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자 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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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마틸드의 보호막은 갈수록 완벽해진다.

동작은 굼떠지고, 시력은 약해지고, 조금만 더워도 땀을 뻘뻘 흘리고, 차창에 눈을 바짝 들이대고 운전하는 그녀가 실제로는 어떤 존재인지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누구도 의심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p.88


포슈 가 한복판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피해자는 프랑스의 거물 실업가 모리스 캉탱이다. 살해된 방식을 보면 격한 감정에 의한 범죄라고 보여졌다. 대구경인 44밀리 매그넘을 사용했고, 소음기를 사용했기에 계획적인 살인이었다. 냉정하고 계산적인 살인, 거의 전문가에 가까운 자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형사 바실리에브는 생각한다. 함께 있던 닥스훈트도 살해되었는데, 모두 총구를 몸에 바짝 들이대고 쐈다는 건 명백히 어떤 강한 증오, 파괴의 욕구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 앙리는 거실의 안락의자에 앉아 자정 뉴스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TV 뉴스 주요 타이틀이 시작되자마자 쉰 살가량 된 남자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난다. 살해된 모리스 캉탱이었다. 범죄 자체만큼이나 끔찍한 것은 그것이 실행된 방식이다. 캉탱은 여러 발의 총알을 맞았고, 그 중 한 발은 목 한가운데 맞아 머리가 거의 날아가 버렸다. 앙리는 한숨을 내쉬며 욕설을 내뱉는다. 이건 그가 원하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순 셋인 마틸드는 세월과 함께 몸 전체가 조금씩 느슨해졌지만,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아주 철저하다. 물론 체중이 많이 늘었고, 과거의 아름다움은 흔적을 감췄지만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노년 여성처럼 보이는 마틸드는 사실 레지스탕스 출신 '킬러'이다. 그녀는 거침없이 목표를 살해하고, 흔적도 없이 움직이며, 교묘하게 수사망을 빠져나간다. 그녀가 작업을 하면, 한 발도 총알이 빗나가는 법이 없고, 아무 문제 없이 깨끗하게 일이 처리되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계획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교통 체증이 없다는 방송을 듣고 고속 도로에 들어섰으나 차들이 엉금엉금 기고 있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고, 겨우 시간에 맞춰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평소처럼 한 발로 일을 끝내지 않았고, 함께 있던 닥스훈트까지 처리해 버리고 말았다. 무기를 처리하는 방식도 평소와 달랐는데, 사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최근 그녀에게 조금씩 기억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통제를 벗어난 그녀가 조직의 위험이 되면서, 결국 타깃이 되기에 이른다. 과연 마틸드는 경찰의 수사와 조직의 추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일어나게 될 일은 불가피하다.

결코 풋내기가 아닌 뷔송이 당했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삶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은, 일이 우리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이다. 이 집에서 자신을 완전히 보호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흡연을 마치며 그는 어느 정도 운에 의지해야 하리라는 다소 체념 어린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그는 차고로 가서, 소소한 것들을 수리하는 작업대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꺼낸다.                p.276


이 작품은 피에르 르메트르의 미발표 초기작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를 매우 좋아한다. 시리즈 외에 스탠드 얼론으로 발표했던 추리소설들도 모두 다 읽었고,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추리 장르를 벗어나 쓴 작품인 <오르부아르>로 공쿠르 상을 수상하고,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뒤로는 더 이상 추리소설들을 발표하지 않아 매우 아쉬웠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에 집필한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너무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의 추리소설에서는 항상 개성있는 캐릭터가 등장했었다.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의 카미유 베르호벤 반장은 키가 14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단신으로 화가였던 어머니가 임신 중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담배를 피워댄 탓에 영양 장애성 발육부진의 결과라고 한다. 아들보다는 자신의 예술세계에만 관심이 있었던 어머니 덕에 외롭게 자랐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작품의 형사 바실리에브는 193센티미터의 큰 키를 가지고 있는데, 근육이 거의 없어 마르고 후리후리한 체형이다. 그는 아빠에게서 외형적인 부분을, 엄마에게서는 약간 무기력한 성향, 무한한 인내심, 그리고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직함을 물려받았다. 


노년의 여성 킬러 마틸드 또한 매우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그녀는 아무런 가책없이, 누구에게도 예외 없는 무자비한 학살극을 벌이는데, 그런 면모는 정말 냉혹하게 그려진다. 폭력이라는 것이 자신이 아직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일 뿐이기에, 기능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할 때 외에는 개를 산책시키며 일상을 살아가는 너무도 평범한 할머니처럼 보인다. 순수한 폭력성이 주는 쾌감과 냉혹한 행동에서 전해지는 불편함을 적절하게 느끼게 해주는 캐릭터이다. 반면 임무를 성공한 후에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으로 건강상 먹어서는 안 되는 정어리와 빵을 먹는 모습 또한 마틸드이기에 앞으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오는 불안감도 서사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 작품을 미성숙한 시절의 결점들을 고치지 않고, 처음 집필했던 그대로의 상태로 출간했다고 하는데, 너무나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본격 문학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더 이상 추리 소설은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그의 초기작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언젠가 누아르 신작을 또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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