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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배틀왕 미스터리 과학 도감 2
아마나 / 네이처 & 사이언스 엮음 / 서울문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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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과학 도감 그 두 번째 이야기는 수중 생물이다. 단순히 수중 생물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 배틀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는 시리즈라 더욱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연안 생물, 바다 생물, 극지방 생물, 심해 생물, .호수 생물 등 다양한 수중 생물들을 서식지 별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바위가 많은 바닷가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몸을 숨길 곳이 많아 매우 다양한 종류가 살고 있다고 한다. 날카로운 가시투성이의 가시복, 강력한 독을 지닌 불가사리인 별불가사리, 커다란 집게발로 탕탕 큰소리와 파동을 만들어 내는 딱총새우, 독을 지닌 바다의 달팽이 군소 등이 있다. 먼저 대표 선수들의 랭킹과 주요 능력 등을 보여주고 수중 생존 전략과 방어 자세, 번식 방법 등을 알려 준다. 그리고 나면 가상의 배틀이 만화로 그려져 있는데, 첫 번째 배틀은 가시복과 샌드타이거상어의 대결이다. 상어의 뾰족한 이빨이 부풀어 오른 가시복을 뚫을 수 있을지 흥미롭게 대결이 펼쳐진다.

수중 생물들의 사냥 방법, 번식 방법, 천적, 공생 관계 등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어 과학 도감으로서도 아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바닥이 얕은 바다인 연안에 사는 희귀한 생물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난바다에 살고 있는 공포의 생물들, 남극과 북극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인 극지방의 위험한 생물들, 수심이 200미터 이상 되는 심해에서 생활하는 신비한 생물들, 염분이 거의 없는 담수로 이루어진 강, 호수, 연못에 사는 오싹한 생물들까지 독특한 수중 생물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만화로 표현된 수중 배틀 과정은 매우 세밀하고 역동적인 일러스트로 그려져 있어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한참 동물과 수중 생물, 곤충 등에 빠져 있는 아이들이 피규어를 가지고 놀 때도 항상 싸우고, 대결을 벌이곤 하기 때문에 이 또래 아이들이 읽기에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아기자기한 테마들이 많았는데, 대표 선수로 선정된 수중 생물 외에 비슷한 종류의 생물들이 소개되어 있는 페이지도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 같다. 가시복의 친구들로는 적의 입보다 몸을 크게 해서 잡아 먹히지 않도록 방어하는 뿔복, 복섬, 흰점꺼끌복, 거북복 등이 소개되어 있다. 날아다니는 물고기인 날치의 친구들로는 몸이 매우 가늘고 긴 동갈치, 학꽁치, 꽁치아재비 등이 있다. 날카로운 이빨의 포식자인 향유고래의 친구들로는 잠수 실력이 뛰어나 깊은 바다에서 먹이를 잡아먹는 민부리고래, 황제펭귄, 에델바다표범이 있다고 한다.

다양한 동식물, 생물들을 다루고 있는 과학 도서들이 많이 있겠지만, 이렇게 마치 게임처럼 즐길 수 있는 시리즈라면 아이들이 더욱 흥미를 잃지 않고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 생생한 사진을 통해 다양한 수중 생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태적인 특징과 수중 생존 전략 등을 배우고, 그들 가운데 순위를 매기고 배틀을 시키는 등 재미있는 요소들이 너무 많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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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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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 이런 일들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자주 다른 가정에서도 벌어지는 평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 모든 글은 가장 극적인 것을 포함한 어떤 행위도 정상적인 것처럼 만들어버리나 보다. 하지만 애인에게 털어놓은 것을 제외하면, 이 장면은 여전히 언어도 영상도 없는 듯한 이미지로 가슴속에 간직되었기 때문에, 이를 묘사하려고 사용한 단어들이 낯설고 무례하기까지 느껴진다. 이것은 남들을 위한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   p.26~27

'6월의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는 강렬한 문구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서사를 담고 있다. 그녀가 열두 살 이던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바탕 말다툼을 벌이셨고, 이내 어머니의 비명과 울음소리와 함께 목격한 것은 아버지가 어머니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낫을 들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 장면에서 그녀가 느낀 것은 두려움과 슬픔이 아닌 '부끄러움' 이었다. 물론 그날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 사건은 그저 '나쁜 꿈'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고, 비극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비극의 장면을 도처에서 본다.

 

부모가 아이를 앞에 두고 다투는 것은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겠다며 소리를 지르고, 목을 조르고 때리는 장면을 바라보는 열두 살 소녀의 모습은 어쩐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더 이상한 것은 아버지가 평상시에 폭력을 휘두르던 가장도 아니었고,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처럼 그녀의 부모들 역시 그날 일을 전부 잊기로 결정한 듯 행동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에르노는 열두 살의 어느 일요일 정오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들을 마치 일기처럼 글로 써낸다. 그럼에도 감정적이지 않고 매우 건조하게, 마치 남의 일기를 두고 분석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냉혹하고 담백하게 쓰고 있다. 내 부모가 부끄럽고, 내 가난이 부끄럽고, 아무리 노력해도 품위 있고 우아한 생활이란 내 가족들에게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건조한 문장들 속에서 아프게 읽힌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6월 일요일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    p.137

누구에게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혹은 규정해버린 어느 순간, 어떤 기억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차마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어떤 것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에르노는 그러한 부끄러움을 글로 옮기면서 말한다. ', 모든 글은 가장 극적인 것을 포함한 어떤 행위도 정상적인 것처럼 만들어버리나 보다' 라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그것을 글로 쏟아 내면서 불가능하고, 끔찍했던 장면도 생각보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평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에르노는 기억과 그것을 표현해내는 글이라는 수단과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찾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담담하게 응시하고 있다. 부끄러움이란 달리 말하면 불편함일 것이다. 숨기고 싶은 것을 드러내야 하는 데서 오는 수치스러움과 심연에 자리하고 있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서 오는 고독과 슬픔 또한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은 부끄러움에 대한 작가의 내밀한 고백이다. 교육받지 못한 부모, 가난한 집, 부끄러움은 자신에게 너무나 당연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날 이후 부끄러움은 자신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고 말이다. 철저하게 객관적인 회상을 통해서 에르노는 자전적 글쓰기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이 작품을 발표했다. “타인의 시선을 견딜 수 없는 책. 나는 그런 책을 쓰고 싶었다.”고 말하는, 가장아니 에르노다운 글쓰기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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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하루, 밤에 피는 꽃 웅진 지식그림책 53
라라 호손 지음, 홍연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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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 예쁜 그림책을 만났다. 웅진 지식그림책 53, 라라 호손의 <일 년에 하루, 밤에 피는 꽃>이라는 작품이다. 사와로 선인장이 일 년에 한 번 꽃을 피우는 그 하루 동안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노란 사막은 미국 남서부에서 멕시코 북서부까지 펼쳐져 있는 넓디넓은 사막이다. 이곳에는 '사와로'라는 아주 특별한 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이 거대한 선인장은 일 년에 딱 하루만 꽃을 피운다고 한다. 이 선인장은 길이 15미터에 무게가 9톤이나 되는데, 수명이 200년 정도 된다. 조직의 반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덕분에 유사시 인디언의 음료수로 이용되기도 한다.

드넓은 사막의 밤, 일 년에 한 번뿐인 꽃 축제를 즐기기 위해 사막의 여러 동물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일 년에 딱 하루라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은 짧지만 화려한 꽃잎을 활짝 펼치고 달콤한 향기를 내뿜어 박쥐와 나방, 비둘기 같은 꽃가루 매개자들을 불러들인다. 이 동물들 덕분에 사와로의 꽃가루는 멀리까지 퍼질 수 있다고 하는데, 그 특별한 하루는 사막의 여러 동물들에게는 마치 축제와도 같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사막에 사는 독특한 곤충들과 동물들을 만나게 되는 점이 특별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무지개메뚜기, 긴 줄무늬 꼬리를 가진 호랑이꼬리고양이, 늑대의 축소판이라하는 남부메뚜기쥐, 나는 것보다는 땅 위를 달려 움직이는 갬벨메추라기, 세상에 알려진 단 두 종류뿐인 독액을 뿜어내는 도마뱀 중 하나인 아메리카독도마뱀 등등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와로의 친구들은 모두 낯설지만, 그만큼 매력적이다.

페이지를 펼치면 드넓은 사막에 아침 해가 떠오르고, 분홍, 주황, 노랑, 빨강.. 사막에 꽃들이 활짝 피어난다. 햇볕이 점점 땅을 뜨겁게 달구는 한낮의 열기 속을 지나, 사막에는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고, 기온이 떨어지며 밤이 다가온다. 그렇게 어둠이 내리고, 찬란한 달빛 아래 사와로 선인장에는 새하얀 꽃들이 피어 오른다.

따뜻한 대지와 붉은 해가 떠오르고 시간이 지나 밤이 되며 색상이 변해가는 사막의 하늘, 싱그러운 초록빛을 뿜어내는 사와로 선장과 알록달록한 저마다의 개성과 색상을 가지고 있는 사막의 여러 동물들이 페이지 하나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살아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바로 계절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푸릇푸릇한 봄부터, 시원한 초록빛의 여름, 노랑, 빨강으로 물드는 가을, 회색과 무채색의 겨울의 모습을 모두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각 계절에 맞는 꽃과 나무, 곤충들의 모습 또한 너무도 경이로운 자연이 줄 수 있는 선물일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 아름다운 광경들을 놓치며 산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가 잊어 버리고 살고 있는 풍경들을 자연의 경이로움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재현시키고 있다. 단순하지만 우아한 선과 따뜻한 채도의 생동감 있는 컬러들로 표현된 사막의 하루는 그림이지만 너무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막의 건조한 바람도 따뜻하게 느껴지고, 무더운 날씨도 생기 있게 보이며, 페이지 여기저기에서 달콤한 꽃내음이 나는 것만 같다. 어둠 속을 날아다니는 희끄무레한 나방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한 가득 피어난 사와로 꽃에서 나는 진한 향기가 책 속에서 묻어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무더운 여름 밤, 사막의 동물들과 함께 자연의 신비로운 여행을 떠나 보자. 사막의 아름다운 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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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실험실 - 위대한 《종의 기원》의 시작
제임스 코스타 지음, 박선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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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년간의 따개비 연구가 끝났을 때쯤에는 다윈의 아이들도 아버지가 집에서 실험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무척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때 다윈의 첫째 아이가 15살이고 막내는 세 살이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따개비를 연구하는 모습을 내내 보며 자랐다. 다윈 가족의 이웃이었던 존 러벅은 이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다윈의 아이 중 하나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그 집에 현미경이나 해부 도구가 없는 것을 보고, 그러면 네 아빠는 따개비 연구를 어디서 하시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다윈의 아이들은 다른 아빠들도 모두 따개비를 연구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p.115~116

신이 이 자연을 설계했다고 주장하는 자연신학이 주류이던 19세기 초반, 찰스 다윈은 그러한 믿음에 의심을 품었다. 자연의 진리를 밝히기 위해 위대한 지적 탐구는 40년 동안 가족과 함께 살았던 다운하우스의 시골집 뒷마당 실험실이었다. 그의 집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집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개구리 알을 덮은 축축한 종이로 복도가 어지러웠고, 뒤뜰 새장에서는 비둘기들이 요란하게 울어 댔으며, 온갖 씨앗을 둥둥 띄운 소금물로 가득한 항아리가 지하 창고에 수두룩했다. 모아둔 비둘기 뼈 때문에 악취도 진동했는데,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렇게 다윈은 끊임없이 기이한 실험을 했던 빅토리아 시대 괴짜 박물학자쯤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러한 실험 덕분에 오늘날 생물학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역사적인 인물이 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당시로서는 혁명에 가까웠던 진화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 모든 과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화학, 생물학, 해부학, 박물학, 지질학 등등 다윈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고, 끈질긴 관찰과 투철한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친구, 사촌, 조카, 어린 자녀들은 물론이고 집사와 가정교사까지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연구에 참여시켰다. 딱정벌레를 수집하고, 전 세계에서 수집한 비둘기를 키우고, 온실에서 덩굴식물을 기르고, 벌들을 쫓아다니며, 파리지옥에 손톱과 머리카락을 먹이로 주고, 지렁이와 대화를 나누며 합주곡을 들려주는 등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실험들이 펼쳐지는데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항상 바보처럼 실험한다'는 다윈이 말처럼 그의 행보는 어딘가 웃음을 자아내는 구석이 다분했다. 그럼에도 '천재가 하는 바보 같은 실험'은 결국 위대한 발견을 해내는 도약의 발판이 된다.

다윈의 관점이 언제나 옳은 사실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기의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끈기와 독창성을 발휘하는 모습은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교훈을 시사한다. 그 동안 해왔던 수많은 견구처럼 분산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그가 오랜 시간 소박한 방식으로 기발한 실험을 실행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의 비밀을 밝히는 데 필요한 것은 약간의 독창성과 자원을 활용하는 지혜가 거의 전부가 아닐까 한다.   p.271~272

다윈의 <종의 기원>이 그가 청년 시절 5년간의 역사적 항해 동안 남미와 대서양·태평양·인도양을 넘나들며 수많은 동물·식물을 채집하여 연구한 것에서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영국으로 돌아와 20여 년 동안, 진화론을 입증할 방대한 증거와 자료들을 수집했던 그 긴 과정에 대해서 아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비글호의 좁은 선실에서 시작된다윈의 실험실은 이후 그의 생애 대부분을 보냈던 다운하우스 시골집의 서재와 복도 그리고 정원에서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그가 했던 실험들이 무슨 거창한 도구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도구와 재료를 갖고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는 매 장마다 '다윈의 실험' 이라는 메뉴로 다윈이 했던 여러 가지 실험들을 실생활에서 직접 재현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씨앗 날리는 실험, 다윈이 변이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게 했던 따개비 관찰, 잔디밭 실험구 만들기, 벌집 분석과 비눗방울 실험, 식충식물 관찰하기 등등.. 누구라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직접 참여해볼 수 있는 실험들이 위대한 다윈의 이론의 바탕이 된다니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책은 <종의 기원>을 대중들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교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열정의 실험가이자 10남매의 아빠, 자상한 남편, 다정한 이웃으로서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찰스 다윈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특별한 재미도 준다. 그리고 근대 과학사의 흥미로운 장면들을 직접 엿볼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고, 평범한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어린아이의 눈높이로 모든 현상에서 '' '어떻게'를 질문하는 것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놀라운 과학적 발견의 탄생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어 감동적이기도 했다. ‘위대한 이론의 탄생 현장에 함께하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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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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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로 판결해버리면 판사는 마음 편하다. 억울한 죄인을 만들 가능성은 제로가 되니까. 하지만 그걸로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피해자가 사적으로 보복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해놓고서, 정작 처벌을 맡은 국가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법관은 당위 말고 다른 건 고려할 필요 없어, 하고 외면하면 그만일까. 살의를 품은 예비 범인을 안심시키는 판결이 되지는 않을지 한 번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완전 입증을 요구할수록 오판 가능성은 낮아진다. 판사의 마음은 이쪽이 편하겠지만 그만큼 완전범죄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판사는 그 책임은 지지 않는다.   p.53

작가이자 판사로, 이제는 변호사로 활동 중인 도진기 작가의 신작 논픽션이다. 도진기 작가의 국내 출간작들은 거의 다 읽었지만, 어쩐지 이번 신작은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이라서 더 기대가 되었던 작품이다. 아무래도 그가 장편소설을 여덟 편이나 발표한 소설가이긴 하지만, 판사로, 변호사로 법의 최전선에 여전히 몸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만큼이나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이었다. 어려운 법률 용어들도 등장하고, 구체적인 사건 전개 과정 등이 나열되는 등 다소 딱딱할 수도 있는 글인데도 너무 술술 잘 읽혀서 깜짝 놀랐다.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논픽션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에는 도진기 작가가 변호사가 된 후 2017 7월부터 2018 8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한 <판결의 재구성> 원고와 각 파트 끝에 조선일보 <일사인언> 코너에 쓴 짧은 수필들이 수록되어 있다. 도진기 작가가 경향 신문에 연재한 '판결의 재구성'을 가끔 읽었었는데, 이렇게 한 권의 책에 담아 놓고 보니 정말 훌륭한 논픽션이 된 것 같다. 김성재 살인사건, 낙지 살인사건, 이태원 살인사건,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등등...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다 알고 있는 그 사건들의 실제 판결 과정과 결과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작가 도진기가 20년 판사 생활을 통해 들여다본 가장 뜨거웠던 30번의 판결들을 모은 것인데, 사건이 아니라 판결을 들여다본다는 점에 있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건의 제목만 보고는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사실들, 언론에 숱하게 보도 되었던 정보들의 나열이 아닐까 추측했던 점은 책을 읽으면서 완전히 판단 착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중의 입장에서 들어서 알고 있던 정보들의 나열과 실제 법을 집행하는 입장에서 해당 사건들의 진행 과정과 판결을 낱낱이 분석해서 도출한 사실들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책만이 줄 수 있는 생생한 논픽션의 매력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틈으로 인해 진범을 놓치는 일은 안타깝다. 그러나 그 틈을 메우는 건 법 이론이 아니다. 합리적 의심 기준을 완화하면 억울한 이들이 생기기 쉽고, 반대로 강화하면 범인이 빠져나가기 쉽다. 여기서 필요한 건, 혹은 앞으로 더 필요한 건 수사 기술과 시스템이다. K 순경 사건에서처럼 현장 경찰관의 엉성한 기록만을 믿고 법의학적인 판단을 해서는 오류를 피할 수 없다. '외부인 침입 가능성'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건, 초동 수사에서의 법의학적 자료 확보와 과학적 분석, 감정 같은 것들이다. 그 발전이 언젠가 법률가들을 '합리적 의심'에 대한 고민에서 완전히 해방시킬지도 모른다.   P.287~288

이 책의 부제는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이다. 사람들은 재판이 재판 외적인 이유로 왜곡되고 있다고 비판을 한다. 도진기 작가도 이 책을 통해 말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말은 이젠 거의 법정에 대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는 거나 다름없는 수준의 클리셰가 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법정 밖의 시선과는 다르게 법정 안의 일반적인 정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무의식적인 편향이 있을지 모르지만 의도적으로 달리 대접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자신과 무관한 사람들이니 그럴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을 테고, 실제로 돈이나 사회적인 지위로 재판에서 유리하게 판정이 되곤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차별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판결의 안쪽을 들여다보고, 더 나은 판결을 위해 고민하는 작가의 시선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각각의 사건에 대한 케이스에 대한 과정과 판결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나면, '그저 공상에 불과한 것인데'로 시작하는 '다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법률가로서가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몽상이라며, 비법률가적인 공상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런 대목들을 가장 흥미롭고, 통쾌하고, 속시원하게 읽었다.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건의 부당함과 안타까움도 담고 있고, 추리소설 독자로서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상상력도 놓치지 않으면서, 법률가로서의 통찰력도 있는 의견들이기 때문이었다. 판결의 논리와 상식이야말로 시민의믿는 구석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던 이유도, 올바른 판결이 시민들의 억울함을 풀고 법의 힘으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줄 거라는 믿음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은 희망이 보였던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각 파트의 끝에 수록된 짧은 에세이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주로 그의 독서 편력을 엿볼 수 있는 책에 관한 짧은 단상들인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가 20대에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들, 교고쿠 나쓰히코의 <망량의 상자>와 오쓰이치의 <GOTH 고스>에 대한 특별한 리뷰, '히가시노 게이고를 지옥으로 보내겠다!'는 홍보문구를 떠올렸던 이유 등등... 도진기 작가의 개인 서재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글들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작년에 문유석 판사님도 쾌락독서라는 책을 쓰셨는데, 도진기 작가님의 독서, 책 읽기에 관한 에세이도 따로 책으로 만나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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