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 이동진의 빨간책방 오프닝 에세이
허은실 글.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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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눈을 맞추는 시간.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읽으며 <빨간책방>의 문을 여는 이동진의 목소리를 저절로 떠올린다.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동진의 얼굴을 본 게 훨씬 더 오래전이지만, 이동진은 귀로 듣는데 제법 잘 어울리는 목소리와 말투를 가졌다. 고요하고 다정한 목소리, 차분한 말투. <빨간책방>의 청취자가 많은 이유 중에 그게 한몫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나처럼 게으른 독자도 생각나면 챙겨 듣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팟캐스트다. 그 방송의 오프닝 에세이를 이렇게 만났다.

 

새 신발을 신었을 때

발가락이나 뒤꿈치에 생긴 물집 때문에 고생한 일,

누구나 있을 겁니다.

 

기타를 처음 배울 땐 어떤가요.

어느 순간 손가락 끝의 껍질이 벗겨지고 굳은살이 박이지요.

 

사람과 사귈 때도 그런 물집과 굳은살의 시간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면

당연히 부딪치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고요.

그 마찰 때문에 마음에도 물집이 생기죠.

 

하지만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타든, 신발이든, 사람이든,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는 건 그런 시간을 통과한 다음이니까요. - 43페이지. 물집과 굳은살

 

에세이인데 시 같다. 짧은 글이 어떤 운율에 맞춰 읊조리는 느낌이 나서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다섯 개의 키워드로 나뉜 이야기다. 사이, 마음, 책, 독서, 삶. 각 키워드가 다른 이야기인 것 같지만 결국 그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일상과 생각을 그대로 연결한 것처럼 자연스럽다. 세상 속 우리 시선, 고민, 바람 같은 게 그대로 묻어있어서 친근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 어려워 겪게 되는 일들을 ‘사이’라는 필연적 조건이라 표현하며 이해하게 한다. 관계 맺음과 이어감의 어려움을 굳은살로 만들어야 한다고 에둘러 말한다. 처음부터 익숙해지는 건 없는 법, 찢어지고 물집이 생겨가면서 굳어지는 살이 만드는 게 관계임을 풀어낸다. 환절기가 한 번씩 지날 때마다 설명하기 힘든 그 마음의 출렁임이 부담스러웠는데, 저자는 그걸 계절과의 연애처럼 표현한다. 한 계절이 끝나가고 있음이, 한 번의 연애가 끝나는 것처럼 여기게 한다. 아, 계절의 흐름을 이렇게 말할 수도 있구나, 이 계절을 이렇게 흘려보낼 수도 있는 거였구나, 싶은 안도감 같은... 살면서 겪는 많은 감정을 한 가지씩, 살짝, 조용할 목소리로 건네는 속삭임 같다.

 

긴 외출 후에 돌아와 우편함을 열 땐

조금 들뜬 기분이 듭니다.

숫자들만 가득한 공과금 고지서 속에

어쩌면 다른 게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죠.

우표가 붙은 엽서, 누군가의 지문이 묻은 손 편지.

그런 것들 말이지요.

 

마음의 근황을 물어오는 뜻밖의 편지를 기다리는 일.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그렇게 혹시나, 어쩌면, 하고 기대를 품고

스팸 메일이나 납세고지서 같은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인지 모릅니다. - 196페이지. 어쩌면 오늘 우리는 편지를

 

 

페이지를 계속 넘기면서 만나는 책 이야기는 ‘그래서 책 이야기를 하는 방송의 문을 여는 것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이 낯설지 않아서 더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독서가 사람 살아가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저자. 단어와 문장과 페이지에 눈을 맞추며 느끼는 것들. 사람, 시간, 세상, 그리고 더 많은 것. 살면서 여러 가지를 ‘지어가는’ 일이 소소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과정이 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풀고 있다. 본방송을 듣기 전의 애피타이저 같은, 본방송을 다 듣고 난 후 맛보는 후식 같은 글.

 

(비밀을 하나 말하자면) <빨간책방> 초기를 제외하면, 사실 나는 오프닝 원고를 미리 읽어보지 않는다. 그 글을 처음 대하자마자 눈과 뇌를 거쳐 의미와 리듬을 한꺼번에 굴리면서 입 밖으로 내미는 짧은 순간의 신선한 긴장감에서 출발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글을 온전히 믿고 순전히 즐긴다. - 이동진

 

이동진의 추천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저자의 글이, 아직 남은 겨울에 온기를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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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 보스
정이연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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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 내 옆에 웬 낯선 여자(남자)가 누워 있다?'

솔직히 새로운 설정은 아니다. 이런 에피소드로 시작된 이야기가 신선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짧고 굵다는 건 이 소설을 두고 한 말 같다. ^^ 장편소설 분량을 딱 반토막 낸 분량으로, 해야 할 말만 간단명료하게 적어놓은 듯한 분위기. 군더더기 빼고 느슨해지는 분위기 빼고, 치고 빠지는 기술이라고 해야 할까. 짧은 시간에 좀 더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여 즐기기에 충분한 소설.

 

오랜만에 한국으로 들어온 강욱의 어느 날 아침. 햇살의 따가움에 잠을 깨고 일어났는데, 자신의 침대에 웬 여자가 누워 있다. 간밤에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원나잇을 즐기는 것도 아닌데 술이 떡이 되어 누워있는 이 여자는 누구인가? 이상한 여자일세. 그게 한번이면 아량을 베풀어 볼만도 하건만, 두 번이나 반복되는 건 또 뭔가. 도대체 이 여자가 자신의 집에 어떻게 들어온 건지 몰라 신경이 거슬리던 사이, 여자의 가방 속에서 신원을 확인한다. 희미하게 웃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리고 여자의 약점(?)을 쥐고 거래를 한다. '너 나한테 빚 졌다!'

 

얼마 후, 강욱과 여자는 태용건설에서 재회한다. 여자는 신입사원 강욱의 상사 김수현. 외모 멀쩡하고 일 끝내주게 잘하는데 워커홀릭이다. 자신의 침대 위에서 본 여자와 회사에서 마주한 여자의 이미지가 다르다. 이 여자, 뭘까? 시건방진 캐릭터 그대로 강욱은 느물느물 자신감 넘치는 신입으로 수현을 대하고, 겉으로 단단하게 보이는 수현은 강욱의 놀림 같은 관심에 공격당한다.

 

실실 쪼개며 속을 끓게 만드는 남자의 매력이 상큼하다. 딱 눈길이 가게 만들어졌다고 해야 하나. 까칠한 듯하면서 말랑말랑한 마음을 갖고 사는 매력덩어리를 그대로 심어놓은 것처럼, 얄미운데 딱밤보다는 괜히 옆구리를 찔러주고 싶은? 뭐, 좋다는 얘기지. ^^ 그런 강욱이 자신의 배경을 숨기고, 목적을 두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였기에 그 사실을 수현이 알게 될 때를 대비해 준비를 한다. 수현에게 향하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시간차 계획을 세운다. 두 사람 사이에 알게 모르게 생긴 비밀. 이 잘난 남자가, 자신에게 미친듯 관심을 보이는 남자가, 기껏 신입사원이었던 남자가, 사실은 내가 다니는 회사의 오너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는 거야?!

 

많은 이들이 가볍게 웃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짧은 후기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적 분위기가 충분히,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한다. 장편과 단편 그 사이의 장점을 살려 짧고 굵게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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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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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지배받는 몸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왕의 한의학』

 

 

사극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봤던 조선 왕의 모습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손가락 끝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사람이었다. 시쳇말로 수행원들 줄줄 달고 살며, 앉은 자리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편한 생활이 몸에 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너무 익숙하면 가끔 심심하기도 하겠지만, 사실 편하게 살고 싶은 건 인간이 가지는 바람이기도 하니 부럽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작용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누리기 위해 감당하고 이겨내야 할 것도 많았다는 것. 단순히 흥미로만 만나던 그 시간의 이야기를 즐길 요소도 있지만, 그 이면의 것들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운 게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이상곤의 『왕의 한의학』은 조선 왕의 질병과 역사를 연결한다. 어느 사건이 일어난 때, 어떤 환경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때 왕의 건강이 보내는 신호를 말한다. 굳이 왕이 아니어도, 일반인인 우리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건드리는 사건이나 고민거리가 생길 때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내고 반응한다. 온갖 방법으로 그 치료를 하겠지만, 그 근원을 뽑아내기 전에는 완전히 아물지 않는다. 왕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의 의료행위는, 한의학으로 왕의 건강을 예방하고 치료하며 역사와 함께 해왔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기록으로 시간을 추적하고 왕의 몸을 다시 진찰한다. 그 기록 안 왕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병명, 증상, 치료법도 여러 가지가 함께 했지만, 저자의 글을 바탕으로 보면 그 자리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근원이었던 듯하다.

 

고대의 주례(周禮)를 충실하게 복원한 조선 왕실의 상사(喪事)는 살인적이었다. 아마 세종은 그 첫 희생자였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신하들의 고기 섭취 권유에 덧붙이는 세종의 말은 그가 고기 마니아였고 대식가였다는 가설을 부정하기에 충분하다. “내가 본디 병이 없고 늙지도 어리지도 않으니 어찌 감히 뒷날에 병이 날까 봐 고기를 먹겠느냐.” (27페이지 세종)

 

왕의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이미 몸의 이상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다. 선대의 상을 치르면서 예를 갖추느라 오랜 시간 몸을 상하게 했고, 왕위에 오르자마자 시작된 격무는 피로한 몸을 더 혹사하곤 했다. 권력 다툼의 중심에서 온몸은 긴장으로 풀어질 줄 몰랐다. 저자는 조선 왕실의 의학과 발전되어가는 과정을 들려준다. 몇몇 왕을 제외하고 태종부터 고종까지 실록을 바탕으로 해석하듯 비밀스러운 한의학을 풀어낸다. 그 결과부터 말하자면 역시, 가면 하나를 쓰고 살았던 조선 왕들에게 드러나는 증상들이 마음의 고통을 증명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결국 다 숨기지 못했던 듯하다. 밖으로는 백성들의 안위를 돌보며 안으로는 수도 없이 밀려드는 위협과 싸워야 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관여해야 하는 묵중한 업무와 신하들과의 밀당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위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 흔적은 고스란히 몸에 남았다. 세종은 워커홀릭으로 비만이었고,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은 시대의 색골이었다. 숙종은 화증과 눈병으로 평생을 앓았고, 헌종과 철종은 종마의 역할을 충실히 하느라 골골했다. 고종은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그 와중에 의외로 보였던 사람이 영조다. 정조는 장수한 거로도 유명한데, 평소 자신의 체질을 잘 알고 질병에 대비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에게도 나중에는 화병의 징후가 보이는데, 그건 허약체지이었던 그가 자기 관리로도 결국 감출 수 없었던 고질병이 아니었을까.

 

저자의 역사 해설과 함께 조선 왕의 증상을 들으면서 알 수 있었던 건 세세한 기록과 진료로 처방과 치료를 했다는 건데, 그 안에서도 의학은 자주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정치권의 손 안에 있었던 것 같다. 내의원 삼제조의 영향 아래서 온전한 의술을 펼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것. 한편으로는 왕실의 의료 행위가 국가적인 일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힘의 작용을 완전히 무시하시는 못했을 듯하다. 게다가 조선왕조의 성리학적 통치나 권력 투쟁은 왕들의 발병을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정치적 갈등과 초상을 치르는 과정이 온갖 질환을 불러와 세상을 떠나게 하고, 독살설을 내놓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기록된 조선의 왕실의 의료 기록을 볼 때 독살되었을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왕은 거의 없다고 한다. 독살이라기보다는 의료 과실에 가까운 원인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눈앞에서 아비의 죽음을 목격하고 평생 그 한을 풀기 위해 애쓴 정조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아야 했을까? 정조의 질병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이 가져다준 트라우마가 화증이 되어 평생 그를 괴롭혔다. (335페이지 정조)

 

가만히 듣다 보면, 이들의 모든 병은 화병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그 화병 한 가지로 그들의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병을 시작으로 합병증처럼 다른 병들이 줄줄이 따라온 것 같다. 종기는 기본으로 생기는 게 비일비재했고, 소화불량과 과로는 스트레스로 직행했다. 왕의 자리라는 것이 이들의 건강을 좌우해 기인한 것이 아닐까.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쉽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온갖 병을 불러오고 있었음이라. 말 그대로 왕노릇이 수명을 단축시킨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거부당하며 시작되는 질병의 참모습이다.

 

역사 해석과 함께 풀어놓은 저자의 관점은 한의학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하면서, 현대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게 한다. 왕의 자리라는 위치만 다를 뿐 우리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스트레스, 때를 맞추기 어려운 식사로 인한 소화불량, 불면증 같은 시대를 거슬러도 비슷한 질병들을 안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처방과 치료법이 워낙 방대해서 다 옮겨 적을 수가 없는 게 아쉽지만, 그들의 증상을 보고 처방하고 치료한 과정을 통해 한의학의 역할과 발전,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처방임을 알게 되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보약처방이 많았고 침구술 같은 외과 치료가 경외 시 되었다는 것도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 같다. 아마도 서양의학의 도입과 함께 변화되어 가던 과정도 한몫한 건 아닐까 싶다. 조선 시대 의학이면서 상당히 적극적인 치료법이었고, 오늘까지 계승된 것이 많다니 믿어볼 만 하다. 역사와 의료를 함께 들을 수 있어서 진지했고, 차근차근 풀어가는 그 설명에 믿음이 간다. 한의학은 자연과의 조화라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순간 신호를 보내는 몸이 그걸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었지만, 환경이 인간을 병들어가게 하는 과정과 그 치료를 위한 자세를 배우게 하는 실용적인 책이다. 읽는 내내 진지했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사람에게 죽음에 이를 세 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 자초하는 것입니다.

잠들 때를 놓쳐 숙면의 시기를 놓치거나,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과로하거나 지나친 편안함에 젖는 것이

그것입니다.       - 『공자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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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무대 위의 문학 1
하타사와 세이고.구도 치나쓰 지음, 추지나 옮김 / 다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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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고 난 후...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TV나 책을 통해서 봤던 심리치료 과정에서, 서로의 처지를 바꿔놓고 같은 상황을 경험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상처받은 사람은 그 정신적인 고통을 전문가와의 상담으로라도 덜어내야만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상황극, 역할극 같은 것처럼 보인다. 아주 작은 무대(무대라고 할 것도 없는 어떤 장소) 위, 어떤 상황이 펼쳐진다. 언제 어느 때, 이런 일이 있었고, 나는 그 일로 이런 고통을 받았지. 대충 이런 내용의 연극이 펼쳐진다. 고통 받았다고 여긴 사람은 그 반대의 관점을 연기한다. 실컷 흥분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과격해지기도 한다. 그 맞은편의 누군가는 침묵하거나 듣기만 하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극이 끝나고 나면 서로에게 한발 더 다가서는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다. 보는 사람이 느끼는 그 감정이 진실일지 아니면 그 순간의 가면일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살아가는 동안에 바뀐 그 입장에서 상대를 봐야 할 때가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는 거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연극이 많이 생각났다. 연극으로 먼저 오르고 난 후 소설이 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낭독회로 진행되었을 때도 상당히 주목받았다고 한다. 비단 일본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증거다. 새삼 얘기하는 게 불필요한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너무 흔한 일상처럼 되어버렸다는 게 아픈 이야기라는 것. 이런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계속되어야만 하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이 책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히 왕따 문제나 청소년의 자살 문제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넘어서서, 그 아이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는 부모의 진짜 얼굴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실의 이른 아침. 한 여학생이 자기 반 교실에서 자살했다. 그리고 유서로 보이는 편지가 담임선생님에게 도착한다. 편지의 맨 끝에는 같은 반의 아이 다섯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학교에서는 이 다섯 명을 따로 대기시켜 놓고 아이들의 부모를 호출한다. 학교에 도착한 다섯 명의 학부모들은 저마다 자신의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 착한 아이들이다, 내 아이를 격리해 놓지 마라, 죽은 아이가 행실이 올바르지 못했다, 편지가 조작된 것이다, 등등. 자신의 자녀가 죽은 아이의 가해자라는 것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겠지. 부모에게는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아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인 줄도 모르고,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외침만 반복한다. 그런데 죽은 아이는 담임선생님, 그룹에서 외면당한 자신과 같이 밥을 먹어준 친구, 아르바이트하던 신문보급소의 소장에게 각각 편지를 보냈다. 감사의 말과 함께 편지의 끝에는 똑같이 다섯 명의 이름을 적어서...

 

가해자의 학부모가 모이기 시작한 그 순간, 즉 이 연극의 처음 부분부터 나는 숨이 턱턱 막혀왔다. 한 생명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었다. 중학교 2학년, 소소한 수다에도 까르르 웃음이 날 것만 같은 가벼움마저 사랑스러운 나이, 인생의 큰 그림보다 당장 바로 앞의 유치한 우정이 소중하다고 여길 수 있는, 정말 순수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시간을 미처 다 반짝이지도 못하고 버린 것에 대해 아파해도 모자랄 고통일 텐데... 불태우고 찢어버린 편지를 앞에 두고 '이제는 없는 일이다.'라는 간단명료한 마침표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무서웠다. 같이 그룹을 만들어야만 유지되는 게 중학교 생활이라니 인정하고 싶지도, 믿고 싶지도 않지만 요즘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그런 모양이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 무리의 형성이나 유지되는 근거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를 동반한다. 그냥 미워, 그냥 싫어. 약해 보이니까, 만만하니까, 한번 찔러보니 말을 잘 들으니까. 또 어떤 이유가 더 있으려나... 사실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룹 안에서 한 아이를 밀어내고, 왕따를 시키고, 횡포와 폭력, 협박을 일삼는 이유가 그저 무리와 한 개인이라는 차이 말고는 없던 것이다. 협박에 못 이겨 아르바이트해서 상납을 하고, 그것마저 채우지 못하니 가해자들이 나서서 원조교제를 시키는 것도 너무 당연한 것처럼 이루어진다.

 

그룹에 들지 못하면 외톨이가 되고, 아주 교묘한 따돌림으로 들키지도 않게 하는 고단수의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중학생이라니... 그 나이의 아이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아이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상태로 되돌아가고는 한다. 현직 교사가 직접 쓴 이야기는, 그가 직접 경험한 내용이 아니지만 간접 경험으로 보고 듣고 상담한 많은 내용을 근거로 써졌기에 상당히 사실적이다. 그런 부분에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시선이 바로 부모의 입장에서 취해야 할 자세다. 그것도 가해자의 부모 처지에 놓였을 때 어떤 시선과 생각으로 행동하고 말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보이는 가해자의 부모들은 한결같았다. 계속 드러나는 아이들의 이름 앞에서도 부정했고,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오점만 찾아내려 했다. 피해자가 했던 그 불법적인 행동(중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한다거나, 원조교제를 하는 것 같은)만 들춘다. 그러한 행동이 이루어져야 했던 배경에 자신의 아이, 가해자가 있었음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 매일같이 얼굴 보고 지냈던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에 아무런 감각도 없는 아이들. 겨우 십 년 조금 넘게 살아온 시간 동안 그 아이들에게 그런 인성이 갖추어진 것은 무슨 이유일까.

 

단숨에 속내를 끄집어낸 엔도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부모들을 휙 둘러보더니 조용히 곱씹듯이 말했다.

"오늘은 운이 좋았네요. 소원을 이뤘습니다. 줄곧 궁금했거든요. 걔들 부모들은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

엔도는 다시 한 번 부모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휴대전화 화면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어서 사과해. 미치코한테 사과해! 어서!" (103페이지)

 

밖에서 행동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면서, 그 말 때문에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에 부모가 있다. 아이가 밖에서 잘못된 행동을 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집에서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할 것이다. 결혼한 여자의 입장에서 시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너희 친정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더냐,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만큼 한 사람의 성장이나 인성에 있어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가장 먼저 관계를 형성하는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굳이 그 배경에 부모를 대입해 판단하는 게 익숙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부모의 가르침이나 부모의 태도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드러내는 부분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가 처음 상연되었던 연극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굳이 소설로 다시 써져야만 했던 이유가 이렇게 설명된다.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 진실이 하나씩 드러난다. 누구나 그 진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다 꺼낼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미치코의 진실을 알고 있던 신문보급소의 소장은 하루 늦은 자신의 행동에 울분할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의 진실을 알고 있던 부모는 그 진실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처리하는 방법을 먼저 가르쳤다. 나의 예상은 여기서 빗나갔다. 연극의 막이 내려지기 전에 많은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갈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했었는데... 긍정적인 다음 장면도, 가해자 부모의 태도가 달라질 거란 희망도, 가해자인 아이들의 인성에 대해서도, 온전하게 기대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장 누군가의 말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다음 행보를 가르쳤던 것일까.

 

연극이 끝나고, 단 하나의 조명만이 무대 위를 비추고 있는 듯하다. 시신이 되어 누워있는, 피해자인 미치코의 표정을. 마치, 이제야 좀 편하다는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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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 - 영화와 책이 있는 내 영혼의 성장기
이하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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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끝의 빨간 실, 영화와 책... 『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

 

 

같이 영화를 봐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게도 그런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토요일 수업이 일찍 끝나면 그 친구의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꼭 비디오 한편씩을 보고는 했었는데, 작은 TV 화면에 5~6명이 머리를 모아서 집중해서 보고 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소식이 다 끊겨서 어디서 무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게 모여서 같이 영화를 보는데도 꼭 의외의 장면을 잡아내는 친구가 있었던 거다. 모두가 흘러가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방금 그 책 제목이 뭐야?”라고 묻거나, “뒤쪽 벽에 걸려있던 그림이 000이야?”라던가, “00이 지금 밟은 것이 뭐지?” 하는 식의 질문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그런 장면이 있었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기 일쑤였다. 생각해보니 그런 질문을 했던 그 친구 참 여러 가지로 특이하긴 했다.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부르던 것과는 약간 거리감 있는 사고방식을 가진 친구였다고 기억된다.

 

때로는 영화나 책에서 내가 놓친 부분을 누군가가 그렇게 얘기해줄 때, ‘아하, 그랬구나.’하는 어떤 발견의 미학을 만날 때가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해주는 영화와 책에 관한 이야기가 그랬다. 나에게는 오래전 영화와 책들이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저마다 들려주던 한 부분으로 그 기억은 금방 재생되곤 했다. 영화에서 보여주던 재미와 감동이 영화 속에서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했던 책으로 연결이 될 때는 묘한 흥분까지 느꼈다. 저자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책들 혹은 책의 한 문장 때문에 멘토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내가 만난 영화 속의 책들은 멘토와 더불어 한번은 만나보고 싶은 위시리스트 속의 책으로 담겨지곤 했기에 미뤄둔 숙제 같은 느낌이 컸다. 어쩌면 환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을 읽어야만 그 영화에 대해 제대로 보고 느낀 것으로 마무리가 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는지도…….

 

내가 생각했을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궁합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영화와 책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만나기도 하고,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어떤 책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책은 저자가 들려주는 영화, 그 영화 속의 책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나 영화의 흐름에 큰 매개체 역할을 하는 책을 대해 소개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 이 책의 제목처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었다. 한참 일본 영화와 문학에 빠져 있을 때, 비공식적인 경로로 봤었던 기억이 난다. ^^ 그 영화를 보고 벽장 같이 비좁은 공간에서 웅크리고 책을 읽어가던 조제를 저절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몸이 불편한 조제를 위해 할머니가 주워다 주었던 그 책들에 파묻혀 있던 조제를 잊을 수가 없다. 그 공간에서 그렇게 책을 읽는 것만이 조제에게는 구원의 줄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물론 그 안에는 조제의 사랑이 함께 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일본 영화나 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기에는 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가느라 바빴던 내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던 부분도 있었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전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보여줬던 프랑수와즈 사강의 책 『한 달 후 일 년 후』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이다, 이 책은. 그 영화를 떠올리면 그 책이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 것. 누군가의 욕심에 잔인함을 보게 만들었던 영화 <매치포인트>와 책 『죄와 벌』을 기억해야 했고,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두 개의 인격을 보여주었던 영화 <프라이멀 피어>와 책 『주홍 글씨』를 잊지 않게 했다. 오랜 시간동안 간절히 바라던 것을 이루어낸 영화 <쇼생크 탈출>은 책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다시 만나게 해주었으며, 그 안에 등장하던 책 때문에 울컥 눈물이 솟게 했던 영화 <아들>에서는 책 『데미안』에 대해 다른 느낌을 들려주기도 했다. 두 얼굴의 남녀가 온·오프라인에서 보여주었던 편견에 웃음 짓게 했던 영화 <유브 갓 메일>은 내가 로맨스의 고전이라 여기고 있는 책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그립게 한다. 운명처럼 다시 만나는 순간 사랑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내내 빌게 만들었던 영화 <세렌디피티>는 그 운명의 연결 고리인 책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메모하게 했다.

 

그렇게 23편의 영화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 책은, ‘책’이라는 것 자체를 흥미롭게 살펴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건 저자가 책과 함께 소개해주었던 영화의 영향이 크다. 영화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의 재미는 기본이고, 그 이야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 책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때로는 어떤 사건의 복선으로 자리하면서 더 눈여겨보게 만들고, 주인공과 배경의 시대적 분위기를 파악하게 해주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이해와 책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현실에 대한 이해와 책 그 너머에 있는 상상이 불러올 수 있는 판타지까지 가능하게 했던 역할이 아니었을까. 물론 영화에서 보여주는, 영화 속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역할은 눈에 보이는 딱 거기에서 멈출지 모르지만, 이미 관객이자 독자인 우리는 그 영화와 책을 접하고 나면 그 이상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나. ^^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난 후의 이야기를 그리기도 하고, 탈출한 후에 다시 만난 앤디와 레이의 미래를 열렬히 응원하기도 하면서, 도쿄타워의 그 야경을 보면서 무모한 사랑을 그리기도 하는…….

 

어쩌면 책은 영화 속의 그저 하나의 소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의 눈을 통해서 만난 영화 속 한권의 책은 소품 그 이상의 이야기다. 주인공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했고, 주인공이 만나길 바라는 미래를 대신 말해주기도 했다. 주인공의 삶에 멘토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한권의 책으로 머물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읽고 있는 이유.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어떤 시험대를 통과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무료한 일상의 활력소 일수도 있지만, 그 모든 이유의 공통점은 자신에 다가올 어떤 느낌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게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기도 했고, 한 편의 영화의 흐름을 좌우하기도 했다는 것을 저자의 이야기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한 권의 책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관객들에게는 더욱 눈에 담게 되는 책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 음악을 귀에 담았다면, 영화 속의 책들은 저절로 눈에 담게 될 것이다. 영화의 흐름에 빠져 혹시 놓치고 있던 부분이 없었는지, 그 책이 영화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의 어느 한 페이지를 펼쳐 기억을 더듬어 봐도 좋겠다. 그때 그 영화, 혹은 그때 그 책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에게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질 테니. 나 역시도 지금 이 책을 통해서, 아직 만나지 못한 영화와 아직 읽지 못한 책의 리스트를 다시금 채워가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영화’를 다시 만날 때 그 ‘책’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이 책에서 들려주었던 영화와 책.

<세렌디피티>,『콜레라 시대의 사랑』 / <친니친니>,『두 도시 이야기』 / <디 아워스>,『댈러웨이 부인』 / <컨스피러시>,『호밀밭의 파수꾼』 / <유브 갓 메일>,『오만과 편견』 / <콜드 마운틴>,『폭풍의 언덕』 / <생활의 발견>,『스콧 니어링 자서전』 / <키다리 아저씨>,『뉴욕 3부작』 / <시티 오브 엔젤>,『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 / <이퀼리브리엄>,『갈대밭에 부는 바람』 / <장미의 이름>,『시학』 / <프라이멀 피어>, 『주홍글씨』 / <쇼생크 탈출>,『몽테크리스토 백작』 / <오래된 정원>,『살아남은 자의 슬픔』 / <스피어>,『해저 2만 리』 / <아들>,『데미안』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한 달 후 일 년 후』 / <어느 멋진 순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매치 포인트>,『죄와 벌』 / <도쿄 타워>,『사랑의 종말』 / <레이크 하우스>,『설득』 / <카포티>,『월든』 / <마들렌>,『달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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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9 0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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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1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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