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비타민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8
양호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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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일단 한숨부터 쉬고 마음을 가다듬자.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내뿜는 한숨으로도 그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여전히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가슴에 얹어있었다. 영화 <그놈 목소리>에서 유괴된 아이의 엄마 역할을 했던 배우 김남주씨가 주먹으로 가슴을 치는 장면을 찍으면서 열연을 한 나머지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지. 이 책이 딱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맨주먹으로 내 가슴을 저절로 치게 만들었다. 열연이 아닌 실제가 되어 가슴을 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무관심, 학교폭력, 내 아이만 감싸기, 당근과 채찍을 구별 못하는 못난 어른들이 만들어낸 상처들.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만 남아있게 되면 어쩌나 싶은 근심과 걱정이 내 가슴을 가득 채웠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학생 한명을 납치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왜 그 아버지는 학생을 납치하려 했던 것일까? 학교 일진이면서 짱으로 통하는 아이의 무리들이 학교폭력으로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고서도 여전히 무엇을 잘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의 미래를 운운하면서 구했던 용서가 아이의 미래를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의 가정은 망가졌고 가해자는 여전히 신나게 학교와 학교 밖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그게 범죄인지 인식하지도 못하고 장난이라 여기면서, 다른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는지도 모르고 즐기면서,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용서와 보살핌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신나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이런 스벌루미 같은 스발로미야~ 뒈지고 슆냐~ 뒈질래~”

이야기를 듣다보면 너무 잔인해서, 정말 이들이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과 행동으로 보여주던 것들이 두 눈을 꼭 감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저자에게 묻고 싶어진다. “이거 정말이에요?” 물으나마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실제로 내 눈으로 목격한 것도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나, 여중생들한테 둘러싸여서 집단 린치 당할 뻔 한 적도 있다.) 모든 학생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학생들이 있다는 거, 그 뒤에 두 눈 똑바로 뜨지 못하고 제대로 못 보는 어른들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책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보고 듣고 해오던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가득 담겨 있었다. 조카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녔던 한 아이가 생각난다. 머리에 노랗게 물들이고 절도를 일삼고 학교 결석을 밥 먹듯이 하던 아이가 결국은 어린 폭력배가 되어 그 나이에 파출소와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것을 봤을 때는 그저 한 가정의 부족한 관심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초지종을 알고 보니 그건 모두가 나 몰라라 했던 문제였던 것인데, 아이의 결석을 학교에서는 학업 분위기 망치는 아이가 안 나오니 적당히 체벌하였고, 집에서는 아이가 학교에 가는지 안 가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고, 아이가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 선처하여서 풀어준 절도죄의 처벌들은 그냥 훈방조치 정도였었다. 그런 일들이 겹치고 쌓이다가 그 아이는 진짜 전과자가 되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이 책 속에서 그대로 만나고 보니, 너무 생생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꼭 감고 싶었다. 이 책에서는 한 아이가 당한 학교 폭력의 피해가 결국은 한 가정을 무너지게 만들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게 우리 집의 일이 아니라고, 우연히 그냥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건 그냥 이야기일 뿐이야.’ 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잘 비벼진 영양 많은 비타민이었다. 악마를 키우는 아주 최상급 품질의 비타민. 무관심과 어설픈 배려로 만들어진 용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가벼운 마음들이 이런 지독한 악마를 양성해 내는 것이다. 잘못을 잘못인줄 모르고, ‘힘으로 누르는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라는 엉터리 같은 가르침들, ‘다음번에는’ 이라는 조건부로 넘어가는 일들. 아이들의 문제라고만 할 수 없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안에서 어른들이 단단히 한몫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주변을 잘 둘러봐라. 지금도 누군가의 입 속에 그 악마의 비타민을 넣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태균아, 지금도 그 노래 쒼나게~ 부르고 있니?
“이런 스벌루미 같은 스발로미야~ 뒈지고 슆냐~ 뒈질래~”
정말, 내가 이 노래를 너에게 불러주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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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세계사 창비청소년문고 5
이영숙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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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라는 단어만 들어도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데, 학교 다닐 때 거의 6년 동안 이 단어를 어떻게 참고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 아마 거의 무시하고 살았기에 그 시간을 견디었는지도 모르겠고 그 덕분(?)에 세계사 시험은 늘 하위권에 머무는 기록을 세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역사를 포함해서 더 크게는 그 세계의 역사를 공부하고 알아간다는 건 역시나 쉬운 일도 아니었고 그저 재밌기만 한 일도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근데, 이 책 참 가독성 있다. 나에게 정말로 싫다고 인식되어 왔던 그 이야기들이 이렇게 새롭게 다가오니 페이지가 저절로 넘어간다. 엄마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 이 책의 흐름은 그래서 더 편안한 느낌으로 부담감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우리가 식탁에서 거의 매일 보는 것 같은 재료들의 역사가 이 책 안에서 시작된다.
다양한 먹을거리로 만들어지는 감자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익숙하게 만다는 프렌치프라이, 엄마가 가끔 쪄주시는 간식인 찐 감자, 녹말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그 감자가 아일랜드의 역사 속에서 함께 해왔다는 사실. 요즘은 저염식으로 많이 음식을 해 먹지만 여전히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소금, 그 소금이 간디의 비폭력 저항과 함께 해 온 역사. 내가 변비 때문에 매일 아침 우유와 함께 갈아 마셨던 바나나와 간식으로 주로 먹던 빵. 한국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으로 이루어진 칠레와의 교류에서 빠질 수 없는 포도,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아편전쟁까지 가져온 차. 그리고 후추와 돼지고기, 닭고기, 옥수수 등등.
매일 쉽게 볼 수 있는 음식과 재료들이 어떻게 세계사 속에서 함께 해왔는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라고 말했다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불행한 삶을 살았던 여인이 아니었나 싶게 다른 모습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강대국이 힘을 발휘해 약소국의 많은 것들을 빼앗은 이야기, 계절이 다른 나라와의 지혜로운 교류, 껍질을 벗기고 먹으면 마냥 맛있게만 느껴졌던 바나나의 실체, 흔해빠진 값싼 농작물인 것 같은 옥수수가 점점 귀해진 자태를 자랑하는 모습, 뱃사람들의 괴혈병을 막아주었다는 후추의 힘까지.

 

아, 다 읽고 나서 보면 내가 매일 먹어왔던 그 모든 음식들이 그저 음식들로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때로는 잔인하고 때로는 거친, 강한 힘을 가진 나라들과 약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던 그 수많은 일들 사이에서 음식과 그 재료들이 가졌던 의미들이 같이 내 입 속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우리가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대하는 식탁, 그 위에 오르는 음식들을 통해 세계사의 한 부분들을 즐겁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새롭기도 했고 상당히 흥미로움으로 입맛을 돋우기도 했다. 냠냠, 쩝쩝, 후루룩후루룩. 이제 그 매일 먹는 음식들, 음식을 만드는 재료에 포함되는 향신료들, 빵이나 과일들 등등 그동안 내가 봐왔던 모습 그대로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뭐랄까, 이 음식들이 그 세계사 속에서 참 많은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
특히나 나처럼 역사와 세계사를 잘 알지 못하고, 알아가기도 전에 부담과 두려움으로 멀리 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천천히 이야기로 들리는 것 같은 이 책의 흐름이 그 부담을 확 줄여줄 것이니 편하게 첫 페이지를 넘겨도 좋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개인적인 바람은 이런 책이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을 것 같은 작은 바람이 있다. 의류나 신발, 술, 그림 등등 하나의 묶음으로 다시 들려오는 세계사 이야기 흥미로움으로 계속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펼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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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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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고 싶은 일상의 연속일 때나 아니면 너무나도 무료한 삶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을 때 우리는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사랑은 감은 눈을 뜨게 만들기도 하고 가슴을 들뜨게 만들며 세상의 빛이 더 환해보이게도 만든다. 『끌림』안의 그 여자 마거릿에게도 그런 빛이 필요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신마저 죽고 싶은 마음에 생을 놓아버렸음에도 여전히 자신은 숨 쉬고 있었으며 자신의 사랑이었던 헬렌은 자신의 남동생인 스티븐과 결혼했다. 여동생 프리실라는 곧 있을 결혼식에 들떠 집안은 뒤숭숭하다. 조용히 눈만 깜빡이면서 사는 삶 속에서 자신이 들이마실 공기는 없는 듯하다. 그러던 중에 알게 된 악명 높은 교도소 밀뱅크. 마거릿은 숙녀라는 신분으로 밀뱅크를 방문하기 시작한다. 여수감자들에게는 숙녀와의 교류를 통한 정숙을 배우고, 마거릿은 자신만의 글을 쓰기 위해서 여수감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어낼 무언가를 위해. 밀뱅크에 수감된 영매 셀레나 도스를 알게 되면서 마거릿은 자신의 삶을 더 환하게 해줄 무언가에 가슴이 움직이고 자신 안의 꾹꾹 눌러 있던 것들을 드디어 토해내고 표현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꿈꾸었던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의 삶과 사랑과 미래를…….

살짝 이해가 안 되는 시작이었고 무거운 분위기 때문인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다.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렇게 더디고 음침한 것 같은 시작으로 줄곧 분위기가 이어질까 싶은 마음에도 결국은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독자의 몫으로 던져진 것은 내가 풀어헤쳐야 하니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와 마지막 한 부분의 반전-어쩌면 예상했던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지 않았다-을 위해 그렇게 표현해오고 서술해왔나 싶었다. 결국 마거릿이 생각하고 원했던 사랑의 모습은 환영받지 못하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여자로의 삶만이 인정되는 것이었는지. 영혼으로 이어지는 사랑도 우연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인가? 사랑이라 생각하고 그 사랑을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도 아니었단 말인가? 더 깊은 좌절과 어둠 속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그게 마거릿이 믿었던 사랑이란 말인가.

마거릿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배경이 되는 1870년대의 상황을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빅토리아 시대라 부르는 시기, 여자는 결혼을 하고 대저택의 안주인이 되어 그 역할과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 정석인 시대였다. 반면 마거릿은 아버지를 따라 자신의 일을 하고 싶었던 여인이다. 결국 아버지의 죽음으로 자신이 잠시나마 꿈꾸었던 미래는 사라지고 정신은 피폐해졌으며 그저 숙녀라 불리는 (나이든) 아가씨일 뿐이었고 사회생활이 아닌 그 시대의 여자로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여자가 정신적인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배경을 생각해보면 마거릿이 비밀스럽게 자신의 일기를 책처럼 쓰기 시작하고 밀뱅크에 다녀온 일들과 여수감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던 은밀함이, 마거릿으로 하여금 셀레나 도스에게 더 마음을 의지하게 만든 계기가 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강신회를 열다가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영매인 셀레나가 감옥에 갇혀 육체적인 자유를 꿈꾸게 되는 것과 자신의 삶을 위해 훨훨 날고 싶었던 마거릿의 영혼의 자유를 꿈꾸던 것이 만났으니 서로에게 이보다 더 좋은 교류는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들은 사랑이란 것을 했다. 영혼을 통한 교류로 좀 더 깊게, 간절하게……. 우리는 처음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보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한다. 마거릿의 영혼이 자유로워지기를,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정신적인 자유를 누리기를 바라면서 읽게 되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일기로 이루어져 있다. 마거릿의 일기와 셀레나 도스의 일기. 마거릿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밀뱅크를 출입하기 시작하던 때부터 시작하는 일기와 셀레나 도스가 밀뱅크에 갇히기 전의 시간이 기록된 일기. 처음에는 두 일기 사이의 시간 차이가 무엇을 말하고자 이렇게 그려지나 싶었는데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난다. 그래서일까, 진행되고 있는 시간이나 두 사람 각자의 마음이 기록된 두 권의 일기는 너무 상반된다. 마거릿의 일기는 밀뱅크에 드나들고 셀레나 도스를 만나면서 한줄기만 보였던 빛이 온 창을 통해 들어오는 환한 빛으로 보이는 장면들이었고, 셀레나 도스는 영매로 명성을 떨치던 삶에서 밀뱅크 감옥에 들어오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일기였으니까. 그리고 두 사람이 교류하면서 사랑이란 이름을 키워가고 있을 때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되는 비극은 아무도 감지하지 못했으리라.

여인의 삶으로 살아야 하는 것과 갈망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한 몸부림과 누군가와의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간절함이 동시에 담겨 있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 결혼을 하고 이어지는 여자의 삶과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삶이 대조되어 보이고 있고(마거릿과 여동생 프리실라의 모습으로), 그만큼 자신의 삶을 위한 자유를 꿈꾸는 마거릿과 감옥이란 곳에서의 탈출로 자유를 꿈꾸는 셀레나 도스의 모습이 그렇다. 그리고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모든 인생의 틀이 깨어져버린 마거릿이 갖고자 했던 것은 남은 가족과 소통하지 못하는 이해가 아닌 자신이 스스로 이루어가고 만들어가는 관계였다. 그게 비록 여자와의 사랑이라 하여도.

 

결국 우연은 없는 것일까?
처음부터 끝까지 보이는 마거릿의 모습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보였던 우연은 그녀의 삶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 같았다. 우연, 인연. 비슷한 말로 갖다 붙여도 다 허용되고 가능하게 들릴 수 있는 감정들이었다. 답답하리만치 슬펐던 마거릿의 우연을 응원했다. 그게 그녀의 자유를 향해 가는 즐거운 길로 보였으니까.

"셀리나, 당신은 곧 태양 아래 있겠지요. 당신의 000는 성공했어요. 당신은 내 심장의 마지막 실을 가졌어요. 궁금하군요. 그 실이 느슨해지면, 당신이 그걸 느낄까요?"

살아가는 모든 순간의 우연과 끌림은 어디까지일까. 그 우연의 어디까지를 인정해 줄 수 있을까. 정말 사랑이 우연으로 시작되는 것일까?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본 우연과 사랑, 감정의 끌림. 내가 보았던 그것만이 전부일까? 제발 그건 아니라고 말해줘…….

세라 워터스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첫 번째로 만난 작품이다. 완벽하게 내 맘에 들어차지는 않았지만 한번 이상은 만나보고 싶은 작가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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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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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현상(사건)을 두고 보는 사람에 따라, 어떤 생각으로 어떤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 각자가 서술하는 내용이 달라진다. 객관적으로 풀어서 정답이 나오는 수학이 아닌 다음에야 기억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더욱이 그게 서로의 시각차이로 만들어질 수 있는 오해까지 더해진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서로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오해라면 풀어야 할 것이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끝을 봐야 개운해질 것이기에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는 서로 얼굴 보고 쑥스럽거나 민망해서, 혹은 정말 말하기 어려워서 등등 많은 이유로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거. 그럴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편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왕복서간』에서 보여주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편지로 하여금 사실, 혹은 각자가 말하고 싶었던 진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것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편지라는 도구(?)를 이용해 각자가 알고 싶었던 또는 각자가 말하고 싶었던 진실을 드러낸다. 말할 수 없는 시간들을 흘러 보내고, 핑계 삼아 얘기하자면 말할 기회를 놓치고, 조금은 각자의 이기심을 섞어 말하지 않았던 것이 나중에서야 드러나는 것.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자 열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누가 누구를 단죄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우연처럼 주고받았던 편지에서 알게 된 진실들일 뿐이었다.

모두 세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십 년 뒤의 졸업문집>, <이십 년 뒤의 숙제>,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 세 편의 이야기는 각각 십년, 이십년, 십오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오래전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어 들려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그려지는데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느려도 너무 느리다. 손으로 쓰는 편지로 이야기하고, 인편을 통한 배달을 거쳐 상대의 손에 닿고, 읽고 나면 다시 답장을 쓰는 형식이다. 느려도 너무 느린 이들의 서술 방식에 어쩌면 조금 답답해 보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그것이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의 매력이다. 그만큼 더 솔직하고 진실 되게 보일 수 있는 장점을 담고 있다고 보인다. 일방적으로 자기들의 입장에서 쏟아내는 이야기가 아닌, 한번 말하고 한번 듣고 하는 형식이다. 그러니 저절로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한 번 더 생각한 다음에 답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답장을 한번 받을 때마다 서로가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어떤 사실을 알게 되고, 다르게 생각하고 있던 오해를 풀게 만든다.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사람들의 진심도, 사실은 누군가의 부재가 실종이 아니라는 것(<십 년 뒤의 졸업문집>)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누구는 보고 누구는 보지 못했던 상황을 각자가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십 년 뒤의 숙제>)도, 친구의 죽음 앞에서 충격으로 잃은 기억이 어디까지 사실로 인지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순간(<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도. 모든 것은 다 드러내고 풀어내는 순간에야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편지라는 매개체로 말이다.

자칫 구식으로 보이는 이 편지 주고받는 것이 때로는 가장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서로를 더 가깝게, 무거운 마음은 홀가분하게, 막혀 있던 어떤 것은 뚫어주기도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 많은 괴로운 일들을 그 한마디로, 없던 일로 치부하면 안 돼. 0을 곱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222페이지) 모든 사실이 드러난 순간 아무 일이 없었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숫자에 0을 곱하더라도 그 답은 0이 되는 것처럼, 0이 되는 그 순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 다른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해보게 된다.

서로가 주고받는 편지가 늘어갈 때마다 조금씩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했고, 막상 이들이 어느 순간 주고받는 편지가 마무리 될 때쯤에는 사실을 알게 되면 굉장히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결말을 볼 것 같았는데 딱히 그러지도 않았다. 편지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오히려 이들은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더라.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되어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이제서라도 사실과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된 이들이 새로운 시작을 하는 기분으로 오늘을 살아갈 모습을 떠올려 보니 딱히 나쁘지 않다.

가끔은 통화보다는 문자나 이메일(요즘은 손으로 편지 써서 부치고 하는 것이 드물기에)이 더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어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말로는 못할 표현도 문자 속의 이모티콘 하나에 표정을 담을 수도 있고, 얼굴 보고 표현 못할 마음 속 이야기도 이메일로는 조금 더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보면, 굳이 손으로 쓰는 편지가 아닌 문자나 이메일로 하고 싶은 말이나 마음을 표현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단, 이 책 속의 이야기들처럼 누군가의 죽음이나 오래전 일의 진실을 드러내어 가슴 아픈 시간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면 더 좋겠지.

촛불 아래서 쓰는 편지에는 ‘친애하는’은 물론이고 더 쑥스러운 표현도 쓸 수 있을 것 같아.(186페이지)
이 구절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 두 가지는 역시나 밤에 쓴 연애편지는 다음날 아침에 한 번 더 읽어보고서는 보낼 수 없다는 것과, 아날로그가 주는 묘미와 악필이더라도 몇 글자 적어 보내는 편지의 맛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조금은 더 마음속의 진심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이 책 속의 인물들이 편지로 지난 시간의 죄책감을 해결하듯 고백하는 느낌들은 조금 다른 분위기였지만, 내가 생각했던 ‘편지’라는 단어가 주는 맛은 아마도 설렘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 ‘더 쑥스러운 표현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표현의 담대함을 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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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헤어졌어요
신경민 지음 / 북노마드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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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슬픔을 뒤로 하고, 오늘, 오래전부터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항상 손에 쥐고 있었던 책을 펼쳐들었다. 이 책을 읽는데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음을 알고 있는데도 잘 넘기지 못했던 페이지들이었다. 한 페이지씩 넘기다 보니 왜 읽지 못했는지 알겠다. 읽는 것이 아닌 담아야할 마음들이었는데, 그저 활자로 눈에 담으려고만 했으니 더디게 넘기면서, 그나마도 페이지를 편하게 잘 넘기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는 바로 그거, 사랑 그리고 이별. 누구에게나 있을 수도 있고 사라질 수 있는 이야기들인데도 각자의 가슴 속에서는 늘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 잡아있는 일이기에 더없이 생생하고 아릿한 일. 이상하게도 사랑한다거나 힘들다거나 아파서 슬프다거나 하는 그런 뚜렷한 고백이 없는 느낌으로 풀어가고 있는 이야기. 어떻게 보면 사랑 앞에서 밋밋한 감정 같은, 이별이 슬프지 않은 것만 같은 것으로 들려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안다. 소리 내어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없어지는 감정들이 아니니까.
한밤중에 들려오던 목소리가 아닌 마음의 소리는 그렇게 활자로 다시 다가왔다.
 


사랑이, 그래.
아무리 마음을 다르게 먹고 시작해도 결국은 그렇게 되는 일.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어려운 일.
그래서 시작과 동시에 마음도 파도를 타게 되는 일.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계속 흘러가도 될 것만 같고.
그래서 더 두근거릴지도 모른다고 마음대로 생각하는 일.



이별이, 그래.
시간이 조금 흐르기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일.
그러면서 상처는 남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일.
너의 상처 말고 나의 상처의 깊이가 더 깊게 보이는 일.
그래도 자꾸만 너의 탓으로 돌리고 싶게 투정부리는 일.
나는 뒤돌아서서 가면서도 너는 그 자리에서.
조금 더 머물러주었으면 하는 이기심을 발휘하는 일.





 

사랑이, 그래.
확인을 받고 싶어 자꾸 물어보게 만드는 일.
귀찮더라도 소리로 듣고 싶은 일.
자꾸 보채고 매달려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것도
괜찮은 것만 같은 일.
내일이 아닌 지금이 그냥 좋은 일. 봄이, 기다려지는 일.











이별이, 그래.
조금씩 무뎌지게, 사라지게 되기를 바라는 일.
언젠가는 사라질 기억처럼 생각하고 싶은 일.
절대 빨리 흘러가지 않을 일.
사랑이 그렇게 왔던 것처럼.
이 녀석도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일.
결국은, 두 손을 내려놓아야 하는 일.





디지털 시대가 세상을 점령하게 되더라도 라디오와 종이책은 절대 사라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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