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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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은 헤로인과 같다. 한번 맛보면, 행복이란 게 있는 줄 알면 다시 행복해지지 않고서는 평범한 일상에서 온전히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 행복은 소박한 만족 이상의 무엇이므로. 행복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행복은 전율하는, 예외적인 상태다. 지속하지 않을 게 분명한, 초, 분, 날이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의 슬픔은 나중에, 행복에 이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온다.       p.80

 

요 네스뵈의 해리홀레 시리즈 열두 번째 이야기 <칼>이 출간되었다. 요 네스뵈는 데뷔작 <박쥐> 이후 22년 만에 이 작품으로 두 번째 리버트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은 해리 홀레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죽음을 맞는 것으로 충격적인 포문을 연다. 물론 전작인 <목마름>을 읽었다면, 행복한 해리 홀레의 모습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고 막연하게 느꼈겠지만 말이다. 가족과의 평온한 일상이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했을 정도로 해리에게 행복은 익숙한 것이 아니었고, 그는 자신이 겨우 찾은 행복을 지켜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졌다.

 

 

이번 작품에서 요 네스뵈는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는다. 차갑고도 무자비하게, 한치의 자비도 없이 날카롭게 해리의 행복을 난도질해버리는 것으로.

 

<칼>에서 해리는 라켈의 집에서 쫓겨난 상태로 등장한다. 행복의 한가운데에서도 라켈을 잃어버릴까 무서웠던 그였는데, 이미 그녀를 잃어버린 현실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다시 알코올의존자가 되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게다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손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잠에서 깨어난다. 전작에서 만났던 해리의 평화롭고 안정된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경찰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해리는 다시 강력반으로 돌아와 서류나 정리하고, 미제 사건을 검토하는 업무를 맡았다. 다시 술 취하고 불안정한 수사관이 된 해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일생일대의 비극이다. 전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고되었던 스베인 핀네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시작했고, 해리는 홀로 외로운 수사를 펼쳐 나가야 한다.

 

 

할아버지는 주머니 시계를 꺼내고 우리가 물가로 돌아가면 우리의 여정을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하나의 연속선으로 보일 거라고 말했다. 목적과 방향이 있는 이야기. 우리는 그 이야기가 여기에, 다른 어디도 아닌 여기에 있는 것처럼 기억하고, 배가 물가에 닿게 하려고 의도한다. 하지만 도착점과 처음 의도한 목적지는 전혀 다르다.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 현재 위치에 이르러서 여기가 우리가 가려던 곳이거나 적어도 가려는 길 위에 있다고 믿으면 그런대로 위안이 될 수 있다.    p.660~661

 

<팬텀>에서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상처받고, 사상 최악으로 망가졌던 해리는 <폴리스>에서 경찰서를 떠나 경찰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오랜 연인 라켈과 마침내 결혼을 했다. 그리고 3년 뒤, <목마름>에서 뱀파이어 살인마가 등장하며, 외부의 압박에 의해 다시 살인 현장으로 컴백했었다. 가족과의 평온한 일상이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했을 정도로 해리에게 행복은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지켜내야 하는 존재가 생겼고 그것을 잃을까봐 두려운 마음과 범인을 잡고 싶다는 갈망과 뼛속까지 경찰인 해리의 내면에 있는 목마름 사이에서 고뇌하며 강박적으로 살인자를 쫓는 일에 매달렸다. 피를 갈망하는 범인의 목마름만큼이나 범죄에 끌리는 해리의 목마름도 강렬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행복한 해리 홀레의 모습은 자신에게도, 독자들에게도 낯설었다. 그동안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해리는 언제나 소중한 뭔가를 잃어 왔고, 그러면서 점점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왔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해리 홀레의 모습은 독자로서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이건 아니야, 꿈이라고 말해. 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순간마다 페이지를 멈추고 작가를 원망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해리 홀레 시리즈 열 두 번째 작품을 읽어 나가는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시작부터 작가로부터 엄청난 펀치를 맞고 거의 기절 상태로 질질 끌려 가는 기분인데다, 해리의 모든 것들이 너무도 먹먹하고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완성도는 시리즈를 거듭한 만큼의 깊이와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충격적인 사건이 아주 초반에 벌어지는데, 그 긴장감을 거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끌고 나가는 힘이 있어 시종일관 긴장감 있게 읽게 된다. 게다가 거듭되는 반전 역시 탄탄하고 정교하게 새겨진 플롯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 해리 홀레에게 사상 최악의 사건이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시리즈 전체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변곡점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해리 홀레 시리즈는 13권 <블러드문>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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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6-09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책 표지들이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듯 하네요^^

피오나 2022-06-10 13:21   좋아요 1 | URL
그죠? ㅎㅎ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마성의 시리즈랍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