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
전영애 지음, 최경은 정리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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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자가 되려고 독문학과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외국문학을 했기 때문에 특별한 득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외국어를 배우느라고 절절맸지만, 그냥 언어를 하나 배운 게 아니고 어느 사이 세계 하나가 제게로 왔더군요. 낯선 세계가 하나 열려왔어요. 엄청난 작가들을 읽게 됐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온갖 학계에 이리저리 가봤더니 같은 작가를 공부하고 읽은 사람들은 또 바로 다 친구가 돼서 너무나 좋은 친구들이 세계에 널려 있고요.               p.16



<시인의 집>,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등의 책을 통해 만나온 독문학자 전영애 교수의 신작이다. 예전에 다큐인사이트라는 방송을 통해서 여백서원과 일흔두 살의 노학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 1만 제곱미터의 뜰과 서원을 홀로 가꾸며, 여전히 괴테를 연구하며 괴테의 모든 저서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계신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학자로 50년을 살아온 그의 삶이 궁금해 책들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는 '괴테 할머니'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돌아왔다. 




평생을 학문에 매진한 학자지만, 근래에는 유튜브 채널 ‘괴테 할머니 TV’를 통해 소개된 소박한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은 그 영상 들을 골라내어 글로 만든 것이다. 낮에는 여백서원과 괴테마을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잡초를 뽑고, 밤이면 작은 등불 하나에 의지해 괴테의 글을 번역하는 삶은 그 자체 만으로 어딘가 위로가 된다. '이제 책 같은 건 없어도 살 듯한 세상이지만, 저는 책이 있어 산 것 같습니다'라는 그의 말을 기억한다. 이 책에서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내 옆의 좋은 이웃만 만나는 게 아니라 몇백 년 전의 어느 누구까지 만나는 일입니다. 엄청난 일이지요.'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 본다. 사람은 늘 배워야 한다고, 살아 있다면,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그의 삶을 대하는 자세도 본받고 싶다. 그가 말하는 공부란 책 보는 것뿐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저에게 있어서 도서관의 '망'입니다. 어디든 제가 가서 앉아 있는 도서관이 있고, 또 가끔씩 어떤 집들에서 살게 되는데, 그 집들에서는 그 집들의 이야기가 그 주인과 얼마만큼씩 다 연결되고, 또 그 연결이 주는 압도적인 느낌 때문에 거기서 또 글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지도에서 불이 켜지듯이, 세계 여기저기에서 작은 방들에 불이 켜집니다. 왜 그 방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졌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단지 일상생활 속이 아니고 어딘가로 떠나서,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생각하고 느끼고 쓸 수 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과 공간이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그렇게 빛나는 장소들이 있어서 어떤 삶의 토대가 단단히 놓일 수 있지 않았나, 이런 생각마저 하곤 합니다.                  p.57


괴테는 <파우스트>를 자그마치 60년 동안 썼다는데, 저자는 <파우스트>를 45년을 두고 읽었다고 한다. 책이 낱장으로 흩어져 고무줄로 묶어두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세월만큼 얼마나 작품을 깊이 이해하셨을까 감탄스러웠다. '평생을 걸고 옮겨 제대로 전하고 싶은 작품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할 따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천천히 공들이는 일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정말 오래 전에 읽었던 <파우스트>를 다시 꺼내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의 삶과 괴테의 문학들이 거의 하나가 된 듯한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괴테의 글을 만나게 되니 예전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파우스트>를 다시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파우스트>를 새롭게 구매했다. 오래 전에 읽었던 버전을 다시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시작해보려고 말이다. 사실 별돌책 굿즈인 우주 벽돌 문진을 받고 싶어서 산 것이기도 하지만... 하핫.. 현대지성 클래식 버전으로 구매해 거장들의 컬러 명화와 함께 읽는 무삭제 완역본이다. 아마도 조금은 수월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고대해본다. 결코 이해하기 쉬운 작품은 아니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한때는 가까이, 한때는 또 멀리 두기도 하면서 천천히 읽다보면 세상과 사람에 대해 더 넓은 시야가 트일 거라'고 믿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맑은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집'이라는 여백서원에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공간이라고 하니, 시간을 내어 가보고 싶다. 경기도 여주면 서울에서 그렇게 많이 먼 거리도 아니니 말이다. 특히나 여백서원과 괴테마을의 정원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꾸는 공동체 정원이라는 점이 더 궁금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들고 와 한 귀퉁이에 심어 주인이 되고, 그러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도로 설계했다고 하니 말이다. 


저자는 여백서원에 더해 ‘괴테마을’의 조성에 힘쓰고 있다. 괴테가 어린 시절을 보낸 프랑크푸르트의 집을 본떠 지은 ‘젊은 괴테의 집’과 괴테가 바이마르에 가서 처음 살던 작은 ‘정원집’도 완공되었다고 한다. 바이마르의 정원집처럼 건물 벽에 장미와 포도를 올리고 나무 시렁을 빼곡히 박아놓았다고 하는데, 연못 뒤의 숲에는 오솔길을 따라 노년의 괴테의 지혜가 담긴 시구들을 담아 작은 판에 새겨둘 생각이라고 한다. 또한 짓지 못하게 된 괴테하우스 본관 터에는 메밀 씨앗을 20킬로나 뿌려두었는데, 혹시 이 집이 지어진다면 그 뜰에 온실도 하나 만들 거라고 한다. 그 안에 괴테가 <식물변형론>에서 다루고 있는 식물 70가지가 들어가게 될 예정이라고 하니, 언젠가 완공될 괴테하우스의 본관도 기대가 되었다. 눈감기 전까지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었던 걸로 유명한 괴테처럼, 지금도 공부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많다는 노학자가 들려주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인생 수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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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1-12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괴테마을 좋았어요.^^
이젠 여백서원을 가려면 주말에 가야해서 괴테 마을에 다녀왔는데,,,, 진열되어 있는 책도 보고, 차도 마시면서 풍경도 감상하고 왔습니다.

피오나 2025-01-12 18:22   좋아요 1 | URL
어머낫. 괴테 마을에 다녀오셨다니 너무 부럽습니다! >.< 저도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