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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 - 영화와 책이 있는 내 영혼의 성장기
이하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손가락 끝의 빨간 실, 영화와 책... 『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
같이 영화를 봐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게도 그런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토요일 수업이 일찍 끝나면 그 친구의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꼭 비디오 한편씩을 보고는 했었는데, 작은 TV 화면에 5~6명이 머리를 모아서 집중해서 보고 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소식이 다 끊겨서 어디서 무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게 모여서 같이 영화를 보는데도 꼭 의외의 장면을 잡아내는 친구가 있었던 거다. 모두가 흘러가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방금 그 책 제목이 뭐야?”라고 묻거나, “뒤쪽 벽에 걸려있던 그림이 000이야?”라던가, “00이 지금 밟은 것이 뭐지?” 하는 식의 질문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그런 장면이 있었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기 일쑤였다. 생각해보니 그런 질문을 했던 그 친구 참 여러 가지로 특이하긴 했다.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부르던 것과는 약간 거리감 있는 사고방식을 가진 친구였다고 기억된다.
때로는 영화나 책에서 내가 놓친 부분을 누군가가 그렇게 얘기해줄 때, ‘아하, 그랬구나.’하는 어떤 발견의 미학을 만날 때가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해주는 영화와 책에 관한 이야기가 그랬다. 나에게는 오래전 영화와 책들이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저마다 들려주던 한 부분으로 그 기억은 금방 재생되곤 했다. 영화에서 보여주던 재미와 감동이 영화 속에서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했던 책으로 연결이 될 때는 묘한 흥분까지 느꼈다. 저자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책들 혹은 책의 한 문장 때문에 멘토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내가 만난 영화 속의 책들은 멘토와 더불어 한번은 만나보고 싶은 위시리스트 속의 책으로 담겨지곤 했기에 미뤄둔 숙제 같은 느낌이 컸다. 어쩌면 환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책을 읽어야만 그 영화에 대해 제대로 보고 느낀 것으로 마무리가 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는지도…….
내가 생각했을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궁합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영화와 책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만나기도 하고,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어떤 책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책은 저자가 들려주는 영화, 그 영화 속의 책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나 영화의 흐름에 큰 매개체 역할을 하는 책을 대해 소개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 이 책의 제목처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었다. 한참 일본 영화와 문학에 빠져 있을 때, 비공식적인 경로로 봤었던 기억이 난다. ^^ 그 영화를 보고 벽장 같이 비좁은 공간에서 웅크리고 책을 읽어가던 조제를 저절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몸이 불편한 조제를 위해 할머니가 주워다 주었던 그 책들에 파묻혀 있던 조제를 잊을 수가 없다. 그 공간에서 그렇게 책을 읽는 것만이 조제에게는 구원의 줄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물론 그 안에는 조제의 사랑이 함께 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일본 영화나 문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기에는 현실적인 세상을 살아가느라 바빴던 내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던 부분도 있었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전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보여줬던 프랑수와즈 사강의 책 『한 달 후 일 년 후』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이다, 이 책은. 그 영화를 떠올리면 그 책이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 것. 누군가의 욕심에 잔인함을 보게 만들었던 영화 <매치포인트>와 책 『죄와 벌』을 기억해야 했고,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두 개의 인격을 보여주었던 영화 <프라이멀 피어>와 책 『주홍 글씨』를 잊지 않게 했다. 오랜 시간동안 간절히 바라던 것을 이루어낸 영화 <쇼생크 탈출>은 책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다시 만나게 해주었으며, 그 안에 등장하던 책 때문에 울컥 눈물이 솟게 했던 영화 <아들>에서는 책 『데미안』에 대해 다른 느낌을 들려주기도 했다. 두 얼굴의 남녀가 온·오프라인에서 보여주었던 편견에 웃음 짓게 했던 영화 <유브 갓 메일>은 내가 로맨스의 고전이라 여기고 있는 책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그립게 한다. 운명처럼 다시 만나는 순간 사랑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내내 빌게 만들었던 영화 <세렌디피티>는 그 운명의 연결 고리인 책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메모하게 했다.
그렇게 23편의 영화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 책은, ‘책’이라는 것 자체를 흥미롭게 살펴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건 저자가 책과 함께 소개해주었던 영화의 영향이 크다. 영화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의 재미는 기본이고, 그 이야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 책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때로는 어떤 사건의 복선으로 자리하면서 더 눈여겨보게 만들고, 주인공과 배경의 시대적 분위기를 파악하게 해주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이해와 책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현실에 대한 이해와 책 그 너머에 있는 상상이 불러올 수 있는 판타지까지 가능하게 했던 역할이 아니었을까. 물론 영화에서 보여주는, 영화 속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역할은 눈에 보이는 딱 거기에서 멈출지 모르지만, 이미 관객이자 독자인 우리는 그 영화와 책을 접하고 나면 그 이상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나. ^^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이 이루어지고 난 후의 이야기를 그리기도 하고, 탈출한 후에 다시 만난 앤디와 레이의 미래를 열렬히 응원하기도 하면서, 도쿄타워의 그 야경을 보면서 무모한 사랑을 그리기도 하는…….
어쩌면 책은 영화 속의 그저 하나의 소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의 눈을 통해서 만난 영화 속 한권의 책은 소품 그 이상의 이야기다. 주인공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했고, 주인공이 만나길 바라는 미래를 대신 말해주기도 했다. 주인공의 삶에 멘토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한권의 책으로 머물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읽고 있는 이유.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어떤 시험대를 통과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무료한 일상의 활력소 일수도 있지만, 그 모든 이유의 공통점은 자신에 다가올 어떤 느낌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게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기도 했고, 한 편의 영화의 흐름을 좌우하기도 했다는 것을 저자의 이야기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한 권의 책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관객들에게는 더욱 눈에 담게 되는 책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 음악을 귀에 담았다면, 영화 속의 책들은 저절로 눈에 담게 될 것이다. 영화의 흐름에 빠져 혹시 놓치고 있던 부분이 없었는지, 그 책이 영화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의 어느 한 페이지를 펼쳐 기억을 더듬어 봐도 좋겠다. 그때 그 영화, 혹은 그때 그 책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에게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질 테니. 나 역시도 지금 이 책을 통해서, 아직 만나지 못한 영화와 아직 읽지 못한 책의 리스트를 다시금 채워가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 ‘영화’를 다시 만날 때 그 ‘책’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이 책에서 들려주었던 영화와 책.
<세렌디피티>,『콜레라 시대의 사랑』 / <친니친니>,『두 도시 이야기』 / <디 아워스>,『댈러웨이 부인』 / <컨스피러시>,『호밀밭의 파수꾼』 / <유브 갓 메일>,『오만과 편견』 / <콜드 마운틴>,『폭풍의 언덕』 / <생활의 발견>,『스콧 니어링 자서전』 / <키다리 아저씨>,『뉴욕 3부작』 / <시티 오브 엔젤>,『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 / <이퀼리브리엄>,『갈대밭에 부는 바람』 / <장미의 이름>,『시학』 / <프라이멀 피어>, 『주홍글씨』 / <쇼생크 탈출>,『몽테크리스토 백작』 / <오래된 정원>,『살아남은 자의 슬픔』 / <스피어>,『해저 2만 리』 / <아들>,『데미안』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한 달 후 일 년 후』 / <어느 멋진 순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매치 포인트>,『죄와 벌』 / <도쿄 타워>,『사랑의 종말』 / <레이크 하우스>,『설득』 / <카포티>,『월든』 / <마들렌>,『달의 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