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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ㅣ 펭귄클래식 4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내가 화 안 나게 됐냐? 이렇게 멍청이들로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흥, 즐거운 크리스마스라고! 빌어먹을 크리스마스! 버는 건 없는데 빚은 잔뜩 지고, 나이만 한 살 더 먹게 될 뿐 벌이는 더 나아지지도 않건만, 크리스마스가 대체 뭐란 말이냐. 장부를 결산해 보면 일 년 열두 달 모든 항목이 적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이때 말이다. 내 마음 같아서는 그냥,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떠들고 다니는 놈들은 푸딩과 함께 푹푹 끓인 다음 호랑가시나무 가지로 가슴을 푹 찔러 파묻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래도 싸지!" (74페이지)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비종교인인 나도 크리스마스가 주는 설렘을 안다. 아이일 때는 머리맡에 커다란 양발 걸어두고 선물을 받는 날로 두근거릴 것이고, 어른이 된 후로는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은 휴일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 날일 것이다. 예수 탄생의 기쁨이 아니어도, 그저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한 기분을 내도 좋을 날로 만들고 싶은 바람. 그런 간절함을 담은 날을 '빌어먹을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스크루지 영감이라니, 잔인하군!
겨울을 놓고 눈과 크리스마스를 빼고 얘기할 수는 없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겨울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주는 요소이기도 하니까. 언젠가부터 겨울 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책 중의 한권이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두쇠 스크루지에게 찾아온 말리의 유령과 세 명의 크리스마스 유령이 스크루지의 과거 현재 미래의 크리스마스를 보여준다. 유령이 된 동업자 말리의 흉측한 모습, 세 명의 유령과 함께 다녔던 시간이 그에게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는 걸 모르는 이는 드물겠지. '빌어먹을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행복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로 지낼 수 있는 마음의 변화를 기적처럼 이루어냈던 것이다. 변화한 그의 모습, 그가 건네는 인사 한 마디가 웃음으로 시작하는 하루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준 이야기에 감동은 저절로 따라온다.
사내아이의 이름은 '무지'이고 여자 아이의 이름은 '궁핍'이다. 이 두 아이를 경계하라. 그리고 이 두 아이와 비슷한 것들을 경계하라. 그러나 무엇보다 이 사내아이를 경계해야 한다. 내 눈에는 이 아이의 이마에 적힌 '파멸'이란 글자가 보인다. 그 글자가 지워지지 않는 한 이 아이를 경계해야 한다. 물리쳐야 한다!" (159페이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책이다. 너무 유명해서 읽지 않았어도 읽은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로 내용을 다 알고 있을 거다. 그런 책인『크리스마스 캐럴』은 어렸을 적 읽은 동화 한 편으로 기억되기도 하겠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겨울의 낭만보다 현실이 먼저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 책의 내용을 보면서 흥분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너무 잔인하게 굴었던 스크루지 때문에!
겨울은, 사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지옥이다. 추위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고 희망보다는 절망을 먼저 느끼게 한다. 이 추위와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쯤 잘 살 수 있을까, 희망이 있기는 한 걸까... 찬바람이 불어오면 체감온도가 더 내려가는 것처럼, 시린 가슴을 더 춥게 하는 건 겨울이란 계절의 악명일지도 모른다. 그 악명을 스크루지가 대신 보여준다. 자비도 없고 인정도 없는 스크루지에게 많은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의 잔인한 한 마디와 무자비함은 더 춥고 아프게 살아갈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사무실 서기 밥에게는 석탄 한 조각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고, 밝게 말하는 조카에게는 크리스마스의 악담을 퍼부었다. 가난한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는 그의 말은, 돈이 전부가 되기도 하는 세상에서 그 무엇도 돈보다 먼저일 수 없다는 개념을 만든다. 가난한 사람은, 겨울이 잠깐 허락한 그 낭만조차 누릴 수 없는 건가? 을인 밥에게 갑인 스크루지는 박봉에도 붙잡고 매달려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서글프게도 굶지 않으려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그러니, 안타깝게도 어른이 된 후 내가 만난 겨울은, 구두쇠 스크루지의 개과천선을 말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했던 거다. 여전히 겨울의 동화로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지만, 이제와 다시 만나는 이 책은 마냥 판타지를 즐기며 읽을 수 있는 동화만은 아니다. 지극히 현실에 가까운 모습을 담고 있으니까. 당시 산업혁명의 절정기에서 노동자와 빈곤층의 삶은 비참했다고 한다. 찰스 디킨스 역시 그 어려운 생활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다섯 번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빚에 쪼들려 경제적인 이유로 이 책을 썼다는 게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다섯 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중 가장 사랑받은 『크리스마스 캐럴』은 그에게 큰돈이 되지 못했다. 직접 출판을 하느라 작가의 수입으로 많이 돌아오지도 않았고, 해적판이 나돌아 고소하느라 오히려 많은 돈을 써야 했다고 한다. 겨울의 추위를 물리칠 수 있을 만큼의 이 따뜻한 이야기가 그에게 현실의 온기는 주지 못했던 듯하다.
"자비로우신 유령님! 유령님이 곤경에 빠진 저를 불쌍히 여기시어 구해 주세요. 제가 새사람이 된다면 지금까지 제게 보여주셨던 그 환영들이 바뀔 거라고 약속해 주세요!" (186페이지)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변함없다. 어른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지독한 추위가 살을 에게 하지만, 판타지가 전하는 울림으로 세상이 금방 변할 거라는 생각도 할 수 없지만, 가슴으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큰 온기가 되고 웃음과 행복으로 표현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과 자세로, 어떻게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기에 더 강조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크루지가 변했지 않는가. 석탄 한 조각에도 벌벌 떨던 그가 밥에게 커다란 고기 한 덩이를 보내고, 조카의 집에 먼저 찾아가 저녁을 함께 먹자고 말한다는 건 엄청난 변화 아닌가? ^^ 그래서 칼바람의 추위에도, 가난하고 부족한 크리스마스임에도, 아직 다 꺼지지 않은 희망 한 줄기를 놓을 수 없는 거다. 사람의 온기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을, 부조리하고 불편한 세상이 바뀔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남아 있기에 말이다. 주말마다 밝히는 촛불의 힘을 믿는 우리니까...
겨울이다. 며칠 전에 내가 사는 이곳에 첫눈이 내렸다. 비와 눈이 함께 내리면서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바람까지 불어오니 갑자기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것 같았다.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얼굴이 찢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다. 굳이 일기예보를 확인하거나 눈이 내리지 않았더라도 겨울이 춥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누군가로 인해 이 추위가 조금은 덜 느껴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많은 사람에게, 더는 겨울이 지옥으로 느껴지지 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