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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아이돌 ㅣ 다산어린이문학
이송현 지음, 오삼이 그림 / 다산어린이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할머니도 젊은 사람들과 똑같이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지만, 십 대들이 열광하는 아이돌을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내 속을 꿰뚫어본 듯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은 애나 어른이나 늙은이나 똑, 같, 아. 명심하라고." p.91
다정이는 최고의 한국 무용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무용 학원에서 하루 종일 보낼 거라고 엄마한테도 미리 말해두었다. 예술중학교에 입학하려면 자신처럼 평범한 아이는 남보다 더 노력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달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던 계획이 다 엉망이 되어 버렸다. 갑자기 하와이에서 이모할머니가 오신다고, 방학 때 이모할머니랑 여행도 하면서 잘 지내라고 엄마가 말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번 여름에 승진 기회를 붙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고, 이모할머니를 모시고 챙길 사람은 다정이 밖에 없었던 거다.

10년 만에 한국에 오는 이모할머니는 빨간 립스틱에 핑크빛 눈 화장을 하고, 세련된 쇼트커트 스타일로 누가 봐도 눈에 띄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실 할머니가 하와이에서 날아온 이유는 최애 아이돌인 '스윗보이즈'를 보기 위해서였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서 10년 만에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왔다니 다정이는 이해할 수가 없다. 게다가 집에서는 온종일 스윗보이즈만 무한 반복으로 보고, 벽에는 온통 스윗보이즈 사진으로 도배를 하는 등 하루 만에 다정이의 세상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런 다정의 마음과는 별개로 이모할머니는 광화문에 가서 수문장 교대의식을 구경하고, 종로 뒷골목에 있는 생선구이 전문점에서 식사를 하며 급기야 다정이랑 아이돌 댄스를 배워야겠다고 선언한다. 최고의 한국 무용수를 꿈꾸며, 진짜 춤은 한국 무용뿐이라고 생각하는 다정이는 과연 할머니와 함께 아이돌 댄스를 배울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취향에,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히며 좌충우돌 일상을 함께 보내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는 할머니가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한국 무용이 최고라는 나에게 춤은 다 똑같다고 매번 약 올리듯 말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꿈이 무엇인지, 얼마나 소중한지 과연 할머니가 알고 있을까, 의심했다. 하지만 어쩌면 할머니는 할머니의 방식대로 다른 사람의 꿈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게 아닐까? 그럼 내가 모르는 사이에 혹시 내 꿈도 응원하고 있을까? p.131~132
<내 이름은 십민준>시리즈와 <레벨 업 5학년>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이송현 작가의 신작이다. 이번에는 세상에서 가장 힙한 할머니 이야기이다. 실제로 k팝 팬덤 문화 중에 두드러진 현상이 할머니 팬덤이다. 그들은 공식 팬카페에 가입하고, 콘서트 티켓 전쟁에 뛰어 들고, 음원 스트리밍도 한다. 5,60대는 물론이고, 70대 이상의 팬들이 젊은 팬들보다 오히려 더 열정적이다. 자식을 다 키웠고, 사회생활도 은퇴한 나이라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연령층이기 때문이다.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특별한 연령층의 팬덤을 몰고 다니는 현상이 이제는 꽤 익숙해졌기에, 이 작품 속 하와이 할머니라는 캐릭터 또한 매우 이해가 되었다. 물론 하와이 할머니는 트로트 가수가 아니라 케이팝 아이돌 덕후지만 말이다. 그렇게 기존 동화 속 할머니의 전형적인 이미지와 전혀 다른 캐릭터라서 더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재미있는 점 중의 하나는 한국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장면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서울 광화문에서 부산 재래시장까지 이어지는 여정 속에 케이팝, 프라이드치킨, 찜질방, KTX 등 한국 문화의 다층적인 풍경들이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와이에서 살다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 온 공간과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며 'K-컬처'의 매력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돌 댄스 학원을 등록하고 최신 문화를 체험하며 유행을 즐기는 할머니와 전통 한국 무용수를 꿈꾸며 반듯한 생활 태도를 고수하는 열세 살 소녀라는 대비되는 캐릭터를 통해 서로 다른 가치관이 공존하는 방식에 대해, 세대 갈등을 넘어 색다른 케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참 좋았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이 작품을 통해 서로 다른 가치관이 함께 나아가는 과정을 배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