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팀 블랙번 지음, 한시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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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방이 식물과 인간에게 중요한 수분 매개자라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약 5000만 년부터 1억 년 전 사이에 나방의 다양성이 식물의 다양성과 함께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방이 작물과 다른 식물에 미치는 중요성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했다. 꽃을 찾는 곤충에 관한 연구가 대부분 낮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인 자두, 체리, 사과, 멜론, 호박, 아보카도, 마카다미아, 카다멈을 생산하는 데 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 잘 안다. 나방도 벌만큼이나 귀중할 것이다. 단지 대개 어둠 속에서 조용하고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할 뿐이다.                p.13


나비나 벌과는 달리 나방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나방은 흔히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작물과 식물을 파괴적으로 소비하는 종도 있어 해충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민속학에서 나방은 자주 죽음과 연관되고, 대중문화에서는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며 식인 연쇄살인범과 연관된다. 사람들이 나방이라는 말만 들어도 미간을 찡그리게 되는 비호감이 된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생태학자 팀 블랙번은 나방을 사랑해 마지않을 이유가 아주 많기 때문에, 미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방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동물이며, 우리가 이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생물의 일부라고 말이다. 


저자는 아내에게 쉰두 번째 생일선물로 검은색 플라스틱 상자를 받는다. 투명 아크릴판 두 장과 20와트 형광등이 달린 이 상자는 바로 '나방 덫'이었다. 이것은 허공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상자이기도 했다. 7월의 어느 저녁에 저자는 상자를 밖에 내놓고 전선을 연결한 뒤 전구가 서서히 빛을 발하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기대감에 부푼 채 상자를 보러 간다. 그리고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보석이 흩뿌려져 있었다. 정말로 상자가 마법을 부린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Jewel Box'이다. 저자가 상자 속에 가득한 나방들을 보며 '보석이 흩뿌려져 있었다'고 표현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책 속에는 상자와 상자 속의 나방들 사진까지 수록되어 있어 이해를 도와준다. 상자 속에는 나방이 80마리가 넘게 있었고, 모든 종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시급했다. 저자는 나방들을 그들의 이름과 천천히 연결 짓기 시작한다. 한국밤나방, 배저녁나방, 나무이끼나방, 매미나방, 저지호랑이나방, 창백한버드나무얼룩나방 등 그렇게 82마리의 나방이 28개의 종으로 분류된다. 




나방 덫의 내용물은 지구의 생명이 존재한 40억 년에 걸쳐 펼쳐진 연속극의 한 장면이다. 이 연속극의 배경은 자연이고, 그 안의 생태계가 각본을 쓴다. 그러나 등장인물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선택되는데, 인류는 여기에도 관여한다. 우리와 집을, 나라를, 지역을, 지구를 공유하는 종의 수는 궁극적으로 종분화에서 멸종을 뺀 결과다. 그리고 여기에 이주의 효과가 산재해 있다. 이제 우리가 멸종률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현재 멸종의 속도는 공룡이 멸종한 대멸종을 제외하면 우리 예상보다 100~1000배쯤 빠르다. 지구 처지에서는 인간의 존재가 소행성 충돌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p.403


저자가 나방 덫을 옥상에 설치하는 이야기로 시작한 이 책은 그 작은 나방으로 거대한 자연의 퍼즐을 하나씩 맞추어나간다. 그리고 나방의 생태계 속에 담긴 자연의 규칙, 나방의 삶과 죽음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생태학의 여러 이론과 개념들을 살펴보며 생물 다양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30년 넘게 생물 다양성 연구에 몰두해온 저자는 이 책이 나방에 관한 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봉쇄된 시기, ‘나방 덫’에 찾아온 나방의 이름을 찾고 놓아주는 취미에 빠져든 저자는 점차 생태학자의 시선으로 나방의 삶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방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저자는 나방 안에는 40억 년의 지구가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방은 빛에 이끌려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주변 나무나 덤풀 속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숨어 살아가는 데 매우 익숙하다. 나방은 대부분 작으며, 짧고 굵게 산다. 나방은 아무리 커도 포식자인 새나 박쥐에게 맞설 수 없다. 따라서 몸집을 키워 양질의 알을 낳는 대신, 덜 성장하더라도 잡아먹히기 전에 빨리 알을 낳기로 ‘선택’했다.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나방의 생태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했고, 나방이 벌 못지않은 중요한 수분 매개자라는 사실도 놀라웠다. 밤에 활동한다는 이유로 낮에 활동하는 인간에게 거의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였는데, 이 책을 통해 '재발견'하게 된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을 통해 '과연 나는 자연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시간이 된다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생태학을 통해 나방 덫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마법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자, 매일 밤 어둠 속에서 관찰한 신비로운 밤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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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 텍스트T 12
이희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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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부르인은 때때로 화이거에게서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화이거는 비스족의 평화를 지키는 수호자이지만 비스족 이외에 모든 것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녔다. 피가 튀고 뼈가 잘리는 전장에서는 과감하게 검을 휘두르는 그가 개혁과 변화 앞에서는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마음의 적이죠. 두려움은 막아 내는 게 아니라 이겨 내는 겁니다. 그것이 전사의 정신 아닙니까?”               p.125~126



가장 아름답고 기름진 풍요의 땅 실바에 사는 비스족은 오랜 시간 타 부족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뤘고, 이제 다른 어떤 부족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는 강한 힘을 얻었다. 평화의 시대가 왔지만 언제 또 매서운 피의 계절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몇 해 전, 주변의 크고 작은 부족들 중 가장 수가 적고 약한 무리인 피프족이 전설로 내려오는 땅 사라아로 갔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비스족을 다스리는 '쿤'인 부르인은 아무도 시도하지 못한 엄청난 일을 해낸 그들의 비밀이 궁금했다. 곧 열일곱 살이 되는 베아는 비스족을 다스리는 '쿤'인 부르인의 딸이다. 베아와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타이는 쿤을 보호하며 타 부족의 공격으로부터 비스족을 지키는 전사의 수장인 '솔'의 아들이다. 


부르인과 솔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베아는 전설의 땅 사라아를 찾기 위해 죽음의 숲 케이브로 가보겠다고 자진해서 나선다. 그렇게 쿤의 후계자인 베아와 그녀를 지키기 위해 여정을 함께 하게 된 소꿉친구 타이는 전설의 땅 사라아를 찾기 위해 죽음의 숲 케이브로 향한다. 사실 베아는 자신이 왜 후계자로 정해졌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의문이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은 비스족을 대표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그렇게 때문에 죽음의 숲에 가고자 했던 것이다. 피프족이 그 죽음의 숲을 통과했다면 분명 비스족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삶과 진짜 검으로 승부를 겨룰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안락한 실바를 떠나 더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이 작품은 테아와 타이가 죽음의 숲 케이브를 지나며 정체성을 찾아가고, 성장하게 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정말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 베아는 수없이 자문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얼마나 큰 오류를 범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뻥 뚫린 가슴 속으로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어왔다. 텅 빈 공간에 싸늘한 분노가 차올랐다. 혹여 이 모든 불행이 새로운 세상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내려진 여신들의 벌이자 저주라면, 절대 멈추지 않고 더 강하고 맹렬하게 그 벽에 온몸을 던질 거다.              p.22



<페인트>, <셰이커>, <테스터>, <페이스> 등의 작품으로 SF와 판타지, 청소년 문학을 넘나들며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던 이희영 작가의 신작이다. 이 작품은 우리의 신화, 단군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판타지 세계를 보여준다. 인물들의 이름에서부터 짐작이 될 것이다. 베아(bear)와 타이(tiger)가 죽음의 숲 케이브(cave)에 들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베아가 곰족을, 전사 타이가 호랑이족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들어간 죽음의 숲 카이브는 동굴을 의미한다. 베아는 케이브에서 마늘꽃 열매만 먹고, 케이브를 빠져나온 후에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새 왕을 만난다. 피프족의 탄과 비스족의 쿤이 동맹을 맺으면 세상은 '탄쿤'이 다스리는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단군설화>이지만 사실 이 작품은 모티브만 가져왔을 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놀라운 상상력의 서사를 보여준다. 


화려한 표지 일러스트에서도 느껴지듯이 주요 서사의 배경이 되는 숲 또한 매력적이다. 이곳은 죽음의 사신과 하늘에서 쫓겨난 악마들이 산다는 소문처럼 독특한 생명체들로 가득하다. 베아와 타이는 움직이는 나무, 반인 반어, 거대 백사, 늑대 등을 만나며 숱한 위기와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마늘꽃, 친절한 인어 님파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묘한 것들도 있다. 하늘까지 치솟은 나무들이 거대한 지붕처럼 온 숲을 뒤덮어 한낮에도 어두운 곳, 낯선 식물들이 자라며 회색과 검은색의 토끼들과 기묘한 날개를 지닌 새들이 사는 그곳에서 사라아에 반드시 다다르겠다는 베아의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예기치 못한 생명체를 만나며 숲을 지나면서 베아는 불안이 자신을 성장하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베아의 용기로 인해 세상은 새로운 모습으로 건설될 것이고,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다. 새로운 세대를 이끌 새 왕과 함께, 그 순간부터 또 다른 전설이 시작될 것이다. 자, 다양한 생명체들을 만날 수 있는 신비로운 숲 케이브로 지금 바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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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대에 오신 것을 애도합니다 - 더 늦기 전에 시작하는 위기의 지구를 위한 인류세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39
박정재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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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 위에 군림하면서 지구환경을 끊임없이 훼손하고 교란시켰다. 자신이 어떠한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심은 인간의 눈을 멀게 했다. 우리가 현재 목도 중인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위기는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적 사고가 빚은 결과이다. 우선 지난 과오를 충분히 반성하고 그다음엔 지구환경을 정상으로 되돌릴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지구의 환경위기가 심화될수록 인간의 도덕과 윤리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실제 인류세 논의에서 가치 판단을 돕는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p.58



현직 서울대 교수진의 강의를 엄선한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시리즈 서른 아호 번째 책이다. 역사, 철학, 과학, 의학, 예술 등 각 분야 최고의 서울대 교수진들이 2017년 여름부터 ‘서가명강’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다른 주제의 강의를 펼쳤고 그 현장 책으로 옮긴 것이 바로 이 시리즈다. 이번 책에서는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가 위기의 지구를 위한 인류세 수업을 펼친다. 


'인류세'란 '인간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뜻하는 말로 인간이 자연을 교란하고 훼손시키면서 초래한 환경위기가 대두되면서 만들어진 표현이다. 올해 여름 열대야와 폭염이 지속되는 기후 현상을 겪었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섰다는 것을 체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파괴한 자연생태계를 복원하고,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회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생물지리학, 고기후학, 고생태학을 통해 그에 대한 해결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후변화가 인류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동시에, 재앙에 가까운 지구적 위기를 초래해 온 인간의 파괴적 행위들을 지질학적으로 복원하여 생생하게 증언한다. 





우리가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구와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되찾기 위해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그리고 최선이라 할 수 있는 방안은 결국 도덕성과 윤리의식의 꾸준한 함양이라 할 것이다. 올바른 윤리와 철학의 뒷받침 없이 인류세 위기를 풀 수는 없다. 자신의 욕심에 취해 지구 생태계에 무분별하게 개입하는 것은 비윤리적임은 물론 우리 스스로를 해하는 행동이다. 반대로 소비를 절제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나가는 것은, 생태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윤리적인 행위라 할 것이다. 지구 생태계를 보호하고 이와 공존을 꾀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책임이자 가치이다.                 p.222



지금 우리는 기후변화, 대기의 에어로졸 축적, 해양 산성화, 대량 멸종까지 돌이킬 수 없는 티핑포인트 앞에 있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실, 예컨대 동물과 식물, 비와 계절과 같은 것들은 우리가 좀 더 지속 가능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급속히 변화할 것이다. 인간은 자본주의와 결합해 끊임없이 자연을 개발하고 파헤쳐왔다. 그로 인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 삼림 파괴, 플라스틱 오염 등 자연의 평형상태를 뒤흔들게 되었다. 그렇게 대두된 '인류세'에 대해 이렇게나 시의적절하고, 어렵지 않게 풀어낸 책이 또 있을까 싶다. 국내 최고의 홀로세 전문가인 박정재 교수가 진행하는 ‘서울대 대표 인류세 강의’를 새롭게 엮은 것이라 쉽게 와닿고,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인간이 지구환경을 파괴한 지질시대인 '인류세'의 유래부터 시작해 인류세의 가장 중요한 이슈인 기후위기와 생물종 다양성 문제를 짚어 보고, 미래의 환경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차근차근 살펴보며 우리가 스르로 파괴한 지구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그리고 인류의 핵실험과 같은 지구환경 훼손이 지질학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캐나다 크로퍼드호수의 퇴적물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인류가 양산한 수많은 플라스틱 잔해와 닭뼈가 지층에서 발견되는 사실을 지적한다. 인류세라는 급박한 위기 시대에 지구생태계와 공존하는 생존법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이 아주 큰 도움이 되어줄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 파괴한 지구를 다시 회복해 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에서 여섯 번째 대멸종까지... 인류세를 건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인간과 인간 너머의 모든 생물과 사물이 공존하는 지구를 위해 이 책을 읽어 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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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천재들 - 물리학의 한계에 도전하는 바다 생물의 놀라운 생존 기술
빌 프랑수아 지음, 발랑틴 플레시 그림,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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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멸치의 투명 망토는 완벽한 거울이다. 만약 욕실의 거울을 바라보듯이 멸치의 은빛 층을 바라본다면, 자신의 얼굴이 완벽하게 반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거울 장인이 만든 최고의 거울보다 훨씬 훌륭한 거울처럼 보일 것이다. 멸치는 이런 식으로 거울처럼 주변 세상을 반사해 자신의 피부에 그대로 담는데, 그럼으로써 주변 환경에 섞여 들어가 자신의 모습을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이 마술은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단 한 줄기의 빛도 옆으로 비켜 가거나 그냥 통과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p.192~193


바다는 지구 면적의 70프로를 넘게 차지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5프로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다는 항상 미지의 세계였다. 이 책은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바다 생물의 경이로운 능력을 탐색한다.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기법으로 그린 생생한 일러스트들이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바다 생물의 매혹적인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아주 깊은 바닷속에 사는 해양 생물들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해냈다. 햇빛이 전혀 없는 곳에서 나름의 생태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또한 세상에서 수명이 가장 긴 동물 또한 바다에 존재한다. 그곳에선 수명이 1000년을 넘는 동물들이 다반사로 존재하는데, 어떤 개체는 인간의 문명보다 앞서 태어난 것도 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바닷가재와 노화를 역전시키는 해파리, 몸 전체에서 물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상어의 감각, 완벽한 거울처럼 주변을 비추는 멸치의 은빛 층, 한 달 만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다랑어의 지구력, 한 번도 땅을 딛지 않고 세계를 일주하는 앨버트로스, 물고기의 몸과 조개껍데기에 나타나는 패턴 무늬의 논리 규칙, 물고기 떼의 움직임에서 발견한 집단 지능 등 바다 생물들의 특별한 능력을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은 매일 고갈되지 않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실러캔스와 투구게뿐만 아니라 철갑상어, 산호, 해면처럼 살아 있는 화석은 지구에서 생물들이 살아간 여러 시대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종의 상징인 앵무조개를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암모나이트의 위대한 시대로 순간 이동한다. 조개껍데기로 둘러싸인 이 두족류가 바다의 지배자처럼 군림하던 시대로. 공룡보다 먼저 나타나 그 후로 모습이 전혀 변하지 않은 앵무조개는 우리를 4억 3000만 년 전의 세상으로 데려간다. 그러니 발견되길 기다리면서 보이지 않는 심해에 숨어 있는 다른 바다 동물들이 다음번에 우리에게 어떤 여행을 제공할지 누가 알겠는가?                 p.337


이 아름다운 책은 서문부터 아주 재미있게 시작한다. 페이지들이 거대하고 다채로운 해초처럼 물속에서 너울거리는데, 농어와 놀래미가 놀란 표정으로 이 물체를 살피는 장면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갑오징어가 매우 조심스럽게 페이지들을 넘기고, 사방에서 몰려든 많은 물고기와 갑각류들에게 참바리가 말한다. 이것이 '지상 세계의 동물들이 복잡한 의사소통 방식을 갖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고 말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짐작하듯이 이 물체는 바로 '책이다. 책을 발견한 바다 생물들의 이야기가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이대로 소설처럼 계속 흘러가도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사실 실제로 그들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의사 소통에 대해 알게 되고 나면, 이 장면은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이 장면들을 다시 읽어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심해로 유유히 잠수하는 거대한 향유고래와 대왕오징어, 무리 지어 대형을 바꾸며 포식자를 교란하는 멸치 떼, 바닷물에서 튀어 올라 수면 위를 활공하는 날치……. 바다 생물이 살아가는 방식은 육상 생물과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바닷속 세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로 가득해 언제나 우리를 매혹시킨다. 이 책의 저자인 빌 프랑수아는 수생 생물에 매료된 생물물리학자이다. 그래서 빌 프랑수아는 물질, 힘, 에너지 등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수중 환경의 특성과 그에 적응한 바다 생물이 지닌 생존 기술의 원리를 알려 주는데, 대단히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빛의 물리적 속성, 액체의 표면 장력, 체액의 염분 농도, 픽셀 같은 문어의 색소세포 등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바다 생물의 생존 기술 원리는 쉽게 이해되어 좋았고, 유머와 비유를 버무려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어 재미있었다. 


바다 생물에 관한 지식은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연을 파괴하는 힘이 될 수도, 자연을 살리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의 의의를 더해준다. 우리가 해양 생태계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정말 와 닿게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자, 이제 물리학의 한계에 도전하는 바다 생물의 놀라운 생존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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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인터넷 - 지구를 살릴 세계 최초 동물 네트워크 개발기
마르틴 비켈스키 지음, 박래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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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가 우주로 갔다가 결국 다시 생물학으로 돌아온 것은 단지 더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빌은 우주 연구에서 얻은 영감을 통해 지구상의 생물에 대해 배우고 궁극적으로 생명의 연결성을 이해하고자 했다. 생명의 연결성은 바로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와 바깥세계의 연결성, 그리고 우리와 우주의 연결성, 마지막으로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외면하고 심지어는 너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가진 것을 잊고 마는 인간의 습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p.46


'동물 인터넷'이라니 뭘까. 단어부터 생소한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세계 곳곳에 사는 동물 종을 서로 연결하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동물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새로운 범지구적 네트워크를 말한다. 오늘날 현장의 많은 생물학자들은 육안이나 쌍안경,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명백한 것이 아니라, 동물들 간의 그리고 동물과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할 때만 드러나는 방대한 미지의 지식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마르튼 미켈스키이다. 그는 독일 막스플랑크동물행동연구소 소장이자 콘스탄츠대학교 생태학 교수로 ‘우주를 이용한 동물 연구 국제 협력(International Cooperation for Animal Research Using Space)’의 약어인 이카루스(ICARUS)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다양한 동물들에게 원격추적장치를 부착해 그들의 행동을 추적하는 이카루스 프로젝트는 그간 현장 중심적이었던 동물 연구를 근간부터 뒤흔들며 세계 최초 ‘동물 인터넷(The Internet of Animals, IoA)’을 구축했다. 이 기술은 동물의 행동은 물론 온도, 습도, 고도, 기압 등의 환경 정보까지 모두 수신해 이를 거대한 서버로 관리한다. 저자가 이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오늘날 흔히 말하는 사물 인터넷이라는 용어는 아직 등장하기도 전이었다. 사물 인터넷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사물에 내장된 컴퓨팅 장치가 다른 장치 및 시스템과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가 구상한 것은 자연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통합 정보 교환 웹을 구축할 수 있는 '동물 인터넷' 이었다. 이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우리는 지구와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지능적인 센서, 즉 동물의 지혜를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구나 자기만의 개인적 역사가 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구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장소에서 다채로운 사건을 경험한다. 이 모든 삶의 경험은 우리에게 영원히 각인되어 있다. 따라서 개별적 경험을 알지 못하면 일상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아울러 더 중요한 것은 환경에 무언가 변화가 생겼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체가 내리는 결정 ─머물지, 이동할지, 싸울지, 도망칠지 등─을 예측하려면 개별 동물이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알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동물들을 통해 알고 싶었던 것이다.               p.190~191


인간이 동물들을 관찰하는 것처럼 동물들도 인간을 관찰하고 있다면 어떨까. 아무도 살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갈라파고스섬에서 연구할 때 만난 그곳이 지역 주민이었던 스물여덟 마리의 쌀쥐에 대한 관찰 결과를 수록한 대목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깊은 밤 공동 막사에 가장 늦게까지 남은 사람은 주로 저자였는데, 어느 날 다른 대원들은 보급품 보충 겸 휴식을 위해 본섬으로 돌아가고 혼자 캠프에 남은 적이 있다고 한다. 다른 연구원들을 보내고 차를 마시며 10여 분 정도 앉아 있는데, 쌀쥐들이 나타났다. 쥐들은 테이블 위를 뛰어 다녔고, 저자의 팔 위로 뛰오올라 어깨에 앉고, 머리 위로 올라가서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놀다 모두 잠잠해진 뒤 그날 밤에는 스무 마리의 쇠부엉이와 눈을 마주치게 된다. 두 마리는 텐트 위에, 다른 두 마리는 텐트 안에 앉아 있었다. 동물들은 저자가 혼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 누구도 해치지 않을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동물들은 멀리서 연구원들을 관찰한 뒤, 저자가 혼자 있을 때와 여러 명이 함께 있을 때가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다. 


이 책에는 새들이 하늘을 날아서 이동할 때 서로 대화하며 어느 고도로 날아갈지, 어느 방향으로 날아갈지 논의한다는 사실을 비롯해서 우리가 동물의 삶에서 몰랐던 완전히 새로운 사실들이 수록되어 있다. 어떤 동물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잡아먹는지, 오실롯이 아구티를 언제 죽였는지, 아구티가 어미나무에서 땅에 떨어진 열매를 언제 옮기는지, 집단의 일원으로서만 생존할 수 있는 개미가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을 어떻게 조정하는지 등 우리가 자연에 대해 가져왔던 온갖 선입견과 오해를 불식시켜줄 놀라운 사실들로 가득하다. 우리가 동물의 이야기를 듣고 동물이 우리와 소통할 수 있다면, 동물이 우리에게 자기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이 책은 인류세에서 종간(interspecies) 시대로의 도약을 꿈꾸며,  희망적인 인류의 미래를 낙관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간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지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이자 인터넷으로 연결된 동물들의 목소리라는 경이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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