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푸르셰 지음, 김주경 옮김 / 비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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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인 남자에게 문자를 보낸다.

당신을 원해요.

너는 혼자 웃는다. 오랜 세월 쌓은 품위와 관습, 원칙, 규범, 지혜, 신중, 성찰, 여유, 존중, 재치, 정절...... 이 모든 걸 단 하나의 문장에 불태워버리다니. 남김없이 모두 태워버린 까닭에, 너에겐 그렇게 얻은 이 홀가분한 기분을 표현할 단어 하나 남지 않았다... 기억해라. 너는 네 안의 그늘을 등불로 삼고, 너의 욕망을 바로 너 자신으로 받아들였다.            p.55


여자가 남자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그의 손을 보고 놀란다. 가느다란 손가락과 매끄러운 손목이 마치 남자 몸에 실수로 연결된 소녀의 손 같았기 때문이다. 속이 다 비칠 듯한 피부, 툭 불거진 혈관, 물병을 들어 올리는 연약한 근육, 모든 게 아주 허약해 보이고, 작은 손짓에도 부러질 것만 같다고, 셔츠에 가려진 그의 몸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병적으로 건강관리 앱을 통해 체온과 호흡수, 심박수, 혈압을 체크하는 남자는 그녀를 온실 속의 여자, 묘한 느낌을 주던 여자로 기억했다. 첫 만남에서 그 여자가 완전히 자신의 취향이라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다음 날, 그녀의 문자가 어쩐지 익사 직전에 수면으로 끌어 올려 숨을 쉬게 해주는 구원처럼 느껴졌다. 감격스럽고,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사회과학 교수인 로르와 은행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는 클레망의 만남이 시작된다. 


남녀 두 화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로르는 2인칭 시점으로, 클레망은 1인칭 시점으로 그려져 있으며 상반된 문체와 분위기로 인해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었다. 게다가 로르의 2인칭 시점에는 중간중간 죽은 엄마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클레망의 몸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얼른 눈 돌리지 못하겠니. 병적일 정도로 보수적인 여자들의 무덤 속에서 너의 엄마가 황급히 끼어든다'는 식으로 죽은 엄마의 비난이 흘려든다. 자신을 연봉 액수로 소개하는 클레망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예 좀 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돈이 남아도는 인간이 불쌍하다고? 결혼해서 하녀처럼 죽도록 일한 여자들의 천국에서 네 엄마의 엄마가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는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로르의 머릿속에는 그렇게 끊임없이 죽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나간 세대의 가부장적 질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금지된 사랑의 열망에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고 있는 딸의 모습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다는 듯이 말이다. 





"로르. 너는 희망을 거의 잃어버린 여자 같아." 그녀가 전화를 끊기 전에 속삭이듯 말하고, 그 말이 새벽까지 네 귓가를 맴돈다. 희망을 거의 잃어버린 여자. 아침까지 불면증으로 꼬박 새우며 너는 침통한 마음으로 그 문장을 되풀이하고, 허공을 향해, 켜져 있는 전등을 향해, 천장을 향해 그 말을 되뇐다. 그리고 그 문장은 소리를 잃고, 마치 나무판에 던진 공처럼 너에게 돌아온다.

너는 희망을 거의 잃어버린 여자야.

모두 잃어버렸지.

너는 추문과 종말 외에 다른 건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p.320


로르의 첫째 딸은 고작 별 볼 일 없는 고등학교에서 정학당하는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가로막는 온갖 체제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반항한다. 둘째 딸은 아직 한창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할 만큼 어리다. 로르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가정이다. 가구에 집착하고, 반복되는 가족 행사에 집착하고, 의심이 들수록 더욱 집착하고, 그래서 또 지쳐간다. 이십년 동안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단지 커피와 함께 잡담을 나눌 교수들과 밝은 조명이 무상으로 지급되는 곳이기에 대학에 몸담고 있을 뿐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독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에 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라는 문장으로, 로르의 2인칭 시점이 스스로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참을 수 없이 삶이 지리멸렬해진 '내'가 바라보는 치솟는 정염에 뛰어들어 불타오르는 '나'를 향한 시점인 것이다. 


클레망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롭다. 그 역시 시작부터 그들의 사랑이 잘못된 거라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로르에게 향하는 클레망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 날 파괴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딴 걸 파괴하려고, 로르, 이해하겠어?' 라고. 그렇게 두 남녀는 돌이킬 수 없는 불길을 향해 온전히 몸은 던진다. 학대받던 유년기로 인해 온전한 관계 맺기에 매번 실패하는 클레망과 애정 없는 결혼생활로 허울뿐인 가정을 지켜내려고 고군분투하던 로르가 서로에게 공감하고, 이끌리며, 서서히 빠져드는 과정은 굉장히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장들로 인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야말로 사랑이 왜 ‘불’에 비유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사랑은 과연 구원일까, 파멸일까. 여성의 욕망과 세대 담론 등 현시대의 첨예한 쟁점을 담아내고 있는 이 작품은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등 금기와 규율을 넘어 생의 심연을 조명해온 프랑스 문학의 정신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독보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 작품 속 파멸을 향해 전진하는 두 연인을 통해 사랑의 맨얼굴과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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