거운 모래밭을 지나야 하는 노동자.

  타는 듯한 모래밭을 느릿느릿 걸어가야만 하는 노동자는

  오로지 바다에 도달하기 위해 가지만

  바다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위험이 있는지.

  평생을 노동하다 결국 바다에 닿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땅의 시시포스들, 그런 노동자들.

 

  문동만 시집을 읽다.

이 시집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시를 읽고 마음이 짠해지다.

그래. 대다수 노동자들은 거북이일지도 몰라.

노동자들은 시시포스일지도 몰라. 죽지도 못하고 바위를 끊임없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지만, 노동자들은 죽어서야 그 노동을 멈추게 되지.

 

시 '거북이'를 보자.

   

거북이

 

아이는 수험장, 나는 휴게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늙수그레한 청소부가 쓰레기통을 뒤진다

 

저이가 아이가 말한 쉬지 못하는 시시포스리라

나는 잠깐 쉬는 시시포스로군

좀 팔자 좋은 거북이거나,

고독하게 쓰레기를, 쓰레기나, 치우는

똑똑한 인간들이 쓰는 거북이

깡통을 엎자 잔류물이 목장갑을 적시는데

그 손등으로 콧등을 닦는 거북이

 

지식과 고상이 버린 퀴퀴한 쓰레기를 등에 지고

끙, 하고 일어서는 거북이

어지간한 모멸로는 깨지지 않는 등짝과

뒤집어지면 돌아가지 못하는 뱃가죽을

앞뒤로 지고

 

가장 느린 발로 기어가야 할

타는 모래밭으로

가는

거북이

 

문동만, 구르는 잠, 반걸음, 2018년. 100-101쪽.

 

'지식과 고상이 버린' 것들을 치워야만 하는 노동자. 그렇게 세상을 지탱해 가는 것은 노동자들의 땀이 있기 때문인데, 이를 '모멸'하는 고상한 인간들.

 

그래서 거북이 등은 그렇게도 딱딱한 것인지도 모른다. 걷는 동안 '어지간한' 것들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너무도 부드럽다. 약하다. 그들은 한번 뒤집어지면 치명상을 입는다. '뒤집어지면 돌아가지 못하는 뱃가죽'이란 표현처럼.

 

목표를 향해 꾸준히 가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가장 느린 발로 기어가'는 삶일 수밖에 없다. 한발 한발 천천히, 그들은 간다. 가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노동자들로 인해 세상은 유지된다. 세상이 굴러간다. 결국 모모에게 시간을 되돌려주는 길을 가르쳐 준 것도 거북이이듯이.

 

가끔은 나 자신이 노동자임을 잊을 때가 있다. 겨우 '잠깐 쉬는 시시포스'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겠다. 나 역시 거북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남에게 보여주는 등껍질은 딱딱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은 너무도 연약할 뿐이라는 것을. 내가 갈 길을 천천히 꾸준히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시집이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 읽었다. 그리고 시집에 있는 좋은 시들, 가슴으로 파고드는 시들... 잘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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