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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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뭘 좀 배워보려고 다니던 평생교육원의 수업에서 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떤 일도 쉽지는 않겠지만, 하다 보면 이 일이 재미있기도 할 거다. 일은 그렇게 배우고 적응하면서 할 수 있지만, 사람 때문에 힘든 건 자기가 가르쳐 줄 수 없으니 그것도 현명하게 잘 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이라는 그 유명한 말을 그 강사에게서 또 듣게 되는 그 순간,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수강생은 없었다. 다른 수강생들도 이미 사회생활 오래 해 오던 사람들이었고, 나 역시 그 수업을 받기 이틀 전까지 일하다가 간 거였는데, 어떤 또라이 때문에 나를 포함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또 무섭기도 하다.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또라이였던 적은 없었을까?


누가 가장 싫습니까?


공용 얼음 틀에 콜라 얼음, 커피 얼음 얼려놓는 사람.

20여 개의 텀블러 보유, 공용 싱크대에 안 씻은 텀블러를 늘어놓는 자칭 환경 운동가.

정수기 옆에 사용한 종이컵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 사람.

인기 많은 커피믹스를 잔뜩 집어다 자기 자리에 모아두는 사람.

공용 전자레인지의 코드를 뽑고 무선 헤드셋을 충전하는 사람.

탕비실에서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사람.

공용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몇 개씩 꽉꽉 넣어두고 집에 가져가지 않는 사람.

공용 싱크대에서 아침마다 벼락같은 소리를 내면서 가글하는 사람.


이들과 함께 탕비실을 쓴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누가 가장 싫습니까?” (7~8페이지)


첫 페이지 첫 줄에서부터 갑자기 등장하는 질문에 당황했다. 누가 가장 싫으냐고 묻는 걸 보니, 다 싫은 데 그중에 누가 더 싫은지 골라보라는 질문이 유쾌할 리 없다. 그런데도 질문에 집중하면서 굳이 한 사람을 찾아내려고 내 눈이 바빴다. 글쎄, 듣고 보면 누구 하나 싫어하지 않을 수 없게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어디에서나 해도 되는 행동이 아니었다. 공용 공간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걸까?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마치 무시하듯 탕비실을 개인 공간처럼, 타인과 공유하는 곳이 아니라는 듯 뻔뻔하게 행동하는 이들의 특성을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아직도 이들 중 가장 싫은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다. 한 사람만 고를 수 없게,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이 인물들이 이 소설 속에 다 있다.


합숙 리얼리티 쇼 탕비실에 섭외된 인물들의 특징이다. 이 리얼리티 쇼에 섭외된 이들은, 함께 탕비실을 쓰기 싫은 사람으로,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뽑은(?) 탕비실 빌런들이었다. TV 쇼에 섭외된 것을 즐거워해야 하는데, 섭외된 배경이 이러하니 난감할 뿐이다. 매일 얼굴 보고 마주한 이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한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배신감에 치가 떨린다. 평소에 동료들에게 베풀고 싶었던 친절과 배려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불편했다는 걸 이렇게 확인하게 된다. 쇼의 출연자들은 실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얼음은 동료들의 인터뷰에 화가 났다. 그가 탕비실 냉장고의 얼음 틀에 콜라, 커피를 얼려놓은 이유는 동료들에게 베푼 호의였다. 그런데 그 호의가 오싹한 소름으로 전달되었다는 걸 알고 나니, 회사로 돌아가 동료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 감정도 잠시, 그들이 왜 자기를 탕비실의 빌런으로 뽑았는지 확인하려면 이 쇼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이유를 알아내야 했다. 이제부터는 쇼의 출연자들과 싸우는 전쟁이었다.


굳이 탕비실이라는 공간이 아니어도, 이와 비슷하게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에서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갈등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호불호가 나뉘기 마련이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뒤돌아서면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다른 곳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야지. 그렇다고 이런 판단이 옳기만 한 걸까. 회사에서 보내는 많은 시간 중에 탕비실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공용 공간이면서 사적인 공간도 될 수 있기에, 숨 막히는 업무 중에 잠시 쉬어가는 곳이 될 것 같은데, 이곳에서 불과 몇 분씩 마주치는 사람과 어느 정도로 소통할 수 있을까. 그저 잠깐이다. 냉장고에 케이크를 몇 개씩 넣어두니 내가 보관해 두고 싶은 음식 하나 넣을 공간이 없어서 미워지고, 맑은 얼음이 필요한데 왜 굳이 콜라나 커피를 얼려놓아서 남는 얼음 틀이 없게 하는 건지, 다른 사람도 있는데 혼잣말인 듯 아닌 듯 왜 자꾸 중얼거리면서 거슬리게 하는지, 다 같이 먹으라고 놓아둔 것을 왜 자기 몫인 것처럼 잔뜩 집어 가고 있는지 모를 사람들. 이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불만을 품지만, 정작 우리는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아갈 만큼 가깝지도 않고 시간이 여유롭지도 않다. 그래서 타인이 불편해할 행동을 하는 나를 이해시키며 살아가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전쟁 같은 이 쇼에서 이기고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은, 게임의 규칙을 어기며 힌트를 얻는다. 힌트라고 하는 건, 출연자의 동료들이 등장하는 인터뷰였는데, 말이 인터뷰지 뒷담화에 가깝다. 거기에서 주인공 얼음은 충격을 받는다. 내가 배려하고 호의를 베풀려던 행동이, 상대에게는 불편하고 소름 돋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동료들에게 그의 행동은 호의가 아니라 섬뜩한 공포가 될 수도 있었다. 그걸 왜 몰랐을까. 서로 그 상황과 문제에 관해 얘기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니 주인공은 주인공대로 계속 해 왔던 호의를 베풀고, 동료들은 주인공의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굳이 말을 꺼내지 않으면서 자기들끼리 불쾌함을 토로하는 정도로 관계를 이어갔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주인공이나 동료들이나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게, 서로 얼굴 붉히면서 해야 하는 얘기를 쉽게 꺼낼 수 있었을까? 내 취향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모르게 이미 불쾌한 감정이 생겼는데, 좋은 말로 이유를 물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탕비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달할 수는 있었을 것도 같다. 그냥 얼음을 얼릴 수 있게 얼음 틀을 남겨두세요. 다른 사람도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니 케이크를 계속 쌓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이 마실 커피믹스를 남겨주세요. 등등.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두었다면, 이 공용 공간에서 누군가가 느끼는 불편함을 알게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그렇게까지 했는데 씨알도 안 먹히는 인간이라면 그냥 탕비실의 빌런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겠지만.


일반 회사에서 탕비실의 빌런이라고 찍힌 사람들이 출연자였지만, 그 출연자 안에는 탕비실의 빌런이 아닌 인물이 숨어 있다. 이 쇼에서는 그 술래를 찾아야, 우승하고 상금을 획득할 수 있다. 술래가 누굴까 하면서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이 게임의 술래를 추적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힌트로 얻게 되는 각 출연자의 뒷담화는 의외이기도 했고 씁쓸하기도 했다.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짜 서로를 모를 수도 있다는 게, 서로를 알아가겠다는 의지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시간에 쫓겨 굳이 타인의 마음까지 다 알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건 아니었는지 고민이 되더라. ‘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더 알아보려고 한 적이 없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굳이 싫어하는 사람까지 더 알아가면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싫어하는 사람을 더 알아가야 할 필요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알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싫어하게 되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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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7-12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후 생각만 해도 홧병이........

저는 그거 있어요.
제자리에서 양치질 하면서 화장실 가는 사람을 정말 싫어합니다.
양치를 아에 안하는 사람보다 더 싫어요.....

stella.K 2024-07-12 17:48   좋아요 1 | URL
거 예전에 무슨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한 자리에서 두 가지 일을 해결하니 능률적...? ㅋㅋ

그런데 물감님은 그런 사람을 어찌 아시나요? 화장실 사용은 1인1체제인데...
너무 짖궂나요? 제가 궁금한 건 못 참아서리...ㅠㅋ

물감 2024-07-12 16:48   좋아요 1 | URL
그런 사람이 누굴 말하시는 거에요? 양치 안하는 사람?

stella.K 2024-07-12 16:55   좋아요 1 | URL
헉, 제자리에서 양치질 하면서 화장실 가는 사람이라고 쓰셔서
그 두 가지일을...? 그랬던 건데 뭔가 혼선이 있나 봅니다.

stella.K 2024-07-12 17:33   좋아요 1 | URL
아, 그러니까 자기 책상에서 양치질하다 화장실 가서
나머지 일처리를 하는..! 이제 이해했네요.
미안합니다. 제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봅니다.
화장실 간다는 표현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서 오버했네요.
저는 아직 그런 사람은 못 봐서요. 싱크대 개수대에서 양치질하는 사람은 봤지만.
둘 다 혐오스럽긴 하죠.

이거 남의 서재에서 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유, 민망해라. 어쩐담...ㅠ

물감 2024-07-12 17:40   좋아요 2 | URL
정확히는 양치질을 하면서 복도를 누비는 걸 말해요. 화장실 붐벼서 시간 아낀다고 그러는 거 같은데 참 보기 그렇습니다... 저는 자주 봤거등요 😅

구단씨 2024-07-12 19:14   좋아요 2 | URL
물감님. 그런 사람, 저인 것 같아요. ㅠㅠ
제가 밖에서는 안 그러는데, 집에서는 양치하면서 온 집안을 활보하고 다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옆지기가 아무 말도 안 해서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진짜 별로였을 것 같아요. 반성하고 있어요...
오늘부터는 꼬옥~ 양치는 화장실 안에서 다 하고 나오는 걸로 할게요. ^^

stella.K 2024-07-12 19:51   좋아요 1 | URL
헉, 오늘 제가 여러가지로 실수를 저지르는가 봅니다.
이번엔 구단님께 걸리네요. 제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사람 저마다 사정이 있고 습관이라는게 있는데. ㅠ 미안합니다. 제 말 신경 쓰지 마세요. 잊어주시면 더 고맙고요. 😢 좋은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24-07-12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긴 하죠. 뒤통수가 가려운 적. 혹시 내가하는...?
그런 적이 있을까 봐 참긴하는데 제가 또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라 어느 날 폭발하기도 하죠.
그래서 꼰대란 소리 듣기도 하고.
빌런이 따로 있는 건 아닐 것 같은데...
암튼 이 소설 흥미롭네요. 나중에 함 봐야겠어요.^^

구단씨 2024-07-12 19:15   좋아요 2 | URL
이 책 소개 페이지에서 빌런이라고 표현했기에, 저도 따라서 써봤습니다만,
보통은 서로 다른 방식에서 시작되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