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가지 다쓰오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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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해당했다고요?"

"네."

혼조는 놀란 듯이 얼떨떨한 얼굴로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다 조금 빠르게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딘가 조급해 보이기도 했다.

"모르겠네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조금 전 혼조 씨는 동생의 죽음에 뭔가 거짓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고 하셨습니다만."    

"아, 그건 전혀 다른 의미로 한 말이었습니다."             p.73


간토 대학 공학부 건축 학과 교수인 도모이치는 최근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뤘다. 그런데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동생이 살해당했다'는 말을 남겼다. 23년 전 초등학교 3학년이던 동생은 전쟁 중 학동 소개로 지바현의 깊은 산골 마을에 보내졌었다. 그곳에 간 지 석 달쯤 됐을 무렵, 갑자기 학교에서 동생이 익사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여태 그렇게 사고사로만 알고 있었다. 당시 소개지 아동을 불러다가 대접해 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 초대를 받아 간 집 근처 연못에서 발을 헛디뎌 빠졌다고만 들었을 뿐 구체적인 정황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남기신 말 때문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돌아가시기 직전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하신 말씀일 수도 있었지만, 동생의 죽음을 조사하는 행위 자체가 죽은 동생을 위한 작은 위령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진실을 찾아 보기로 한다. 


그렇게 도모이치는 강의 일정을 바꿔 가면서 동생의 소개지였던 지바 쪽으로 조사를 위해 떠난다. 전쟁 후 지방의 부잣집들은 대부분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동생이 초대를 받았던 다에미 가도 지금은 마을에서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났고,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어머니라는 분도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다에미가를 둘러싼 기묘하고 복잡한 이야기도 많이 있었다. 선조들의 약탈로 목숨을 잃은 자들의 저주라든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도적의 피, 그리고 근친혼이 잦았던 점 등이 얽혀 대대로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태어난다거나 으스스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다에미 가에 있던 연못에도 찝찝한 전설 같은 것이 전해 내려왔다고 한다. 용신 연못이라는 이름부터 사당에 용이 산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그리고 용이 산 제물을 원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과연 도모이치는 이십 년도 지난 동생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살인까지 한다는 건 좀 비약 아닌가? 사람이 그렇게 쉽게 살의를 품을 수 있어?"

“살면서 단 한 번도 살의를 느끼지 못한 사람은 없다고 봐.

오히려 때때로 살의를 품는 인간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대부분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 거지?”

“살의를 품는 것과 실제 행동에 옮기는 건 분명한 경계가 있으니까. 대부분 그 선까지 가면 거의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게 돼.”            p.272


깊은 산골 마을에서 조사를 하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도모이치는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거나, 자신이 남긴 발자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또 다른 발자국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을 끊임없이 받게 된다. 작고 폐쇄된 마을이라 사람들의 은밀한 눈과 귀, 입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듯했다.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미행을 한다면, 동생의 죽음에 그토록 들키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뜻이 아닐까 도모이치는 생각한다. 급기야 자신이 머물고 있던 방을 누군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여행 가방을 뒤지며 찾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다 도모이치는 누군가의 습격으로 인해 머리에 타격을 입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만다. 대체 도모이치의 동생의 죽음에는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이 작품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복선의 신'이자 '전설'로 끊임없이 회자되며 40여 년 만에 부활한 본격 미스터리이다. 가지 다쓰오의 작품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인데, 이 작품은 1979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일본 현지에서도 한동안 절판 상태였다가 2022년에 복간되었고, 이번에 국내에도 출간된 것이다. 작품이 복간되면서 범인 설정, 메인 트릭, 대담한 미스디렉션, 치밀한 복선까지 본격 미스터리로서 완벽한 작품이라며 극찬한 미쓰다 신조가 해설을 썼다.  미스다 신조는 해설을 쓰기 위해 이 작품을 43년 만에 다시 읽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가지 다쓰오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동생의 죽음에 얽힌 전반부의 미스터리만 하더라도 상당히 흡입력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데, 중반 이후로 넘어서면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 벌어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들이 시작된다. 곳곳에 치밀한 복선과 트릭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복선이 될 만한 부분에 별도로 표시를 하면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 드러나는 진실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추리, 미스터리 분야의 책들을 꽤 읽어 왔기에 반전도, 범인도 쉽게 짐작하는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이 작품만은 예외로 둬야 할 것 같다. 그만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전개가 탄탄한 서사로 진행되기에,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결말에 이르렀을 때 비슷한 표정을 짓게 되지 않을까. 작가에게 제대로 당했구나, 싶을 테니 말이다. 폭풍 같은 복선 회수에 전율하게 되는, 전설의 미스터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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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안타까운 동물 자랑 대회
이마이즈미 다다아키 외 감수, 시모마 아야에 외 그림, 이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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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안타까운 동물 자랑 대회'가 열렸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서럽고, 어쩐지 마음 짠해지는 동물들이 무려 122마리나 출전했다. 세상 모든 동물 중에서 무는 힘이 가장 강하다는 바다악어가 반대로 입을 벌리는 힘은 턱없이 약하다는데, 오죽하면 평범한 할아버지가 한 손으로 제압할 수 있을 정도라고. 커다란 눈을 가진 안경원숭이는 눈알이 너무 커서 굴릴 수가 없기 때문에 옆을 보려고 하면 아예 고개를 돌려야 한다고. 눈알 하나의 무게가 뇌와 맞먹을 정도로 무겁기 때문이다. 큰개미핥기는 발톱이 너무 커서 제대로 걸을 수 없고, 황제펭귄은 두 달 동안 발등 위에 알을 품어야 하고, 어떤 하루살이는 어른이 되고 겨우 2시간도 살지 못한다고 한다. 황당해서 키득대고, 놀라워서 감탄하다보면 어느 새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지구에 처음 생명이 태어난 38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구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십만 년,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한 진화는 수없이 많은 '우연'이 쌓이고 싸인 결과이니,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말 도 안 되는 '기적'인 셈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놀라운 진화'를 해 온 생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머러스한 일러스트들과 각 동물들의 말투가 사연의 내용과는 별개로 귀엽고, 장난스럽게 보이지만, 사실 각각의 페이지 안에는 중요한 기본 정보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동물들의 정보와 사연이 모두 쉬운 설명으로 되어 있어 어린이들의 이해를 도와주는 사랑스러운 동물도감이다. 




포유류 중에서 가장 몸집이 작은 동물 중 하나인 땃쥐는 30분마다 식사와 휴식을 반복하며 에너지를 흡수해 체온을 유지한다. 조금만 날씨가 추워도 곧바로 체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3시간만 굶어도 죽고 만다고 하니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해야 살아남는 동물인 셈이다.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고릴라는 매우 섬세한 동물이라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겨드랑이 밑에서 냄새가 나거나 사람처럼 갑자기 설사를 하기도 한다고. 울퉁불퉁한 근육 속에 가려진 아주 여린 마음이라니... 대반전의 성격이 아닌가 싶다.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경골어류인 개복치는 느릿느릿한데다 이렇다 할 방어 수단도 없기에 암컷이 3억 개의 알을 낳아도 그 중 어른이 되는 건 고작 두 마리 정도라고 한다. 확률로 보면 99.999999 퍼센트가 죽는 다는 건데, 개복치에게 어른이 되는 건 복권 1등에 당첨되는 것보다 10배 이상 어려운 일인 셈이다. 뭔가 슬픈데 웃긴, 안타까운데 귀여운 동물들의 사연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모으며 '웃기고 유익한 동물도감'의 장을 열어젖힌 '원조'가 드디어 국내에 출간되었다. 출간된 이래로 일본에서 530만 부 판매를 기록한 〈안타까운 동물 자랑 대회〉는 무려 2년 동안 초등학생 인기투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은 초 인기 시리즈다.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 제작되었을 정도이니 얼마나 화제였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각각의 동물 마다 크기, 서식지, 영어명, 특징 등 프로필이 소개되어 있고, 안타까운 사연과 안타까운 정도가 별점으로 표시되어 있는 동물도감이라 기본 정보도 익히면서 동시에 재미도 찾을 수 있다. 


세상에는 왜 안타까운 생물들이 있는 걸까. 그건 바로 진화 때문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몸의 구조나 능력이 바뀌게 된 것은 다 각자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함이었으니, 뭐 이런 동물이 다 있냐 싶다가도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진화의 개념과 역사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게 해준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자, 누가 누가 제일 안타까운지, 첫 대회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지 궁금하다면 이 엉뚱발랄한 동물도감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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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양자역학 -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알아야 할
프랑크 베르스트라테.셀린 브뢰카에르트 지음, 최진영 옮김 / 동아엠앤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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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적용해야 하는 경우는, 입자의 파장이 매우 작아져서 고전 물리학적 모델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이다. 예를 들어 전자와 같은 미세한 입자들의 운동을 설명할 때, 고전 물리학만으로는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때 드 브로이의 공식이 유용하게 사용된다.... 일상적인 것들에는 언뜻 보기에 양자역학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양자역학이 일상생활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물질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양자! 화학 반응과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양자! 모든 것에 색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양자!               P.106~107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덕분에 다양한 종류의 과학책들을 흥미롭게 읽는 중이다. 하지만 사실 아주 유명한 물리학자도 '양자역학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양자역학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은 양자역학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대칭, 배타 원리 또는 불확정성 원리와 같은 몇 가지 기본 아이디어를 이해함으로써 누구나 원자 세계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양자역학이 난해하고 직관에 반하는 학문이지만 그 점을 이용해서 신성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밝힌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두 개의 서문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물리학자의 서문과 작가의 서문이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응용수학 및 이론물리학과 교수인 프랑크 베르스트라테와 그의 아내인 언어학자이자 극작가인 셀린 브뢰카에르트가 함께 이 책을 썼기 때믄이다. 물리학자인 남편의 글을 작가인 아내가 일상 언어로 쉽게 풀어낸 양자역학에 관한 책은 아마도 이 책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그만큼 너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양자역학은 실재하며, 우리는 기술을 급격히 변화시킬 두 번째 양자 혁명의 초입에 서 있다고 양자역학 교수가 말하면, 작가는 세상에 수학과 양자역학이 있지만 삶에는 훨씬 더 복잡한 것들이 존재한다고, 이 책을 읽으며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래서 더 부담없이 양자 역학의 세계에 입문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의 아름다움을 단어로 표현해주고 있어 더 좋았던 책이기도 하다. 




현재 양자역학과 중력은 깊고 넓은 바다로 나뉜 두 개의 대륙과도 같다. 그 사이를 무한한 지평선이 구분 짓는다. 미세한 나노 입자와 거대한 중력의 대립이다. 아스펠마이어는 이 두 세계, 즉 이 두 이론을 실험적으로 화해시킬 수 있는 첫 번째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실험은 무한대라는 극복할 수 없는 장벽에 부딪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과감하게 도전에 나선다. 모험하지 않으면 성과도 없다... 모든 것을 설명하면서 일관된 이론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환상일까? ... 어쩌면 그렇다. 그러나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론이 맞지 않는다면, 혁명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P.375~376


양자역학은 1925년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정립한 이론으로 현대 과학기술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론이다.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세상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과학이다. 인간의 의식과 평행우주에서 자유의지와 영생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삼라만상을 아우르는 이야기이며,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과학적 렌즈이기도 하다. 양자물리학은 모든 현대 기술의 토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자물리학 덕분에 우리는 물질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고, 우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만들 수 있으며, 별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망원경 너머 저 먼 우주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시계, 레이저, 의학용 스캐너, 그리고 컴퓨터도 모두 양자물리학 덕분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 초반에 탄생한 양자역학과 그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16세기 시몬 스테빈에서 시작하고 그 이후 양자를 둘러싼 500년 역사를 돌아보며, 과학자들의 성과를 하나씩 살펴본다. 갈릴레이, 뉴턴, 해밀턴 경, 에미 뇌터를 거쳐 플랑크와 아인슈타인, 드 브로이,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에 이르기까지 과학사를 차근차근 짚어 본다. 이 책은 물리학 책이 아니라 양자역학에 관한 책이고, 양자역학의 본질은 수학이 아니라 그 뒤의 개념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식과 수학에서 벗어나 설명하고자 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과학책이 생각보다 너무 술술 잘 읽혀서 놀라게 될지도 모르겠다. 양자역학의 거의 모든 과학적 성공은 리처드 파인만의 "닥치고 계산하라"는 태도 덕분이라는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이론, 실험, 예측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여기서 핵심은 양자역학은 마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것이 상상을 초월하고 직관에 반하더라도 그것이 마법적인 것으로 간주될 필요는 없다고, 실험을 통해 그것을 입증하면 된다는 뜻이다. 실험 결과가 이론과 일치하면 계속 나아가면 되고, 실험이 맞지 않으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태도가 결국 과학적 발전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책은 양자역학의 기초 개념부터 시작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그 속의 신비한 현상과 수학적 형식을 탐구하는 양자역학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양자역학을 이해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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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지능 - 당신 안에 있는 위대한 지성을 깨워라
앵거스 플레처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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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하고 싶은 어리석은 행동이 있다면, 이런 질문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보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무엇인가? 그런 결과를 무릅쓰고 그 일을 할 것인가/' 루시 그레이 같은 싱글턴에게, 답은 항상 '그렇다'이다. 결국 패배해 역사에서 사라지고 존엄성을 잃더라도 또 다시 그렇게 할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되죠. 죽어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순간, 당신은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대부분의 어리석은 행동은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p.107


우리의 교육은 정답을 빨리 맞히는 법은 가르치지만 불확실할 때 스스로 판단하는 법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는 잘 푸는데, 인생은 풀리지 않고, 더 똑똑해졌지만 마음은 자꾸만 흔들리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대학의 교실에서도, 회사의 회의실에서도, 군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논리적으로 정답을 풀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탁월한 결정을 내리고, 제대로 된 방향을 감지하는 능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그에 대한 해답을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2000년대 초, 미 육군 특수부대는 문제의 조짐을 발견한다. 젊은 신병들이 의사결정, 전략 계획, 리더십에서 기대 이하의 성과를 내고 있었던 거다. 이상한 건 신병들의 IQ는 매우 높았고, 아이디어 창출, 합리적 분석을 비롯한 다른 지표에서도 최고 수준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서 정신 능력이 취약함을 드러냈다.  또한 그들은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출하고, 인간관계을 망치고, 쉽게 약물 중독에 빠졌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젊은 미국인들의 정신이 망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육군은 해답을 찾기 위해 지능을 개발하는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저자에게 연락을 해온다. 이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자는 육군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리더십 과정에 참여하는 고위 장교를 대상으로, 민간 분야에서 의사, 조종사, 기업 임원, 우주비행사 등에게 훈련을 했고, 이를 통해 의사결정, 혁신, 소통, 리더십이 향상되었다는 결과를 얻게 된다. 이 교육은 더욱 확대되어 대학과 공립초등학교에까지 적용되었고, 여덟 살 어린이들조차 상당한 효과를 보게 된다. 그것은 어떤 훈련이었을까? 어떻게 이처럼 효과를 볼 수 있었을까?




스토리씽킹은 수십만 년 전부터 인류의 삶을 이끌어왔다. 신석기 시대 선조들이 도구를 발명하고, 사냥을 계획하고, 신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스토리씽킹 덕분이다. 그리고 이 힘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상징이 있다. 바로 '셰익스피어'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 책을 관통하는 중심 축 또한 셰익스피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혁신, 회복탄력성, 의사경정, 소통, 코칭, 리더십 분야의 개척자들은 하나같이 셰익스피어의 <햄릿>, <오셀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읽고 직관, 상상력, 감정, 상식의 힘을 키웠다.              p.324


인지과학자 앵거스 플레처 교수는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며 신경과학과 문학을 융합한 독창적인 연구로 주목받아왔다. 또한 그는 세계 최고 스토리 연구 싱크탱크인 '프로젝트 내러티브' 소속이기도 하다. 그는 미 육군 특수작전사령부와 함께 인간에게는 AI가 결코 구현할 수 없는 고유의 사고 방식, 원시시대부터 사용해온 본래의 의사결정 능력인 ‘고유지능(Primal Intelligence)’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그것을 복원하는 훈련을 개발한다. 이 책은 직관, 상상력, 감정, 상식이라는 네 가지 고유지능을 깨우는 방법에 대해 최초로 공개한 것이다. AI는 구현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4가지 힘과 불확실성을 기회로 바꾸는 6가지 전략을 실제로 고유지능이 어떻게 발휘되는지를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빈센트 반 고흐와 마리 퀴리처럼 새로운 규칙을 발견하라, 베토벤과 특수 요원처럼 미래를 창조하라, 벤저민 프랭클린과 주식 투자자처럼 순간을 지배하라, 아인슈타인과 스티브 잡스처럼 판을 새로 짜라, 조지 워싱턴과 우주비행사처럼 승부수를 던져라...고 말하는 식이라 누구나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시대에, 데이터에 의존하는 AI보다 수백만 년 앞서 인간의 두뇌 속 가장 오래된 영역에 본연의 지혜와 창의성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미래를 대단히 희망적으로 바꿔준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능력이 데이터가 아니라 '이야기'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셰익스피어가 등장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셰익스피어가 왜 필요한지를 빈센트 반 고흐, 마리 퀴리, 스티브 잡스 등의 사례를 통해 고유지능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며 깨닫게 만들어 준다. 논리와 데이터보다 직관과 상상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 책은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는다. AI를 뛰어넘는 인간지능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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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녕
김효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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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두 사람은 제일 비싼 수박을 사 들고 신이 나서 집으로 향했다. 소우의 3평짜리 작은 자취방에 쪼그리고 앉아 수박 위에서 작게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제부터 매년 생일에는 수박을 먹자고 약속했다.

"여름에 태어난 특혜야. 특혜."

리호를 만난 이후 소우의 삶엔 특혜가 많이 생겼다. 별거 아닌 것들이 둘만의 문화가 되고 금세 서로의 취향이 되었다.             p.68


리호는 7년을 만난 남자친구 소우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의 죽음은 리오에게 온 세상의 배신이자 버림이었다. 함께 할 미래를 꿈꾸며 캐나다에서 열심히 일했던 리호는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소우가 살았던 속초에 작은 집을 얻고, 함께 살기 위해 벌었던 모든 돈을 다 쓰기로 하고 술에 취해 지내며 삶을 돌보지 않는다. 그리고 소우의 첫 번째 기일날, 밤 9시에 전화가 걸려온다. 분명 소우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전화기 속 소우는 리호를 알지 못했다. 그의 정체는 평행우주 속에서 1년 전 시간대를 살아가는 '임소우'였다. 좋아하는 것도, 아이스 초코를 아이스 핫초코라고 말하는 것도 모두 같았지만 그에게는 여자친구가 없었다. 


같은 꿈을 꾸던 소우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소우이면서 소우가 아닌 존재가 다른 세계로부터 나타난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30대가 되면 해수욕장 앞에서 살자던 소우의 꿈은 스물아홉에 멈춰 버렸다. 그와 함께 살면서 작은 애견 미용숍을 여는 것이 꿈이었던 리호의 마음도 거기서 멈춰 버렸다. 그런데, 자신이 없는 사이에 없는 사이 좋아하던 여름밤 천문대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해버린 소우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물론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소우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매일 밤 통화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전화기 속 '임소우'는 현실 속 '소우'와 같은 점도, 다른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가 밝히지 않았던 가족 관계나 사람들과의 관계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리호는 점점 그가 낯설게 느껴진다. 몰랐던 친형이 교도소에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없는 줄 알았던 가족들의 존재도 알게 되며, 사진관에서 일하며 카메라를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여름밤 천문대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사라진 천문대 해설사와 특별한 관계였다는 정황까지 듣게 되자 리호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래, 우아함은 돈이구나. 돈에서 벗어나야 우리는 우아해질 수 있어, 소우야. 그 말이 소우를 질리게 했을까. 별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는 리호를 배신하고 먼 우주를 향해 제 발로 뛰어내렸다. 어쩌면 그 배신감이 소우를 잃었다는 슬픔보다 더 컸을지도 모른다. '우리'라는 단어에 유일하게 이질감이 들지 않았던 리호의 가장 가까운 사람, 리호의 진짜 모습에 가장 가깝던 사람은 사실 죄다 거짓말이었고 사과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p.83


이 책을 읽으면서 죽어버린 전 남자친구의 다른 우주 버전이 나타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당황스럽겠지만, 그래도 반갑지 않을까. 내가 몰랐던 그의 다른 부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어쩐지 무섭고 슬프기도 할 것 같다. 이 작품은 이렇게 어쩐지 아련한 분위기의 타임슬립 로맨스로 가다가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꾼다. 소우가 천문대에서 스스로 뛰어 내려 생을 마감했다고 들었는데, 그의 집에 찾아가 짐을 정리하다보니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다. 그렇다면 소우는 왜 죽은 걸까. 설마 누가 소우를 죽였다는 걸까. 리호는 다른 세계의 '임소우'와 정보를 주고 받으며, 현실 세계의 '소우'가 왜 죽은 건지 그 이유를 찾아내기 시작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평행 우주 속 '임소우'와 함께 현실 속 '소우'가 죽은 이유를 밝혀낸다는 설정이 흥미로운 이 작품은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안녕'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준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살아 나가야 하는 존재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 없이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된 이별 앞에서 무너지는 이들에게 작가는 다시 내일을 기다릴 수 있도록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극중 리호가 매일같이 가는 술집의 마스터는 갈 때마다 내는 돈에 비해 과한 음식들을 주었다. 그리고 어느날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사는 건 좋은 거야. 죽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살 수만 있으면 살아야 하는 거야. 매일 맛있는 걸 주면 안 죽을까 해서 나 매일 노력했다.” 라고. 덕분에 리호가 그 순간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셈이다. 생일 케이크 대신 수박을 나눠 먹고, 별과 은하수처럼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연인들의 모습이 슬프게만 그려져 있지 않아 더 좋았던 작품이다. 그래서 에필로그 속 마지막 장면을 기분 좋은 여운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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