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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남자, 여자. 이해와 공감 사이에서... 『내 누나』
누나 다섯을 가진 내 동생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자매들을 ‘언니’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남자들의 세계(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언니라는 호칭이 점점 사라지더니 언젠가부터 누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제법 잘 어울려 놀았는데, 지금은 서로에게 소원하다. 떨어져 살고 있기도 하고, 자주 통화하지 않는 탓인지 가끔 어색하기도 하다. 서로에게 볼일이 없으면 대화를 하지 않는, 남동생과 나는 딱 그런 사이다. 거기에다, 이 녀석과 얘기하다 보면, 동생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남자 사람과 얘기하는 것만 같아서 답답할 때가 많다. 특히 요즘에 집안일로 계속 통화하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내가 이 녀석과 대화하는 시간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오빠 없는 여자가 ‘나도 오빠가 있었으면’ 하는 로망을 키우듯, 남자도 누나의 로망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키운 판타지로 존재하는 오빠와 누나가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오빠와 누나는 피우지 못한 로망으로 접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 녀석은 자기 누나를 보면서 ‘여자는 집에서 이런 모습으로 지낼 거야.’라는 환상이 사라졌다고 했다. 다른 녀석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단번에 기대를 깨주려고 필사적이었단다. ‘누나'에게 키우는 로망 따위 버린 지 오래라고 했다. 막상 누나를 가진 이들은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도 오빠를 가진 친구를 엄청나게 부러워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친구는 절대 아니라고, 다 환상이라고 했다. 지금은 나도 오빠에 대한 판타지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사실 그런 기대는 사춘기 시절의 달콤한 성장제였던 듯하다.
마스다 미리의 『내 누나』는 이런 나의 경험과 많이 닿아 있었다. 나와 남동생, 내 주변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해서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남동생과 누나 사이의 대화가 평범한데, 그 평범함이 또 이상(?)하게 흘러간다. 또 그런 이상함은 익숙하다. 이들의 몇 가지 에피소드로 누나에 대한 환상이 깨짐과 동시에, 여자 남자 사이의 좁혀지지 않은 시선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정말 가까이하기엔 먼 그대(여자, 남자)란 말인가. 누나와 남동생 사이를 차치하고, 성별의 차이로 보이는 내용이 웃음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만든다.
“그러면 뭣 때문에 그렇게 피곤한 건데? 그 여자애랑도 잘 지냈을 것 아냐.”
“표면상으로는 그렇지. 생각해보면 뻔하잖아? 그 자리에서뿐이지. 그런데 그이는 ‘우리 빼고 여자들끼리 둘이 만나도 되겠네.’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더라니까. 그 여자애도 지금쯤 엄청 열 받아 있을 걸? 앗, 이 순간은 그 여자애랑 공감할 수 있을 듯.”
“다행이네...” (23페이지)
누나가 남자친구의 친구 커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들어왔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 남동생은 누나가 왜 그 시간을 피곤해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누나니까, 누나는 원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듣고 있는 듯하다. 남자친구 커플과의 모임에 참석할 수는 있다. 그 시간을 화기애애하게 잘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유감스럽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가득하다. 여자끼리 따로 만날 수도 있다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그 자리가 시댁의 불편한 동서 사이가 만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여인들이 그러했다. 그런 마음인데 여자끼리 따로 만나도 되겠다고 선뜻 말하는 남동생의 말을 이해하기는 어렵잖아.
“다녀왔어~ 으~~~ 피곤해. 회사 그만두고 싶다.”
“지금 그만두면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서 네가 인기가 없는 거야.”
“뭐가.”
“인기 비결은 결국 하나야.”
“뭔데?”
“공감력. 보라고, 너 같은 스테레오 타입의 남자가 해주는 조언이나 의견은 지겨울 정도로 듣잖아? 나 역시.”
“미안하게 됐네!”
“그런 것보다 그 순간의 공감력.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사랑해’가 아니라 ‘알아, 이해해’일지도.”
“진짜야?” (82~83페이지)
누나와 남동생의 대화는 대부분 이런 거였다. 같은 언어로 얘기하는데 전혀 다른 의미로 대화하는 듯하다. 일이 피곤하다, 그만두고 싶다, 하는 말의 숨은 의미를 봐야 한다. 하기 싫다고 바로 때려치울 수 없는 현실을 말하는 사람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입으로 그 피곤함을 표현하는 순간 따라오는 잠깐의 해갈을 찾는 거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런데 남동생의 대꾸에 인기 없는 이유까지 들먹이게 된다. 남동생은 그 '공감력'이란 결론에 무슨 별나라 구경하듯 신기해한다. 진짜야? 더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이상의 해석은 나에게도 무리다.
마스다 미리가 얘기하는 엄마나 다른 여자에 관한 것은 들어봤는데, 누나라 부르는 남자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세상의 모든 누나에게 존재하는 남동생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넓게 남자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아무리 읽어봐도, 그동안 무수히 들어오고 겪어왔던 여자와 남자의 생각과 태도의 차이를 거듭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게 언짢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남동생은, 동생이면서 남자다. 형제자매 사이의 다툼이나 생각, 살아가는 모양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내 누나』의 에피소드에서 그 차이와 함께 여자 남자의 차이도 같이 볼 수 있다는 거다. 그 안에서 내 남동생을 봤다.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짜증내는 내 모습을 봤다. 그래서다. 내가 이들의 이야기에 한참 끄덕였던 이유. 나는 이들의 이야기처럼 남동생과 둘이 살아본 적도 없고 친근하다고 느낄 정도로 가깝게 지내지도 않지만 공감했다. 서로 다른 별에서 사는 것처럼 대화하고,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도, ‘내 누나’의 말과 행동을 차분한 눈으로 다시 보는 그녀의 남동생 모습이 애틋했다. 그래서 남매인가 싶으면서, 내 남동생과 나 사이에서도 그런 애틋함을 찾을 수 있으려나 싶은 궁금증과 기대가 남는다.
마스다 미리 작품의 매력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일상의 에피소드라는 점이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남동생의 등장은 색다른 맛을 더해준다. 얼마 전 다녀간 남동생과의 대화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이 녀석과 아주 후련한 대화 한 번 해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