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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올로지 - 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이유진 지음 / 디플롯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성형이라는 이슈에는 '같은 환자'끼리의 연대와 돌봄, '같지 않은 환자'들 개개인의 계급성까지 중층적인 '진짜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분포돼 있다. '환자'가 끝내 외모를 변화시키고 획득하고 싶었던 지위나 사회적 인정에 관한 문제도 이 '외모 인생 이야기' 속에 포함돼야 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얼굴과 이름을 바꾸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성공 사례를 적지 않게 보아왔다. 이는 성형으로 개선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환상을 더욱 강화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 '인생 메이크오버' 또한 시장 경제의 바탕 위에서 돈과 네트워크, 정보력 있는 사람들만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다. p.111
제목인 '바디올로지(bodiology)'는 몸을 뜻하는 '보디body'와 학문을 의미하는 '올로지-ology'를 결합한 조어다. 몸에 관한 담론으로부터 시작해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가슴, 엉덩이, 각선미, 발, 얼굴, 성형, 거식증, 피부, 손, 눈물, 단식 등 신체의 각 부분이나 몸과 관련된 스물아홉 편의 글은 한겨레 신문에 칼럼으로 연재된 것을 책으로 묶었다.
여자들 중에 다이어트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먹으면 살이 쪄 뚱보가 될 거라는 공포와 불안감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급기야는 자신의 몸을 지나치게 통제해서 거식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10대 여성의 거식증은 매년 늘어가고 있고, 이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라는 섭식장애의 대표적 질환이다. 때로 거식증은 지나치게 먹는 '신경성 폭식증'으로 변하기도 한다. 거식증은 완치가 어렵고 치사율이 약 5퍼센트로 정신 질환 중 가장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라 이는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거식증은 중요한 사회적 현상이며 예산을 투입해 더 깊고 넓게 연구하고 개입해야 할 이슈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마른 몸을 아름답다고 보는 시선, 날씬한 몸에만 주어지는 기회, 몸이 큰 여성을 비난하고 수치심을 주는 일... 이 모든 것들이 여성을 굶주리게 한다. 우리는 위험한 것이 굶는 여성이 아니라 굶기는 사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한 손으로 다른 사람을 껴안고, 다른 손으로 공격하면서 역사를 만들어왔다. 나아가 주먹은 반드시 남을 가격하기 위해서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주먹은 저항하기 위해서 휘두를 때, 데모할 때 유용하다. 쓰러진 사람이 각오를 다지면서 다시 일어설 때, 타인에게 용기를 줄 때도 주먹을 높이 들어 올린다. 주먹을 쥘 때 엄지손가락은 나머지 손가락과 다른 방향으로 구부러진다. 이를 맞섬opposition이라고 한다. 엄지의 맞섬은 도구적 인간, 싸우는 인간, 저항적 인간을 만들어냈다. 평화가 투쟁과 저항 없이 저절로 이뤄질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면 손은 그 빛과 그림자 모두를 거머쥐도록 변화했다고도 볼 수 있다. p.188
이 책에는 문학 작품 속에 드러난 이성애자 남성들의 유난한 가슴 사랑, 크고 빵빵한 엉덩이를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든 역사 속에 숨어 있는 너무도 끔찍한 이야기, 걷고 싶을 때 걷고, 가고 싶은 곳에 언제라도 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전한 보행의 자유를 얻지 못했던 여성들의 역사, 객관적 미인의 기준을 세우고 예쁜 얼굴을 판별하기 위해 과학을 동원해 수치화되는 얼굴 에 관한 담론,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성형 강국 한국'이라는 말, 피부를 가진 동물이 접촉을 통해 느끼는 사회적 온기, 공기마저 자본이 되는 세상 등 다양한 담론이 담겨 있다. '몸'이라는 것이 단순한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억압과 폭력이 새겨진 텍스트라는 점이 이 모든 스토리텔링의 중심에 있다. 인류의 몸이 언제부터 강력한 물적 자본으로 부상했는지 살펴보고, 사회적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은 몸을 향한 우리의 모든 편견을 부서뜨린다.
몸은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사회적 시선, 담론, 말뭉치에 따라 정교하게 ‘만들어진다’. 몸을 가꾸는 것이 자기계발의 일부로 취급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책이었다. 얼굴, 성형, 살집, 머리카락, 섹스와 출산, 피부, 허기와 식인(카니발리즘), 죽음, 부활 등 인간의 몸 이야기에는 인류가 겪은 억압과 권력, 극복의 서사가 모두 담겨 있다. 그러니 이 책은 몸 담론으로 본 사회사이자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인의 신체에는 한반도의 근대사가 응축되어 있다. ‘얼평’ ‘몸평’의 변화상을 통해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읽는 경험은 가히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우리 모두 꼭 알고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몸이라는 신전을 짓는 건축가”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 몸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고, 언제든 자신이 바라는 쪽으로 몸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을 통해 몸을 향한 보이지 않던 수많은 억압에 대해 깨닫게 되고, 사회 속에서 우리 몸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