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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점빵’이라는 단어를 아시는지? 어렸을 적에 아빠가 점빵에 가서 뭘 좀 사 오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기억하는 걸 보면 아마 자주 들었던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구멍가게 관련된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이 나서 초록창에 찾아보니 이런 의미를 말해준다. ‘전방(廛房).(명사)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가게.(같은 말), 전포(廛舖).(비슷한 말), 점방(店房, 가게로 쓰는 방)’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마 ‘점방’을 센 발음으로 하다가 ‘점빵’이라고 불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 실제로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가게가 일터였고 집이었다.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살림하곤 했다. 먹고 자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숙제도 하면서. 취미 삼아 하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지는 공간이었을 테다. 책을 읽다가 새삼 알게 된 사실은 구멍가게를 운영한 대부분이 여성이었다니, 농사가 생업이던 시절에 부족한 수입을 채우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르겠고, 농사를 지을 수 없던 형편에 구멍가게라도 해야만 했을 테고, 어쩌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시도해볼 만한 생계수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경 작가의 책을 보면서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하곤 했다. 어느 시골길에서 마주칠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 구멍가게는 버스정류장이 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작은 포장마차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해소해주면서 군것질 천국이었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나의 성장기에도 다르지 않을 그곳이 있었다.
집에서 나오면 바로 골목이 있고, 그 골목은 조금 걸어가면 차가 다니는 큰길, 그 큰길 모퉁이 자리했던 00상회. 뛰어가면 5초도 걸리지 않을 그곳에 드나드는 게 즐거움이었다. 과자, 아이스바(그땐 하드라고 불렀지), 음료수, 각종 반찬거리. 요즘의 마트와 편의점의 기원이라고 해도 되겠다. 아이스바 하나에 50원을 내고 사 먹은 기억도 있다(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 나이가 참... ㅠㅠ). 지금이야 먹을거리가 다양해졌고, 그 다양한 먹거리를 접할 기회도 많지만, 어디 그 시절이야 그랬을까. 그냥 슈퍼마켓 운영하는 친구의 집이 부러웠고, 부모가 삼거리에서 짜장면집 하는 자식들이 부러웠다. 막연하게 생각했지. ‘아, 쟤네들은 매일매일 가게에 있는,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가난이 만든 바람이 아니었을까.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든 환상 같은 거 말이다. 지나고 보면 ‘그땐 그랬지’ 하는 라떼를 마시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생각할수록 가끔은 그리운 시절이다. 가난의 기억만 뺀다면 다시 돌아가도 좋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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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20~23페이지>
이 책 세 권을 함께 읽으면서 처음 구멍가게를 바라보던 환상은 점점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경 작가의 책이 구멍가게의 추억과 즐거움을 소환하는 거였다면, 박혜진 심우장 작가의 『구멍가게 이야기』는 조금은 서늘한 현재의 풍경이 같이 담겼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의 속내와 사연들. 그들의 이야기 속 세월의 흔적으로 우리 현대사의 한 흐름을 본다. 어떤 물건은 저절로 기억하면서 오랜 역사를 이어왔고, 우리가 쓰는 말의 어원을 뜻밖의 곳에서 찾기도 했다. 많은 이가 먹고 살기 위해 구멍가게를 운영했고, 그마저도 운영이 쉬웠던 건 아니다. 이제는 변해가는 세상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 변화의 속도는 또 얼마나 빠른지. 구멍가게는 동네 슈퍼마켓으로 변하기도 하면서, 이제는 대형 마트나 편의점으로 그 모습을 바꿨다. 요즘에 가끔 지나가다 보면, 시골 마을 안쪽 구석에도 편의점이 있더라. 얼마나 놀랐던지. 어느새 구멍가게는 몇십 년의 세월을 건너와 편의점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구멍가게였던 때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로 말이다. 내가 아무리 변하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꿋꿋하게 그 변화는 계속되면서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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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이야기 3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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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156~157페이지>
이상하게도 이 책들에 삽입된 사진과 그림을 보면서 뭔가 공통점을 느끼지 않았나? 바로 보이는 어떤 것들이 있더라. 구멍가게 옆의 우체통과 공중전화, 가게 문 앞이나 가게 앞 커다란 나무 그늘에 놓인 평상, 대부분 동네 어귀에 자리하면서 버스정류장의 역할을 했던 곳. 나에게도 즐거운 기억은 아니지만, 외상의 경험까지. 10대의 조카들에게 물으면 그게 뭐냐고 반문할만한 것들이 작가가 전하는 세월 속에 있었다. 지금 공중전화나 우체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말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사용할 수 있게 어느 거리 어느 자리쯤에 있는 공중전화. 이제는 우체국 앞에나 있는 빨간 우체통. 동네 슈퍼나 구멍가게가 사라져가고 있으니 그 앞에 자리했던 장판 깔린 평상을 더는 볼 수 없다. 편의점의 파라솔이 예쁘게 자리하고 있지. 분명 우리 생활은 편해졌고 불필요한 시간 단축하며 살아갈 방법은 많아졌지만, 세월 속에 자리한 어떤 느낌은 사라져갔다. 계속 사라질 것이다. 조급한 일상에 쉬어가는 느낌으로, 때로는 ‘아날로그’나 ‘레트로’를 찾곤 하겠지만, 그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겠지.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갈 사람들이기에, 지나간 그 시간에 많은 부분 할애하며 살아가기에는 그 불안과 조급증은 심해질지도 모르니까.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에 같은 시대를 읽게 하는 책들이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로 위기를 느끼기도 하고, 추억하는 것들로 그리움을 쌓기도 한다. 이미경 작가의 글이 자라던 시절의 모습을 그리고 추억을 새기고 싶은 동화를 생각한다면, 박혜진 심우장 작가의 글은 쇠락해가는 골목의 현실과 생존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두 이야기 모두 사람 사는 냄새를 맡게 한다.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된다. 작가들이 직접 그곳에 가서 보고 들은 것들은, 그리고 쓰고 찍어낸 것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살아가는 이야기,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공간의 깊이를 더한다. 거기에 우리의 시간이 더해져 추억이라는 것을 불러내기에 이르곤 하지. 그 추억이 꼭 좋은 것만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립고 애틋하고 그렇더라. 나이 먹어가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암튼, 읽다 보면 기분 묘해진다.
숨어있는 듯이 시골 마을의 구석에 자리한 구멍가게들은,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남겼다. 작가들 역시 하루 이틀이 아닌 오랜 세월 찾아다녔던 구멍가게들을 소개하면서 감성에만 푹 빠져들지 않게 삶의 치열함을 불러온다. 심심풀이가 아닌, 시골에 살면서도 농사를 생업으로 할 수 없는 이들이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수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상을 주고도 돈을 못 받거나,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는 이들도 상대해야 하는 극한 직업. 그러니 구멍가게는 추억이나 감성에만 젖어있을 수 없는 모습도 갖고 있던 것이다. 약국이나 식당에서 팔던 담배가 이제는 구멍가게에서 살 수 있게 되고, 라면을 팔면서 가게 수입도 올렸지만 라면의 전성기를 함께 이뤄냈다고. 가게의 지붕 모양을 보고 건축의 변화도 가늠한다니. 구멍가게가 단순한 가게 이상의 존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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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떤 구멍가게의 날들 164~165페이지>
건축은 시대를 반영한다. 내가 말하는 건축은 그 시대에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집과 공간이다. 과거의 터전이 낡고 오래되었다고 스스로의 터를 죄의식 없이 갈아엎고 부순다면 진짜 사라지는 것은 우리의 과거요, 추억이요, 고향이요, 자아일 수 있다. 반세기동안 근대화와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낡고 오래된 옛것을 우리의 삶에서 지우고 감추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따뜻하고 배부른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도 많다.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복원과 보존으로 우리 삶의 근본과 맥락을 찾아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164페이지)
무슨 박물관에 전시된 역사의 한 장면처럼, 구멍가게도 그 역사를 가진 존재가 되었다. 찌그러진 막걸릿잔에 이야기가 배었고, 출입문 문턱이 닳은 만큼 사람들의 시간이 녹았다. 동네 택배 업체가 되고, 돈이 오고 가는 거래소가 되고, 어른들의 놀이 공간도 되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다. 시골 마을의 구심점이 되어 그 역할이 다양했다고 하니, 그런 공간이 점점 사라져서 거의 볼 수 없게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다양해지는 삶만큼 각자의 인생이 우선이 되는, 타인과의 교류 시간을 갖는 것보다 나를 위한 시간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굳이 한 공간에 모이지 않아도 가능한 교류의 방식이 얼마나 다양해졌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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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이야기 252페이지>
실제로 마을을 답사하며 담아낸 이야기에 구멍가게 고유의 역할을 듣는다. 구멍가게가 구판장, 00상회, 슈퍼마켓, 마트, 편의점이 되어가는 흐름도 읽는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존의 방식을 이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마을의 중심이 되어 머물 거로 여겼던 구멍가게는, 어느 날 다시 찾아가니 사라져버린 곳도 많았다고 한다. 굳이 작가의 말이 아니어도 그 사라짐의 순간은 우리가 자주 본다. 내가 자란 곳에서만 해도, 집 앞의 슈퍼마켓은 사라져 빈 가게가 되었다. 정육점은 폐점했고, 노인이 운영하던 약국도 사라졌다. 이 약국은 의료분업이 되면서 동네 어르신들의 경로당 역할을 했었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다른 이가 다른 가게를 운영한다. 생각해보니 거의 다 사라져가는 것들뿐이네. 아쉽고 그립다. 필요한 게 있으면 아무 때나 가면 되는 편의점도 가까이 있고, 대형 마트에서 카트 한가득 장을 보고 오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그 자리에 머물기 바라는 것들이 사라질 때면 그 빈자리가 가슴에 생긴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건, 남아 있기를 그렇게 바라면서 정작 그 장소를 이용할 생각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꾸 깨끗하고 편한 것만 찾아다니곤 했지. 하아...
구멍가게의 과거와 현재는 이제 어떤 미래로 흘러갈지 궁금하다. 그 미래의 시간에 우리는 또 어떤 기억을 소환하며 오늘을 추억하게 될까. 어떤 모습을 마주하더라도 미래에 기억할 오늘의 시간이 씁쓸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되는 삶에서 고단한 시간에 위로가 되는 기억으로 남아주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 우리 옆에 있는 것들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이것들이 나중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소소하지만 의미 있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아름답게 빛바래져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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