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비스트로 - 입문자를 위한 솔티클래식의 음악 편지
원현정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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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키와 마른 체형, 움푹 들어간 뺨, 창백한 피부와 얇은 입술, 그리고 어두운 옷차림. 파가니니가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바이올린을 현란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얻은 실력'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전 유럽이 그의 연주를 보기 위해 들썩였고, 현 한 줄만으로 연주하는 등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초인적인 실력에 무시무시한 괴담까지 돌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문은 그의 몸값을 높여줄 뿐이었습니다. 파가니니는 본격적으로 부와 명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p.134


프랑스의 유명 작곡가 라벨은 친구의 제안에 따라 매거진의 경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작곡을 한다. 가명으로 제출하는 대회였으니,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조차 없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이 경연의 결과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안내 공고만 있고 결과는 찾아볼 수 없는 미스터리한 상황의 이유는 뭘까? 쇼팽은 죽기 전, 자신의 미발표곡은 절대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부탁을 들은 사람은 쇼팽의 동갑내기 친구이자 비서 역할을 해주었던 폰타나였다. 하지만 그는 쇼팽이 세상을 떠난 후 많은 미발표 작품을 출판한다. 그 중에서도 작품 번호 66번 <환상 즉흥곡>은 쇼팽의 사후 가장 먼저 공개된 미발표작인 동시에 그가 절대 세상에 공개하고 싶지 않던 작품이라고 하는데, 쇼팽은 대체 무슨 이유로 이 아름다운 곡기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반대했던 걸까. 


이 책은 아뮈즈부슈, 전채, 메인 요리, 디저트로 이어지는 코스 요리처럼 즐기는 클래식 입문서이다. 현직 피아니스트가 안내하는 음악 뉴스레터 '솔티클래식'에서 발행해온 260여 통의 편지에서 엄선한 55개의 이야기를 골라 책으로 엮었다. '솔티클래식'은 음식에 간을 맞추듯 클래식 음악도 적절한 이야기와 함께 맛있게 즐긴다는 뜻이다. 음악과 작곡가에 얽힌 이야기와 시대적 배경,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클래식 음악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각각의 작품마다 본문의 QR코드를 통해 해당 음악을 바로 감상해볼 수 있고,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 위해 알아두면 좋은 음악 용어들도 잘 정리되어 있다. 중간중간 함께 보면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곁들이면 좋은 팝송, 감상에 재미를 더해줄 영화, 같은 시기에 작곡한 또 다른 작품 등 페어링 코너가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클래식 음악을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너무 어려워서 연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당한 이 곡은 지금은 콘서트홀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기량이 뛰어난 연주자가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프로 연주자라면 누구나 연주하는 필수 관문이 된 것이지요. 한때는 세계적인 거장조차 포기한 이 난곡을 엄청난 재능의 젊은 연주자들이 완벽히 소화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어쩐지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매우 도전적인 곡임은 틀림없습니다. 작품은 총 3악장으로, 그중에서도 1악장이 가장 유명하고 어렵습니다.              p.227~228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오늘날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로 꼽히지만 발표 당시에는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연주자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한다. 지금은 콘서트홀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 중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마저 너무나 어렵고 난해하다며 연주를 거부해 연주자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후 엄청난 재능의 젊은 연주자들이 이 난곡을 완벽히 소화해내면서 곡의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이 참혹하게 실패한 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모두 무너졌다고 메모를 남겼다. 이후 작곡에 심각한 트라우마가 생기고, 우울증에 빠져 3년 동안 단 한 곡도 쓰지 못했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우울증을 겪던 그를 구제해준 것은 다름 아닌 의사였는데, 라흐마니노프는 심리 치료를 시작한 뒤 긴 공백 끝에 곡을 쓰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라흐마니노프가 작곡가로서 명성을 알린 신호탄이 되어준 명곡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작곡가, 연주자, 지휘자와 명곡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마치 비스트로에서 근사한 풀코스 정찬을 하나하나 맛보듯 저자가 알려주는 대로 차근차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만찬을 본격적으로 즐기기에 앞서 가볍고 경쾌하게 들을 수 있는 곡과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는 아뮈즈부슈, 서로 관련 있는 작품이나 에피소드를 연결해서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전채 요리, 한 작곡가의 여러 작품을 연대순으로 감상하며 인물의 생애와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메인 요리,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을 담은 사랑스러운 에피소드와 소품을 소개해주는 디저트로 클래식 음악 만찬을 마무리하게 된다. 클래식계를 달군 위작 논란, 바로크 시대의 ASMR, 악필이 바꾼 작품의 주인공, 연주자가 사라지는 무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콘서트, 작곡가조차 질려버린 인기곡, 차이콥스키가 안내하는 겨울왕국, 18세기의 가장 핫한 음료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그동안 클래식 음악이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다면, 이 책을 통해 좀 더 친근하고, 부담 없이 클래식 음악을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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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푸르셰 지음, 김주경 옮김 / 비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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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인 남자에게 문자를 보낸다.

당신을 원해요.

너는 혼자 웃는다. 오랜 세월 쌓은 품위와 관습, 원칙, 규범, 지혜, 신중, 성찰, 여유, 존중, 재치, 정절...... 이 모든 걸 단 하나의 문장에 불태워버리다니. 남김없이 모두 태워버린 까닭에, 너에겐 그렇게 얻은 이 홀가분한 기분을 표현할 단어 하나 남지 않았다... 기억해라. 너는 네 안의 그늘을 등불로 삼고, 너의 욕망을 바로 너 자신으로 받아들였다.            p.55


여자가 남자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그의 손을 보고 놀란다. 가느다란 손가락과 매끄러운 손목이 마치 남자 몸에 실수로 연결된 소녀의 손 같았기 때문이다. 속이 다 비칠 듯한 피부, 툭 불거진 혈관, 물병을 들어 올리는 연약한 근육, 모든 게 아주 허약해 보이고, 작은 손짓에도 부러질 것만 같다고, 셔츠에 가려진 그의 몸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병적으로 건강관리 앱을 통해 체온과 호흡수, 심박수, 혈압을 체크하는 남자는 그녀를 온실 속의 여자, 묘한 느낌을 주던 여자로 기억했다. 첫 만남에서 그 여자가 완전히 자신의 취향이라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다음 날, 그녀의 문자가 어쩐지 익사 직전에 수면으로 끌어 올려 숨을 쉬게 해주는 구원처럼 느껴졌다. 감격스럽고,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사회과학 교수인 로르와 은행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는 클레망의 만남이 시작된다. 


남녀 두 화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로르는 2인칭 시점으로, 클레망은 1인칭 시점으로 그려져 있으며 상반된 문체와 분위기로 인해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었다. 게다가 로르의 2인칭 시점에는 중간중간 죽은 엄마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클레망의 몸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얼른 눈 돌리지 못하겠니. 병적일 정도로 보수적인 여자들의 무덤 속에서 너의 엄마가 황급히 끼어든다'는 식으로 죽은 엄마의 비난이 흘려든다. 자신을 연봉 액수로 소개하는 클레망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예 좀 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돈이 남아도는 인간이 불쌍하다고? 결혼해서 하녀처럼 죽도록 일한 여자들의 천국에서 네 엄마의 엄마가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는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로르의 머릿속에는 그렇게 끊임없이 죽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나간 세대의 가부장적 질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금지된 사랑의 열망에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고 있는 딸의 모습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다는 듯이 말이다. 





"로르. 너는 희망을 거의 잃어버린 여자 같아." 그녀가 전화를 끊기 전에 속삭이듯 말하고, 그 말이 새벽까지 네 귓가를 맴돈다. 희망을 거의 잃어버린 여자. 아침까지 불면증으로 꼬박 새우며 너는 침통한 마음으로 그 문장을 되풀이하고, 허공을 향해, 켜져 있는 전등을 향해, 천장을 향해 그 말을 되뇐다. 그리고 그 문장은 소리를 잃고, 마치 나무판에 던진 공처럼 너에게 돌아온다.

너는 희망을 거의 잃어버린 여자야.

모두 잃어버렸지.

너는 추문과 종말 외에 다른 건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p.320


로르의 첫째 딸은 고작 별 볼 일 없는 고등학교에서 정학당하는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가로막는 온갖 체제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반항한다. 둘째 딸은 아직 한창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할 만큼 어리다. 로르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가정이다. 가구에 집착하고, 반복되는 가족 행사에 집착하고, 의심이 들수록 더욱 집착하고, 그래서 또 지쳐간다. 이십년 동안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단지 커피와 함께 잡담을 나눌 교수들과 밝은 조명이 무상으로 지급되는 곳이기에 대학에 몸담고 있을 뿐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독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에 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라는 문장으로, 로르의 2인칭 시점이 스스로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참을 수 없이 삶이 지리멸렬해진 '내'가 바라보는 치솟는 정염에 뛰어들어 불타오르는 '나'를 향한 시점인 것이다. 


클레망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롭다. 그 역시 시작부터 그들의 사랑이 잘못된 거라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로르에게 향하는 클레망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 날 파괴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딴 걸 파괴하려고, 로르, 이해하겠어?' 라고. 그렇게 두 남녀는 돌이킬 수 없는 불길을 향해 온전히 몸은 던진다. 학대받던 유년기로 인해 온전한 관계 맺기에 매번 실패하는 클레망과 애정 없는 결혼생활로 허울뿐인 가정을 지켜내려고 고군분투하던 로르가 서로에게 공감하고, 이끌리며, 서서히 빠져드는 과정은 굉장히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장들로 인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야말로 사랑이 왜 ‘불’에 비유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사랑은 과연 구원일까, 파멸일까. 여성의 욕망과 세대 담론 등 현시대의 첨예한 쟁점을 담아내고 있는 이 작품은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등 금기와 규율을 넘어 생의 심연을 조명해온 프랑스 문학의 정신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독보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 작품 속 파멸을 향해 전진하는 두 연인을 통해 사랑의 맨얼굴과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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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세요, 미래를 바꿔주는 택시입니다
기타가와 야스시 지음, 김윤희 옮김 / 북폴리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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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니까 절대로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운이 극적으로 바뀌는 순간, 인생에는 그때가 분명히 있거든요. 우리 모두에게는 그 타이밍을 포착할 수 있는 안테나가 있어요. 안테나의 감도는 기분이 좋은 때 가장 정확해집니다. 반대로 기분이 나쁘면 안테나는 작동하지 않아요. 사소한 일로 기분을 망치는 바람에 대운을 놓친다면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바로 어제의 오카다 씨처럼 말이죠.” 

"기분이 나쁘면 운을 놓친다...?"             p.62~63


누구나 살다 보면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 싶은 순간이 있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슈이치 역시 지금 딱 폭발 직전의 상태였다. 보험회사에서 영업직인 슈이치는 최근 자신이 담당했던 곳으로부터 무더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아내가 실망할 여행 취소에 딸의 등교 거부, 홀로 외로이 계신 어머니와 본가 처리 문제까지 엎친데 덮친격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였던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은 심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을 때, 다가오는 택시를 보고는 무심코 타게 된다. 그런데 택시를 세운 목적 조차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택시 기사는 슈이치가 가야 할 곳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의아한 슈이치의 질문에 온화한 미소의 택시 기사는 손님의 운을 바꾸는 게 자신의 일이라며, 슈이치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장소로 데려다 주겠다고 말한다. 혹시 사기꾼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속마음은 그가 하는 말이 사실일 거라 믿고 싶어졌다. 그만큼 슈이치는 절박한 상태였던 것이다.


운전기사가 데려다 준 것은 등교 거부중인 아이의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을 학교였다. 아내에게는 시간이 맞지 않아 못 가겠다고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사십 분 거리를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담임과의 면담 내용은 너무나 형식적이어서, 전화로 해도 될 텐데 굳이 왜 바쁜 사람들을 오라 가라 했는지 슈이치는 화가 난다. 자신은 이런 식으로 한가하게 수다나 떨고 있을 만큼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라고 아내에게 언성을 높이고는 다시 회사로 돌아온다. 다음날 출근하고는 역시나 해지된 계약 건에 대한 부담 때문에 더 이상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다시 밖으로 나오고, 전날의 그 택시를 또 만나게 된다. 그런데 택시 기사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전날 면담 후에 선생님이 보험을 가입하게 되고, 이후 다른 선생님들이 줄줄이 보험을 가입하게 될 거였는데 슈이치가 모든 걸 망쳐버렸다는 얘기였다. 운이 극적으로 바뀌는 순간이 와도, 화가 나 있거나 기분이 나쁘다면 인생을 뒤바꿀 만한 운이 찾아와도 깨닫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렇게 슈이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는 법은 없다고, 행운을 기대한다면 먼저 그만큼 운을 적립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는데, 과연 슈이치에게도 운이 찾아오게 될까?



"아냐, 그게 아니지. 당신은 언제 운명을 역전할 기회가 온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소? 평생 코 꿰어서 일만 죽어라 하다가 끝내 좋은 구경 한 번 못 하고 눈을 감는 인생이 더 많다니까. 그런데도 언제인지도 모를 그날만 생각하며 버티라는 거요?"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일을 겪죠. 그러나 역경을 헤쳐나가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살다 보면 그때까지 모아둔 운을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              p.145


슈이치는 당신은 운이 좋으십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자신의 인생은 운하고는 아무 상관없고, 오히려 재수 없는 일들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매사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표정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태도도 부정적이 되고, 사소한 일로 기분을 망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마카세 택시(맡겨주세요, 택시)’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택시의 운전기사는 그렇게 되면 당장 기분 나쁜 자리를 벗어날 생각만 하기 때문에, 인생을 뒤바꿀 만한 운이 찾아온 순간을 알 수가 없고, 엄청난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란 것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사용한다, 적립한다, 라고 해야 한다는 말이 매우 흥미로웠다. 저 사람 참 운이 좋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사실은 미리 적립해놓은 운 포인트를 사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알게 된다면, 누구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운을 차곡차곡 적립할 생각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안 좋은 일은 늘 한꺼번에 몰려오고, 되는 일 없는 슈이치의 삶이 과연 수상한 택시로 인해 달라질 수 있을지 기대하며 읽게 되는 작품이었다.


세상에는 늘 불만과 화로 가득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침에 전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거리를 다닐 때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부정적인 사람은 곳곳에 떨어져 있는 행복의 씨앗을 눈치챌 수 없다는 것, 그들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그거 하나라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였다. 살다 보면 한번쯤 힘든 일을 겪게 마련이고, 그럴 때 긍정적으로 살다 보면 그때까지 모아둔 운을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반드시 찾아온다고 믿고 싶어졌다. 자기계발서, 청소년 문학, 소설 등 여러 저서를 발표해온 기타가와 야스시의 이 작품은 일본 아마존, 독서미터, 북로그 등 독자 서평만 20,000건이 넘는 기록을 세우며 그 입소문으로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지치고, 막막하고 버티기 힘들 때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는 작품이라, 지금 같은 시기에 읽기 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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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완벽한 실종
줄리안 맥클린 지음, 한지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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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신 말씀이 이해가 안 가요. 어떻게 비행기가 사라질 수가 있어요?"

"그의 비행기가...... 레이더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어요."

그의 말은 마치 벽돌처럼 나를 묵직하게 내리쳤다. 나는 어두운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충격 속에서 넋을 놓고 앉아있었다.             p.28


딘은 마이애미를 왕복하는 프라이빗 제트기 조종사고, 올리비아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려고 영화학교를 졸업했지만, 아직 아무것도 제작하지 못한 상태이다. 어려운 집안에서 자라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딘과 유복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올리비아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현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리비아는 아이를 갖고 싶었고, 두 사람은 조금 더 노력해 보기로 한 상태였다. 그날 아침, 딘의 상사인 리처드로부터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고,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 마이크 미첼의 비행 스케줄이 잡히고 만다. 올리비아의 가족들과 오랜 만에 갖는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지만, 딘은 일을 더 하고 싶었고, 올리비아는 마지못해 허락한다. 아기를 애타게 갖고 싶었던 올리비아는 그가 밤늦게 돌아올 것 같아 더 실망한 상태였다.


그리고 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딘의 상사 리처드였다. 딘의 비행기가 실종됐다는 소식이었다. 일을 마치고 혼자 돌아오던 딘의 비행기가 레이더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는 거였다. 수색이 시작된 상태라고는 하지만 비행기가 그냥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에 올리비아는 공포에 질린다. 날씨도 끝내주게 좋았고, 비행도 안정적이었으며,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터라, 사람들은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진 건 아닌지 추측하기 시작한다.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비행기가 사라진 것이 처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제만 해도 딘과 요트 위에서 가족 계획을 이야기했는데, 지금쯤이면 그는 집에 있어야 했는데, 올리비아는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정신이 아뜩해졌다. 딘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비행기 파편조차 남지 않은 남편의 실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올리비아는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도 같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딘과 함께였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를 깊게, 열렬하게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다른 삶이었다. 지금의 나는 수년 전 그를 만났을 당시의 그 여자가 아니다. 그때의 나는 가벼웠고 걱정거리가 없었다. 그저 사랑이라는 감정에 완전히 휩쓸렸었다. 그때의 나는 슬픔을 경험한 적도, 불신을 경험한 적도 없었다. 그런 감정들은, 그런 경험들은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나서야, 딘이 사라진 후에야 생겨났다. 그게 바로 내가 행복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된 이유다.            p.423~424


갑작스러운 남편의 실종과 남겨진 아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상당히 독득한 전개 방식을 선택했다. 남편의 실종 사건이 벌어진 1990년 마이애미의 현재 시점과 1986년 뉴욕의 이야기가 거의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4년 전 뉴욕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멜라니라는 물리학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의 시점으로 펼쳐진다. 그녀는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받게 된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교수가 추천해준 로빈슨 박사와 심리 상담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점점 그에게 개인적인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환자와 의사라는 관계를 넘어서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로빈슨 박사가 바로 '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현재 시점에서 제트기 조종사인 딘이 4년 전에는 심리학을 전공한 심리치료사였던 것이다. 그렇게 심리치료사였던 딘이 올리비아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된 사연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까지 과거의 스토리가 보여진 뒤, 이야기는 딘의 실종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으로 점프한다.


남편의 실종 이후 알게 된 임신 소식, 그리고 현재 올리비아는 3살이 된 딸 로즈를 홀로 키우고 있다. 더 시간이 흘러 전남친인 가브리엘과 두 번째 결혼을 해 다시 행복을 되찾게 된 올리비아에게 어느 날, 경찰이 찾아온다. 공원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1986년에 실종된 멜라니였다. 그녀가 당시 딘의 환자였고, 여러모로 미심쩍은 정황이 있어 그의 집을 찾아온 거였다.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남편이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되자, 올리비아의 완벽한 세계는 또 다시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수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드러나는 사실들은 점점 충격적인 진실을 보여주며, 사랑을 의심치 않았던 딘의 실체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이 작품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줄리안 맥클린의 작품이다. 서른 권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린 로맨스 작가로 유명한 작가이다. 이번 작품은 로맨스와 미스터리 장르를 넘나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게 만드는 페이지 터너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이야기는 겹겹이 쌓인 반전들을 드러내며 차곡차곡 서사를 만들고,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미스터리로맨스 장르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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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 블루 아이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오렌지디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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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가 카드 게임의 고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허세를 끝까지 밀고 나갈줄 아니 말이다.

“나는 시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말일세.”

“당연하죠. 선생님은 미국 분이시잖습니까.”

“그럼 자네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포 군?”

“저는 예술가죠. 그러니까 무국적이라는 말씀입니다.”          p.108


1830년 10월,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 젊은 생도가 밧줄에 매달린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날 새벽, 누군가가 시신을 옮겼고, 시신의 심장이 사라진 채로 발견된다. 신생 육군사관학교의 명예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비밀스럽고 신중한 조사가 시작되었고, 뉴욕에서 명성을 떨쳤던 은퇴 경찰 거스 랜도가 소환된다. 학교를 대신해 예민한 성격의 수사를 수행할 수 있는, 관련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일반 시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 군 당국에 연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내용이 학교 밖으로 절대 유출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어진 지 30년도 안 되는 신설 기관이었기에 어마어마한 반대파가 생긴 참이었고, 학교의 존재 자체에 반감을 품고 완전히 무너뜨릴 핑계를 찾고 있는 측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소환된 랜도는 누가 젊은 생도를 교수형에 처한 것인지, 그리고 시신에서 심장을 가져간 사람은 누구인지 찾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시신의 손에서 누르스름하고 물에 젖어 너덜너덜한 종이 쪼가리가 발견되는데, 그 속에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수사를 진행해 가는 과정에서 랜도는 1학년 생도인 포를 만나게 되는데, 동급생들에 비해 나이가 많아 보이는 포는 나뭇가지처럼 비쩍 마르고 어딘지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포는 "선생님이 찾는 사람은 시인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마침 생도들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해 제약이 많았던 랜도는 기민한 관찰력을 지닌 포를 자신의 조수로 쓰게 해달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일탈과 궤변을 질기는 독특한 성격의 포와 은퇴 경찰 랜도가 탐정과 조수가 되어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서게 된다. 





또 한 가지 내 눈에 뛴 부분이 있었으니 권두에 실은 인용구였다. 라로슈푸코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말했다는 Tout le monde a raison 이었다. 매티가 예전에 쓰던 프랑스어 사전을 찾느라 애를 먹었지만 해석 자체는 식은 죽 먹기였다.

모두에게 이유가 있다.

그렇게 근사한 문구는 처음이었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 끔찍한 문구는 처음이었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곱씹으면 씹을수록 나에게서 멀어진다. 하지만 그가 내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어도.               p.655


이야기는 '거스 랜도의 기록'이라는 형식으로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랜도와 포가 함께 수사를 시작하고 얼마 뒤, 암소와 양이 목을 베여 도살당한 끔찍한 상태로 발견된다. 게다가 사체가 잔인하게 난도질 당했고, 심장이 제거된 상태였다. 가축이 제물로 바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고, 사관학교에서 벌어진 사건과 동일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사에 더 긴장감을 부여해주는 계기가 된다. 포는 시신의 손에서 발견된 쪽지에 써 있던 암호 같은 문구들을 해석해내고, 그것이 일종의 초대장이었다는 것을 밝혀낸다. 그 밖에 그들은 죽은 리로이 프라이는 옆에서 말을 시키지 않으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만큼 말수가 없었고, 그러다 '질이 안 좋은 무리'와 어울렸다가 나중에는 종교에서 위안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범인을 가리키는 단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고, 수사는 천천히 느리게 진행된다. 


실제로 에드거 앨런 포가 미육군사관학교에서 6개월간 복무했던 이력에서 착안한 이 이야기는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인물을 설득력있게 재탄생시키며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탐정과 조수로 만난 랜도와 포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독특한 우정을 보여주는데, 진솔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철저하게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관계였다. 수수께끼 같은 단서, 암호와 흑마술 등 포의 실제 이력과 작품 요소를 치밀하게 쌓으며 직조되는 이야기는 65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만큼이나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어야 빛을 발한다. 빠르게 진행되는 속도감에 익숙한 요즘의 추리, 스릴러 물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재미를 느끼려면 느긋한 마음으로 작품을 즐겨야 할 것이다. 촘촘한 복선과 후반부의 반전 또한 백미인 이 작품은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한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유럽 영화사상 최고가 판권 계약으로 화제를 모으며 크리스천 베일 주연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원작과 함께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과거를 직접 목격한 것처럼 표현하는, 역사소설에 활력을 불어넣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루이스 베이어드의 이 놀라운 작품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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