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재활용 대란이 일어났었다. 재활용 수거업체에서 비닐을 수거해 가지 않겠다고 한 것.

 

비닐을 수거해 가지 않으니 수많은 비닐들이 그냥 쓰레기가 되고 마는 현실에 직면했는데...

 

부랴부랴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고, 지금은 사태가 봉합된 상태.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수많은 쓰레기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한때 지녔던 쓸모를 잃고 쓰레기가 되었는지, 그들이 갈 곳이 없어 땅 속으로 들어가 땅을 계속 불룩하게 만들고 있는지.

 

불룩 튀어나온 배을 꺼뜨리기 위해 관을 집어넣어 가스를 빼내어 그 가스로 다른 쓸모를 만들어내는데...

 

이 쓸모가 얼마나 갈까? 가스를 아무리 빼어내도 땅은 더욱 불룩해지고, 쓰레기는 계속 나오고, 삶이 다한 물건들이 다른 삶의 바탕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삶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요즘 현실이 아닌지.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2001년'을 읽다가 김기택의 수상시를 읽고 머리가 쭈볏했다. 지금부터 17년 전에 쓰인 시지만 결국 우리가 겪어야 할 일을 미리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룩한 자루

 

겨울 아침.

집 앞 쓰레기통 옆에

낯선 자루 하나,

배가 불룩하다.

 

-치웠어?

-응, 자루에 넣어서 버렸어.

-잘했어. 글쎄, 요즘 통 밥을 안 먹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거야. 이상해서 만져 보니까 차갑고 딱딱하더라구.

 

국밥은 얼어 있다.

늘 비어 있던

너무나 열심히 핥아 바닥이 반질반질하던

찌그러지고 가장자리에 때가 새까맣던 개밥그릇.

오늘은 밥으로 불룩하다.

 

산 같은 쓰레기 매립장.

그 속은 뜨겁다고 한다.

그 속에 관을 박아 뽑아올린 가스로

불도 때고 라면도 끓여 먹는다고 한다.

 

2001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01년. 김기택, 불룩한 자루 전문. 13쪽.

 

삶이 끝나는 곳에서 다른 삶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삶이 끝나자마자 불룩하게 자루를 채우고, 다시 땅을 채우고, 그 속에서 썩어가는 그런 상태.

 

차갑게 식은 물건이 너무도 뜨겁게 열을 내는 현실. 그렇다, 부글부글, 그렇게 땅 속에서 부풀어 오른 생명을 다한 물건들이 우리 삶도 힘들게 한다.

 

시인은 '불도 때고 라면도 끓여 먹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일부분일 뿐. 자루를 채우면 자루에 더이상 채우지 못할 때가 있다.

 

불룩한 자루에 더 넣지 못할 때, 다른 자루를 가지고 올 수밖에 없다. 땅도 마찬가지다. 차갑게 식은 물건들이 땅 속에서 뜨겁게 변해가고, 땅을 더욱 불룩하게 만드는데, 더이상 불룩해질 수 없을 때, 그 때 우리는 또다른 땅을 찾아 간다. 다른 자루를 찾듯이.

 

이렇게 땅은 자꾸만 불룩해지고, 땅 속은 자꾸만 더 뜨거워지고,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더욱 차가워진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할까? 삶의 형태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삶을 바꾸지 않으면 땅을 바꿀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지구를 불룩한 자루로 만들지 않을까.

 

재활용 대란, 끝나지 않았다. 우리 삶이 바뀌지 않는 한. 그러므로 더이상 지구를 불룩한 자루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삶을 돌아보고,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이것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우리 삶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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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1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1 1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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