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좋은 날 - 그날, 그 詩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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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이 말하는 그 느낌이 그대로 전해온다. 시를 통한 저자의 단상을 듣는 느낌이 좋아서 가끔 펼쳐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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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 - 기억, 시간 그리고 나이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권세훈 옮김 / 에코리브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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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우리 뇌와 기억력의 진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억력에 대해 다른 의미와 시각을 갖게 해주는 책이 아닐까 한다. 일반적으로 노인의 기억력은 급격하게 퇴화한다고 쉽게 말하고는 했는데, 기억력 연구 전문가인 이 책의 저자는 그 말이 모두 맞는 거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이 들어가면서 우리의 기억에 관련된 몇몇 기능이 나빠지는 것은 맞지만, 그 전에 제대로 작용하지 못했던 다른 기능들은 그때(노인이 되어)서야 작동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노인들의 기억력이 정말 나빠지는 것인지 다를 뿐인 것인지 사례를 통해 들려주면서 우리가 가진 기억의 존재와 의미, 흐르는 시간, 나이에 관하여 들려주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기억에 대한 능력은 점점 사라지기에 이르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기억이 있다. 이는 노인의 기억력이 모두 퇴화되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심리학에서 ‘망각의 역현상’이라 부르는 이 증상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오래된 일이 더 잘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런 현상은 기억력이 감퇴하는 나이(노인이라 부를 수 있는)에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하여 시간과 나이, 기억에 관한 이론이나 정의를 만날 때마다 가졌던 원칙 같은 이론 보다는 저자의 연구와 다른 전문가들의 이론들을 통해 들려주었던 내용들에 더 신뢰가 가게 한다.

 

<인생의 계단>이란(24페이지) 그림을 참고하면서는 그 시대(1660년)의 사람들이 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가파른 산 하나를 넘는 듯한 인생의 계단은 오를 때와 내려올 때의 분위기를 사뭇 다른 느낌으로 그려주어 우리의 사고를 끌어내고 있다. 우리 인생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앞부분은 빛나고 힘찬 걸음을 걷는 느낌을 준다면, 정상을 찍고 하산하는 듯 보이는 뒷부분은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로, 우울하거나 끝을 향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만 같다. 어쩌면 우리의 삶을 단 한 장의 그림으로 지켜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서 우리가 봐야할 것은 노인이라 부르는 시간을 사는 사람들이다. 인생의 계단 안에서 우리가 지금 정상을 향해 살아가는 시간을 걷고 있다면, 곧 내려가는 시간도 만난다는 것일 테다. 그 시간 속에서 겪어가는 시간과 기억에 관한 생각, 나이와 향수를 갖고 살아가는 순간들을 만나게 하는 책이다.

 

그러한 기억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많은 것들에 대한 향수 역시 불러오기도 한다. 향수병은 누구에게나 다 다가올 수 있는 병이지만, 특정 상황의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는 병이라고 한다. 입대한 병사나 이민자 가족 같은, 집(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이런 상황에 또 한 번 만나게 되는 것이 과거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이다. 그게 향수병을 깊게도 하고 치유하기도 하겠지만, 향수병이란 것은 금방 치유되지 않고 시간의 흐름과 맞물려 언제든 다시 이들(우리들)에게 다가올 수도 있다. 향수병이란 이름 앞에서는 완치라는 게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갈수록 노령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노인에 대한 연구도 같이 늘어가고 있음이다. 저자는 기억력 감퇴나 건망증을 치매로 속단하지 말라고, 기억력 훈련은 기억 능력이 아닌 기억의 전략을 이용하는 능력의 향상일 뿐이라고 조언한다. 즉, 기억에 관한 많은 것들이 항상 한 가지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들이 여러 가지, 또는 순간적인 연상으로도 즉시 떠오를 수도 있다. 누군가와의 대화를 통해서, 갑자기 귀로 흘러들어온 이십년 전의 음악을 통해서도, 스스로가 기억해내고 기록할 수도 있는 자서전적인 수단을 통해서도 우리의 기억력은 자신의 자리를 찾는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 모두 노년을 만난다. 아직은 노년이라 부를 수 없는 나도 그 시간과 조우하는 운명이란 거다. 피해갈 수도 없을뿐더러 그저 즐겁게만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아닐 것이다. 저자가 그 노년의 시간을 만날(혹은 이미 만난) 우리들에게 다양한 사례와 함께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은 나이와 시간, 그리고 기억이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의 육체와 함께 흘러간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들이 도미노처럼 가져오는 사회적 문제들이나 심리학적 증상들을 같이 듣게 하여 어느 한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공유하게 한다. 그리고 그동안 알고 있었던 나이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깨뜨리면서, 우리의 늙어가는 뇌의 진실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이 준다. 저자의 전작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와 같이 읽으면 더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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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권 완간 세트 - 전21권 (본책 20권 + 조조록 사전 + 가계도 + 브로마이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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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느긋하게 읽어볼 수 있겠다. 장식용이 아니라 완독하는 게 목표.
박스가 너무 헐렁해서 다 찢어져서 왔다. 책 옆의 빈 공간을 뭔가로 미리 채워서 넣었으면 더 단단하게 고정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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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
박후기 글.사진 / 문학세계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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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밖으로 꺼내어 하는 말(소리) 대신에 글(문장)로 그 말의 깊이를 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시간 생중계처럼 전해지는 말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정리되어 글로 써지는 시간이 만들어지면 조금 더 다른,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이유로, 가끔은 일부러 급한 마음 상태의 전화보다는 조금 생각하다가 문자를, 문자보다는 메일로 상대에게 전달할 때가 있다. 설명이 필요하다거나 내 마음을 조금 더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바람이 있을 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올곧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의미의 언어가 여기 하나 더 있다. 말과 글만큼이나 더 전달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 사진이다. 딱 그때, 그 순간의 기록처럼 보이는 한 장의 사진이 많은 말을 대신하고 있다. 종군기자의 사진 한 장이 전장의 실상을 그대로 전했던 것처럼, 사진이 말을 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그 사진의 말을 알아듣는 나는, 또 한 번 공감의 언어로 소통한다. 사진이라는 언어...

 

 

시인이 쓴 산문이다. 나는 아마 이런 느낌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시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시 같은 글을 통해 어떤 마음을 전달받고 싶었던 거라고. 읽고 보니 그 기대감이 틀리지는 않았다. 다만 순서가 조금 다른 듯했다. 글이 가득한 느낌 속에 사진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구성이 아니라, 사진이 먼저 자리를 잡고 시인의 글이 따라오고 있다. 사진이 걷고 발자국을 남기면 이야기가 그림자처럼 그 발자국을 밟는다. 그 사진을 찍었을 순간의 마음, 그 장면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함께한다. 뻔한 얘기 같지만, 그 안에 일상을 풀어놓고 싶은 나의 바람까지 함께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에 반했던 듯하다.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이라니, 뭔가 가벼워지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을 들킨 것만 같잖아. 양쪽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감정의 벽돌 하나를 내려놓고 싶기도 했다. 비까지 내리는 이 가을, 그냥 지나치고 갈 리 없는 익숙한 감기가 버거웠고, 한 살 더 먹어가는 나이의 무게가 심란했다. 마음을 흔드는 많은 일이 제자리를 찾아주었으면 싶은 바람에, 종교가 없음에도 수신자가 없는 그 어딘가를 향해 기도하고 싶기도 했다.

 

 

기도는 변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다. 또한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중략)

언제나 사람이 먼저 기도를 떠나왔던 것이다.

처음에 품은 그 절심함을 잊고, 사람이 먼저 사랑을 떠나왔던 것이다.

기도는, 어쩌면 잊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는지도 모른다. (149페이지)

 

그런데 저자는 손바닥 뒤집듯, 기도에 대한 나의 마음에 너무나도 간단히 직구를 날렸다. 기도가, 잊고 싶다는 마음의 말이었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랬나 보다. 나의 진심은 ‘이런 소원을 들어주세요.’ 하는 플러스(+)의 요청이 아니라, ‘이런 마음을 사라지게 해주세요.’ 하는 마이너스(-)의 잘라냄을 바라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려오라고 나에게 말한다. 살다가 하루쯤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그런 날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시(詩)에서 내려오고 싶은 날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무엇인가로부터 내려오고 싶고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 날, 저자가 어떤 찰나를 담은 사진 한 장과 그 순간을 기록한 마음처럼 눈과 귀를 열게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눈이 내리는 계절의 흐름, 누군가의 구부정한 어깨, 버릴 줄 아는 마음을 가르쳐주는 사람, 모여서 함께 흔들리는 갈대, 오늘을 살게 하는 많은 법칙, 혼자 흔들리지 말라는 위로, 기울어지는 그리움에 기대어도 된다는 말, 깊어지는 맛을 내는 것들의 의미, 비는 내가 우는 소리라는 듯, 서로가 서로에게 지나가는 길목의 마주침, 감정이 살아있음에 붉어지는 얼굴의 아름다움... 그 이상의 것들이 품고 있는 말들을 풀어낸다. 시처럼, 음이 낮은 노래처럼, 마시기 좋게 적당히 식은 차 한 잔처럼.

 

누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날이 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그 사람은 내 마음의 행간(行間)까지도 읽어버린 것이다.

그런 날엔 한없이 서럽고, 또한 알 수 없는 떨림이 등피를 두드린다. (87페이지)

 

몰랐으면 싶은데 간혹 눈치 빠른 누군가는 내가 아무런 말이 없어도 마음을 알아챈다. 내 숨소리가 거기까지 날아갔나 싶게 정확히 짚어낸다. 무슨 말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누군가가 내 마음을 읽었구나 싶은 눈치를 나도 알아채는 것이다. 서로가 말이 없어도, 딱히 어떤 손짓을 건네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지고야 마는 것. 그건 불어오는 바람 때문일 수도 있고, 커피가 아닌 술을 마시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미 하나 달리한 단어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또 한 번 감정을 건드리고 흔들리게 한다. 빗물이든 눈물이든 흐르게 한다. 때로는 그런 마음을 집어내는 것이 이런 책이 되기도 한다는 게 당황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러면 또 어떠리. 그대로 다가오는 그 공감을 담고 싶은 것을...

 

 

마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닫힐 수도 열릴 수도 있다. 문틈, 그 미세한 자리를 비집고 굳이 들어오려 애쓰는 게 마음일지도 모른다. 알면서 모른 척하기도 했고, 일부러 그 틈을 안 보이려고도 했다. 그래서 지나친 많은 것들을 이 책이 다시 불러온다. 지나가 버린 한때의 시간을, 하루살이가 비우게 하는 오늘을. 이 밤에 조용히 비추는 가로등마저 다시 보이게 한다. 그 대상이 삶이든 사람이든, 한순간이나마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게 한다. 그 관조의 시선이 가져올 어떤 여유, 저자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렇게 조금 쉬어가는 길, 돌아서 가는 길을 이런 식으로 들려준다.

 

 

저자 박후기를 시집으로 먼저 만났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비극이 넘치는 우리 삶을 색다른 시선으로 시를 통해 얘기하는 듯했다. 시를 통해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듣고는 했는데, 이번 책은 그가 찍은 사진과 그 시간의 말을 함께 담고 있다. 잡지사에 취직해서 본의 아니게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일을 동시에 했다던 그의 이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사진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거창한 소개가 아니라, 그가 뷰파인더를 통해 본 그 순간, 그 마음의 소리를 기록한 것이다. 그 사진 한 장과 그 장면을 통해 그가 사유한 마음 한 자락을 담았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감정의 한순간이 있다는 것을, 다른 이에게는 평범하게 지나는 한 장면이 오직 자신에게만은 특별한 한 컷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순간에 하고 싶은 한 마디가 그 한 장의 사진에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봄날의 햇볕처럼 내리쬐던 며칠 전의 하늘을 쉬지 않고 내리는 빗소리가 가득한 지금, 기억한다. 많은 게 흔들릴 정도로 불어대는 바람이나 거세게 비가 퍼부어대는 지금의 서늘함보다, 환하게 비추던 햇볕 아래서 더욱 추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던 그 날을, 내 마음이 기억한다. 비록 사진으로 담아두지 못했지만 아마 그날을 찍었다면 분명 사진에서 보였을 것이다. 너무도 맑았던 하늘, 봄으로 착각할 정도로 포근했던 햇살, 그 안에 자리한 내 서늘한 시선이.

 

 

한 장의 사진이 열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침묵의 언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싶을 만큼 소통하고 싶어지는 언어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의 많은 여건 때문에 때로 달리 보이기도 하겠지만, 분명한 건 사진이 감정과 표정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걸 읽어내는 사람은 그 사진과 교감하는 것일 테고. 누군가의 마음과 시선을 담은 사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 나에게 저자의 시선(사진)과 마음(문장)은 타이밍 좋게 다가온, 위로다. 내 마음이 지금 내리는 비만큼 더 서늘해지기 전에, 다시 찾아올 봄날처럼 풀어지기를 바라는 위로. 내리고 싶은 날이 있다고 말했으니, 그런 날 하루쯤은 내려도 괜찮겠지.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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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 Navie 255
진주 지음 / 신영미디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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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우산 하나 갖고 싶어지게 한다...

 

 

나에게 징크스가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많이 걸리는 게,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이 없는 거다. 오늘처럼...

하루도 비켜가지 않았다. ‘비’ 따위 나는 모르겠소, 하는 것처럼 하늘이 쨍쨍 맑아서 그냥 나가도 비가 온다. 대부분의 날들이 그랬다. 늘 우산이 없거나 가진 우산마저 잃어버리곤 했었다. 비가 내릴 거라고 했는데 괜찮아서 그냥 나갔더니 비가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늘... 오늘처럼...

계속 내리던 비가 오후에 잠깐 멈췄다. 잠깐이니까 괜찮겠지 싶어서 우산을 두고 그냥 나갔다. 불과 몇 분 사이. 갑자기 사위가 캄캄해지더니 결국 비가 쏟아졌다. 그 잠깐, 너무 방심했나보다. 그럼 그렇지. 어김없이 또, 비...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건 징크스가 아니라, 비가 내릴 거라고 분명히 말했던 일기예보를 내가 무시했던 결과일지도 모른다. 미리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던 나의 못된 습관이 오늘 같은 날까지 비를 맞게 한 것만 같다. 오늘, 그냥 보이던 우산을 들고 나갔으면 될 일을 굳이 무시하고 나가서 비를 맞은 거다. 하늘에서 갑자기 퍼붓는 비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거 마지막 경고니까, 이젠 우산 준비를 좀 하고 다니시지?’

 

 

살아가는 게 팍팍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날씨까지 이렇게 더해주면 정말 길바닥이라도 누워버리고 싶어진다.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위로의 한 자락을 찾아다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 늦은 시간, 고요하게 반복재생하며 듣고 있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라디오 찾아 채널을 고정하고 있다. 바람이 너무 불어 잘 들리지 않아서 볼륨을 높여야만 하는데도, 선뜻 라디오의 OFF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이 책의 제목처럼 나는 계속 ‘지금, 라디오를 켜 봐요...’ 중인 거다.

 

가끔 걸리면 뉴스 정도, 스치듯 드라마 잠깐 보는 편이어서 그런지, TV보다는 라디오를 즐겨 듣곤 한다. 흔히 말하는 ‘아날로그’를 좋아한다. 큰언니를 따라서 초등학교 때 처음 라디오를 듣기 시작해서, 중고등학생 때는 내가 직접 찾아서 들을 정도로 좋아했었으니까. 그것도 한밤중의 라디오를... 한밤의 라디오는 모든 감성을 총동원해서 끌어올리는 정점을 만들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루의 노곤함을 풀기 위해 누워있는 시간, 누군가는 낮과 밤이 바뀐 생활로 눈이 초롱초롱 떠져 있기도 하는 순간. 모든 것은 그 밤에 다 들려오는 듯 했다. 그 시간, 그렇게 전파를 타고 날아오는 음악들,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사연들, 결국은 살아가는 모양새가 비슷해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그렇게 나도 그 공감의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라디오...

그렇게 세상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서 들려오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욱 귀로 듣는 이야기들이 저절로 가슴에 담겨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여기, 그런 여자가 한명 더 있다. 신희수. 서른둘의 봄, 어느 날 문득 라디오에 손을 뻗고 들려온 디제이의 이야기와 음악에 위로를 받는 여자가 있다. 그 전파를 타고 날아와 가슴에 박혀 시린 가슴에 세상의 온기를 뿌려주는 사람, 이은세를 만난다.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두부로 위로 받던 여자 희수와 그런 그녀를 이해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배려해주는 남자 은세가 만나서 이루어가는 사랑이야기다. 얼핏 보면 일반인과 연예인의 만남쯤으로 생각하기도 쉽겠지만, 사실 그런 것보다는 내가 이 책에서 집중해서 느꼈던 부분은 그 여자 ‘신희수의 삶’이었다. 그 가운데 은세라는 인물은 신희수의 서른둘 나이에 시작된, 또 다른 인생의 조력자라고나 할까. 무언가 막연한 그 순간에 누가 불을 질러놓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것. 은세는 희수에게 그런 자극을 주는 사람이었다.

“부풀어 올라 흐릿해진 여름밤의 정경을 희수는 방울방울, 눈물로 떨구었다. 소리도 없이 눈물이 났다. 세상이 이다지도 아름다워 웃음 짓는 순간에도 눈물이 흘렀다. (183페이지)”

서른둘, 인생에 있어서 뭔가가 정해져있고 쌓아져 있어야 할 나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편적이다. 그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에게 준 1년이라는 안식의 시간이 정말 옳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여행에 대한 동경으로 사 모은 책들만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여행을 실행에 옮기고 싶은 순간...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은 마냥 불안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한 때 만난 은세는, 외로움과 막연함과 두려움으로 희수의 시야를 뿌옇게 가려버린 안개를 걷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오히려 희수의 새로운 선택을 지지하며 응원해주고, 같이 시작할 내일을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아마 은세 본인도 희수처럼 다시 일어나고 자라나는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철컥’ 소리와 함께 마음의 빗장이 풀렸다가 잠겼다가, 다시 풀리는 순간을 확인했을 때 쏟아지는 눈물은 오롯이 내 것이었다. 쏟아지는 비가 아무리 가려준다고 해도 본인은 알고 있으니까. 지금 이 눈물이 자신의 것이라는 걸...

 

 

한 여자의 서른 두 해가 누군가의 눈에는 눈물로만 채워져 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매. 모든 것이 어려웠던 때. 그래서 더 치열하게 앞으로만 달렸던 시간들. 당신 딸의 어깨에 지워진 짐이 너무 무거워보였지만 차마 그 부담을 덜어줄 수 없었던 엄마의 눈물. 서른 두 살의 나이에 아직도 결혼 안하고 혼자인 딸의 현재를 당신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만 같아서 더 애달픈 게 엄마의 마음이었다. 이제라도 그만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순간, 딸이 선택한 것이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는 여행이라 더 불편한 마음인 엄마였다. 그마저도 당신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아서 붙잡고만 싶은 간절함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의 마음이 그러한가 싶게 만드는 부분들의 이야기가 내내 가슴을 적신다. 그 누구를 이해할 것도 이해 못할 것도 없게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너무 콕콕 쑤신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보듬어지게 만드는 것은 가족이기에 가능한 것인가?

 

살아가는 그 순간의 위로가 되는 이야기다. 너무나 평범해서, 우리들의 엄마를 보는 것만 같아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지만 막막한 내일이 두려운 우리들 같아서... 이런 이야기, 차마 모른 척 하고 이해 안 된다고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순간순간 치받고 올라오는 감정들 때문에 화가 나게 만들면서도 끝까지 붙들고 있게 만드는 이기적인 책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은, 사람이 자라나고, 사랑을 하고, 정을 나누고, 마음을 키우면서 세상에서 담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다 들이부은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는 것...

사연을 싣고 들려오는 이야기에, 필수 옵션처럼 따라오는 음악에, 지금 들려오는 모든 것에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좋네, 라디오...

 

 

서른 두 살의 봄, 신희수에게 찾아온 위로가 나에게도 찾아올까? 비록, 전파를 타고 날아온 음성으로 시작되었지만, 이른 아침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 가게 앞에서 시작되었지만, 쥐구멍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어지게 창피한 모습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끝에서 조우한 것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용기이자 힘이었다는 것을... 서른세 살이 된 신희수는 알게 되었을 테니까.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알지도 못하는 음악 한 곡이,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기적처럼 나타난 것만 같다. 이제는 언제 어디에서 비가 내려도 괜찮을, 우산 하나가 준비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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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3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9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리 2014-11-0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리뷰 보고 라디오 구입했어용 ^^ 땡스투 눌리고 갑니다 ^^

구단씨 2014-11-11 16:56   좋아요 0 | URL
설리님 취향에도 잘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