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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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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이별을 하고, 그 흔적으로 무덤이란 것을 만들고,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찾는 무덤에서 또 다른 사랑이 피어난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지. ^^ 비명횡사한 남편의 무덤을 매일 찾는 지적이고 고상한 여자 데시레와 유일한 가족이었던 어머니의 무덤을 찾는 농장을 운영하고 자신이 키우는 젖소와 농작물에만 관심 갖는 남자 벤니의 만남이다. 서로가 눈이 마주쳤던 그 순간 각자의 생각-왜 있잖아, 그럴 때 동상이몽이라고 하잖아-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참 달콤한 것 같으면서도 너무 현실적이라 웃음만큼이나 눈물이 난다. 흑.

소똥 냄새 풍기면서 사는 남자와 고상함과 우아함을 걸치고 사는 여자의 사랑이 참 괴리감 있게 그려지고 있었다. 분명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를 그리고 애달파 하고 절절하다. 그런데 그 달콤함 만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고 작정이나 한 듯이 두 사람의 모습을 정말 섬뜩하리만큼 생생한 현실을 보는 듯 했다. 두 사람의 맞지 않는 성격, 서로가 다르게 가지고 있던 이상향, 각자가 가지는 공간의 최소한의 독립마저도 포기해야만 가능한 사랑으로 보였다. 집안에서 살림하고 자신의 농장 일을 돕고 자신의 아이들의 엄마가 될 여자와의 결혼(!)만을 바라는 남자의 사랑, 자신이 이루어가고 있던 꿈과 재능도 없는 집안일 보다는 할 줄 아는 것을 우선으로 중요시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결혼보다는 지금의 연애를 더 꿈꾸는 여자의 사랑.

어떤 상황을 앞에 두고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를 모를 때, 이 책을 만난 느낌이 딱 그거였다. 우스갯소리처럼 늘 들어왔던 말, 각각 금성과 화성에서 온 이성을 놓고 하는 말들이 이 책에서도 등장한다. 너무나도, 지독하게, 현실적으로다가. 남자와 여자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외모에서부터 성격, 사고방식, 그리고 그 외의 여러 가지가 같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서로가 맞추어가면서 이루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증명하듯 보여주기도 한다. 꼭 결혼이 아니어도 사랑을 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들을 보여줄 수는 있으나 그렇게 되기까지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사랑이 대단한 것도 알겠다. 그런데 말이지. 점점 나이를 먹어갈 수록, 이런 이야기를 읽을수록-나는 이 책의 이야기가 마냥 허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만큼 현실의 남녀를 그대로 보여주는 책도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맹신을 버리고,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생각만 쌓여간다.
철없던 시절 누군가와 헤어진 이유가, 어느 배우의 이름을 틀리게 기억했던 애인을 지적했다는 게 이유라고 말한다면 다 웃겠지? 그런데, 그랬다. 애인과 그 애인의 친구와 같이 있던 자리, 어느 배우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그 배우의 이름은 이거라고 말했는데 애인은 그게 아니라고 자신이 기억하는 이름으로 우기고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나는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내가 좋아하는 배우였단 말이야.) 이름이었기에 그게 아니라고 정정해주었다. 결과는 내가 말한 배우의 이름이 맞았고 그이는 친구 앞에서 자신을 자존심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이별을 고했다. 이런 밴댕이 소갈딱지, 나를 능가하는 뒤끝 작렬이었다. 별 수 있어? 나도 쿨하게 (십팔색 크레파스를 들먹이면서) 뒤돌아섰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아, 세상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음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여전히 지금도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고, 특히나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일들 앞에서는 그 이해할 수 없는 범위가 너무나도 넓다. 여자인 나도 그런 것을, 남자의 입장에서 봐도 마찬가지겠지?

데시레와 벤니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차례로 들려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연애소설이라고 했다. 읽는 동안 분명히 느꼈다. 이 책은 연애소설이라고. 분명 연애소설이 맞긴 한데 이렇게 기대감과 상상을 마구 깨버리는 연애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냐고. 뭔가 달콤한 향기도 막 풍겨주고,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외치면서도 부러움에 떨게 만들어야 하는 게 연애소설의 임무 아니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슨 심리학 강의를 소설로 듣는 기분이었는데, 그게 나쁘거나 언짢은 게 아니라 매 장을 넘길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해서 목이 아플 지경이었지. 남자와 여자가 연애를 하는 이유, 어떤 일을 앞에 두고 싸우는 이유, 그리고 해결하는 방식이 기가 막히게 들려온다. 언제쯤 남자와 여자는 금성이고 화성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같은 행성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졌느냐 아니냐는 묻지 마라. 홀딱 깬다. 게다가 이 이야기의 후속편이 있다는 거~ 재밌을 것 같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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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G
앨런 라이트먼 지음, 이은정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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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인간의 진화론이나 종교적인 해석의 창조론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저 떠오를 뿐이지 어떤 식의 접근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늘 있어왔다. 과학적인 면으로나 종교적인 면으로나 거기에 맞는 받아들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함부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여러 가지 시선으로 지켜보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 다양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 호기심과 즐거움을 가져올 수도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 그리고 그 모든 분야의 해석들이 한군데로 모아지면 좀 더 깊은 해석의 거대한 이론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해본다.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흥미로웠던 『Mr.G』
G’가 뜻하는 것은 God다. 즉 세상을 만든 조물주. 긴 잠에 빠져 있던 젊은 신(神) Mr.G가 눈을 뜬 그 순간, 아무것도 없는 절대 무(無)의 공간 ‘보이드’에서 숙모와 삼촌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을 인지한다. 여기서 Mr.G는 우주를 만든다. 늘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싶어 했었던 Mr.G는 어느 날 시간을 만들어내고 공간과 우주를 만들어낸다. 그러던 중에 지능 있는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벨호르를 만난다. 벨호르는 Mr.G가 직접 만들어낸 인물이 아니고 우주의 생성과 함께 생겨난 초월적인 존재로 보인다. 성서에서는 사탄에 해당된다는데 이 책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벨호르는 Mr.G가 만들어낸 우주가 비극적인 마지막을 장식할 거라 예언하고, Mr.G는 벨호르의 말을 듣고 이대로 계속 새로운 우주와 생명체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과학소설에 담긴 휴머니즘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 것인지가 더 궁금하게 만들었던 시작이었다. ‘과학’이란 단어가 주는 그 어려움과 복잡함이 가져올 딱딱한 설명일 거라는 생각에 선뜻 집어 들지 못하는 책들이 있었는데, 이 책은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 안의 훈훈함이 같이 담긴 과학과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었다. 물론 이 책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주의 탄생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알려주고자 하는 의미가 더 크다. 지금 내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지금의 이 순간까지 왔는지, 인간의 처음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진화되어 오고 변화되어 왔는지를 보여주고자 한 이야기다. 옮긴이의 말처럼 ‘인간이 왜 별에서 왔다고 하는지 아니?’하고 평소에 우리가 궁금해 할 호기심을 완전 해결해주는 무슨 해설집 같은 느낌이다. 늘 있어왔던 우주와 인간의 창조에 대한 궁금증은 저자가 풀어내는 그 방식으로도 충분히 만나볼 수 있는 해답이었다. 우주와 생명체(나는 이것을 인간이라고 생각했다.)가 탄생하게 되는 그 이유와 탄생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결국은 죽음이라는 것으로 소멸하기까지 하는 모습들이 많이 낯설지는 않았다. 그 진행에서 만났던 ‘알람-104729’라는 우주와 가끔씩 나타나서 Mr.G에게 시비를 걸듯 심도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벨호르와 신에게 존재하는 삼촌과 숙모의 등장이 가져오는 아이러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와 생활을 통해서 들려주는 우주 안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새 우주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의식들이 가져오는 깊은 사고들, 통제와 조종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 같은 그 공간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진보하는 문명을 보고 놀라고, 소멸해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인정하게 되는 많은 것들을.

생명체가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사람이 죽는 일이 자연스러운 현상 중의 하나로 보이기도 한다. 결국 영원불멸은 없다는 말일 것이다. “죽음은 어떤 물질도 피할 수 없어요.” (159페이지) 우주를 만들어내고 그 안의 것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보면서 그것을 만들어낸 젊은 조물주는 책임감과 상실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고뇌한다. 분명하게 느껴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본인이 늘 무언가를 창조해내고 싶어 했던 단순한 호기심과 즐거움이 아닌 생명체를 만들어낸 것에 대한 책임은 간과할 수 없으므로…….

과학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을 같이 이야기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 적정선을 지키면서 설명을 하듯 이야기로 풀어가는 구성이 흥미롭다. 우주가 어느 하나의 입장에서만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는 경험이었다. 다양한 학문적 측면에서 그 균형을 이루어내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저자가 가진 과학적인 지식과 신학, 그리고 철학적인 시선과 다양한 신화의 차용까지도 다양하게 적용시켰던 점에서도 많은 시선들을 보여주었으며, 빅뱅으로 탄생했다는 우주가 결국은 그 종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과정을 볼 때는 소멸해 갈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러한 많은 것들에 대한 정보를 들려주는 것처럼 내용은 자칫 딱딱할 수도 있으나 저자 특유의 위트로 즐겁게 들을 수 있게 한다.

‘그럴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상상했던 것들을 이 책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듣는 기분이다. 우주가 만들어지던 그 과정은 너무 신기하면서도 자연스러웠고, 그 안에 존재하는 지능 있는 생명체의 진화는 당연히 그래야 했던 것처럼 보였다.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가는 부분들을 보면서, 마치 내가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신이 아니므로 지구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신에게 비춰지겠지. ^^
더불어, 조금은 더 이 책에서 들려주던 과학적이고 숫자로 표현된 설명들을 이야기하고 싶으나, 그것은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을 위해서 남겨둔다.

나는 창조주이지만, 피조물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 하나가 정신은 스스로의 안식처라는 사실이다. 타고난 조건이나 환경, 심지어 생물학적 긴급 사태를 무릅쓰고도 정신은 용케 실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신은 찬 것으로 뜨거운 것을, 혹은 뜨거운 것으로 찬 것을 만들 수 있고, 추함에서 아름다움, 아름다움에서 추한 것을 만들어냈다. 제 스스로 법칙을 만드는 것이다. 18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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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춘씨에게도 봄은 오는가
네온비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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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구수하게 들리는 기춘씨.

그에게 봄은 정말 오는지, 제목처럼 궁금해지게 만드는 이야기~!

 

 

왕년에는 기춘씨도 잘나갔다. 본인의 외모에 상당한 자뻑을 즐길 만큼 잘나갔단 말이다~!

 

장미의 저주가 있기 전까지는.

 

장미의 고백을 매몰차게 거절한 기춘씨는 그래도 된다는 마인드~!

왜? 자신이 생각하기에 썩 괜찮은 남자니까~!

 

하지만 그것도 다 한때.

지금의 기춘씨는 처절하게 외롭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연애도 한번 못해보고~ 절친 현동이만 그 마음을 알아줄 뿐이고~

 

그러던 중.

기춘씨의 마음에 들어온 링링~! 링링에게 고백한 기춘은 바로 거절당하고, 기춘의 절친 현동은 기춘을 돕기로 하고 링링에게 접근(수상해~ 흐음~)하고~ 늘 그렇듯 사랑은 어긋나야 재미있고~ 기춘은 다시 또 외롭고~

 

 

늘 연애에 실패, 아니 연애 시작도 못해보고 차이는 기춘씨는 언제쯤~! 봄을 맞이할 것인가~!

 

 

언제든 연애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모태솔로 기춘씨. 봄날을 맞이하고 싶은, 연애를 위한 기춘씨의 처절한 몸부림이 눈물이 아닌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웃겨도 되는 거야? 가서 기춘씨를 좀 위로해줘야 할 것 같은데 웃음이 나서 손을 뻗을 수가 없잖아. 기춘씨~! 힘 내~! 봄이 왔잖아~!

 

 

 

운이 좋았던지 우연인지 모르게 내손에 들어온 이 책이 나른하고 졸렸던 주말을 즐겁게 했다. 이렇게 햇살 좋은 봄날(사실은 얼굴이 그을리기 딱 좋은 봄날) 불량 연체자라는 오랜 시간의 명예를 이어가듯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나온 오늘, 기춘씨 때문에 엄청나게, 제법 현실적인 기춘씨의 일상에, 하지만 웃음을 빼놓지 않는 그 답답하고 찌질하게 그려지는 이야기에, 잠깐 무료했던 주말을 날려본다.

재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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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아이 - 제1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8
이은용 지음, 이고은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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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은행의 문을 두드려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결혼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시절에 혼자 늙어갈 외로움이 두려워 나와 함께 할 아이 한명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친구가 꺼낸 단어였습니다. 정자은행. 그 말에 저는 친구에게 물었지요. “내가 바라는 대로 원하는 유전자를 받을 수 있을까? 많이 활발한 O형의 혈액형이었으면 좋겠고, 아이가 키가 컸으면 좋겠고, 나에게 부족한 언어적인 두뇌가 뛰어나 외국어를 잘했으면 좋겠고, 얼굴이 작고 예뻤으면 좋겠고, 엄마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여자 아이였으면 좋겠고…….” 그 말에 친구가 대답을 해줍니다. “내가 너에게 밀가루 한 봉지를 사줄게. 이걸 반죽해서 네가 원하는 모양대로 인형을 만들어. 그리고 단단하게 굳혀서 평생 데리고 살아!” 그럴 수는 없다는 말이었지요. 아이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듯이, 부모 역시 아이를 골라서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 서로가 서로를 스스로 선택해서 맺어지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데, 왜 저는 꼭 제 맘에 드는 아이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마음이었을까요.

그런데 아이를 골라서 태어나게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요? 이 책 『열세 번째 아이』를 읽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시우의 엄마는 시우를 그렇게 태어나게 했으니까요. 머리는 짙은 갈색으로,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된 키는 187센티미터 정도로, 성격은 판단력이 뛰어난 냉철한 이성을 가진 남자 아이로 시우를 태어나게 했습니다. 2075년 그때는 뭐든 맞춤형으로 만들어낼 수 있나 봅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로봇부터 자신의 아이까지 말이지요.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딱 맞추어 태어난다면, 태어난 아이도 그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부모도 서로가 생각이 엇갈려 싸우거나 대치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겠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가르침으로 살아간다면 평화로운 시간은 계속될 테니까요. 그렇게 행복할 테니까요. 그런데 말이지요. 그게 정말, 행복일까요? 누구에게요?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012년과 먼 미래의 2075년은 크게 다르지 않나 봅니다. 감정보다 이성이 우위여야만, 살아갈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으로 보입니다. 무엇이든 월등하고 우수해야만 존재 가치가 부여되는 사회,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사회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 거기에 따라야만 하는 의무감이 필수인 곳. 감정이 넘쳐흘러서는 안 되며 냉정한 이성을 가진 자가 앞서 가는 것이 너무 익숙한 현실이 되어버린 곳이지요. 이미 그렇게 살아온 어른들이 맞춤형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치열한 그 시간들을 견디듯이 살아온 인생 선배의 입장에서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우위에 있기를, 남들보다 더 안전하게 앞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다가오거든요. 부모들은 자신들이 아이였을 때 가졌던 그 생각들이나 바람들은 어른이 되면서 어느 순간 점차 희석되어지고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자신들이 아이였던 시간들은 기억에서 아예 사라지기도 합니다. 입장이 바뀌니 부모들의 생각만 남아있을 뿐이니까요. 부모의 입장에서 보고 부모의 입장에서만 하는 말들이 옳은 것으로만 판단되는 자리에 있게 되었으니까요. 정녕, 오래전 아이였던 자신들의 그 시간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나요? 아이였던 시간을 건너 뛰어 어른이 된 순간만 간직하고 싶은가요?

아이들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75년의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 2012년의 아이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요? 제 눈에는 크게 달라 보이지가 않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이 부모가 정해준 스케줄대로 하루를 움직이고 미래를 결정짓는 것처럼 2075년의 시우와 시우의 친구들 역시도 부모의 조종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보여줍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가야할 길이 정해진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이라는 것은, 새로운 개발로 태어나는 로봇들뿐입니다. 그것마저도 계급이 정해져 있습니다.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소유하는 로봇의 레벨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단일 감정의 로봇이냐 아니냐의 차이. 소유한 장난감이 바뀌는 정도의 것으로만 여겨지는 소소한 일상 중의 하나일 뿐인 것이지요.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냐, 사는 동네가 어디냐, 부모가 가진 부의 정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어울리는 무리들이 달라지는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보아왔던 모습입니다. 현재에서 6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그 시간에 달라진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야. 분노와 증오도 할 줄 알고, 기억까지 있어. 언젠가 인간을 위협할지도 몰라.”
인간의 이기심으로 만들어낸 많은 것들의 부작용은 언제 어디서든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업그레이드 된 장난감으로 여겼던 감정 로봇들은 인간보다 더 감정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대항하고 있었고, 인간은 로봇들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조종이 불가능해지자 폐기처분 해버립니다. 인간과 로봇의 전쟁 아닌 전쟁이 일어난 것이지요.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겨야만 끝이 나는 전쟁. 하지만 우리가 무엇보다도 더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단순히 로봇과 인간의 대치가 아닌, 왜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이지요. 맞춤형 아이 1호인 김선 박사가 결코 자랑스러움만 가졌던 것은 아니라는 것과 로봇들의 반란과 시우의 반항으로 보이는 행동. 그 세 가지의 공통점을 제대로 봐야 합니다. 그러한 현상들이 보여주려고 애쓰는 게 무엇인지를요. 본인들의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들 속에서 꾹꾹 눌러 담았을 어둠을 봐야할 때입니다.

시우 VS 레오? NO! 시우 = 레오!
냉정한 이성으로 채워진 강한 아이를 만들고 싶어서 거기에 맞게 태어난 시우에게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만들어진 기억을 주입시킨 감정 로봇 레오는 너무 달라 보입니다. 감정 따위 필요 없는 것처럼 살아온 시우에게 레오가 드러내는 감정들은 부담이고 거추장스러운 것입니다. 반면 감정 로봇인 레오는 시우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에게 입력된 감정들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친구가 되고 싶고 가족이 되고 싶은 것이지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시오와 레오가 그렇게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시우와 레오는 너무 닮은 아이들입니다. 엄마에게 조종당하는 인생을 살아왔고 또 그렇게 계속 살아갈 시우와 인간에게 조종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로봇 레오는 너무 닮았거든요.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미래가 주체적인 것이 아닌 정해진 대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의지와 목소리는 묻혀버리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삶을 살아가야할 둘은 너무 닮았습니다. “로봇으로 만들어진 레오 =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시우” 그래서 결국 두 아이가 가지는 슬픔과 분노와 끌려가는 미래에 대한 생각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말이지요. 하지만 긍정적인 것도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감정 로봇 레오와 이성적인 인간 시우처럼요. 레오가 감정을 나누어주고 느끼게 해주었던 것과 시우가 레오에게 제 발로 찾아간 것은 같은 마음으로 보입니다. 진심이 통한 것이라고. 결국은 그 순간 인간이기에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간성과 진심을 시우와 레오 그 아이들 스스로가 서로에게 찾아낸 것이라고…….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만들 수는 없어. 내가 그런 존재도 될 수 없고. 나는 신도 아니고 그 아이들의 아버지도 아니니까…….”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내고 무엇을 죽이고 있었던 것일까요. 누구를 위해 그렇게 만들어내려 애쓰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이가 바라는, 진짜 행복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면서 계속 해왔던 것일까요. 그 모든 것들을 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정말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알려주어야 할 것들을 알고나 있었던 것인지요.
부모, 당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당신은 완벽한 부모였나요? 혹시 아이를 통한 대리만족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나요? “모두 널 위한 거야.” 이 한마디로 아이를 조종하려 하지는 않았나요? 치열한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경쟁 사회니까요.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것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었던가요? 아이가 경쟁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앞서 달려가는 것보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서로가 진심으로 먼저 보듬어주고 지켜봐 주어야할 가족의 일원으로 보는 시선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어려운 일일까요? (웃음) 저도 쉬울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인간이기에, 하루하루를 부모와 자식이라는 자리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보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어서라는 것을 혹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는지요. 매 순간 서로의 존재감으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는, 부모는, 아이 인생의 조력자가 되어야지 조종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우리의 아이들은 비교할 대상이 없습니다. 존재 자체가 “0번째” 아이니까요.

《장시우 프로젝트》

성장과정이나 감정상태, 진로가 정해지고 조종되었던 장시우 프로젝트. 더 이상 만들어지고 조종되어지는 인생을 살아가는 시우가 아닌, 시우 자신이 만들어가는 ‘진짜 장시우 프로젝트’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걸맞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성은 감정을 사랑해야 하고, 감정은 이성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성과 감정은 우리 안에 늘 공존해야 조화를 이루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은 감정이 있고, 감동을 할 줄 아는 존재이기에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걱정하지 않아도 돼.”
“조금 늦어진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너처럼 결정이 늦어지는 아이들이 있어. 엄마가 저러는 건 네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탁월하다고 믿기 때문이야.”
“문제가 생겼다는 건 특별한 일은 아니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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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의 품격]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공항의 품격
신노 다케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윌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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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근두근 설레는 감정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공항’이란 장소를 두고 이런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하다니 재밌고 좀 놀랍다. ^^

곧 서른 살이 되는 여행사 직원 엔도(‘나’라는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그려진다.)는 나리타공항에서 근무한지 3개월째다. 6년간 사귄 애인과도 헤어지고. 공항에서 일한다고 하면 화려하고 좋은 것만을 연상하는 주변 사람들과는 달리 그가 소속된 여행사에서 공항근무란 한직이다. 그들만의 전문용어로 ‘아포양’. 나름 성깔이 있어 공항에 잘 적응하지는 못하지만 여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고, 본사에서 범한 사소한 잘못을 원만하게 덮어주는 전문가를 아포양이라 부른다는 것이다.(42페이지) 말 그대로 궂은 일 다 하고 몸이 열 개 이상이어야 안심모드로 근무하는 곳이다. 대부분 어느 정도의 경력을 채우고 밀려나는 사람이 오는 곳이라는 근무처인데 아직 서른도(!) 안된 엔도는 구석으로 밀려나듯 젊은 나이에 공항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그곳의 사건사고들은 오늘도 계속된다. 풋~풋~풋~!!!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오는 그곳, 공항. 외관상으로 보이는 그 규모만큼이나 단어에서 풍기는 어감이 상당히 크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참 다양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예약해 놓은 여행을 떠나려 하지 않는 노부인, 허락받지 못한 결혼으로 불길한 예감을 우울해하는 신혼부부, 가족여행에서 혼자만 남겨진 소년. 우리의 주인공 엔도는 이들의 모든 사연을 접수하고 해결해야만 한다. 그게 아포양의 임무이자 자세이니까. ^^ 그리고 이어지는 엔도의 활약은 재미있고 떠날 날을 기다리던 엔도가 그곳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감동이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오늘도 아포양 엔도가 있기에 나리타공항 이상 무!

누군가에는 꿈을 꾸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눈물과 함께 하는 이별을 떠올리게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스치듯 지나치면서도 우연과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언제 어디서든 다시 또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많은 장소들이 있다. 공항도 그 중의 한 곳이리라. 내가 생각하기에는 저절로 진지해지고 가라앉을 수 있는 분위기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공항에서 이런 유쾌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좀 의외다. 단순한 소개 글로 봤을 때는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막상 펼쳐들었을 때는 내내 웃음을 지으며 읽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곳이기에 그들만의 사연도 많을 수밖에 없는 곳, 그래서 공감이란 이름으로 더 함께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이야기들이었다. 특히나 그곳에 종사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 여객이 아닌 직원으로 보는 공항이란 세계는 참 많이 달랐다. 살짝(정말 살짝이야.) 반성한다. 가끔 맘에 안 드는 것들 해결해내라고 고객센터 전화해서 진상 고객 짓을 한 것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의 많은 감정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안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비슷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나서 다행이었다. 재미와 감동이 충분했던 이야기들에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일상들이 많은 공감을 불러오지 않았나 싶다.
하늘로 날아오른 무거운 금속 덩어리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길을 잃지 않고 찾아와 무사히 여기에 내려앉는다. 테크놀로지와는 인연이 먼 문과계인 나에게는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일이다. 사람이 만들어내 기적, 예술과도 같은 장치. 공항은 그 예술의 일부다. 그리고 예술은 우연히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노란색 회전등을 단 몇 대의 차가 유도로를 오가며 점검 작업을 벌인다. 매일 반복되는 저런 끊임없는 노력이 이 예술을 완성시킨다. 그것이 이 아름다움의 본질이다.(168페이지)

작가의 이력이 재미있다. 여행사에 근무하던 작가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고 3년 후에 글을 가지고 나타난다.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한 작가는 자신의 이력을 충분히 살린 『공항의 품격』으로 공항 그곳의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들려주는 듯하다. 그 후속작인 『연애의 품격』도 곧 나온다니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아, 원래의 제목은 『아포양』이라던데 지금의 제목도 참 잘 어울리는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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