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비타민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8
양호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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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일단 한숨부터 쉬고 마음을 가다듬자.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내뿜는 한숨으로도 그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여전히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가슴에 얹어있었다. 영화 <그놈 목소리>에서 유괴된 아이의 엄마 역할을 했던 배우 김남주씨가 주먹으로 가슴을 치는 장면을 찍으면서 열연을 한 나머지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지. 이 책이 딱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맨주먹으로 내 가슴을 저절로 치게 만들었다. 열연이 아닌 실제가 되어 가슴을 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무관심, 학교폭력, 내 아이만 감싸기, 당근과 채찍을 구별 못하는 못난 어른들이 만들어낸 상처들.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만 남아있게 되면 어쩌나 싶은 근심과 걱정이 내 가슴을 가득 채웠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학생 한명을 납치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왜 그 아버지는 학생을 납치하려 했던 것일까? 학교 일진이면서 짱으로 통하는 아이의 무리들이 학교폭력으로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고서도 여전히 무엇을 잘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의 미래를 운운하면서 구했던 용서가 아이의 미래를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의 가정은 망가졌고 가해자는 여전히 신나게 학교와 학교 밖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그게 범죄인지 인식하지도 못하고 장난이라 여기면서, 다른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는지도 모르고 즐기면서,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용서와 보살핌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신나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이런 스벌루미 같은 스발로미야~ 뒈지고 슆냐~ 뒈질래~”

이야기를 듣다보면 너무 잔인해서, 정말 이들이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과 행동으로 보여주던 것들이 두 눈을 꼭 감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저자에게 묻고 싶어진다. “이거 정말이에요?” 물으나마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실제로 내 눈으로 목격한 것도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나, 여중생들한테 둘러싸여서 집단 린치 당할 뻔 한 적도 있다.) 모든 학생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학생들이 있다는 거, 그 뒤에 두 눈 똑바로 뜨지 못하고 제대로 못 보는 어른들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책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보고 듣고 해오던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가득 담겨 있었다. 조카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녔던 한 아이가 생각난다. 머리에 노랗게 물들이고 절도를 일삼고 학교 결석을 밥 먹듯이 하던 아이가 결국은 어린 폭력배가 되어 그 나이에 파출소와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것을 봤을 때는 그저 한 가정의 부족한 관심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초지종을 알고 보니 그건 모두가 나 몰라라 했던 문제였던 것인데, 아이의 결석을 학교에서는 학업 분위기 망치는 아이가 안 나오니 적당히 체벌하였고, 집에서는 아이가 학교에 가는지 안 가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고, 아이가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에 선처하여서 풀어준 절도죄의 처벌들은 그냥 훈방조치 정도였었다. 그런 일들이 겹치고 쌓이다가 그 아이는 진짜 전과자가 되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이 책 속에서 그대로 만나고 보니, 너무 생생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꼭 감고 싶었다. 이 책에서는 한 아이가 당한 학교 폭력의 피해가 결국은 한 가정을 무너지게 만들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게 우리 집의 일이 아니라고, 우연히 그냥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건 그냥 이야기일 뿐이야.’ 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잘 비벼진 영양 많은 비타민이었다. 악마를 키우는 아주 최상급 품질의 비타민. 무관심과 어설픈 배려로 만들어진 용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가벼운 마음들이 이런 지독한 악마를 양성해 내는 것이다. 잘못을 잘못인줄 모르고, ‘힘으로 누르는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라는 엉터리 같은 가르침들, ‘다음번에는’ 이라는 조건부로 넘어가는 일들. 아이들의 문제라고만 할 수 없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안에서 어른들이 단단히 한몫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주변을 잘 둘러봐라. 지금도 누군가의 입 속에 그 악마의 비타민을 넣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태균아, 지금도 그 노래 쒼나게~ 부르고 있니?
“이런 스벌루미 같은 스발로미야~ 뒈지고 슆냐~ 뒈질래~”
정말, 내가 이 노래를 너에게 불러주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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