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전쟁 - 내 냄비 속에 독이 들어 있다고?
주자네 셰퍼 지음, 마정현 옮김 / 알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과한 정보와 걱정이 만드는 게 독. 『웰빙전쟁』

 

겁나게 하는 제목에 비하면 내용은 참 소박하다. 하지만 진지하고 무겁다. 그동안 우리가 음식에 대해 했던 생각의 변화를 끌어오기도 하고, 지켜가며 먹어야 할 식탁 문화도 언급한다. 무엇보다, 과한 걱정이 불러오는 음식의 공포를 다시 보게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편식하긴 하지만, 음식에 관한 알레르기는 없다. 그래서 음식을 가려먹는 건 오롯이 취향의 차이로 행했던 일이다. 굳이 알레르기가 없다면 가릴 이유 없이 다양하게 먹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냥 입에 안 맞는 것만 가리는 편이었다. 이 책을 읽다가 보니 나는 참 음식이나 식재료에 관심 없는 인간이었나 보다. 건강 중독의 시대에 별생각 없이 아무거나 먹어왔던 거다. ‘그게 잘못된 건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계속 읽어보니, 이 책은 먹는 것에 대한 우리의 걱정이 좀 과하지 않는가, 하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먹지 말아야 할 이유가 너무 많은 거다. 그런데 그게 정말 이유가 되나? 혹시 우리가 어떤 염려증 때문에 너무 앞서갔던 건 아닐까? 먹는다는 건 기본적인 행위이고 본질적인 문제이지만, 요즘에는 그 기본에 더해진 온갖 말들과 연구들이 그 걱정을 더 하게 한다. 웰빙전쟁이라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 부분에서 과한 걱정을 내려놓으라고 듯하다. 물론 그 내려놓음의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강박으로 우리가 먹는 음식의 해로움을 정신적으로 쌓아왔다면, 이제는 그러지 말고 조금 더 여유롭게 먹는 것을 바라보자는 의미로 들린다.

 

먹는 게 스트레스가 되면 말 그대로 독이 될 것 같다. 맛있게 먹어야 보약이 되는 음식이 해가 되어 내 몸에 쌓이면 불안을 품는다. 검증되지 않고 비과학적인 건강 비법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가 된다. 거기에 웰빙을 따르고자 하는 욕구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먹지 말고 피해야 하는지 하나씩 살펴보면서 취사선택하게 한다. 저자의 말처럼, 요즘 건강중독의 시대인데,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식탁에서 결정되는 것 같다. ‘잘 살고 싶다면 먹지 말라는 시대’라는 조금 이상한 이 말이 왜 시작되었는지 물으며 답을 끌어온다. 많이 먹는 것이 부유하고 미덕이었던 시절이 지나, 과하게 먹는 게 건강을 해치고 문제가 되는 시대에 사는 우리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넘치게 먹으며 과체중이 되고, 비만은 온갖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많이 먹고 적게 먹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웰빙의 덫. 내가 먹는 일에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이 덫의 이유가 된다. 사회적인 지위 유지에 그 ‘웰빙’이 조건이 되는 거다. 좋은 것을 먹는 것을 넘어서서, 나쁜 것을 먹지 않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독이, 모두 진짜 독일까?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 가짜 독이 판을 친다. 특정 체질에 치명적인 성분이나 농약 같은 성분은 사람에게 분명 독이 되지만, 과학이나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독이 우리 건강 염려증을 높이는 거다.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생기는 과한 걱정이다.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말들로 쌓는 불안이 독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전문적이고 다양한 예로 그 불안의 원인을 설명한다. 거기에 또 소비자가 어떤 집단에 의해 어떻게 속고 있는지도 볼만하다.

 

어떻게 먹어야 잘 먹고 잘사는 것일까? 조심해야 할 것과 무시해야 할 것을 구분하는 눈을 키워야 할 듯하다. 여전히 나는 그 먹는 것에 큰 부담이 없이, 먹고 싶은 것 먹고 먹기 싫은 것 피해가곤 하지만, 또 내 몸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섭취해야 할 것도 꾸준히 듣고 있다. 그게 섭취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 게 함정이지만... ㅠㅠ 어쨌든, 이 책으로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우리가 독이라고 생각하는 게 전부 독은 아니며,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이 다 못 먹는 건 아니라는 거. 그런 것들로 우리 건강을 해치는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정보와 지식으로 우리 식생활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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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이주송 지음 / 하늘붕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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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 이렇게 사랑스럽고 이렇게 예쁜 이야기를 읽게 된 게 너무너무너무 기쁘다. 이렇게 웃기고 울리는 소담이 때문에, 아니, 소담이네 동네 사람들 때문에, 아니아니, 산타클로스를 데려오고야 말았던 사람들의 따뜻함 때문에 너무 좋아서 막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선물이란 건 예쁜 인형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공주처럼 샤랄라한 옷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을 이루게 해달라는 것, 그게 가장 크고 멋지고 아름다운 선물인 거였다. 일 년에 딱 한 번, 산타클로스는 그 선물을 배달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거였다. 그런데 그걸 무시해? 똑바로 일 못 해? 근무태만이고만!!! 이리 와, 혼 좀 나야겠어!!!! 그래서 당신을 사기죄로 고소한다!!

 

 

 

뭇사람이 산타클로스의 죄를 말하길!

선물을 미끼 삼아, 울면 안 된다고 아이들을 을러댔으니 공갈협박죄요.

굴뚝을 통해 남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으니 주거침입죄요.

여권과 비자 없이 제멋대로 국경을 넘나들었으니 영공 침해와 밀입국죄라.

하지만 가장 큰 잘못은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이를 지키지 않았으니! 그건 사기죄라!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매년 12월 24일만 되면 야간근무가 필수요, 상황에 따라서는 연장근무도 불사해야만 하는 노동자 산타클로스가 고소를 당했다. 그것도 일곱 살 소녀에게 말이다. 죄목이 뭐냐고? 사기죄다!! 일곱 살 소담이에게 거짓을 말한 죄가 어마어마해서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도다. 착한 일 하면 선물 들고 찾아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은 죄,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준다고 은근 협박하여 울지도 못하게 한 죄, 무엇보다 크리스마스이브, 산타에게 선물을 받겠다고 간절하고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그날 하루를 위해 일 년 동안 울지 않고 착한 일 하며 그 긴 시간 기다리게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죄가 크더라 이 말이다.

 

 

일곱 살 소담이는 착한 아이다. 동네에서도 인사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 유치원에서도 다른 아이들은 막 어질러놓고 그냥 가는데 소담이는 그걸 또 다 정리하고 간다. 집에서도 할머니 심부름을 잘한다. 집 안 청소도 소담이가 하려고 앞장선다. 할머니의 아픈 어깨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안마도 톡톡톡 매일 해드린다. 주사를 맞을 때 아픈데도 참는다. 울면 안 돼,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울 거야, 라고 다짐하면서 눈물을 꾹 참는다. 오직 한 가지 소원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서다. 산타클로스가 주야장천 노래로 그 규칙을 정하지 않았던가! 우는 아이에겐 선물도 안 준다고 했다. 오늘 밤에 다녀가실 때 그걸 다 파악하고 선물을 주고 간다고 했다. 그러니 말 잘 들어야 한다. 착한 일 해야 한다. 절대 울어도 안 된다. 그래서 일 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다. 산타클로스가 다녀가실 때 선물을 꼭 받을 수 있도록!!

 

 

그런데.... 그런데.... ㅠㅠ 산타클로스가 안 왔어~!!!!!!!!

이게 말이 돼? 일 년 동안 노력했단 말이야! 엄청나게 기다렸단 말이야! 받고 싶은 선물이 있었단 말이야!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 착한 일도 계속 했다고! 인사도 얼마나 잘했는지 알아? 울고 싶을 때 많았는데 울지도 않았어! 주사도 아팠는데 울지 않고 참았다고! 넘어져서 무릎에서 피가 났는데도 안 울었어! 왜냐고? 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때문이잖아~!!!!

 

 

소담이는 슬펐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 얼마나 노력하면서 기다렸는데 안 오신단 말인가? 오늘 밤에 다녀가신다고 하더니, 왜 안 다녀가신 거냐고요! 그래서 옥탑방 고시생 청달이 아저씨한테 부탁했다. 같이 경찰서에 가자고, 산타클로스를 데려다 달라고 말하자고... 휴우... 청달이는 그런 소담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경찰서까지 끌려가기는 했으나, 차마 이 말도 안 되는(?) 고소를 할 수가 없어서 경찰서 문 앞에서 소담이와 승강이를 벌인다. 그에 억울한 소담이는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청달이는 우는 소담이를 달래느라 힘들었던 그때, 사람들은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고, 경찰서 민원실 접수 직원은 말도 안 되는 일로 귀찮게 하지 말라며 소담이와 청달이를 내친다. 그 상황은 모두 동영상으로 촬영되고 TV에 나오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그 사태를 보고 동심을 몰라준다며 경찰서를 욕했고,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지 못한 소담이의 문제를 누가 해결해줘야 하는지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책임인지 묻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급기야 인터넷에는 소담이를 응원하는 팬카페가 생기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산타클로스의 문제를 논의한다. 그리고 청달이는 소담이의 변호인이 되어 산타클로스를 고소했다.

 

 

 

산타클로스~ 소담이의 얘기를 듣고 보니 당신은 문제가 많다. 그것도 아주 많다.

사람들은 못됐다며 산타를 욕했다. ‘선물을 주려면 기분 좋게 그냥 주지, 눈물을 흘리면 선물을 안 주겠다니, 어디 무서워서 울겠는가!’ 라며 협박죄를 적용했다. 또,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알고 있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안다는 거지? 감시나 도청, 미행 등의 불법을 저질렀다는 건가? 그래서 산타에게 사생활 침해, 즉 비밀침해죄를 물었다. 그리고 오늘 밤에 다녀가신다고? 깊은 밤에 몰래 다녀가는 당신은 주거침입죄까지 저질렀던 것이다. 소담을 응원하는 카페의 마왕은 더 깊은 죄를 묻는다. 산타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어떤 나라도 그에게 비자를 발급해준 적이 없다는 것!! 결국, 산타는 영공 침해와 밀입국을 일삼았다는데... 듣고 보니 참, 산타의 죄가 크다. 이렇게 많은 죄를 저지르고도 한 번도 붙잡히지 않았네? 인터폴은 뭐하는 것이여?

 

 

그래서 소담이의 고소 건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고소장이 접수되었으니, 검찰로 넘어가고, 산타는 피의자가 되어 재판이 진행된다. 여러 증인이 출석하고, 왜 산타가 피의자가 되어야만 하는지 구구절절 읊는다.

“판사님, 소담이 나이 이제 겨우 일곱이에요. 그런데 그걸 다 참아냈어요. 그 정도 했으면 선물 받아야지요. 백번 양보해도 이번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잘못했네요. 제 생각은 그래요.” 동네 미장원 사장님도 이렇게 증언하지 않았는가. 판사의 판결 봉이 울릴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결론은 이미 났으니까. 산타가 잘못했네, 뭐. 늦었지만 이제라도 용서해줄 테니, 선물을 내놓으시라~~~~!!!!!

 

 

마지막의 반전 때문에 더는 이야기 못 하겠다. 사실 뻔한 예측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정말 그런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 산타의 사기죄가 그렇게 성립하고, 그렇게 재판이 진행되고, 그렇게 결말 내려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정말로 산타(?)가 잘못했다. 잘못해도 정말 많이 잘못했다. 사람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표현될 때마다 웃음이 나서 낄낄거렸는데, 또 그 마음이 모여서 만들어낸 일들 때문에 막 울었다. 이 아이의 마음속에 들어갔다가 나왔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산타를 고소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산타가 피의자가 된 게 두루두루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건이 없었다면 누군가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일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냥 커다란 인형 하나 머리맡에 놓아두고, 밤새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셨대~ 라고 임무 수행하듯, 일 처리하듯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상기하게 하잖아. 일곱 살 아이가 떼를 쓰며 징징거리는 거로 생각했는데, 아 정말, 다 읽고 나서 나도 반성 많이 했단 말이야. 그까짓 크리스마스가 뭐라고, 선물 한 번 못 받는 게 뭐라고, 하면서 생각했던 순간에 고개를 푹 숙이고 미안해했다고... ㅠㅠ

 

 

항상 시끄럽고, 매일 싸우고, 늘어진 추리닝이 추레하게 보여도, 소중한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이니 못할 게 없는 거다. 세상에 기적을 일으키고야 말았던 사람들이 시끌시끌 모여 사는 그 동네는 어떤 모습일까. 환상의 나라를 여행하고 온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고, 그냥 판타지가 아니라 저기 골목 끝 어느 집에 소담이가 있을 것 같고... 이미 확 늙어버린, 선물을 받는 게 아니라 주는 처지가 되어버린 나이에 나도 커다란 양말 하나 걸어놓고 싶고, 막 그래. 콩닥거리는 로맨스소설을 읽을 때보다 더 마음이 간질거리고 설레고 두근거리고 그런다고. 영화관에서 힐링 영화 한 편 보고 나온 기분? 아, 뭐라고 말 못하겠어. 지금도 눈물 나고 웃음 나고 그래서, 막 이 책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지고 그렇다니까!

 

 

 

이 책을 다 읽고 내가 처음 한 일은, 온라인으로 과자를 주문하고, 마트에 가서 수입 과자 몇 개 사고 음료수를 사는 거였다. 11월 말이었나? 군대에 있는 조카가 전화 왔을 때 과자가 먹고 싶다고 하기에, 군대 매점에 넘치는 게 군것질거리인데 그냥 사 먹으라고 했더니, 외부에서 반입된 과자가 먹고 싶다고 했다. 먹을 거에 집착하지 말고 군 복무나 열심히 하라고 구시렁거리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아, 이 책을 읽고 나니 스무 살이 넘은 늙은 큰조카가 생각나는 거다. 안 되겠다. 명절에 받아놓고 버리지 않은 커다란 사과박스를 찾아내서 펼쳐놓고, 배송된 과자를 막 담았다. 커다란 박스 안에 과자와 음료수, 몇 가지 생필품을 넣어 택배로 보냈다. (아, 다 챙겨 넣고 보니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과자의 금액이 상당하다. ㅠㅠ) 그쪽 사서함에 도착했다는 알림문자가 오늘 도착했으니, 며칠 후에는 받겠지? 박스를 열고 포장을 하나하나 풀어놓고 흐뭇하게 사제 과자를 먹을 큰조카를 생각하니, 별것 아닌 과자 몇 개에 내 기분이 또 설레는 거다. 양말 걸어놓고 밤새 기다리는 마음이 그런 건지도 몰라. 아, 정말이지, 다음에 전화 오면 뭐라고 하지 말고 잘 들어줘야지. 보내달라고 하지 않아도 가끔은 먼저 챙겨서 보내줘야지. 그거 과자가 뭐라고, 그치?

 

 

다시 전화가 오면 ‘여보세요’가 아니라 이렇게 인사해야지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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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0 16: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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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0 1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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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0 1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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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0 2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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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3 1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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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3 2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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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3 2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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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H
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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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되 소설 같지 않고,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에는 마냥 무겁지 않음이 이 소설의 매력인 듯하다. 물론 나 같은 역사 문외한이 함부로 덤비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소설이기도 하다. 활자를 따라가면서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 허둥대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행동에서 한 시대를 떠올리기도 한다. 사실인가? 아닌가? 사실 속에 집어넣은 소설적 설정은 늘 작가의 추측이라는 고백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니 이 소설은 소설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럴수록 제목 때문에 가졌던 호기심은, 어느새 아픈 역사의 이면에 빠지면서 누군가의 최후를 보게 한다. 당연한 죽음인가? 그런 최후를 맞이하는 게? 개운하다거나 당연한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저지른 모든 일이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게 모든 세계, 오늘의 대한민국과 흡사하다고 생각하며 읽게 된다.

 

HHhH.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Himmlers Hirn heißt Heydrich)'의 약자라고 한다. 독일이 체코를 합병한 1938년. 히틀러는 독일 제3제국 보호령 체코 총독으로 SS(나치스 친위대)의 2인자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임명한다. 보통은 히틀러를 더 기억하곤 하지만, 실제 유대인 대학살 정책의 주인공은 금발의 짐승이자 독일 제3제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로 불리던 하이드리히다. 그의 별명만 봐도 위험과 잔인함이 감지된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그 시대를 주무르고 있었는지 눈에 훤히 보일 지경이다. 하이드리히가 나치의 많은 비밀공작과 정보 정책을 주도한 뇌였던 거다. 언제까지 그럴 수 없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체코 망명정부 베네시 대통령과 영국은 가브치크, 쿠비시를 포함한 낙하산병을 침투시켜 하이드리히 암살 계획(유인원 작전)을 실행하지만 완전하게 성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암살시도는 곧 하이드리히의 사망으로 연결된다. 그때의 부상으로 그가 죽게 되니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안타까워, 잠시 이게 허구로 가득한 소설이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밀고자의 제보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내고 유인원 작전의 완벽함을 보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이 소설은 하이드리히의 사망을 보게 하는 여정을 참 느리고, 차분하게 서술한다. 제목만 보면 하이드리히가 이 소설의 주인공 같지만, 오히려 유인원 작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더 길게 보여준다. 상당히 아프고 잔인함이 넘치던 시절이었지만, 소설은 그 시절의 모습을 오히려 담담하게 읽게 한다. 전쟁이나 싸움을 동적으로 보게 하는 것보다, 어떤 술수나 계획, 어느 단계에 이르기 위한 그들의 움직임을 그린다. 의외였던 것은, 하이드리히가 주인공처럼 보였지만 실제 소설의 흐름은 유인원 작전을 배경에 있는 인물들이었다. 체코에 잠입하여 그들의 고통을 없애기 위한 청년들의 노력과 안타까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작가는 그 시대의 시간을 사실로 서술하되 자기의 생각 또한 담는다. 그때마다 이게 소설인가 실제인가 헷갈릴 수 있음을 방지하며 자기의 추측이라는 말을 항상 덧붙인다. 사실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마음과 드러나지 않은 마음을 상상하며 같이 읽고 싶은 마음을 저저는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토대 소설이라고 해서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막상 읽고 보니, 때로는 역사적 사실을 소설과 허구의 중간쯤에서 읽게 되는 흥미로움보다, 이 소설처럼 소설이지만 사실의 대부분을 그대로 읽게 하는 이야기가 자주 나왔으면 하고 바라게 한다. 실재 인물과 사건, 오디오와 속기 자료를 토대로 구성되었다고 하기에 더 사실에 다가간 기분이 들어서다. 이건 사실이구나 하는 판단으로 읽게 하면서, 혹시 독자의 호기심과 궁금증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저자는 자기 말을 덧붙이면서 공감을 구한다. '혹시 이러지는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같이 해보자는 의미처럼 들리기도 한다. 영화화되어 2017년 개봉이라니 영화까지 기대되는 건 당연하다.

 

새롭게 읽는 역사 소설이어서 그런지 분위기도 신선하고,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만나는 이런 느낌 괜찮더라. 묻히지 말고 드러나야 할 것들을 다시 접하는 자세도 경건해진다. '대량 학살을 무슨 과제 처리하듯 물건 정리하듯 저렇게 할 수 있나?' 묻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이렇게도 잔인할 수 있구나 하는 하이드리히의 생각과 기획에 치를 떨면서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얼마나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이드리히 같은 인물이 그 시대에 다 죽은 건 아니니까, 여전히 우리 삶에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토대소설이라는 시도가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알아야 할 것들, 확인하고 지켜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물으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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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펭귄클래식 4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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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화 안 나게 됐냐? 이렇게 멍청이들로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흥, 즐거운 크리스마스라고! 빌어먹을 크리스마스! 버는 건 없는데 빚은 잔뜩 지고, 나이만 한 살 더 먹게 될 뿐 벌이는 더 나아지지도 않건만, 크리스마스가 대체 뭐란 말이냐. 장부를 결산해 보면 일 년 열두 달 모든 항목이 적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이때 말이다. 내 마음 같아서는 그냥,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떠들고 다니는 놈들은 푸딩과 함께 푹푹 끓인 다음 호랑가시나무 가지로 가슴을 푹 찔러 파묻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래도 싸지!" (74페이지)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비종교인인 나도 크리스마스가 주는 설렘을 안다. 아이일 때는 머리맡에 커다란 양발 걸어두고 선물을 받는 날로 두근거릴 것이고, 어른이 된 후로는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은 휴일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 날일 것이다. 예수 탄생의 기쁨이 아니어도, 그저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한 기분을 내도 좋을 날로 만들고 싶은 바람. 그런 간절함을 담은 날을 '빌어먹을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스크루지 영감이라니, 잔인하군!

 

겨울을 놓고 눈과 크리스마스를 빼고 얘기할 수는 없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겨울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주는 요소이기도 하니까. 언젠가부터 겨울 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책 중의 한권이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두쇠 스크루지에게 찾아온 말리의 유령과 세 명의 크리스마스 유령이 스크루지의 과거 현재 미래의 크리스마스를 보여준다. 유령이 된 동업자 말리의 흉측한 모습, 세 명의 유령과 함께 다녔던 시간이 그에게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는 걸 모르는 이는 드물겠지. '빌어먹을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행복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로 지낼 수 있는 마음의 변화를 기적처럼 이루어냈던 것이다. 변화한 그의 모습, 그가 건네는 인사 한 마디가 웃음으로 시작하는 하루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준 이야기에 감동은 저절로 따라온다.

 

사내아이의 이름은 '무지'이고 여자 아이의 이름은 '궁핍'이다. 이 두 아이를 경계하라. 그리고 이 두 아이와 비슷한 것들을 경계하라. 그러나 무엇보다 이 사내아이를 경계해야 한다. 내 눈에는 이 아이의 이마에 적힌 '파멸'이란 글자가 보인다. 그 글자가 지워지지 않는 한 이 아이를 경계해야 한다. 물리쳐야 한다!" (159페이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책이다. 너무 유명해서 읽지 않았어도 읽은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로 내용을 다 알고 있을 거다. 그런 책인『크리스마스 캐럴』은 어렸을 적 읽은 동화 한 편으로 기억되기도 하겠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겨울의 낭만보다 현실이 먼저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 책의 내용을 보면서 흥분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너무 잔인하게 굴었던 스크루지 때문에!

 

겨울은, 사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지옥이다. 추위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고 희망보다는 절망을 먼저 느끼게 한다. 이 추위와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쯤 잘 살 수 있을까, 희망이 있기는 한 걸까... 찬바람이 불어오면 체감온도가 더 내려가는 것처럼, 시린 가슴을 더 춥게 하는 건 겨울이란 계절의 악명일지도 모른다. 그 악명을 스크루지가 대신 보여준다. 자비도 없고 인정도 없는 스크루지에게 많은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의 잔인한 한 마디와 무자비함은 더 춥고 아프게 살아갈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사무실 서기 밥에게는 석탄 한 조각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고, 밝게 말하는 조카에게는 크리스마스의 악담을 퍼부었다. 가난한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는 그의 말은, 돈이 전부가 되기도 하는 세상에서 그 무엇도 돈보다 먼저일 수 없다는 개념을 만든다. 가난한 사람은, 겨울이 잠깐 허락한 그 낭만조차 누릴 수 없는 건가? 을인 밥에게 갑인 스크루지는 박봉에도 붙잡고 매달려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서글프게도 굶지 않으려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그러니, 안타깝게도 어른이 된 후 내가 만난 겨울은, 구두쇠 스크루지의 개과천선을 말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했던 거다. 여전히 겨울의 동화로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지만, 이제와 다시 만나는 이 책은 마냥 판타지를 즐기며 읽을 수 있는 동화만은 아니다. 지극히 현실에 가까운 모습을 담고 있으니까. 당시 산업혁명의 절정기에서 노동자와 빈곤층의 삶은 비참했다고 한다. 찰스 디킨스 역시 그 어려운 생활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다섯 번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빚에 쪼들려 경제적인 이유로 이 책을 썼다는 게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다섯 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중 가장 사랑받은 『크리스마스 캐럴』은 그에게 큰돈이 되지 못했다. 직접 출판을 하느라 작가의 수입으로 많이 돌아오지도 않았고, 해적판이 나돌아 고소하느라 오히려 많은 돈을 써야 했다고 한다. 겨울의 추위를 물리칠 수 있을 만큼의 이 따뜻한 이야기가 그에게 현실의 온기는 주지 못했던 듯하다.

 

"자비로우신 유령님! 유령님이 곤경에 빠진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구해 주세요. 제가 새사람이 된다면 지금까지 제게 보여주셨던 그 환영들이 바뀔 거라고 약속해 주세요!" (186페이지)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변함없다. 어른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지독한 추위가 살을 에게 하지만, 판타지가 전하는 울림으로 세상이 금방 변할 거라는 생각도 할 수 없지만, 가슴으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큰 온기가 되고 웃음과 행복으로 표현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과 자세로, 어떻게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기에 더 강조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크루지가 변했지 않는가. 석탄 한 조각에도 벌벌 떨던 그가 밥에게 커다란 고기 한 덩이를 보내고, 조카의 집에 먼저 찾아가 저녁을 함께 먹자고 말한다는 건 엄청난 변화 아닌가? ^^ 그래서 칼바람의 추위에도, 가난하고 부족한 크리스마스임에도, 아직 다 꺼지지 않은 희망 한 줄기를 놓을 수 없는 거다. 사람의 온기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을, 부조리하고 불편한 세상이 바뀔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남아 있기에 말이다. 주말마다 밝히는 촛불의 힘을 믿는 우리니까...

 

겨울이다. 며칠 전에 내가 사는 이곳에 첫눈이 내렸다. 비와 눈이 함께 내리면서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바람까지 불어오니 갑자기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것 같았다.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얼굴이 찢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다. 굳이 일기예보를 확인하거나 눈이 내리지 않았더라도 겨울이 춥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누군가로 인해 이 추위가 조금은 덜 느껴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많은 사람에게, 더는 겨울이 지옥으로 느껴지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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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딱지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12
샤를로트 문드리크 지음, 이경혜 옮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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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당시에 읽어보고 싶었는데, 보관함에 넣어두고 잊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이웃님의 리뷰로 기억이 났다. 말썽쟁이 꼬맹이 조카 때문에 더 기억하던 책이기도 하다. 조카가 5~6살 때쯤이었나. 정말 말을 안 듣는 아이 때문에 언니가 힘들어했다. 자기 자식이 그러는 거, 어느 정도 감안하고 본다고 해도 좀 심한 듯했다.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생각하면서도 보통의 기준을 넘어선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계속 아이를 지켜보기만 하던 형부가 조카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너, 자꾸 그렇게 말을 안 들으면, 엄마 머리에 흰머리가 난다. 흰머리가 나면 죽어."

 

뭐, 이런 말을 했었는데, 그때 조카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금 멍해 보이기는 했으나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엄마와는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던 걸까. 흰머리는 할머니처럼 나이를 많이 드신 분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라고 생각했을까? 그때, 딱히 조카의 입에서 어떤 말을 듣지는 못했다. 아이가 아무 말이 없었으니 그저 잘 알아들었으려니 하고 그 순간을 넘겼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말 언니의 머리에 새치가 생겼다. 하나둘, 이제 막 새치가 나기 시작한 거 같은데, 그때 조카는 엄마의 머리를 보고 이런 말을 했더랬지.

 

"엄마, 여기 흰머리가 있어요. 그럼 이제, 엄마 죽어요?"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우리는 서로 눈도 못 마주쳤고, 그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고, 웃고 떠들며 놀던 그 자리의 분위기는 갑자기 싸해졌다. 아, 정말... 뭐라고 대답해줘야 맞는 거지? 흰머리가 났으니까 죽는다고? 그때는 니가 하도 말을 안 들어서 그냥 해본 말이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야 했던 걸까? 지금 떠올려본 그때 그 순간에 우리가 조카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 별말 못했던 것 같다. 다만, 그때 나는 조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제 엄마에게 흰머리가 났으니 곧 죽는다고 믿고 있을까?

자기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에게 흰머리가 났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자기가 말을 잘 들으면 엄마의 머리에서 흰머리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때 조카의 생각이 궁금했는데 차마 묻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든지 내가 대꾸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묻기조차 겁났기 때문이다. 지금 조카는 초등학생이고, 또 여전히 말도 안 듣는 말썽쟁이지만, 가끔은 엄마와 대화하고 엄마와 싸우고 엄마를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다. 엄마가 흰머리가 났는데 죽지 않았다고, 어른들의 거짓말이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의 공포가 이 아이에게 뭔가 다른 생각 하나를 심어주지는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러면서, 늘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그렇게 또 자라나겠지.

 

 

그림책 『무릎 딱지』는 첫 페이지부터 심장이 쿵! 하고 울리는 듯 시작하는 이야기다.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죽었다. 어젯밤에 죽었지만, 아이에게는 엄마가 오늘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엄마가 저세상으로 떠났다고 했지만, 아이는 안다. 엄마가 어딘가로 떠난 게 아니라 죽은 거라는 걸. 사람들이 엄마를 관에 넣고 땅에 묻었다는 걸. 이제 엄마를 보지 못한다는 걸.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이는 안다. 이제 아빠와 아이 둘만 남은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엄마의 부재는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아빠는 엄마처럼 빵을 발라주지도 않고, 울기만 한다. 아이는 자기가 아빠를 돌봐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엄마의 냄새가 날아갈까 봐 뜨거운 여름날인데도 온 집안의 창문을 다 걸어 닫는 걸 보니, 눈물이 핑 돈다. 그렇게 하면 엄마가 떠나지 않은 것 같을까?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바로 들려온다. "괜찮아, 우리 아들. 누가 우리 착한 아들을 아프게 해? 넌 씩씩하니까 뭐든지 이겨 낼 수 있단다." 아이는 눈을 감고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아픈 게 다 나아버린다. 어느 날, 아이는 마당을 뛰다가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생겼다. 아프지만 참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또 들려오는 게 좋았으니까. 그렇게 무릎에 딱지가 앉기를 기다렸다가 손톱으로 긁어서 뜯어내는 아이의 목적은 단 하나. 다시 상처가 생기고 또 피가 나면 엄마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니까. 아, 어떡해... 얼마나 그리웠으면 딱지를 떼어 그 자리에 피가 흐르기를 반복하느냔 말이야. ㅠㅠ 그만큼 아이는 엄마의 목소리라도 간절했던 거겠지. 엄마가 죽은 걸 머리로는 알지만, 엄마가 아이 곁을 떠난 걸 마음은 아직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어느 날 찾아온 할머니는 아이의 가슴에 대고 말한다. 엄마가 여기 있다고, 엄마는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고...

 

나는 정말 무섭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엄마를 완전히 잊게 될까 봐.

그래서 나는 달린다, 온 힘을 다해 달린다.

온몸이 흐늘흐늘해질 때까지, 내 심장이 쿵쿵 뛰어서 숨 쉬는 게 아플 때까지, 심장이 터지기 직전까지.

그러면 꼭 엄마가 내 가슴 속에서 아주 세게 북을 치고 있는 것만 같다. (본문 중에서)

 

할머니는 아빠에게 빵에 지그재그로 꿀을 바라는 걸 가르쳐 주고, 아이와 아빠는 엄마와 함께였던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온다. 아침에 나는 커피 향기, 하루를 열어주는 라디오 소리, 식탁 위의 빵과 신문을 보는 아빠. 아이는 아빠를 보고 활짝 웃는다. 그렇게 아빠에게 달려가는 아이 귓가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 아빠한테 가서 안겨. 내 아들아……." 무릎을 만져보니 매끈매끈한 새살이 나 있었다. 어느 순간, 딱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딱지가 저절로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회복되는 걸까. 몸도 마음도, 슬픔을 겪고 나니 새살이 돋아나는 것처럼 점점 차오르는 걸까. 엄마의 죽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엄마의 냄새가 날아가도 그게 끝이 아님을 알게 되고, 엄마와 똑같지 않지만 아빠가 대신해주는 엄마의 자리가 애틋해지는 감정을 알아간다. 남은 둘, 아빠와 아이는 그렇게 엄마 없는 오늘을 사는 법을 배운다. 또다시 찾아올지 모를 슬픔도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겪었고, 상처에 새살이 돋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제야 비로소 오늘 밤 편한 잠을 이루는 아이에게 내일은 어떤 날이 될까.

 

 

 

뭔가를 배운다는 건 그런 것 같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 대개 좋은 기분보다는 아픈 것을 알아가며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슬픔을 받아들이며 배워야 할 게 있다. 죽음도 마찬가지. 그 순간에는 무섭고 겁나지만, 또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인정하고 감당하는 시기를 건넌다. 언젠가 희미해질 기억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겪어야만 하는 순리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사람이 영원할 수는 없으니 언젠가는 죽는다는 거, 그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겪어야 한다는 건 변함없다. 이미 훌쩍 자란 나도 죽음이 겁난다. 꼬맹이 조카처럼 나도, 엄마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어린 조카를 겁주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엄마의 머리는 이제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백발이고,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불안하고, 문득문득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누군가의 장례 소식도 자주 듣는다. 이제 언제 어디서든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상인 거다.

 

그동안은 막연하게 죽음을 생각했다. 어른의 마음으로 겪는 죽음을 떠올렸다. 그 죽음 이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을 먼저 떠올리곤 했다. 장례식, 이런저런 정리, 찾아온 사람들에게 전할 인사 같은 것들. 그런데 죽음 그 기저에 있는 마음을 잊고 있었다는 걸 이 그림책으로 다시 찾았다. 죽음 이후의 일은 일이고, 그 바탕에 깔린 슬픔과 헤어짐, 감당해야 할 마음의 무게를 잊고 있던 거다. 아이가 겪는 엄마의 죽음과 부재는 어른이 겪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슬픔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그 슬픔을 겪고 삶의 다음 페이지를 열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빠가 울기만 했던 모습을 보고 아이는 아빠를 달래주려고 한다. 누군가의 눈물은 그런 건가 보다. 슬픔. 그런 슬픔에 필요한 건 위로와 공감. 어른인 아빠와 아이인 주인공의 모습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같은 크기로 다가온다는 걸 본다. 아이에게 엄마의 몫까지 해내야 하는 아빠의 삶은 더 무거워질지도 모른다. 아이는 엄마의 빈자리에 아빠의 모습을 채워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와 아빠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엄마의 빈자리가 더는 슬프지 않게 사는 방법을 배울 거니까. 무릎에서 딱지가 떨어지고 새살이 돋아나듯, 그런 날들을 살아갈 테니 말이다.

 

짧은 그림책 한 권을 읽은 것뿐인데 기분이 좀 멍하다. 자꾸 말썽쟁이 조카가 떠오른다. 그러면서 다음에 조카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엄마 머리에 흰머리가 하나씩 계속 생기고, 머리에 온통 흰머리가 가득했을 때가 오면, 엄마의 시간은 죽음에 가까워진 거라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고, 할머니도 죽고 엄마도 죽고 이모도 죽는 날이 올 거니까, 그때까지 우리 속상한 일 생기지 않게 서로서로 말 잘 듣는 사람이 되자고. 이모는 할머니 말 잘 듣고, 너는 너희 엄마 말 잘 듣고.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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