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좋은 엄마의 필독서
문은희 지음 / 예담Friend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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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인줄 알고 저지른 엄마들의 잘못'이라고 책 설명이 되어있지만 전체적으로 엄마 보다는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가 아니라 아이의 시간을 충분히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내용의 전언이다. 현재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말인 동시에 확신을 갖게 한는 말이다.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가. 지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잘 먹고 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협박을 하며 노는 아이에게 눈총을 쏘아 댔던 것이.  

엄마로서, 자식으로서 우리 나라 여성들이 얼마나 깊이 '포함'되어있는 지, 그 '포함'된 자리에서여성들이 주체로서 살지 못하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포함'이라는 말이 낯설기는 하지만 내 식대로 받아들인다.  '나' 보다는 누구의 엄마, 아내, 딸 등등. 

특히 저자가 가장 강도높게 당부하는 것이 어려서 받은 충격이나 상처가 그 아이의 먼 훗날 까지 따라 다니니 제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 자식 보는 앞에서 전쟁같은 싸움을 하지 않는 것, 공부를 안하면, 경쟁을 하지 않으면 커서 잘 살지 못할 거라는 협박을 하지 않는 것, 그 아이의 눈을 통해 마음을 읽어 주지 않는 것 등 아이들이 엄마한테 받을 수있는 상처는 여기저기 널려있다. 아이의 행복을 바란다면 상처를 주지 않도록 애쓸 일이다. 옳은 말이다. 중요한 가르침이다. 

상담 센터 혹은 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고 경험한 사례들이 많아서 입체적으로 읽을 수있다.다만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구 여성들이 바람직한 주체로서 사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국의 여성들이 '포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안타깝게 말했는데, 나는 한국적인 상황에 대해 좀더 고민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남편을 생각해 주고 이해해 주라는 말도 지당한 말인데, 아내들이 집안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한 부분은 인정하더라도 나는 과연 남편들 또한 가정에 대해 얼마만큼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 무척 궁금하다. 오해를 하는 지도 모르겠으나 아주 약간 가부장적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많은 육아서적 중에서 내가 이 책을 누군가에 권한다면 이 책은 저자의 의도대로 혼내는 것이 아니라 위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여성으로서 자기를 찾는 일이 먼저라는 지적은 경험한 자로서 정말로 맞는 말이다. 나 자신 한사람의 주체적 인간으로서 아직 미성숙의 존재라 가능하다면 나를 드러내 놓을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노력할 것이다. 

아이와 지금 잘 지내고 있는지, 나는 잘 살고 있는지 자기 점검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은 한 동안 도움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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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 진중권의 철학 매뉴얼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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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으로, 나는 진중권을 좋아한다. 비행기를 배운다고 떠날때도 좋았고, 트위터에 비행기 조종하는 사진 중, 의외로 튼튼한 팔 근육에 놀랐다. 약간의 사심이 있는^^ 그리고 이건 아주 멀리서 그 책의 저자를 바라보는 독자로서의 관심이기도 하다. 발랄하고, 유머 넘치고, 자유롭고, 그리고 팔방미인인데다가 결정적으로 진지할 땐 진지해지는 학자적 모습까지. 질투를 하기에는 그가 너무 높은 곳에 있다. 세상 천지가 질투의 대상으로 꽉찬 느낌이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소외감을 느꼈다면 내 질투가 내가 느끼는 것보다 좀 심한것 같다.  

저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철학적 개념들을 해석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여러번 멈춰야 했다. '현실의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분명히 사용되고 있을 이 개념들이 내게는 낯설고 알아듣지도 못할 만큼 어려워서다. 대부분이 철학적 개념이고 또 미술이나 영화, 즉 예술에 깊이 닿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술적 소양이나 경험, 체험이 많이 부족한 나로서는 좀 버겁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공감하고 알아먹는다는 말이지.   

기본적으로 철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배경이 풍부하다면 훨씬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다루고 있는 개념들은 인식의 힘을 키워주는 것들이다. 개념을 아는 것은 세상 속으로 그만큼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훨씬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책과는 상관없이 진중권과 김규항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늘 궁금했는데,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이 의외의 소득이라는 불편한 진실. 

분명 세상을 보는 인식의 힘이 한뼘쯤 생긴다. 책을 읽는 동안. 문제는 현실에 적용하는 것인데, 나는 언제쯤 현실에 발들 디딜 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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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leep 2011-10-04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이 씨네21 칼럼의 글을 모아놓은거라, 거기는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더라구요. 저도 책 사서 읽고나서 알아습니다.ㅠㅠ

수수꽃다리 2011-10-04 19:23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좋아하는 필자의 연재 글은 되도록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책으로 묶여나오면 봐야지 하는... 그래야 집중하고 연결되는 흐름을 잡을 수 있기도 하지요. 님께서는 조금 아깝다 생각하셨나봐요?^^ 참고로 제 남편은 연재되는 글을 읽지 절대 그 책을 사지는 않는답니다. 그런 독서법이 부러울 때가 있지요. 정보처리 능력이 제가 모자라나봐요 ㅠㅠ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순간들
황광우 지음 / 비아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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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책들이 우연히 내게 온다. 황지우와 형제 관계라는 사실이 놀라웠고 철학콘서트를 읽으면서 왜 여태 이 사람을 몰랐을까 내 독서가 한참 모자랐구나 반성했다. <위대한 순간들>은 아직도 그의 글의 여운이 짙게 남아있던 중이라 내게는 아주 반가운 '순간'이었다. 

아직 글을 읽고 이해하는 재주가 모자란다고 느끼지만 아, 이 사람은 고수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때는 이미 부러움을 넘어서 무한의 존경과 감사로 몸을 낮추는 시점이다. 김영민 교수의 글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책읽기의 즐거움을 황광우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느낀다. 도대체 얼마나 읽고 써야 이 사람들처럼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내 인생에서 그런 순간을 경험할 수나 있을까. 멀고 가당치 않은 바램이다. 어쨌든. 

나는 아는 것이 어찌 자유라고 하는 것인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잘 몰랐다. 알기는 했어도 그 참 맛을 느끼지는 못했다. 왜? 잘 몰랐으니까!  

<위대한 순간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사건들이지만 나는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순간들을 짧은 글 속에 거대한 몸집을 들여놓고 있다. 말과 글은 누구나 할 수 있되, 황광우의 글은 눈으로 보이는 몸피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글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독자는 이상하게도 역사의 위대한 순간들을 한복판에서 겪는듯한 감동을 받는다. 그게 무엇때문일까 생각을 해 보았더니 그것은 제대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또한 그가 돌아보는 역사의 순간들이 지금 이 순간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끊어져버린 역사는 의미가 없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역사 혹은 사건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내게는 의미있는 깨달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잘 살고 잘 헤아려야 하는 것이리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도착했을때는 머리에 쥐가 날 것 같고, 그냥 넘어가고 싶기도 하지만 도대체 이 사람은 도달하지 못하는 앎의 한계가 어디쯤일까 경외감을 갖고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따옴표도 없고, 대화도 없고, 감탄사도 거의 없이 빽빽한 문자들을 읽어내려가는 순간 말랑말랑, 시끌벅적, 요란지끈, 등등   역사의 순간 순간들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는 독서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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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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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따위걸 책으로 만들어 내자고 나무를 베어내도 되는 걸까?"  

책을 내자는 출판관계자에게 그녀가 한 말이다. 책 날개에 적혀있는 이 문장을 나는 여러번 보았다. 글 솜씨가 있다면 이 말 속에 담겨있고 내가 느끼는 이 움직임들을 눈에 보이도록 적어놓을텐데 한없이 깊은 그녀의 삶처럼 헤아릴 길이 없다.  

나는 노동자였던 적이 없다.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일을 했으면서도 내가 일을 한다는 자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무지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나는 무지했다. 내가 뭘 하는지도 몰랐고, 내가 하는 일의 가치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한 때 개인이 하는 박물관에서 표 파는 일과 청소하는 일과 관람객에게 문화재를 안내하는 일을 함께하면서 밥까지 했고, 쎄콤을 설치한 뒤로는 밤에 위층에 있는 화장실도 갈 수 없었던 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다. 말도 안하고 이미 일자리를 구해놓고 그만둔다고 말한 나를 관장은 배은망덕한 계집애 취급을 했음은 당연하다. 슬픈 것은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게 아무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소금꽃나무>를 읽으면서 여지 없이 콧물 눈물 줄줄 흘려야했던 대목들은 그때 나만큼 어렸던 여자애들의 얘기가 나올 때다. 내 고향 친구들 또한 중졸에 산업체로 돈벌러 갔던 아이들이 있었고 나 또한 그럴 처지였다. 나는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라고 팔뚝에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친 그녀 앞에서, 문도 못닫은 채 매달려 가는 버스 안내양의 곡예 앞에서 나는 내 친정언니의 삶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이해한다는 일이 참 어렵다. 나는 내가 공감과 이해 능력이 조금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말뿐이었고 이해의 폭은 그저 내 경험의 폭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토록 여러번 감정을 터뜨린 것은 그녀가 전하는 삶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오랜 시간을 오롯이 하나의 바램으로 살아온 사람의 삶이 왜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그런데도 세상은 역사는 조금씩 나아진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사람이 사실은 얼마나 힘이 '쎈' 사람인지 그녀를 보면서 깨닫는다.  

진심을 다해 그녀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 단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저 그 높은 곳에 있는 그녀의  이마를 스치고 가는 바람조차도 되지 못할 마음 뿐이지만 나는 지금 김진숙을 생각한다.  한없이 고맙고 또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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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사색 -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
이계삼 지음 / 꾸리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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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없는 사회의 교육>에서 저자는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고민했다면 <변방의 사색>에서는 학교 밖으로 나온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물론 여전히 학교 안에서 교사의 모습을 고민하지만 어느덧 그는 활동가의 근육이 단단해진 모습이다.  

최근 2-3년 사이 자신이 겪고 목격한 묵직한 사건들에 대한 사색이 담긴 이번 책은 저자가 힘들었던 만큼 읽는 사람도 함께 힘이 들었다. 세상은 그나마 제자리 걸음이라도 하는가 싶었는데 이젠 더이상 걷기를 멈추어 버린 것만 같다. 나는 늘 궁금하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옳다고 하는 일이 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나처럼 그저 변두리에서 멍청한 눈으로 곁눈질이나 하면서 이것도 사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인가. 새삼 이 세상에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김진숙 보다 그녀를 끌어내리려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고, 강정마을을 그대로 두라는 사람보다 기어이 해군기지를 짓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다. 사람과 자연은 한 몸이라 자연이 아프면 나도 아픈 지율 같은 사람보다 삽질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자본과 권력까지 양 손에 들고 있다.   

나는 그가 언제까지나 교사였으면 좋겠다. 그가 학교 '안'에서 버텨 주었으면 좋겠다. 좌절도 절망도 하겠지만 그가 아니면 안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나의 스승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 전교조도 좌초직전이고 진보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맥을 못추지만 그가 최후의 보루라도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리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흙과 일의 중요성에 깊이 닿아있는 그의 생각이 실행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내가 그렇게 살 수 없기에 더 간절히. 

그가 참 좋은 선생님이라는 것을 나는 "아이들은 미래의 유권자이며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고 떠넘기는 이 사회의 온갖 문제를 풀어가야하는 당사자들"이라는 말 속에서 깊이 느낀다. 자식에게 지금보다 좀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부모(기성세대)의 몫이 아닌가. 나는 그가 한 이 말에서 뭍 아이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속깊은 스승의 걱정과 미안함을 느낀다.  

늘 어둠이었고 새벽은 아직도 멀다. 나는 그래도 새벽이 온다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저 여전히 어둡고 답답할 뿐, 전망 혹은 희망을 얘기할 수 없다. 나는 비겁하고 사는 일에 게으른 사람이다. 이런 깨달음도 이계삼 같은 선생님이 없었다면 얻지 못했으리라.  

몸만 멀리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음도 멀리 있었던 김진숙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할 길 없어 이계삼이 알려준 그녀의 책 <소금꽃나무>를 주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것뿐이라고 짐짓 이것이 최선인 양 하는 꼬라지를 용서하지 않을테다. 너, 그러지 마라. 이래 저래 내가 마음에 안든다. 이게 뭐냐고. 이 더운 날, 선풍기 펑펑 돌려가며 한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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