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비스트로 - 입문자를 위한 솔티클래식의 음악 편지
원현정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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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키와 마른 체형, 움푹 들어간 뺨, 창백한 피부와 얇은 입술, 그리고 어두운 옷차림. 파가니니가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바이올린을 현란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얻은 실력'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전 유럽이 그의 연주를 보기 위해 들썩였고, 현 한 줄만으로 연주하는 등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초인적인 실력에 무시무시한 괴담까지 돌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문은 그의 몸값을 높여줄 뿐이었습니다. 파가니니는 본격적으로 부와 명성을 쌓기 시작합니다.            p.134


프랑스의 유명 작곡가 라벨은 친구의 제안에 따라 매거진의 경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작곡을 한다. 가명으로 제출하는 대회였으니,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조차 없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이 경연의 결과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안내 공고만 있고 결과는 찾아볼 수 없는 미스터리한 상황의 이유는 뭘까? 쇼팽은 죽기 전, 자신의 미발표곡은 절대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부탁을 들은 사람은 쇼팽의 동갑내기 친구이자 비서 역할을 해주었던 폰타나였다. 하지만 그는 쇼팽이 세상을 떠난 후 많은 미발표 작품을 출판한다. 그 중에서도 작품 번호 66번 <환상 즉흥곡>은 쇼팽의 사후 가장 먼저 공개된 미발표작인 동시에 그가 절대 세상에 공개하고 싶지 않던 작품이라고 하는데, 쇼팽은 대체 무슨 이유로 이 아름다운 곡기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반대했던 걸까. 


이 책은 아뮈즈부슈, 전채, 메인 요리, 디저트로 이어지는 코스 요리처럼 즐기는 클래식 입문서이다. 현직 피아니스트가 안내하는 음악 뉴스레터 '솔티클래식'에서 발행해온 260여 통의 편지에서 엄선한 55개의 이야기를 골라 책으로 엮었다. '솔티클래식'은 음식에 간을 맞추듯 클래식 음악도 적절한 이야기와 함께 맛있게 즐긴다는 뜻이다. 음악과 작곡가에 얽힌 이야기와 시대적 배경,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클래식 음악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각각의 작품마다 본문의 QR코드를 통해 해당 음악을 바로 감상해볼 수 있고,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 위해 알아두면 좋은 음악 용어들도 잘 정리되어 있다. 중간중간 함께 보면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곁들이면 좋은 팝송, 감상에 재미를 더해줄 영화, 같은 시기에 작곡한 또 다른 작품 등 페어링 코너가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클래식 음악을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너무 어려워서 연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당한 이 곡은 지금은 콘서트홀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기량이 뛰어난 연주자가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프로 연주자라면 누구나 연주하는 필수 관문이 된 것이지요. 한때는 세계적인 거장조차 포기한 이 난곡을 엄청난 재능의 젊은 연주자들이 완벽히 소화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어쩐지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매우 도전적인 곡임은 틀림없습니다. 작품은 총 3악장으로, 그중에서도 1악장이 가장 유명하고 어렵습니다.              p.227~228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오늘날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로 꼽히지만 발표 당시에는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연주자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한다. 지금은 콘서트홀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 중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마저 너무나 어렵고 난해하다며 연주를 거부해 연주자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후 엄청난 재능의 젊은 연주자들이 이 난곡을 완벽히 소화해내면서 곡의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이 참혹하게 실패한 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모두 무너졌다고 메모를 남겼다. 이후 작곡에 심각한 트라우마가 생기고, 우울증에 빠져 3년 동안 단 한 곡도 쓰지 못했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우울증을 겪던 그를 구제해준 것은 다름 아닌 의사였는데, 라흐마니노프는 심리 치료를 시작한 뒤 긴 공백 끝에 곡을 쓰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라흐마니노프가 작곡가로서 명성을 알린 신호탄이 되어준 명곡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작곡가, 연주자, 지휘자와 명곡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마치 비스트로에서 근사한 풀코스 정찬을 하나하나 맛보듯 저자가 알려주는 대로 차근차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만찬을 본격적으로 즐기기에 앞서 가볍고 경쾌하게 들을 수 있는 곡과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는 아뮈즈부슈, 서로 관련 있는 작품이나 에피소드를 연결해서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전채 요리, 한 작곡가의 여러 작품을 연대순으로 감상하며 인물의 생애와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메인 요리,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을 담은 사랑스러운 에피소드와 소품을 소개해주는 디저트로 클래식 음악 만찬을 마무리하게 된다. 클래식계를 달군 위작 논란, 바로크 시대의 ASMR, 악필이 바꾼 작품의 주인공, 연주자가 사라지는 무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콘서트, 작곡가조차 질려버린 인기곡, 차이콥스키가 안내하는 겨울왕국, 18세기의 가장 핫한 음료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그동안 클래식 음악이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다면, 이 책을 통해 좀 더 친근하고, 부담 없이 클래식 음악을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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