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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봤습니다. 어깨에 똥을 싸지르는 비둘기보다 당신이 나은 게 하나라도 있을까요? 역겹고 불쾌하기 짝이 없군요. “왈왈왈, 나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허접한 머저리입니다. 사람들 주목을 받고 싶어 칭얼거리는 개새끼입니다.” SNS에 영광을 돌려야겠네요, 아주 잠시나마 유명세를 누렸을 테니. 내가 당신에게 답장을 쓰는 게 그 증거입니다. p.8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사십대 작가 오스카는 파리의 거리에서 우연히 동경하던 배우 레베카를 본다. '위험하고, 치명적이며, 연약하고, 애처롭다가도, 때론 영웅적이기까지 한 여자'였던 그녀가 '살이 올랐고,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옷차림에 피부 상태도 엉망'이었다고,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린다. 레베카는 '지고의 아름다움이 완전히 몰락해버렸다'고 자신의 외모를 폄하하는 글을 보고 그에게 항의하는 메일을 보낸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로 시작되는 그 메일에서 그녀는 역겹고 불쾌하기 짝이 없었던 자신의 감정을 온갖 저주의 말과 함께 내뱉는다. 적의로 가득찬 레베카의 메일에 오스카는 의도적으로 신랄하게 쓴 글이었다며 사과를 하지만, 사실 그녀의 반응이 꽤 재미있었다는 말로 답신을 보낸다.
두 사람은 그렇게 몇 차례 메일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이어가면서 마치 친구사이처럼 각자의 속에 있던 말을 나누게 된다. 오스카는 도서 홍보 담당자였던 이십대 여성 조에에게 미투 고발을 당했고, 알코올과 마약 등 온갖 중독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고, 레베카는 오십대에 접어들면서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제한되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오스카는 부르주아 계급 여성들이 노동 계급 출신인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주장했다. 한편, 20대 조에는 몇 년 전부터 페미니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악의에 찬 공격과 살해 및 강간 운운하는 협박 등의 댓글에는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오스카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한 뒤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항의 글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조에가 느낀 감정이 틀렸다고, 그녀의 관점이 테러 행위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찾아내 위협하고 모욕하는 글들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폭로를 이어나간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성의 성이 저지른 사기이다. 남자들의 성관계 목표는 사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보다는 인정에 가깝다." 여기에 모든 게 담겨 있다고 친구는 말합니다. 여성에 관한 음모론에 가까운 생각 말입니다... 피의자는 언제나 희생자인 척합니다.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퍼뜨립니다. 그 사이에 ‘인정’은 있을 수 없다고요. 그들에게 여성은 이상한 성이자, 적에 해당하는 성별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우리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p.102
비르지니 데팡트는 남성 작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폭력과 포르노그래피를 정면으로 다루며 프랑스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가이다. 데뷔 이래로 열일곱 살에 겪은 집단강간,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이력, 성 노동자로 일한 경험, 퀴어로서의 정체성 등 비주류 여성으로 살아온 삶을 질료 삼아 폭력적 남성성과 정상성을 겨냥하는 도발적인 작품을 선보여왔다. 데뷔작 <베즈 무아>에서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포르노그래피와 폭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고, <킹콩걸>은 실제로 열일곱 살에 집단강간을 당하고 성 노동자로 일한 경험 등을 다룬 논픽션이었다. 두 작품 모두 국내에 소개되었었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절판된 상태이다. 주류에서 소외돈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가 비르지니 데팡트가 궁금했다면, 이번에 나온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로 처음 만나도 좋을 것 같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20년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번 작품은 미투 고발자인 20대 여성과 미투 가해자인 40대 남성, 그리고 관찰자이자 방관자인 5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서간체 소설이다. 현대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가 '서간체'라는 형식으로 쓰여 더욱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작가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세 인물이 치열하게 반목하는 과정을 통해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세대 갈등과 남녀 분열이 극심해진 현대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은, 청년 세대와 기득권 세대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하나로 연결될 수 있을까. 현실감 넘치는 인물 설정과 신랄한 유머로 무장하고 갈등과 논쟁의 장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이 뜨거운 작품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