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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천재들 - 물리학의 한계에 도전하는 바다 생물의 놀라운 생존 기술
빌 프랑수아 지음, 발랑틴 플레시 그림,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멸치의 투명 망토는 완벽한 거울이다. 만약 욕실의 거울을 바라보듯이 멸치의 은빛 층을 바라본다면, 자신의 얼굴이 완벽하게 반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거울 장인이 만든 최고의 거울보다 훨씬 훌륭한 거울처럼 보일 것이다. 멸치는 이런 식으로 거울처럼 주변 세상을 반사해 자신의 피부에 그대로 담는데, 그럼으로써 주변 환경에 섞여 들어가 자신의 모습을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이 마술은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단 한 줄기의 빛도 옆으로 비켜 가거나 그냥 통과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p.192~193
바다는 지구 면적의 70프로를 넘게 차지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5프로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다는 항상 미지의 세계였다. 이 책은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바다 생물의 경이로운 능력을 탐색한다.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기법으로 그린 생생한 일러스트들이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바다 생물의 매혹적인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아주 깊은 바닷속에 사는 해양 생물들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해냈다. 햇빛이 전혀 없는 곳에서 나름의 생태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또한 세상에서 수명이 가장 긴 동물 또한 바다에 존재한다. 그곳에선 수명이 1000년을 넘는 동물들이 다반사로 존재하는데, 어떤 개체는 인간의 문명보다 앞서 태어난 것도 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바닷가재와 노화를 역전시키는 해파리, 몸 전체에서 물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상어의 감각, 완벽한 거울처럼 주변을 비추는 멸치의 은빛 층, 한 달 만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다랑어의 지구력, 한 번도 땅을 딛지 않고 세계를 일주하는 앨버트로스, 물고기의 몸과 조개껍데기에 나타나는 패턴 무늬의 논리 규칙, 물고기 떼의 움직임에서 발견한 집단 지능 등 바다 생물들의 특별한 능력을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은 매일 고갈되지 않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실러캔스와 투구게뿐만 아니라 철갑상어, 산호, 해면처럼 살아 있는 화석은 지구에서 생물들이 살아간 여러 시대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종의 상징인 앵무조개를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암모나이트의 위대한 시대로 순간 이동한다. 조개껍데기로 둘러싸인 이 두족류가 바다의 지배자처럼 군림하던 시대로. 공룡보다 먼저 나타나 그 후로 모습이 전혀 변하지 않은 앵무조개는 우리를 4억 3000만 년 전의 세상으로 데려간다. 그러니 발견되길 기다리면서 보이지 않는 심해에 숨어 있는 다른 바다 동물들이 다음번에 우리에게 어떤 여행을 제공할지 누가 알겠는가? p.337
이 아름다운 책은 서문부터 아주 재미있게 시작한다. 페이지들이 거대하고 다채로운 해초처럼 물속에서 너울거리는데, 농어와 놀래미가 놀란 표정으로 이 물체를 살피는 장면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갑오징어가 매우 조심스럽게 페이지들을 넘기고, 사방에서 몰려든 많은 물고기와 갑각류들에게 참바리가 말한다. 이것이 '지상 세계의 동물들이 복잡한 의사소통 방식을 갖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고 말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짐작하듯이 이 물체는 바로 '책이다. 책을 발견한 바다 생물들의 이야기가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이대로 소설처럼 계속 흘러가도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사실 실제로 그들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의사 소통에 대해 알게 되고 나면, 이 장면은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이 장면들을 다시 읽어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심해로 유유히 잠수하는 거대한 향유고래와 대왕오징어, 무리 지어 대형을 바꾸며 포식자를 교란하는 멸치 떼, 바닷물에서 튀어 올라 수면 위를 활공하는 날치……. 바다 생물이 살아가는 방식은 육상 생물과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바닷속 세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로 가득해 언제나 우리를 매혹시킨다. 이 책의 저자인 빌 프랑수아는 수생 생물에 매료된 생물물리학자이다. 그래서 빌 프랑수아는 물질, 힘, 에너지 등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수중 환경의 특성과 그에 적응한 바다 생물이 지닌 생존 기술의 원리를 알려 주는데, 대단히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빛의 물리적 속성, 액체의 표면 장력, 체액의 염분 농도, 픽셀 같은 문어의 색소세포 등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바다 생물의 생존 기술 원리는 쉽게 이해되어 좋았고, 유머와 비유를 버무려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어 재미있었다.
바다 생물에 관한 지식은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연을 파괴하는 힘이 될 수도, 자연을 살리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의 의의를 더해준다. 우리가 해양 생태계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정말 와 닿게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자, 이제 물리학의 한계에 도전하는 바다 생물의 놀라운 생존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