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 볶음밥
이장근 지음, 손지희 그림 / 창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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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학교는 이야기의 보물창고가 맞을 것 같다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엉덩이를 흔들며 칠판에 볶음밥을 볶는 선생님도 좋고, 공개수업을 하면서 잔뜩 긴장한 선생님도 반갑고, 좀 더 단단해진 `나`들의 이야기가 더 많아진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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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쌀벌레야 - 제3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 문학동네 동시집 39
주미경 지음, 서현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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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경의 첫 시집 나 쌀벌레야는 전해오는 이야기의 채록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그 새로 듣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마늘이 꼭 끌어안게 된 이야기, 욕쟁이가 된 노루, 개구리를 부러워한 미꾸라지, 가위에 얽힌 이야기, 뱀이 된 사연 등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읽다보면 마치 그가 천일 동안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던 세헤라자데인 것만 같다. 이 얘기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전하는 말법은 익숙해서 마치 오래된 이야기인 듯 가볍게 스며든다.

짧거나 길거나 그에게 시의 형식이 주는 부담은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주미경은 이야기꾼의 기질이 다분한데 이야기가 재미있기 위해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그의 상상력은 탄력적이어서 때로는 작은 세상을 깊이 상상하고 때로는 하늘을 가로지르거나 썰기도 할 만큼 활달하다.

첫 시집인 만큼 다양한 시적 모색의 흔적이 담겨있는 시집이라는 생각이 드는 가운데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시인이 세상을 인식하는 태도이다.

빈 땅을 보면/노는 땅 아깝다고 하는 것은 알뜰함이 아니라 그에게는 사람의 욕심으로 인식된다.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한 해 놀게 두자는 말이 심상치 않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느끼고 있는 어떤 피로감 때문일 것이다. 놀면 안 되고, 개발은 필수고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현대인의 삶은 아이나 어른이 다르지 않다. 그러지 말자고 뭔가 더 하려는 도 두지 말자는 말은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위로가 되는 말이다. 특히 자연스럽게 그냥 놀게 두자는 말이 필요한 존재는 이 땅의 아이들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권위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자존심이 아닐까.

숲을 통째로 자를 듯이 날아와/나뭇가지에 앉으면서/스윽 칼집에 칼을 집어넣은/솔개 장군/휘 둘러보며/, 나를 따르겠느냐/그랬더니/다람쥐도/뱁새도/한칼에/!

-!전문

 

권위와 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고 내 인생 내 주장 대로 살겠다는 다람쥐와 뱁새의 저 단호한 한칼이 몹시도 통쾌하다. 솔개 장군과 다람쥐, 뱁새의 관계는 다양한 대입이 가능한 조합이다. 이 짧은 시로부터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각자가 처한 사정에 맞게 각자의 얘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첫 시집은 시인에게도 기쁘고 흥분되는 일이겠지만 독자도 똑같은 심정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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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괜찮아, 야옹
김미혜 지음, 강지연 그림 / 창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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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시인이 꽃과 해피와 새를 사랑하여 그들을 찾아다니고 그들의 말을 받아 적는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오랜만에 나온 이번 시집에서도 그러한 시인의 개성은 여전하다. 그가 찾고 불러내는 꽃들은 더욱 야생에 가 있고 새들은 고유명사로 호출된다. 류선열 시인이 냉이꽃이건 산수유건 노란꽃이라 하고 피라미건 배가사리건 그냥 물고기라고만 부르는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자고 했던 다짐이 김미혜 시인에게는 현재형이다. 이렇게 그가 부르는 개불알꽃 때문에, 해피를 기르면서 생기는 얘기들로 인해 일상의 한쪽이 환하고 따뜻하다.

그러나 우리가 특히 눈여겨 봐야하는 시들은 2부와 3부에 실린 시들이다. 시인이 먼저 말했듯이 불편하고 마음을 힘들게 하거나 거북한말들이다. 그 말을 하는 목소리는 더욱 우렁우렁해졌다. 이 시들은 대부분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 이야기다. 유강희 시인의 시 족제비처럼 동물이 인간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우발적 사고와 치밀하고 잔인한 계획 살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다. 김미혜 시인은 계획된 동물 학대 현실에 대해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 잔인한 현실을 견디고 끝내 시로 형상화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읽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그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로서 그 현실의 밑까지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시인은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것을 견디고 나왔기에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시를 건져 올릴 수 있었다고 본다.

 

두드려 맞고 기절한 너구리/잠시 정신이 돌아와/제 털가죽이 벗겨지는 걸/벌룩벌룩 붉은 몸이 뛰는 걸/제 눈으로 보다가/몽둥이로 다시 두드려 맞고/정신을 잃었어.//철창에 갇힌 너구리들이/두 눈을 뜨고/이걸 다 보았어.//어헝/어헝/어허헝//내 겨울 옷 모자 끝에 달린 털은/어디에서 온 거야?

-멍텅구리전문

 

확실히 그동안 우리가 알아왔던 동시와 다르고 낯설다. 너구리 털가죽을 취하는 저 장면은 어떤 과장도 없고 제 옷에 달린 털을 의심하는 저 목소리는 아이와 어른이 다르지 않다. ‘벌룩벌룩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표현하기 힘든 말이다.

관광 목적으로 길들여지는 코끼리, 가장 맛있는 요리가 되기 위해 끔찍한 학대를 받으며 사육되는 거위, 산 채로 털가죽이 벗겨지는 너구리, 너무나 쉽게 길 죽음을 당하는 두꺼비, 날아오를 공간이 없어 유리창에 부딪히는 새, 부실공사와 책임 떠넘기기, 그 모든 것의 종합적 결과인 세월호 까지. 그의 시가 다루는 사건은 대강의 말만 들어도 마음이 사나워져서차라리 외면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이미 짐작하고 있듯이 본질은 돈에 대한 욕망이다. 시인은 그런 인간을 향해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라고 에두르지 않고 말해버린다. 이것이 한손에는 예쁜 꽃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세상을 향한 통렬한 외침을 들고 김미혜의 동시가 하는 말들이다.

인용한 동시를 비롯해 현실비판적인 동시는 조금은 낯설고 망설여왔던 정서이다. 그의 시가 나아가는 방향이 모험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시 창작 작업이 기존의 동시에 대한 균열로 보이기 때문이다.

시가 시로만 머물지 않게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동시가 다루는 현실은 어린이에 대한 현실이기도 하지만 어린이를 비롯해 우리가 살고 있는 좀 더 넓은 의미로서의 현실이기도 하다. 감상자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목격자로서의 시적 주체, 남호섭의 시적 작업만큼 강렬한 또 하나의 문제적 모험은 이렇게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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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는 개미 - 2016 화이트 레이븐즈 선정도서 문학동네 동시집 38
유강희 지음, 윤예지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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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올 그의 시집은 손바닥 동시집일 줄 알았다. 한 두 줄, 서너 줄에 뜨거운 심장을 심어놓은 시들이 매력적이어서 풀이 벌레에게/-내가 널 굶기는 일은 없을 거야//벌레가 풀에게/-죽을 때까지 네 곁에 있어 줄게라고 만일 풀과 벌레가 프러포즈를 한다면(전문)처럼 한 순간 환히 빛나는 동시들로 묶인 시집.

이 시집에는 특히 아이 사람, 어른 사람이 거의 없다. 한두 편 들어있을 법한 말놀이 동시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집요할 만큼 사람 이외의 것에 관심을 보이고, 사람이라야 약자로서의 타자들인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이거나 식칼을 들고 부추밭에 가는 할머니, ‘짤린사람,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거기에 가해자로서의 사람인 족제비를 친 운전자, 오리를 도살장으로 데려가는 트럭 운전사 정도.

사람이 없는 자리에 시인은 동식물과 사물(, 의자, 화장지, 소화기, 슬리퍼, 파리채)을 데려다 놓았다. 사람대신 동식물과 무생의 사물을 얘기하지만 결국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시인이 해석하는 동식물과 사물의 세계는 세상의 중심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나비를 물고 가는 개미의 삶은 고단하고 개미의 치열한 삶 앞에서 우리는 문득 겸허해지려고 한다. 개미의 삶을 들여다 본 뒤에는 발걸음을 조심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걸어야할 것 같으니.

사람의 자리를 대신하는 동식물과 사물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벗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인식이지만 이것을 말하는 주체의 시선은 아이의 시선이기 보다는 어른의 시선에 가깝다. 그렇다보니 어릴 적 내 얼굴을 드디어 찾았다//여치랑 앉아서 내리는 비도 또랑또랑 같이 보자여치 얼굴은 자연과 인간의 행복한 합일을 이야기하는데 이 짧은 시에 아이의 감성, 아이들의 공감이 끼어들 틈은 좁아 보인다.

아이들의 현실을 다루고 있는가와 별개로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인가는 동심의 폭을 넓혀 보는 것이다. “어른이면서 어른이 아니고 아이이면서 아이가 아닌 그 어떤 것을 동심이라 한다면시인은 여치 얼굴에서 어린 나를 만났고, 동심을 보았고, ‘둥글며 환한어떤 세계가 열리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공감하는 그 어떤 지점은 동시를 쓰는 시인들의 운명과도 같다. 그리고 우리는 여치 얼굴을 통해 그 지점의 행복한 합일이 어렵다는 것도 안다.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시적 상상의 힘인데 가령 아이의 공을 받아내는 벽의 가슴에 이 든다거나 슬리퍼가 물고기로 변신을 하고 화장지는 혀는 있으나 말하기 이전에 구겨지는 욕망의 좌절, 의자는 네 발 달린 동물, 소화기는 웃음을 참고 있는 아기 코끼리가 되는 방식이다. 시적 상상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이런 사물의 변환은 언제나 즐겁고 동시적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무생의 대상이 사람처럼 감각하는 존재가 된다는 상상은 자칫하면 유치해질 수도 있다. 공을 받아낸 벽이 멍이 든다거나 슬리퍼가 물고기 된다거나 파리와 파리채가 공생한다는 것이 내게는 그렇다. 이것은 이미 굳어버리고 각질화 된 어른의 감성 탓이겠지만 동시에서는 너무 오래 사용된 상상 기법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생의 사물을 이야기하지만 종이컵의 상상은 좀 다르다.

파릉 파릉/저 나무/커다란 종이컵//후루룩 새 떼 날아와/종이컵에/쪼르륵 담기면//바람 갑자기 불어와/새 떼 주르륵/흘러넘치고//파랑파랑/몸을 떠는/저 물가의 나무//, , /쓰러질 듯/커다란 종이컵

-종이컵전문

 

앞에 예로 든 시가 무생의 대상에서 생명을 보려는 시선이었다면 이 시는 나무-생명에서 무생을 보는 방식으로 시선이 자리바꿈했다. 벽이 멍이 든다고 해도 벽이 생명을 가진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이 시를 통해 종이컵은 이전의 무생의 종이컵과는 다른 종이컵이 된 것만 같다. 현실에서도 익숙한 대상인 종이컵의 담는다는 속성을 차용하여 나무와 거기에 와 앉는 새 떼의 형상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종이의 재료가 나무라는 것도 종이컵과 나무의 조합을 무리 없게 한다. 이것은 이미 살아있는 대상에서 출발한 상상이기에 조금 더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한 순간의 착란은 시가 보여주는 마법이며 빼놓을 수 없는 시적 재미다. 이런 순간에 세상은 스치듯 다른 세상의 얼굴을 보여주는데 무생물과 생물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순간의 재미라면 종이컵의 방식은 무척 유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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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동물원 문학동네 동시집 36
이안 지음, 최미란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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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시인의 동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 독자가 이해하기에도 결코 쉽지 않은 동시들이 많다. 최후에 선택한 시의 언어가 세공사처럼 정교하고 치밀한 데서 오는 차가움 때문이라고 여겨지는데 오래 들여다보고 다듬고 걸러낸 후 완성된 것 같은 시 시월, 모과나무 달, 외눈바위, 돌사자상에 비가 오면, 화살나무, 굼벵이로부터등이 그렇다. 장자까지 등장하는 구름 붕붕은 류선열 동시에 등장하는 대가리가 이쪽 산마루를 넘어갈 때쯤/꼬랑지는 건너편 산등성이에 걸쳐 있었다.”고 했던 할아버지의 거짓말을 애교로 들리게 할 만큼 작정하고 쓴 것 같다.

모과나무에서/ !/달이 떨어졌어//노오란,// 바람에 긁힌/상처에서 새어 나오는/달빛 향//노오란,”이라고 쓴 시 <모과나무 달>은 모과라는 개체에 대한 정의가 있으면서 드러나지 않고, 극적인 사건 혹은 이야기는 있으나 꼭꼭 숨었고, ‘, 노오란, 이라는 감각과 두 번의 노오란이 부르는 리듬이 도드라져 시일 수밖에 없는 시다. 더 필요한 말도 없고 여기서 하나라도 없어진다면 시가 무너지고 말 것처럼 단단히 여며졌다.

이 시는 시인이 마주친 시적인 순간과 그것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시적 언어, 가장 효율적인 시적 배치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차갑게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시집에 실린 많은 시들이 그러하고 나아가 이안 시가 그러하다. 이것이 이안 동시가 다른 동시와 다른 지점이며 난해함이라는 문제 앞에 그의 시를 두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난해함이라는 시선을 그가 굳이 걷어내려고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한데, 대신 이번 시집에는 그간 해오던 말놀이 같은 우스꽝스러운 시를 유지하면서도 거기에 갸우뚱한 시도가 들어있는 것이 눈에 띈다. ‘갸우뚱이상한 시를 쓴 그의 생각 밑에 있는 것은 관습적인 것들에 대한 반항처럼 다가온다.

 

 

절대 이 책릉 거꾸로 꽂지 마시오

문이 곰릉 열고 탈출할 수도 있믕

-른자 동롬원전문

 

이 시는 만을 바른 문법으로 알고 왔던 언어 습관을 대신 이 들어오겠다고 하는데 우선 발음이 익숙지 않아서 읽기부터 걱정이었다. 글자-른자, 동물원-동롬원 등 문자를 문자로만 따로 떼어 읽으면 글자들을 정확히 구분하여 발음할 수 있다. 유일한 실험 대상이었던 한 아이는 아주 잠깐 갸우뚱-그것은 익숙한 것이 비틀어지는 순간이다- 했지만 이내 글자를 거꾸로 쓴 시의 장난을 이해한 듯했다. 아마 아이들은 장난이라고 느꼈을 때 즐거웠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이 시는 우스꽝스러운 시에 머물면 장난이 주는 재미로 남겠지만 갸우뚱한 시로 읽을 때 한 걸음 나아갈 것 같다. 시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소리가 주는 배반과 함께 의미가 품고 있는 똘끼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관습에 대한 반항이다.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오듯이 바른 글자가 바름을 뚫고 뒤집어짐으로써 심심한 관습에 날린 훅이다. 그런 시도가 있으면 문이 곰을 열고나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발상이 어떠한가.

우리는 동물원에 갇힌 곰처럼 관습 혹은 의식이라는 동물원에 갇힌 존재들이다. ‘동물원동롬원으로 뒤집어질 때, 의식-‘글자른자로 뒤집어질 때 의식의 은 자유로움을 향해 열리는 새로운 문의 의미로서 이 열리는 경험.

갇힌 언어로 갇힌 상태에서 창작을 해야 하는 시인이라면 어느 순간 언어의 동물원에 갇힌 자신 혹은 의식을 제한하는 글자가 주는 감금상태에 놓이는 경험을 할 것 같다. 아이들도 그렇다. 바름, 정답, 옳음을 향해 맞춤 성장해야하는 아이들이 한번 뒤집어지면서 느끼는 쾌감이나 시인이 언어를 뒤집고 발상을 뒤집어 느끼는 쾌감은 같다. 갸우뚱한 시는 새로운 경험-생각 속으로 발을 들여놓기를 유혹하는 시다. 이 시는 흔쾌히 갸우뚱한 자신의 속으로 뚜벅뚜벅 독자가 걸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시는 여전히 따스하다. 채송화 꽃에 전기를 나눠주고 가는 아이, 함함함 심심한 길에 메꽃 입을 달아주는 시선, 설에 쓰고 난 밤에 싹이 돋으면 튼튼하게 자랄 밤나무 자리를 보아주려는 마음은 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따스함의 깊이일 것이다.

차갑고 따스하고 갸우뚱 우스꽝스러운 시들이 시집 한 권 안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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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2018-03-09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음 속에 오래 남는 동시가 많아요.
동시 안에서 발견되는 시인의 마음 자리가 따뜻해요.
채송화를 보기 위해 발이 저리도록 쪼그려 앉는 자리,
억년 동안 외로웠던 바위에게
네발나비 머문 발자취로 세상을 품게 하는 자리인 것 같아요.
참 따뜻한 시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