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동물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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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동물로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생명과 얽혀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위를 고찰할 때는 항상 또한 생태학적으로(곧 다른 생물들, 우리가 공유한 보금자리, 지구라는 행성과 관련지어) 고찰해야 한다. 우리가 누구이고 누구이고자 하는가를 알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마땅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마땅한지도 알 수 있다. 인간의 자기 인식에서 존재와 당위가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              p.26


인간은 동물이다. 까마득한 과거부터 잘 알려진 가장 오래된 인간의 정의 중 하나에 따르면, 우리는 이성과 언어를 갖춘 동물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동물이다>라는 문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유한한 생물로서 신체화되어 있으며, 자연에 속한다. 근대 물리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물질적인 것을 지배하는 힘과 자연법칙이 있고,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자연에 들어맞지 않고 어긋난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물에 불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은 동물>이라는 사실과 <우리는 자연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경험 사이에서 끊임없이 해답을 찾기 위해 질문한다. 최신 과학적 논의와 철학적 사유를 넘나들며 <인간이란 누구 혹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에 대해 파고든다. 책의 제목인 <인간은 동물이다>와 부제인 <왜 우리는 자연과 어긋나는가>를 오가며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이야기가 변주되는데, 철학적 탐구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흥미로웠다. 물론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사유는 더 까다로워지고,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저자가 우리 시대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보는 무지의 윤리학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많은 것을 모름을 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라는 화두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혜에 이를 능력이 있다. 그래서 칼 폰 린네는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명명했다. 우리가 지혜에 이를 능력을 갖췄다는 것은, 학문과 기술을 통해 우리의 생존 조건을 통제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덕적 통찰과 분리된 자연과학적 -기술적 진보는 근대에 지구의 황폐화를 초래한다. 따라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과학과 기술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유한성과 한계를 염두에 둔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다.              p.388~389


대다수 사람은 동물과 인간이 한줄기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진화생물학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만, 많은 이는 여전히 자신은 동물이 전혀 아니라고, 자신의 이성이나 지성, 정신, 기타 인간을 특징짓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 실은 동물계에 아예 속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또한 인간이 동물계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물들과 구별된다면 과연 <무엇을 통해 구별되는가>라는 질문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 인간은 우리 자신과 기타 생물들에 대해 특별한 책임이 있다. 사자는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침팬지는 여성주의의 정당한 요구에 제도적으로 부응함으로써 성평등을 이룩하려 애쓰지 않는 반면, 우리 인간은 그런 근본적인 수정을 실행할 능력이 있고 따라서 도덕적 진보를 이뤄 낼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를 유발하는 문제인 동시에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다른 생물은 자신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거나 소비 욕망을 변화시키지 못할 테니 말이다. 


인간은 대표적인 동물이다. 동물임에 관한 우리의 앎은 우리의 자기 탐구에서 나온다. 기후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 19 역시 성공적으로 예방되지 않았다. 이 두 재난에 대한 지금까지의 대처는 거의 예외 없이 수습책이며 선제적이지 않다. 이는 자신의 생태 보금자리를 기술적으로 통제하기는커녕 절대로 완전히 꿰뚫어 보지 못하는 동물로서 우리가 난관에 부닥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와 재난의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 자연과학과 기술과 정치의 조합만으로 해결하겠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더없이 낯선 자연을 지배할 수 없으며 또한 지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절대로 자연을 완전히 해독하여 우리의 통제 아래 둘 수 없다. 자연에 관한 우리의 앎이 아무리 크더라도, 우리의 무지는 더 크기 때문이다. 참 재미있게 잘 읽히고, 술술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책이었다. 그럼에도 천천히 읽어 나가면서 조금씩 이해해보고 싶은 책이기도 했다. 인간은 무엇을 사유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자, 이 책을 통해 삶의 의미와 무지를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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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 상처 입은 동물들을 구조하며 써내려간 간절함의 기록
김정호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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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동물이 죽고 사는 것보다는 사는 동안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아닌지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몸의 고통을 빨리 발견하여 해결해주는 것이 수의사로서 동물 복지를 실천하는 길이라 믿는다. 동물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가만히 말해본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그러면 좀 더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p.104


어린 시절에 다들 동물원에 대한 기억이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동물들을 보며 신기하고 놀라웠지만, 어른이 되면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는 이상 동물원에 굳이 가지는 않게 되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뭘까. 아마도 갇혀 있는 동물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야생 동물들을 위한 환경이 열악하기에 우리 속에 있는 동물들의 상태는 건강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가끔 탈출한 동물들이 거리를 질주하다가 사살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야생을 경험해 보지 못한 동물들의 최후가 비극이 되지 않도록, 야생 동물들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 책은 그런 고민에 대한 일종의 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실내 동물원에서 굶주린 채 방치돼 갈비뼈만 남은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샀던 '갈비 사자' 바람이의 사연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시 동물원장을 설득한 끝에 구조한 것이 바로 김정호 수의사다. 바람이는 청주동물원으로 옮긴 지 한두 달 만에 갈비뼈가 보이지 않는 건강한 상태가 되었는데, 이 사연은 유퀴즈에 나오며 더 많이 알려졌다. 이 책은 25년 차 동물원 수의사가 들려주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 케이지를 살아서 나온 국내 최초의 곰 네 마리 반, 달, 곰, 들, 7년 동안 좁은 공간에 갇혀 무기력하게 지내다 구조된 사자 바람이, 짧은 목줄에 묶인 채 뙤약볕에서 숨을 헐떡이던 래브라도리트리버 수박이 등 동물들의 이야기는 그들 각자에게도 삶이 있고, 그것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돌봄과 책임,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것에 대한 의미도 되새겨보게 만들어 주었다. 




동물원이 있어야 한다면 사람이 아니라 야생동물에게 필요한 장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있거나 노령인 야생동물이 여생을 보내는 곳, 다친 야생동물이 치료를 받고 자연으로 복귀하기 전 적응훈련을 받는 곳, 방문객들이 이러한 야생동물을 경험하고 같이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보는 곳이면 좋겠다. 동물원이 야생동물을 소유하지 않고, 잠시 머무는 존재들이 안식처가 되면 어떨까? 갖지 않기로 하면 더 많은 것을 향유할 수 있다.             p.142 


야생돌물은 자신의 약점을 본능적으로 숨긴다고 한다. 질병과 부상이 야생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맹수들은 자신의 아픔을 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저자는 폐사한 동물들을 부검하다 보면 이런 몸 상태로 어떻게 고통을 참고 있었는지 놀라웠을 때가 많았다고 말한다. 동물원에 동물병원이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플 때 잘 치료해주기 위함도 있지만, 아프다고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야생동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몸의 이상을 미리 발견하고자 하기 위해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필수인 것이다. 자연에서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야생동물이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외상은 비교적 잘 아문다고 한다. 관심을 갖고 미리 살펴봐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동물의 안부를 매일 묻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청주동물원의 동물들을 비롯해 각종 전시장에서 늙고 아픈 동물들의 이야기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동물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귀엽지 않고 늙고 장애가 있는 동물도 편안히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저자의 간절한 진심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동물원이 희귀한 동물을 물건처럼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갈 곳 없는 동물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준비하는 야생동물들의 재활치료소이길 바란다'는 저자의 말이 너무도 와 닿았던 책이다. '사람 살기도 힘든데 무슨 동물까지 챙기느냐?'는 의문에 '동물이 살 만하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대답을 돌려줄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책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동물을 살리는 일이 결국은 사람을 살게 하는 일이 되기를, 소외된 동물의 보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확장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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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미식 생활
이다 치아키 지음, 장하린 옮김 / 이아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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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리에 대단히 공들이는 것도 아니고, 미식가도 아니라도, 먹고, 마시는 것은 날마다 찾아오는 즐거움이다. 오늘은 뭘 먹을까? 오늘은 무슨 장을 볼까? 가족들의 끼니를 챙기다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만든 음식을 함께 맛있게 먹다 보면 배가 부른 만큼 마음도 따뜻해진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이다 치아키의 첫 에세이 만화인 이 책은 일상 속 먹을 것에 얽힌 이야기를 소소하게 들려준다. 음식이 주는 기분 좋은 설레임을 일러스트로 풀어냈는데, 그림체 자체가 몽글몽글하고 따스한 느낌이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소소한 미식 생활에서는 집에서 간단히 차려 먹는 아침과 점심, 과자 만들기와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아침은 주로 빵과 커피로 시작하는데, 각양각색 샌드위치와 토스트, 그리고 가끔 아침 식사 대신 먹는 편의점 찐빵이 등장한다. 쌀밥이 있는 아침은 아주 가끔인데, 재료를 듬뿍 넣은 돈지루와 달걀말이, 콩가루를 얹은 밥 등 소박하지만 맛깔난 한상을 보여준다.


2장 우리 집 식기편은 식기를 좋아하는 저자의 취향이 듬뿍 묻어나는 에피소드들로 꾸렸다. 직접 산 식기, 선물 받은 것들이 슬금슬금 쌓여서 부엌곳곳에 식기가 있다. 애착이 가는 식기가 늘어나면 요리도 즐거워진다는데,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좋았다. 좋아하는 식기에 담아 먹는 식사가 더 맛있고, 즐겁다는 사실은 불편인 것 같다. 




3장 맛난 게 제일 좋아에서는 동네 식당에서 먹는 점심 메뉴와 집에서 만들어 먹는 최애 파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마음과 시간이 널널해진 주말의 특별한 식사는 식탁에 음식을 잔뜩 벌여놓고 느긋하게 즐기는 브런치이고, 동네에서 맛있는 파스타 메뉴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 그럼에도 최애 파스타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파스타라고. 뱅어 페퍼론치노, 명란 파스타, 미트 소스 파스타까지 간단한 레시피도 소개되어 있어 다음에 만들어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4장 새로운 식탁에서는 이사를 앞둔 새집에서 보낸 일상과 집에서 일하며 마시기 시작한 차한잔의 시간에 대해 그렸다. 각양각색의 다기들과 냉침으로 먹는 여름의 차에 대한 페이지도 흥미롭게 읽었다. 이사에 맞춰 새로 장만한 식탁, 그리고 인테리어도 되며 활용도가 높은 다양한 식탁보에 대한 생각도 재미있었다.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들고, 그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내일이 또 오늘 같이 반복될 거라는 거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지루한가. 거기다 오늘도, 내일도 늘 비슷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가 된다면 식사 시간이 즐거울 수가 없다. 깨끗한 재료들과 정확한 레시피, 그리고 발과 프라이팬과 양념들로 정직한 노동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도 참 좋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은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음식을 먹다보면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내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생긴다고 할까. 세상에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게 또 뭐가 있겠냐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어떤 문제도 더이상 껴안고 있겠다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음식을 둘러싼 경험이 접시에서, 사람으로 계속 이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을 이어주고, 외식으로 먹었던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보며 바깥과 안을 연결하면서 말이다. 오늘 뭐 먹지? 라는 말에는 조금의 설레임 같은 것이 있다. 소소하지만 소중한 우리의 한끼를 생각하며, 이 사랑스러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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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괴담
온다 리쿠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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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괴담은 왜 이렇게 인기가 있을까. 21세기가 되면 과학의 진보와 함께 없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까?"

다몬이 누구한테 묻는 것도 아닌 말투로 중얼거렸다.

"양쪽 다가 아닐까?...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좋은 거야. 믿느냐 안 믿느냐가 아니라, 모르니까 좋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              p.59


백주대낫에 한창 일할 나이인 중년 남자 넷이 모여 모임을 갖는다. 이름하여 '커피 괴담' 모임이다. 이 모임은 오로지 찻집만 순례하면서 시원한 바람도 쐬고 번갈아 괴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의 장소에서는 딱 하나의 괴담만 이야기해야 하기에, 괴담이 끝나면 다른 장소로 이동 전에 일상적인 수다를 나눈다. 함께 모인 네 명의 친구는 작곡가 겸 스튜디오 뮤지션인 오노에, 스타일은 펑크 로커처럼 보이지만 의사인 미즈시마, 레코드 회사 프로듀서인 다몬, 금융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 구로다이다.  




오봉은 아직 멀었고, 장마가 끝나지도 않은 참으로 어중간한 시기에 이들의 첫 모임이 시작된다. 작곡가인 오노에게 작품이 잘 풀리지 않아 상황 타개를 꾀한다는 명분으로 옛 친구들을 불러 모은 것이 커피 괴담의 시작이었다. 여름의 교토에서 시작된 모임은 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요코하마를 거쳐, 도쿄의 세계 최대 고서점 거리 진보초, 깊어 가는 가을 고베의 번화가, 오사카의 복고적인 찻집을 거쳐 다시 늦가을의 교토로 이어진다. 각자 일상에서 겪었던 괴담이나,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드라마틱하게 무섭지는 않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싹해지는 종류의 괴담들이다. 




"그럼 시시한 결말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부조리의 증거인 것 같아."

"요컨대 위화감이나 어긋남,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무서운 거야." 다몬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래. 예를 들면 다몬의 사고 회로라든가."

..."뭐? 내 사고 회로? 그게 왜?"

"이것 봐. 본인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지만, 다른 사람은 그걸 이해할 수가 없어서 무서운 거야."               p.252


내가 온다 리쿠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것은, 2007년 여름 <유지니아>라는 작품이었다. 매력적인 작가를 처음 만나면 늘 그렇듯이 그 작품 이후로 온다리쿠의 작품들을 죄다 찾아서 섭렵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만났던 온다 리쿠의 작품들은 이후 여름만 되면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색감을 가진 독특한 이야기들이었다. 벌써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장면 장면이 다 기억날 정도로 이상하게 그 시절에 읽었던 작품들은 나에게 묘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섬뜩하게 느껴지는 공포도 아무렇지 않게 그려내고,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과 불안함이 스멀스멀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온다 리쿠만의 매력이다. 


독보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는 작가답게 SF, 판타지, 호러,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로 서정적인 공포를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공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조금 분위기가 다르다. 실제 사건에서 힌트를 얻어 각색한 이야기답게,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져 더욱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온다 리쿠는 덧붙이는 말에서 자신이 과거에는 '맛있는 커피는 밖에서 마신다'는 주의였다고 한다. 집에서는 인스턴트커피밖에 마시지 않았고, 찻집 순례가 취미였다는 것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찻집은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서 재미있는데, 다른 세계, 다른 시대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곳들도 많아 괴담을 이야기하는 무대로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경험을 살려 쓰인 것이 바로 이 <커피 괴담>인 것이다. 괴담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게들도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곳들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이상한 예감이 드는 꿈, 오래 전 살인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 낯선 곳에서 만나는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일상생활 곳곳에 괴이한 무언가가 있어도, 그것이 일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알아 차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이 작품은 그렇게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주고, 인간 근원에 놓인 공포라는 감각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해준다. 또한 '무섭다'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일체감과 괴담을 이야기할 때의 독특한 친밀감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친숙하게 느껴지도록 하기도 한다. ‘노스탤지어의 마술사’ 온다 리쿠가 그려내는 서정적 공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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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괴담
온다 리쿠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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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의 마술사’ 온다 리쿠가 그려내는 일상의 얼굴을 하고 있는 공포를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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