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이라는 말,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이 쓰는 '워커홀릭(workaholic)'이라는 말, 그 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오죽하면 '일중독 벗어나기'라는 책을 강수돌 교수가 썼겠는가. 그래도 요즘은 러셀이 쓴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나 라파르그가 쓴 '게으를 수 있는 권리' 등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하나둘 나오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겠다.
주 6시간 노동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그러나 대다수 노동자들은 6시간 일하고는 밥 먹고 살기 힘들다. 가족을 부양하기 힘들다. 자식 교육시키기 힘들다.
왜 노동자들이 휴일에도 근무하고 시간외 근무를 하겠는가. 지금 8시간 노동을 하면 생활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각종 수당들을 최저임금에 포함시켜 결국 최저임금이 오히려 더 내려가는 사태를 유발한 정치권이 건재한 상태가 아니던가.
그러니 노동을 적게 하고 여가 시간을 더 많이 가지라고 해도 그것은 공허한 말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여가 시간을 가질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여가 시간을 즐기겠는가.
충분한 여가 생활을 누구나 꿈꾸지만 노동자들에게는,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니 제도를 바꾸어야 하는데, 서로 상생하는 사회는 사회적 약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사회다.
안도현이 쓴 시집 "바닷가 우체국"을 읽다가 '모정 아래'라는 시를 읽고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정(茅亭) 아래
한 떼의 잠든 일꾼들
모두 와불(臥佛) 같다
미륵님들은
왜 누워 계시나?
쌔빠지게 일하는 사람들,
쉴 줄도 놀 줄도 모르는 사람들,
좀 쉬라고,
휴식이란 이렇게 하는 거라고,
몸소 모범을 보이며 누워 계신 게야
안도현, 바닷가 우체국, 문학동네. 1999년 1판 3쇄. 38쪽.
절에 가면 수많은 부처상들을 만나게 되는데, 근엄하게 앉아 있는 부처상들을 보면 몸이 저절로 굳어진다. 무언가 경건한 마음, 경건한 자세를 지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누워 있는 부처상을 만나면 편안해진다. 마음도 몸도 느슨해진다. 그렇게 마음을 놓아두게 된다. 마음이 저절로 휴식을 취하게 된다.
부처가 누워 있는 모습은 그렇게 우리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그래야 한다. 쉼 없는 노동은 사람을 기계로 만들 뿐이다. 사람은 쉼이 있어야 한다. 이런 쉼을 보장해줘야 한다.
여전히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세계 최장 학습 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학생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나 학생들은 와불이 아니라 복불(伏佛)들이라고 해야 한다. 이들은 쉬는 시간에 또는 힘든 노동에 겨워 겨우 누워 있지도 못하고 엎드려 있는 수많은 부처님들이니...
자, 이제는 이런 복불(伏佛)이 아니라 와불(臥佛)이 될 수 있도록, 누워 있는 부처가 이미 모범을 보였으므로, 예수 역시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같은 대우를 했음으로, 그런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쉼 있는 사회,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노동 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저녁이 있는, 휴일이 있는, 그런 사회...
안도현이 쓴 시를 읽으며 그런 사회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