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쓰는 남자, 드라마 찍는 여자
변정완 지음 / 청어람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라마 쓰는 남자 드라마 쓰는 여자』

 

방송국, 혹은 드라마, 대본, 연출, 배우, 작가, 피디. 엄마가 매일처럼 보는 드라마를 떠올려보면 어김없이 따라오는 단어들. 제목에서 이미 눈치 챌 수 있듯이 드라마 쓰는 남자(작가)와 드라마 찍는 여자(피디)의 이야기다. 짐 떠안듯 맡아버린 드라마가 망해버려 종방연조차 초라하게 치러야 했던 명수현 피디. 그에 반해 시놉시스도 보지 않고 드라마 계약이 가능할 정도로 톱의 자리에 앉아있는 드라마 작가 류민. 수현은 얼떨결에 맡아 망해버린 드라마로 자신의 드라마 역사를 쓸 수 없었고, 드라마 제작에 참여했던 삼촌에게 남겨진 빚더미를 그대로 볼 수만도 없었다. 기회는 단 한 번, 그 기회를 만들어줄 사람도 단 한 명, 드라마 작가 류민을 잡아야만 했다. 잔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베일에 싸여있는 그를 찾아다닌 끝에 만나게 되지만 그는 순순히 수현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그래도... ^^ 그렇게 끝나면 또 재미없는 게 이야기의 매력이 아니겠어.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 있는, 철저하게 갑의 자세로 서있는 류민, 류민 앞에서는 을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꿈을 위해 을의 바른 자세로 서 있는 수현. 두 사람이 함께 드라마를 만들어보자고 으쌰으쌰하면서 한 공간에 함께 하는 시간이 이어지고, 드라마뿐만 아니라 눈까지 맞아버렸네. 아, 이럴 경우 더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만들어질까? 기획부터 시작해서 머리 맞대고 최고의 작품을 만들고 싶은 두 사람일 텐데, 마음까지 하나가 되면 더없이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추측하지만... 뭐... ^^

 

큰 무리 없이 술술 읽히면서 소설로의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어느 정도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충도 보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관계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유명세가 주는 만족감에는 한계가 있어 보이고, 오히려 그 이면의 것들을 보게 한다.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고 승승장구 하는 게 꼭 좋은 것만 함께 따라오는 건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도 류민이 가졌던, 드라마 작가로써의 그의 천재적인 재능이 그의 삶을 완벽하게 해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재능이 일에 있어서 그 사람의 성공을 만들 수는 있어도 그 외의 것을 차단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거, 동전의 양면 같았다. 결국에는 좋은 사람과 함께 호흡하면서 또 그 관계의 회복을 배워가고 있었으니 해피엔딩이었지만...

 

드라마작가였다는 이력과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뭉친 사람들의 소재가 맘에 들어 읽게 된 소설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읽다 보면 어떤 장면이나 행동이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소설로 읽어가는 매력은 떨어진다. 특히 두 사람이 서로의 눈빛이 통하는 그 시작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같이 일하기로 하면서 합숙(?)하듯 시작된 생활에서 각자의 생활을 하고 가끔 회의하면서 얼굴 마주하다 뜬금없이 마음이 통해? 물론 그럴 수도 있지. 무리한 설정은 아니라고 본다. 근데 그 과정에 있어서의 묘사가 한 덩어리로 빠져나간 느낌이다. 작가가 소설로 내놓은 첫 작품이고 내가 가진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 소설과 내가 충분히 통하지 못했음이 안타깝지만, 기본 글 실력 어디 가는 거 아니니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다려본다. 드라마를 연상하게 되는 게 아닌 소설로의 매력이 더 많이 담긴 작품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하자면 좋은 사람 마음산책 짧은 소설
정이현 지음, 백두리 그림 / 마음산책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혼자서 밥을 잘 먹는 사람이다.

잘, 이라는 부사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된다. 자주, 라는 뜻과 담담히, 라는 뜻.

(작가의 말 중에서)

 

한때 나는, 밖에서 혼자 밥 먹어야 할 경우가 생기면 굶고 다녔다. 혼자 밥을 먹는 행위를, 트인 공간에서 나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그 모습을, 절대(!)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군가가 나와 일면식도 없는 타인일지라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어떤 강박증이었던 듯하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는 일인데, 그땐 그랬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나는 밖에서 혼자 밥도 잘 먹고, 혼자 영화도 잘 본다. 그 행위의 배경에는 ‘편하다’는 이유가 있다. 누구 눈치 보면서 배를 채우는 것도 불필요한 일이고, 보고 싶은 영화의 선택에 대해서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좋다. (영화를 다른 이들과 같이 보는 경우 취향이나 시간대 등 여러 가지를 맞춘다. 어디까지나 혼자 영화 볼 경우의 편리함을 말한 것이다.) 어쩌면, 나 혼자 뭘 하던 타인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면 괜찮다는 삶의 방식이 익숙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편한 건, 좋은 거니까, 라고 말하면서.

 

그러다가 불현듯,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을 보다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기도 하고, 한낮의 햇살이 너무 밝아 눈을 찡그리다가 눈물이 나기도 한다. 뭐야, 이거. 애써 다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정도야 뭐, 하면서 잘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뭐든지 쿨하고 담담하고 시크한 표정으로 무시해야 할 감정들, 아니야? 맞잖아. (맞는다고 말해줘...)

 

결국, 나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 한 방울은 ‘맞잖아.’ 에 반대되는, 그 말을 거부하는, ‘아니잖아.’ 라는 말을 하는 거였는지도 모른다. 괜찮다거나, 담담하다거나, 무시해도 좋은 게 아니었던 거다.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던 감정 하나를 들킨 거나 마찬가지였다. 정이현의 짧은 소설 『말하자면 좋은 사람』은 그렇게 묻어두고 싶은, 들키기 싫은, 그래서 생략하고 싶은 말들의 줄임표를 기어코 눈물로 표현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날카롭게 찌르고 살짝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순간의 어떤 감정으로 울컥거림을 뱉어내게 한다. 단편보다 더 짧고, 아주 잠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함께 한다. 그런데 이야기의 분량에 비해 다 읽고 나면 후유증은 너무 크다. 가슴 속을 서늘하게 만들었다가, 뒤돌아서서 쓸쓸하게 걷게 했다가, 잠깐 웃게 했다가, 그래도 뭐 괜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잠시 혼자였어도 괜찮은 것처럼.

 

가짜 인생을 만들어 혼자만의 또 다른 세상을 여행중인 아내(「비밀의 화원」)의 모습을 본 남편은 어땠을까. 하루하루의 삶이 버거워 바동거리는 게 현실인데 아내가 여행중인 SNS 속의 삶은 여유롭다. 그 여행이, 지금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을까? 아내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한 공간에서 함께 하고 있지만, 따로 떨어져 각자 다른 세상에서 사는 듯한 느낌을 맛보게 한다.

몇 번의 면접에 떨어지고, 아버지는 빌려준 돈 대신에 다 늙은 개를 데리고 오고, 갈 곳 잃은 듯한 이십 대의 청춘인 그녀(「견디다」)의 가슴 속은 얼마나 텅 비어 있을까. 잠깐, 아주 잠깐 그렇게 혼자인 거라고, 다가올 내일의 하루가 괜찮아질 거라고 누군가에게 듣고 싶지는 않을까...

존재감 없었던 누군가가 시간이 흘러 새로운, 주목받는 존재로 나타난다. 그에 반해 변한 것 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이미자를 만나러 가다」) 자신을 확인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지. 한때, 그 아이가 혼자였고 지금은 내가 혼자다. 북적거리는 그 시간 속에서 혼자인 나를 떠올리며 지나간 시간 속의 그 아이를 본다. 어쩌면 지금의 그 아이 모습에서 곧 보게 될 나의 모습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은 혼자가 아닌 무리들 속에서.

눈이 내리는 그 막힌 도로 위의 연인(「폭설」)은 그 폭설 속을 어떻게 뚫고 지나갈지 걱정이 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한 남자와 여자(「시티투어버스」)는 어떤 인연이 되어 있을 것 같다. 둘이었는데 혼자가 될 것 같은 느낌, 각자 따로 와서 둘이 되어 가는 느낌. 그 상반된 흐름 속에서 혼자이거나 둘이거나 하는 것은 크게 다름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계속되는 또 다른 그들의 이야기...

 

고립된 것 같고 혼자였던 그들은 외로웠을까?

외롭다는 감정이 꼭 혼자여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있어도 그 외로움은 자기 맘대로 잘도 찾아온다. 나 같은 경우 혼자 있을 때보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그 외로움과 친했던 적이 더 많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도, 누군가와 사랑하고 있을 때도, 좋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있을 때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들과 함께 찾아온 낯섦이 무섭고, ‘함께’라는 의무가 부담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자주 ‘혼자’인 편안함이 그리웠던 듯하다. 그런 생각을 들 때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고민도 했었고, ‘가끔 낯설어도 혼자인 것보다 여럿일 때가 낫겠지.’ 라고 판단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고, 혼자여서 외로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때, 그런 순간이었던 것뿐이다. 혼자였던 순간, 내가 그러고 싶은 순간이었을 뿐이라고. 그 순간이 잠깐일 수도 있고, 그 시간이 제법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괜찮은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 짧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느꼈을지도 모를 외로움은 혼자여서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풍경 같다. 혼자 걷는 사람, 혼자 밥 먹는 사람, 혼자 우는 사람. 그 안에 있는 나. 어쩌면 너. 혹은 우리.

 

전혀 알지 못하는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 비슷한 모습으로 서 있을 거로 생각하니 분명하게 설명하기 수 없는 유대감이 생긴다.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나의 등을 보는 것만 같다. 저자는 이 짧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에게서 서늘하고 쓸쓸한 기분을 느끼게 하면서, ‘이거 너잖아?’ 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니라고 대꾸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다. 맞다. 나였다. 길고양이와 한참 눈을 마주하고 있다가 걸음을 돌리고, 헤어진 누군가와 공유한 장소에 뜬금없이 발걸음하고, 뒤늦은 사과를 담은 듯한 편지를 보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뒤돌아서서 걷기도 하는... 근데 이런 게, 나 혼자만의 모습은 아니지? 어쩌면 견디듯 살아가는 이런 일상, 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의 개운하지 않은 잔여물,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함과 낯섦,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혼란스러워서 멍하기도 하는. 그러면서도, 그렇게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그렇지?

 

오랫동안 정이현의 글을 읽지 않았는데, 정말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짧은 글이 천천히, 가까이 다가온다. 평범한 듯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우리 살아가는 모습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기에 읽는 순간순간의 공감이 두근거렸다. 소리 내어 울지는 못하고 그저 흘러내리는 눈물만을 허락하고 있는, 어딘가에 있을 당신에게 저자가 조용히 전하는 메시지 같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옆차기 2014-07-1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이현작가님..아니시죠?? ^^;;;;;;
"그렇게 묻어두고 싶은, 들키기 싫은, 그래서 생략하고 싶은 말들의 줄임표를 기어코 눈물로 표현하게 하는"은 정이현 작가의 글을 아주 '잘' 읽어서 몸에 베인 문체가 스르륵 적혀버린 듯 해서
한참을 들여다 봤어요

구단씨 2014-07-21 10:35   좋아요 0 | URL
아...
아닙니다. ^^

이 책,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괜찮아서 읽은 느낌이 좋습니다.
서늘한 바람 불어올 때 가끔 생각날 것 같아요.

익명 2014-10-0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무척 좋아 댓글 달려고 로그인했습니다. 글솜씨가 정말 좋으세요 ^^ 역시나 서재의 달인이시군요 ! 말하자면 좋은 사람, 저도 기대보다 훨씬 좋게 읽었습니다. 책에 실린 글들 모두 섬세한 감성이 묻어나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글이더군요. ^^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무대 위의 문학 1
하타사와 세이고.구도 치나쓰 지음, 추지나 옮김 / 다른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외에는 할 말이 없게 만든다. 분노의 폭발과 슬픔을 품게 만드는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꾸준한 입소문에는 이유가 있는 거다. 살아가면서 선택하게 되는 많은 순간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던진다. 이 책의 매력은 생각을 쉬지 않게 만드는 것...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존자의 증언만한 진실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