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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한유진은 악인인가?
읽는 내내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해 곱씹어보면서 생각했다. 살인은 범죄이자 악행이지만, 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오랜 시간 자리하고 있던 감정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를 악인이라 불러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건 며칠 전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는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나에게 '냉정하다'고 말했다. 엄마의 입에서 나온 '냉정'이란 단어는 독하다는 말과 동의어다. 내가? 다른 사람들도 모른 척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엄마의 말에 '내가 정말 냉정한 사람이면 이 정도도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에 한마디 더 했다. 냉정해야 할 대상 앞에서는 한없이 냉정한 게 맞는 거라고. 그날, 날이 새도록 생각했다. 나는 정말 엄마에게서 냉정하다는 말을 들을 인간인가, 하고. 결론은, 그날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만 반복할 수 있다는 거였다. 냉정해야 할 대상 앞에서 나는 한없이 냉정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그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선하고 악한 것으로도 구분할 수도 없다. 내 안에서 자리한 분노와 미움의 시발점을 찾아가야만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그 설명에서조차도 한마디로 결론 내릴 수 없을 일. 한유진의 행동을 보며 그 시작점을 따라가다가, 내가 그가 악인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게 되었던 기분과 비슷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려져 있던 일, 감정이 타인에 의해 조종되고 판단되어 살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상하게 그의 분노와 악행에 동조하고 있었다. 이 녀석, 절대 열어서는 안 될 것처럼 꾹꾹 눌러 담고 있던 것이 폭발하니, 이제야 숨 쉬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악인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비로소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 스스로 부른 재앙, 발작전구증세였다. 운명은 제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운명이 내게 자객을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139페이지)
한밤중의 피 냄새. 유진이 마주한 장면은 거실에서 죽은 어머니와 자기 몸에 말라붙어있는 피의 흔적들이다. 2시간 반 동안의 기억이 없는 그는 어머니 죽음의 원인을 바로 알아채지 못한다. 어머니는 왜 죽었나, 누가 죽였나. 그의 기억 퍼즐이 하나씩 꿰어 맞춰지면서 시간을 역주행한다. 어머니의 죽음 시점에서 과거로 흘러간다. 그의 악의 시발점이 시작되었던 그때로.
유진에게 내재한 악이 무엇이기에 그런 인간이 되었나. 어머니 노트 속의 기록이 진짜일까. 오래전 기억들을 되짚는 그가 말하는 게 100% 진실일까. 유진은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가 가진 모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것뿐이다. 특히 분노나 미움 같은 것을 더 드러내지 못했던 듯하다. 흘러가는 이야기로 추측해보자면, 유진은 터트려야 할 감정을 제때 표현하지 못한 채로 사채 이자 불어나듯이 폭발지점의 압력이 점점 커졌을 것이다. 그렇게 터져 나온 게, 두려움을 보며 희열을 느끼거나 그 짜릿함으로 자신을 통제할 약을 대신하는 거였다. 이상하게 발작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맡아지는 냄새. 물비린내나 피비린내 같은 것이 맡아지는 방향으로 킁킁거리며 발을 뗀다. 누가 부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동이다. 한밤중의 달리기, 그 길 끝에서 두려움의 포식자가 되는 쾌감. 참지 않아도 되는 분노의 시간과 은근하게 내려다보는 듯한 지배자 같은 시선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 건 아니었을까.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준다면 그보다 더한 쾌감이 없었다. 타인이 느끼는 두려움이 그를 숨 쉬게 했다. 그의 안에서 꾸물거리던 무언가가 이런 황홀감으로 둔갑하여 모습을 드러낸다.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처럼 여겨지는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다. 답답한 방안의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고 숨을 들이마시는 느낌. 방법이 잘못되었지만, 그가 찾아낸 방법에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 오랜 시간 짓눌려온 그가 찾은, 그만의 생존방식이었다.
그날 밤, 오뎅과 발맞춰 걷기 시작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해독의 실마리를 찾았다. 더하여 내가 무엇에 끌리는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겁먹은 것에게 끌렸다. (188페이지)
내 몸은 소리를 죽이기 시작했다. 숨 쉬듯 욱신대던 뒤통수가 평온을 되찾았다. 숨소리는 목 밑으로 잦아들고, 갈비뼈 안에선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 배 속에서 공처럼 구르던 긴장이 사라졌다. 오감이 날을 세웠다. 몇 미터 거리가 있는데도, 겁먹은 것의 축축하고 거친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세상이 엎드리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들이 길을 열고 대기하는 느낌이었다. (283페이지)
유진에게는 이모가 처방한 약이 아니라, 이모의 진단에 한없이 동조하는 어머니의 의견이 아니라,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 날'의 일을 드러내고 얘기하는 것, 강요된 선택이 아니라 한 번만이라도 그의 선택을 허용하는 것들이 필요했던 거라고. 악을 이야기하고, 그런 악을 행하는 유진이 악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알게 된다. 살인을 저지르고, 자기의 안위(어쩌면 생존까지도)를 위해 해서는 안 될 일까지 하게 되는 게 악인이라면, 유진을 악인이라 불러야 한다면, 악인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의심과 오해로 탑을 쌓아 가두면 악인이 될 거라는 걸. 우리 본성 어딘가에 존재할 그 악의 모습이 이렇게 드러나는 게 끔찍하지만, 유진의 이야기로 나는 한 번 더 내 안에 있을 그 본성을 생각하게 됐다. 그게 단순한 의심이든 오해든 명확해진 분노의 원인이든,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는 일이 분명 있었고, 살인이 범죄만 아니라면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싶은 가정도 떠올려 본 적이 있다. 악은 유진처럼 특정한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내가 다 발견하지 못한 내 안에 숨어있는 건지도 모른다. 단지 수면 위로,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던 것뿐이다. 끔찍하게도 말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거슬리는 일(사람)을 눈앞에서 제거하는 일. 저자는, 살인을 그 문제 해결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말로 대신했다. 살인이 문제 해결의 방법이라면, 그럴 수 있다. 말이 되지 않을 것도 없다. 그 후에 따르는 도덕적인 문제, '말이 되는 그림을 그리는 게 도덕'이라고 할지라도, 누가 봐도 유죄인 그의 살인이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도 분명한 일이다. 유진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안의 악의 존재를 확인함과 동시에 악인을 결정짓는 그 지점을 보게 한다. 그가 자라온 환경과 진실은 그의 살인을 이해하는데 설명이 될 뿐이지 무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 마지막까지 나를 붙잡아줄 이성과 우리가 정해놓은 규칙 안에서 지켜야 할 도덕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