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낸 시집에서 시를 사십 편을 골라 낸다? 어려운 일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40편을 고르면서 자기 시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리라.
40이면 불혹이니, 40편을 골라낼 수 있는 시인은 많은 시들을 쓴 시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런 시인이 직접 고른 40편은 어느 시를 읽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배창환 시인도 마찬가지다. 시인이자 국어교사였던 그는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도 당했다. 이 시집에는 그러한 아픔이 절절이 묻어나고 있는데.
이젠 그런 아픔은 과거가 되어야 하는데, 다시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되어 있으니, 배창환 시인이 걸어온 삶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를 거꾸로 엮었다. 최근 시집에 실렸던 시들이 1부에, 먼저 발간된 시집에서 고른 시들은 뒤에 실렸다.
그래서 이 시집은 거꾸로 읽으면 시인이 지내온 삶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이 시집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차지하던 시집에서 점점 나이든 사람들, 세상 일들이 시로 나오고 있다. 그 중에 한 시. 이런 시인의 삶을 정리한 시. 시인의 비명.
시인의 비명(碑銘)
언제나 사랑에 굶부렸으되
목마름 끝내 채우지 못하였네
평생 막걸리를 좋아했고
촌놈을 자랑으로 살아온 사람,
아이들을 스승처럼 섬겼으며
흙을 시의 벗으로 삼았네
사람들아, 행여 그가 여길 뜨려거든
그 이름 마땅히 허공이 묻지 말고
그가 즐겨 다니던 길 위에 세우라
하여 동행할 벗이 없더라도
맛있는 막걸리나 훌훌 마시며
이 땅 어디어디 실컷 떠돌게 하라
배창환, 서문시장 돼지고기 선술집, 작은숲. 2012년. 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